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9
[지난 2044년 출시된 웨어소프트의 가상현실게임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입니다· 웨어소프트는 지난 달 벌어진 유례없는 규모의 이스포츠 승부조작 사태에 미흡한 대응을 보여 그동안 거센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시각으로 어젯밤 11시 또 한번의 사유도 없는 긴급점검으로 결국 이용자들이 폭발했습니다·]
뒤따르는 시위 총대진의 인터뷰 남성은 격양된 목소리로 웨어소프트의 변화를 촉구하는 열띤 주장을 펼쳤다·
[다음 소식입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이 웨어소프트코리아 등을 상대로 3개월간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할 거라고 발표한 데에 이어 유종원 웨어소프트코리아 대표이사가 검찰 소환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도를 넘은 웨어소프트의 방만 운영으로 월오아 유저들은 시위를 결심할 때까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불타고도 남을 장작은 이미 많이 쌓아놓고 있었지만 모회사가 아예 외국기업이라는 점과 그동안 유저 친화적인 정책으로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더 믿고 기다려보자는 여론이 다수였다·
결국 도화선에 불을 지핀 건 노네임이었다·
장장 12시간에 걸친 긴 방송·
그중 10시간을 웨어소프트 공략에 나서면서 전 세계 각지의 월오아 유저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난이도에 상관없이 나이트메어는 일단 클리어만 한다면 전 세계에서 최소 상위 5% 안에 드는 실력자라는 점을 보장했다·
3/3/3은 무한한 경쟁이 시작되는 상위 1% 마스터 티어에 발을 들인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관문이었고
5/5/5만 해도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라는 게임에 정점에 오르기 위한 챌린저들의 일종의 순례길처럼 여겨졌다·
때문에 10/10/10의 난이도가 인간만의 힘으로 공략 가능하리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죽하면 운영자들도 우스갯소리로 최고 난이도를 통과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는 필시 신에 다다른 존재일 거라고 농담을 하겠는가·
수백 년간 풀리지 않는 난제에 도전하는 사람이 언제나 많은 것처럼 한 때는 내로라 하는 프로와 천상계 스트리머들이 이에 도전해보았지만 언제나 비참하게 실패를 겪어왔다·
단순히 실력만을 가지고서는 이론적으로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대중들의 관심은 점차 식어갈 수밖에 없었다·
김이 빠지긴 하지만 해가 없다고 판명된 난제 또한 어쨌든 증명의 일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편견을 정면에서 깨부수듯 노네임의 행보는 가히 파격적이었다·
[녹턴이 저렇게 쉽게 썰리는 애가 아니야 이 bastard들아·]
전 세계 최정상급 게임공략 스트리머로 정평이 난 미스터와이는 그녀의 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2만 명 중 한 명이었다·
일반적으로 전설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최대 3개까지 캐릭터 특성을 부여받는데 나이트메어에서는 이 절차를 간소화하고자 2부에서 녹턴 나일링크와의 보스전을 만들어주었다·
녹턴이 소환하는 3명의 랜덤 보스들·
그들을 무찌를 때마다 플레이어들은 각 보스가 상징하는 특성을 받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노네임이 무찔렀던 보스들은 1부 플레이에서의 영향을 받았는지 하나같이 ‘기사’ 클래스에 특화되어 있었다·
메소미아 이브닝의 [황혼의 분신] 로 단테의 [아지랑이 일격] 그리고 라인하르트 쉬폿의 [치국평천하]까지·
힐러 클래스로 시작한 캐릭터라도 일대일에 특화된 특성이 있으면 나쁠 게 없었다· 이는 다시 말해 생존력을 높여줄 수 있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그게 쉬웠으면 개나소나 그렇게 맞춰서 했겠지·
세 보스의 공통점은 마나를 차단하는 고유의 마력역장을 펼칠 수 있다는 점·
오러를 주로 쓰는 기사 외에는 원천적으로 공략을 차단해놓은 적들을 순수하게 검술만으로 압도한 노네임은 경이로운 수준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것이다·
2부 보스전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면 3부 보스전은 검술이나 마법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크게 체감이 되었다·
<마법학 갤러리>
<질문글>
[ㅅ2발 이게 무슨 마법이냐?]
