Chapter 12
콜록콜록
“감기 걸렸어? 여름인데?”
“그러게·”
개도 안 걸리는 여름감기에 걸려버렸다· 그것도 건강검진 당일에 말이다·
직업체험박람회에서 에어컨을 너무 오래 쬔 게 원인이었다·
‘겨우 이 정도 온도차로 아픈 몸이라니 얼마나 면역력이 약한걸까 이 몸은·’
“나 키 많이 큰 것 같은데 드디어 120cm를 넘겼어! 나메는?”
“105·3cm? 뭐 많이 컸네·”
두달만에 약 2cm 가량 큰 거면 성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아린 네가 너무 큰 거 아니야?”
“나도 아직 반에선 뭐 작은 편이지만···”
요즘 애들은 그렇게 평균 키가 컸나? 하긴 개나 소나 120cm에 130cm 이상도 적지 않았다·
이런 꼬맹이들 상대로 계속 올려다 보아야 하는 처지가 심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나메는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네· 하루 세끼 잘 챙겨먹어야겠다 알겠지?”
1kg씩 늘리는 것도 고행이라는 걸 보건 선생님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포션이 없으면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걸· 게다가 이 치료용 마나포션 비보험이라서 돈도 드럽게 많이 든다·
갑자기 포션 생각을 하니 키나 몸무게나 하는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이 포션에 드는 비용은 모두 고아원에서 충당하는 게 아니었다·
마범일 형사가 사비로 3백만원 어치를 선불로 결제해서 이제껏 복용할 수 있었던 것·
그런 줄도 모르고 나메는 하루에 3개씩 꼬박꼬박 다 먹어버렸다·
“피 뽑는 거 무서운데 손 좀 잡아주면 안 될까?”
“이미 잡고 있잖아·”
“놓으면 안 돼!”
어차피 아프지도 않아 보이는구만· 현대 의학 기술이란건 대단했다· 아이들의 엄살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지만·
아이들이 차례대로 반에 돌아와 피를 뽑은 팔을 다른 손으로 꾹 지혈하고 있다·
얼마 있다가 하선화 선생님이 명단을 아래로 훑어 몇몇 학생들을 부른다·
“방금 부른 학생들은 검사가 제대로 안 돼서 다시 해야 하니까 쉬는 시간 종 치면 강당으로 가면 돼요·”
대상이 된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설마 피를 다시 뽑아야 하는걸까· 벌써부터 근심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나메는 선생님이랑 지금 같이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점심은 선생님이 가면서 사줄 테니까 오늘만 차에서 먹자· 알겠지?”
“선생님 나메 어디 아파요?”
“아니야 나메는 쪼오끔 더 정밀검진이 필요해서 큰 병원으로 가는 것뿐이야· 오늘은 아린이 혼자 씩씩하게 집까지 갈 수 있겠지?”
“네···”
그리고 나메는 뜻밖에도 하선화씨와 데이트 일정이 잡혀버렸다·
“나메는 책가방 챙기고 내려가자·”
나메의 몸이 아무리 작다해도 선화의 생후 20개월로 추정되는 따님이 이용하는 카시트까지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나메의 정신연령으로 거기까지는 허용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녀는 평범하게 조수석에 그대로 안착해서 안전벨트까지 착실히 맸다·
“베이컨 샌드위치 좋아하니?”
그녀가 건넨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나메는 지금 몸이 아픈 곳이 있니?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한테 잘 설명해줘야 하는데 말하기 정 힘들면 지금 선생님한테라도 말해줄래?”
감기 때문에 기침할 때마다 폐가 쓰라린 정도?
나메에게는 아픈 축에도 별로 들지 못했기에 손가락으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나메가 어른스러워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아린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생각해·”
나메와 선화의 공통된 주제는 역시 아린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나 그녀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기에 아린이 언급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아린이도 처음부터 이렇게 말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라서 선생님도 처음에는 조별활동도 많이 해보면서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결국 잘 안 되더라·
원래 교무실도 학생들이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지만 아린이만큼은 내가 미안한 마음에 계속 방문해도 뭐라 못 하겠네·”
“출신 때문이에요?”
