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5
“언니! 몸이··· 몸이···?”
바알제붑을 물리친 순간이었다·
머리가 핑하고 돌더니 빈혈이 일어난 것처럼 세상이 깜깜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전에도 한번 경험해본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그래·
캡슐에서 몸 상태는 신경 안 쓰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였을 적 세계에서 튕겨져 나올 때 딱 이런 느낌이었다·
아델라의 목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뭐라 하는 거지·
“흐윽 이거 뭐야··· 왜 안 잡히는 건데··· 흐윽 으아아아앙!”
아델라가 계속해서 팔을 휘저어보지만 허무하게도 그녀의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성가신 파리도 물리쳤고 이제 최종보스만 물리치면 되는데···
너무 스토리를 간과했었던 것 같다· 아델라가 살아있어도 어떤 식으로든 보스가 나오겠지라고 간편하게 생각해왔다·
당연히 보스가 없을 경우를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보스가 따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그럼 클리어는 어떻게 하지? 내가 대비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넘어섰다·
아델라의 모습은 연못에 빠진 돌멩이처럼 점차 희미해져갔다·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침대와 테이블 칠판이 있는 3평짜리의 방이었다·
어느새 내 몸은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아있었지만 곧바로 일어나 로그인 화면을 켰다·
월오아에 다시 접속이 되지 않는다·
[Access denied for User NoName#3947292]
[Error Code: 75015]
[자세한 내용은 시스템 이벤트 로그를 참조하십시오·]
“시간이 안 지났는데 왜?”
아직 10시 24분이다·
-게임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4부 스토리 왜 막힘?
-당장 길 열어! 쓸고 가버리기 전에!
-??????????
-점검 시작도 안 했는데
시청자들 또한 클리어의 기쁨을 즐길 새도 없이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Access denied for User NoName#3947292]
[Access denied for User NoName#3947292]
[Access denied for User NoName#3947292]
세계수의 아이콘을 몇 번이나 눌러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뜨거운얼음’님이 1000원 후원!]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해봐도 안 되나요?
“어떻게 해도 안 되는데···”
[‘richardsilver’님이 1000원 후원!]
-일단 캡슐 계정부터 재접해보고 다시 눌러보죠·
그들의 말대로 계정을 새로 파고 들어와도 방송을 껐다가 다시 켜도 월오아의 아이콘은 묵묵부답이었다·
“다 안 되는데··· 하으으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방장님 우세요···?
-목소리 엄청 떨리네
-노네임을 울린 웨어소프트를 죽인다· 처음부터 그 생각뿐이었다·
-뭐 이딴 경우가 다 있냐
-긴급점검까지 20분밖에 안 남았네···
-아델라 제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숲지기야 우리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어라 왜 눈물이···?
└ 아니 계속 자극하지 말라고ㅠㅠㅠ
└ ㅠㅠㅠㅠㅠ
└ 진짜 나빴다
-깨볼 기회는 줘야지 갑자기 이게 뭐임!
“이런 걸로 안 울어요· 아 근데· 하아아···”
[‘ㅇㅁㅇ’님이 1000원 후원!]
-일단 멘탈 잡으시고 고객센터 가서 문의 넣어보죠·
-ㅇㅇ 그게 낫겠다
-이례적인 점검이라 웨어소프트도 아예 생각이 없지는 않겠지
-저희들도 같이 문의 넣을게요· 방장님 오픈월드 시드 적어둔 거 있으세요?
“아마도 Q39Z487YO166ML4338JA이었던 것 같아요· 도와줘서 감사해요·”
-리얼이야?
-아니 저걸 어케 외움 ㅅㅂ?