(바알제붑 격파 스샷·jpg)
마법진 크기가 풋살장보다 큰데?
[댓글]
-범시전이네
-범시전 ㅇㅇ
-(작성자): 범시전은 또 뭔데?
└ 마법의 출력이나 규모 등을 증폭시켜야 할 때 쓰는 method임
└ (작성자): 그냥 마법진을 저렇게 크게 그리면 다 범시전임?
└ 당연히 아니지 범시전은 걍 아예 다른 마법이라고 봐도 무방함
└ 쉽게 설명해주면 x^2+y^2=z^2를 만족하는 자연수 해는 쉽게 찾을 수 있는데 x^3+y^3=z^3으로 차원을 확대해보면 페르마 마지막 정리가 되어버리잖아? 이처럼 범시전이 아예 불가능한 마법이 대부분이고 설령 된다 해도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함·
└ㅈㄴ 복잡하네;;
<월드오브아르세리아 갤러리>
<개념글>
[이봐 예수 어째서 회의를 시작하지 않는 거지?][347]
(4대 성인 짤·jpg)
“아가리 여물어봐 지금 노네임이 바알제붑을 잡았다잖아·”
(눈이 충혈된 사이버펑크 예수가 멱살을 잡고 화내는 짤·jpg)
[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념글 날로먹네 시불련
-저런 짤은 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거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AI 넣고 돌린 거 아님?
-노네임 진짜 사람 맞냐? 월계수 3개 얻으니까 1부랑은 차원이 다르게 날뛰네
-월계수는 사실 노네임이라는 악마를 통제하기 위한 사슬이 아니었을까?
└ ㄹㅇㅋㅋ
-의외로 옆에서 아델라가 꽂는 딜도 쏠쏠하게 들어감
└ 아델라가 꽂는 딜도 ㅗㅜㅑ
-3차대전 때 저런 사람 아군에 한명만 있었으면 든든하겠노ㅋㅋㅋ
└ 든든하다 못해 국밥 식도로 역류할 듯ㅋㅋㅋㅋㅋ
-여고생 초인은 실존한다···!
-나멘!
└ 나멘나멘나멘나멘나멘나멘
└ 나멘
└ 헉···! 찬양합니다! 나멘 ㅋㅋㅋㅋㅋ
└ 이건 또 뭔데?
[아델라 사랑하면 개추ㅋㅋㅋㅋ][85]
얘랑 노네임 둘이서 메피스토 잡고 농밀찐득말랑보들끈적질펀뷰빔야스씬 함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개추ㅋㅋ
[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
-잘가라 게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성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캡처 완료 ppt까지 다 따놨다
-완장 이거 내리지 마라 내가 경고했다ㅋㅋㅋ
-아빠 어째서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웃는 걸까요?
└ 아들아 한문철tv가 수십년 째 인기가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려무나·
└ 미짜라는 트럭한테 치인 상황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노네임 미성년자인거 모르는 사람이 있네
└ 아니 ㄹㅇ임? 나이 60쯤 먹은 퇴역장교가 아니라?
└ 차라리 반로환동 했다는 걸 믿겠다ㅋㅋㅋ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천외천의 플레이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하늘까지 올려놓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최악의 형태로 무너지게 되었다·
최종보스만을 남겨놓은 마지막 챕터에서 노네임은 게임에서 튕겨져 나왔다·
만약 그녀가 공략에 성공했으면 시청자들은 역사에 다시는 없을 사건을 직관했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회도 얻어보지 못하고 게임을 종료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밀려오는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끝낼 수는 없다·
[웨어소프트 찾아가서 나라도 1인시위 할 생각인데 혹시 같이 참여할 사람 있음?]