“응· 우리 반 아이들도 너희를 차별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울 학교에서 작년에 안 좋은 일이 벌어져서 말이야·
다들 그 사건 때문에 너희들을 피하는 분위기야· 괜히 너희들이 무관한 일로 피해만 보고 있어서 안타까워·”
게다가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주체가 학부모들이었기에 더욱 제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메를린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은 초중고생들을 다 합쳐서 30명 가량·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최외곽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이들은 모두 가장 가까운 아라별 재단의 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아이들 잊을만 하면 발생하는 학교폭력에 최근에는 급기야 범죄 카르텔과도 연루되었다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이들은 기피 1순위 대상이 되었다·
선화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죄없는 아이들이 이런 편견 때문에 따돌림 받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지금 문제아처럼 엇나가버려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위해를 가할까봐·
선화는 그때 누구의 편에 서야할지 정할 수 없었다·
메를린 보육원 아이들은 모두 가슴 한켠에 큰 상처를 품고 있는 이들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에게 버려저서 부모가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부모와의 연을 끊어버려서···
두세명의 인원으로 이들의 상처를 전부 가려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언제나 입양되는 걸 희망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입양에도 적령기가 있다는 걸 깨닫고 절망한다·
결국 의지할 수 있는건 보육원 출신의 친구들뿐임을 차츰 깨닫게 되고 이들의 일탈을 바로잡아줄 보호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후로 한동안 대화는 끊겼었다·
“아라별 초등학교에서 온 정밀검사 대상자입니다·”
“네 여기에 보호자분 서명 부탁드립니다· 수납 과정은 따로 없으니 뒤에 앉아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혹시 얼마나 걸리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어음··· 대략 20분에서 30분 정도 소요될 것 같네요· 우리 친구는 저기 간호사 언니 따라가볼까?”
그렇게 나메는 간호사에게 이끌려갔다·
예전에 병원에서 했던 일련의 절차들을 똑같이 진행한다·
미세한 마나파장이 고강도로 뿜어져나오는 기계가 나메의 몸을 빙빙 돌고 언제나처럼 의사와의 면담 시간이 찾아왔다·
나메가 보기엔 꽤나 어린 청년이었는데 고도의 난시라도 되는지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찌푸리는 모양새가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물론 대화는 이번에도 보호자인 하선화 선생이 대동하여 이루어졌다·
말문을 먼저 튼 건 선화였다·
“상태가 많이 심각한가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드려야할지··· 일단 병명부터 말씀드리자면 에머리-드레이푸스 근이영양증입니다·
유전성 질환이기도 하지만 본 환자의 경우에는 장기간 고농도의 마나 노출로 인한 유전적 돌연변이 즉 후천적으로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고요·”
“근이영양증이면 근육이 수축되는···?”
“나중에는 근육이 위축되는 단계까지 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보시다시피 점진적으로 진행돼서 성인이 될 때까지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발견한 게 다행이라 해야할지···
그래도 몸을 쓰는 운동은 평생 못한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부분의 유전성 질병이 그러하듯 완벽히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의사는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과 영양제 그리고 현재 나메가 섭취하고 있는 마나 포션도 복용량을 3배로 늘렸다·
살기 위해서 악착같이 포션을 먹은 게 미래의 수명을 앞당긴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억까도 이런 억까가 없네·’
“물도 하루에 3L 마시기 힘든데 이렇게 쓴 포션을 아이가 다 마실 수 있을까요···?”