-ㄷㄷㄷㄷㄷㄷㄷㄷ
-대가리 돌았네
-이쯤되면 방장도 좀 무서워진다
째깍째깍 시간이 계속 지나만 간다·
같은 자리를 계속 빙빙 돌면서 팔다리가 저릿저릿한 게 근육통이 단번에 몰려온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온몸을 행주처럼 쥐어짠 듯 너무 피곤했다· 여기서 정신을 놓는다면 캡슐에서마저 추방당하겠지·
난 지금 뭘 어떻게 해야하지·
무력감을 느낄 때 가장 초라해진다·
캡슐에 완벽하게 갇혀 나오지 못할 때처럼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진다·
10시 55분이었다·
고객센터로부터의 답장은 당연히 오지 않았다·
일러도 내일 오전 9시에나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아내고 심호흡을 했다·
여전히 나아지는 것 없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수십 번을 계속 했을 때·
댕-
밤 11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쪽에 치워놨던 창을 가져왔다·
[ipfs://worldofarceria·waresoft·com/ko-kr/]
공지사항 창에는 아까 시청자들이 말한 긴급점검 일정이 달랑 게시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들로 항의의 불을 질렀지만 아직 운영자의 별다른 답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홈페이지로 돌아가니 월오아의 트레일러가 저절로 재생되었다·
울창한 숲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더니 휘황찬란한 제도(帝都)와 렘넌트 아카데미가 보였다·
교복차림의 학생들이 검술과 마법 대련을 하다가 화면을 발견하곤 활짝 웃고 있었다·
녹턴을 잡기 위해 빠르게 공략했던 레티스카야의 동굴의 입구에서 박쥐들이 우르르 빠져나오고 이에 놀란 루나 파빌리스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화면은 다시 빠르게 바뀌어 성국에 방문한 용사 일행들은 레피와 다니엘을 다시 만나게 되고 인자해보이는 교황이 와서 성수로 그들의 세례식을 돕는다·
일반 난이도를 했다면 볼 수 있었을 풍경들·
난이도를 다시 고를 기회는 충분히 많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건 내 오기였다·
나이트메어 난이도라는 사실에 크게 감흥이 없었던 것도 맞았다·
그래봤자 나오는 몬스터들과 적들은 피라미 수준이었으니까·
그런 내 알량한 자존심과 고집 때문에 결국 이런 사단이 나버렸다·
중간에 에러 메시지가 연이어 떴을 때부터 불안한 감이 엄습해왔지만 지금와서 되돌이킬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을 지켜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확실하게 그녀와 꼭 이야기를 나누어봐야할 이유가 추가로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확실히 아델라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그것도 전생에서·
* * *
“아델라···”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가 이름을 불렀다·
다소 차가운 기운에 몸을 움츠렸다가 그녀의 긴 속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
“으음 여긴 어디냥···”
“수도 3지구 와이니어 여관·”
“우우웅··· 그렇구낭··· 에엥? 잠시만 뭐라고? 3지구라고?”
아델라는 몸을 서둘러 일으키려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바닥에 머리를 콩 박은 그녀는 아야얏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다가도 몸을 바닥에 낮춘채 주위를 둘러봤다·
“노네임 설마 우리··· 해낸 거냥?”
“응· 월계수 2개도 모두 되찾아왔고 어비스 동료들도 무사하고 무엇보다 살아남았어· 더 이상은 안 죽어도 돼 아델라·”
“흐윽··· 흐냐아아앙! 그렇구나 해냈구낭··· 히끄윽··· 언니는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기나 하냥···! 흐읏···”
그녀는 곧바로 금발머리의 여성에게 달려들었다·
따뜻하다 심장이 뛰고 있다· 아델라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그녀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아델라· 몇 번이나 죽느라고·”
“그건 내가 언니한테 할 소리야!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냥! 그리고 회귀는 뭐였고···! 그것도 설마 월계수의 능력이냥?”
“아니· 월계수는 아니고·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게 있어 아델라·”
“아무튼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진짜로 다행이야··· 왜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준 거냥···”
“나는 널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나를 알아? 나를 알고 있다고?”
“응· 어쩌면 너 이상으로 널 잘 알고 있을 수도·”
“또또 허언증이다··· 이제는 언니 말 못 믿겠어·”
고개를 휙 돌리는 아델라·
그 모습에 금발머리 여성은 아델라의 몸을 휘감아 자신의 쪽으로 밀착시켰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란 나머지 아델라는 흡하고 숨을 들이켰다·
“이··· 이게 뭐하는···?”