한 청년이 충동적으로 쓴 뻘글이었지만 이것이 파문을 일으킬 줄은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급조되어 조직한 시위대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체계적으로 굴러갔으며 한국 사람들의 단결성에 주목한 외신들에게까지 보도되며 점차 이슈를 몰고 갔다·
그리고 다다음날 지주회사 ‘인텔리언스 웨어소프트(INCE)’의 주가가 전 거래일 대비 48% 폭락하면서 사람들은 이를 ‘메피스토의 수요일’이라 명명했다·
* * *
‘찜찜해·’
지난 일주일 동안은 정말 아무런 이벤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평온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복잡해져만 가는 심정과 대비되는 일상들은 어딘가 모르게 껄끄러웠다·
아카데미에서는 곧 있을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안내 말고는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학업과 관련해서는 배울 게 정말 하나도 없었지만 열의를 띤 눈빛을 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게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유나와 하루는 파자마파티를 계기로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어느새 눈 떠보니 무리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고 있더라·
웨어소프트에는 추가적인 문의를 몇 번 더 넣어보았지만 아직 묵묵부답이었다·
처음에 AI로 인해 자동생성된 원론적인 답변을 받았을 때는 화가 나는 걸 넘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
계정이 정지된 것은 아니지만 서버 복구 과정에서 플레이기록이 사라질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말· 게다가 분명 한국어로 질문했는데 영어 그대로 온 게 더 괘씸했다·
그렇게 다시 주말이 찾아왔다·
심신이 복잡할 때는 익숙함을 찾아라·
그래서 어제 한번 쭉 훑어봤던 저널들도 다시 처음부터 정독해보기도 했고 알폰스의 고유마도를 재현해보려고 80%의 미해석된 부분을 몇 시간 동안이나 검증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목욕을 하면서 생각을 비워야 마음이 조금 편해지려나·
쏴아아-
거울에 드러난 내 모습은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정말 작다·
마치 포토샵으로 사람 한 명을 비율 그대로 줄여놓은 것처럼 모든 게 작았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피부는 대리석처럼 하야면서도 매끄럽고 만지면 말랑말랑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저 얇고 가느다란 목을 한 손으로 쥐어 힘을 주면 터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약해보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날카로운 눈매는 조용히 서로를 쳐다본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 잔뜩 쌓인 표정인지·
다른 애들이 보면 무서워하지 않을까·
‘조금은 웃고 살아야 하나·’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더니 더 이상해서 관두었다·
뜨거운 김이 수면에서부터 모락모락 올라왔다·
화장실 거울이 점차 희끄무레 변했다· 옷을 벗고 드러난 나체도 점차 형상을 잃어간다·
“앗 뜨···!”
발가락을 물 속에 살짝 담가보자 연약한 피부가 벌겋게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수도꼭지를 다시 미지근한 쪽으로 맞춰놓고 물이 조금은 식어갈 때까지 욕조에 걸터앉아 폰으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이따금씩 서마루에게 주접을 떠는 메시지가 오는 걸 제외하면 생각보다 연락처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다·
아카데미 친구들하고 한명 한명 모두 연락처를 교환한 것도 아니고 굳이 밖에 나가지 않는 내 생활 습성상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물 온도가 만족스럽게 맞춰진 걸 확인하고 몸을 욕조 안으로 들이민 나는 최후의 보루로 이번엔 트게더라는 개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NoName 복귀기원 6일차][8] – ❤️
가장 최상단 글에 하트를 눌러주는 것으로 생존신고를 알렸다·
그러자 눈치 빠른 시청자들이 새로운 글을 마구잡이로 올리기 시작한다·
“이러면 방송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0:00:01 – NoName]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계획은 연재 시각을 변경한다는 공지와 함께 8시에 새로운 한 편을 올릴 예정이었습니다만···
지금 열이 39·2도까지 올라가서 아마 독감 내지는 코로나에 걸린 것 같습니다·
일단 내일 병원에 가서 몸 상태를 살펴보고 연재 일정에 관하여 다시 공지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화요일 전까지는 꼭 돌아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