“그게 현재로서는 최선입니다·”
* * *
돌고 돌아 또 돈이 문제다·
작은 몸뚱아리 주제에 돈은 더럽게 많이 잡아먹는다·
어쩌면 보육원에서 나를 내칠 지도 모르는 일이지· 내가 알기로 메를린 보육원도 지금 운영상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
사지 멀쩡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해야할지··· 아무튼 나는 건강보다는 앞으로의 금전적 문제가 더욱 큰 현실로 다가왔다·
지금 돈 내고 사지 보존할래 아니면 돈 아끼고 전신마비 될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당연히 물을 것도 없이 전자다·
수다스러운 선생님은 보육원 근처에 내려줄 때까지 말 한마디가 없으셨다·
그녀 나름대로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자신의 제자가 불치병에 걸리면 어떻게 위로해줘야 하는지는 교대에서 가르쳐주지 않을 테니까·
나는 보육원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 골목길을 배회했다·
여자의 몸이라 그런지 원래부터 천성이 그런지는 몰라도 이따금씩 감성에 물들 때가 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아린이 리트리버마냥 달려들어 잔뜩 위로받겠지만 지금은 혼자인게 좋았다·
2000년 초반대 소설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죽고 나면 성인인채로 깨어나던데 왜 나는 항상 처음부터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성인이었다면 전생의 지식으로 코흘리개들의 과외라도 해줄 수 있는 노릇이겠지만 나는 이제 겨우 1m를 넘긴 어린 몸이었다·
최소한 내가 어린아이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궁 PC방]
[트위시 브이튜브 등 최고 해상도 스트리밍 소프트웨어 무료지원]
“우리 좀 놀다 들어갈래?”
“여기 한시간에 3천원이나 하잖아·”
“회원은 2500원이야·”
“그래도 너무 비싸”
“내가 오늘은 쏠게· 어차피 이 근처에 피방이랄 것도 없잖아·”
친구로 보이는 남학생 둘의 대화를 들었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을까·
적당한 육체가 없다면 가상현실로 때우면 될 것을·
캡슐에 갇혔을 때도 가끔 개인 카메라를 달고 게임을 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쉴 새 없이 놀리곤 했다·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엉겁결에 들어간 PC(Personal Capsule)방의 조명은 대체로 어두웠다·
주인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무인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인가?
학생들의 말대로 예전 세계의 상식으로 알고 있던 가격보다는 조금 더 나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등하굣길에 있는 PC방은 여기 한 곳뿐· 이게 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애매하게 걸쳐있는 탓이었다·
그래 학교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 생각한 참이다·
청결 마법까지 걸려 있는 캡슐에서 밤을 지새우고 낮에는 학교에서 잠을 잔다·
이 얼마나 완벽한 계획인가·
애초에 메를린 보육원도 같잖은 아이들이 이따금씩 시비를 걸어오는데 하나하나 상대해주는 것도 질린 참이었다·
이번 달 용돈으로 받은 금액은 5천원이 전부· 나는 1시간 30분을 결제하고 캡슐로 들어갔다·
익숙하고도 포근한 느낌이 나를 감싸온다····
정말이지 역겨웠다·
[Muon SⅡ 서비스 이용약관]
[약관에 동의하시겠습니까?]
[궁 PC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회원 등록자입니다·]
[계정 생성을 스킵합니다·]
[아바타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아바타 생성을 스킵합니다·]
[주의! 민법 제751조 및 정보통신망법 제44조에 관한 고지]
[확인]
[캡슐에 등록된 신체 정보를 바탕으로 아바타가 생성됩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보이드 스페이스에 접속합니다· 중복 데이터 충돌·]
[오류!]
[User Name: NoName님 환영합니다·]
“결국 돌아와버렸어· 그런데 엄마는 이제 없구나·”
공허한 우주 공간에 6개의 가벽이 세워지며 하나의 단칸방으로 변모한다·
내가 아는 익숙한 공간인 단칸방이었다·
새하얀 벽지 침대 테이블 의자가 하나씩· 하지만 그곳 어디에도 설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이 게임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엄마는 게임은 싫어하려나?”
그녀가 누워있던 침대에 몸을 기댄다·
“아린이라는 친구를 사귀었어· 생각보다 착한 애야·”
이번 생에도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언제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몸이 많이 아프대· 엄마가 알았으면 많이 걱정했겠지?”
게임 속인데도 그녀는 내가 공격을 받을 때마다 몸을 날려서 막아주었다·
“참으로 웃겨· 나는 엄마 대신 죽어도 되는 역할이었는데 말이야·”
엄마가 나 대신 죽어버리면 어쩌자는거야·
정말로···
그럼 게임이 이상해지잖아···
우리는 언제나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했지만 이번 생애에서의 나는 그때를 제일 행복했었다고 느끼는 것 같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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