“쓰담쓰담·”
정수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점차 등을 타고 내려가더니 꼬리 윗부분에서 멈추어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가벼운 진동이 일어날 때마다 눈이 확 커진다·
아찔한 감각에 신경이 곤두선 아델라가 신음을 삼켰다·
“이제 그만···”
하지만 손길은 멈출 새 없이 그녀의 은빛 꼬리를 가볍게 잡아채 뿌리 부분부터 끝까지 단번에 어루만져주었다·
“히이이이이이익!”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나간 아델라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들며 항의했다·
“미··· 미미··· 미쳤냥? 우리 묘인족이 꼬리가 얼마나 예민한데!”
“이상하다· 난 분명 좋았는데·”
“좋고 말고를 떠나 함부로 만지면 실례잖냥!”
그것이 아델라와 밤의 노네임과의 첫만남이었다·
밤의 노네임이라는 어구 그대로 밤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었지만(첫 만남은 시간 상으로는 아침이었다) 그저 편의상 부르기로 한 말이 의외로 그녀의 성격과 찰떡같이 들어맞았다·
“옷을 그렇게 아무데서나 훌렁 벗어대면 안 된다고!”
“아델라? 내 몸에 연고 좀 발라줄래?”
“언니가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그런 것쯤은 혼자서 할 수··· 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아델라는 손틈 사이로 숲지기의 하얀 등을 보자마자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상처가··· 이게 다 뭐냥···? 누가 이런 짓을!”
칼로 깊게 베인 자상부터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듯한 상처까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흉터들이 그녀의 몸에 골고루 자리잡고 있었다·
하얀 크림을 등에 얇게 펴서 발라줄 때마다 아델라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혹시 언니는 과거에 노예였던 거냥?”
“훌륭한 추론이야·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
“안 아팠어···?”
“나는 과거를 인지하지 못해· 다만 기억할 뿐이야·”
그녀는 아르세리아 숲과 월계수의 정체에 대해 아델라에 쭉 알려주었다·
제국의 잔인하고 파렴치한 행색에 아델라는 분노를 품게 되었다·
연고 없는 어린 노예들은 모두 위그드라실의 성장을 위해 제물로 희생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운이 조금만 없었다면 자신도 거기에 포함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세계의 비밀을 알아버린 아델라는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목표는 현재 ‘월계수’라 불리우는 위그드라실의 영혼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놔 악마의 파편들을 영원히 봉인시키는 거라 설명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왜 하필 언니가 맡게 된 건데?”
그녀의 답은 간단하고도 오묘했다·
“너를 위해서· 그리고 클리어를 위해서· 그리고 난 여기까지야· 나를 만나고 싶으면 메피스토를 계속 쓰러뜨려줘·”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델라는 또다시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지만 그 뒤로 밤의 모습을 그녀에게서 찾아 볼 수 없었다·
“안녕 고양아·”
이제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꼴· 하지만 대충은 알았다·
일단 자신의 사명은 낮의 노네임과 함께 메피스토를 물리쳐야 한다는 것·
천사라 불리는 낮의 노네임과 다니엘의 처분과 관련하여 약간의 다툼이 있었지만 결국은 아델라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천사의 능력은 정말이지 한계가 없었다·
레피에게 걸려있던 폴리모프 마법을 풀어 불치병을 단숨에 고쳐버렸고 대악마가 소환되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땅 속에 영원히 봉인시켰다·
모든 게 완벽한 하루였을 텐데·
분명 그랬을 터인데·
그녀는 위험하게끔 낭떠러지가 아득한 절벽 위에 엉덩이를 걸터앉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This World is currently under Maintenance·]
[Error 3003]
노네임이 죽었을 적과 비슷하지만 다른 문구가 하늘을 가득 메운다·
세계가 흑백으로 물들고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헤헷··· 난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그런 거라면 제발 빨리 깼으면 좋겠다···”
꿈이라도 이건 너무 무서우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델라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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