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4
여름의 태양을 연상하는 찬란한 금발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호박석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연이어 끔뻑거렸고 선분홍색의 입술은 산딸기를 머금은 것 같았다·
내 모습 정확히는 10초 전의 나의 모습으로 변한 아델라였다·
그리고 나는···
-와 방장이 아델라가 됐어!!!
-와캬퍄
-OwO
-저게 가능하네?
-덕질의 끝판왕 나 자신이 덕질의 대상이 된다ㅋㅋㅋㅋ
-미뗬고ㅋㅋㅋㅋㅋ
스르륵·
은색 꼬리가 상하좌우로 움직인다·
‘이게 되네?’
생각해보니 고양이 아바타를 가진 매니저도 꼬리를 움직이던데 그게 설마 이토록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던 것이라니·
이 세계의 신경과학 발전 속도에 경의를 표하며 바뀐 몸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일단 시야가 조금 낮아졌다·
눈에 오러를 두르지 않아도 물체가 정말 잘 보였고 손을 아무리 흔들어봐도 잔상이 생기지 않았다· 마치 성능 좋은 카메라가 장착된 느낌이다·
아델라가 가지고 있던 단검을 손가락에 끼어 휘리릭 돌려봤다·
역시나 어색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이래서 내가 아바타를 만들 때 생판 모르는 타인의 몸으로 하지 않은 거다·
경험으로써 축적된 습관 하나하나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내 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꺄아아아아아앗! 뭐야? 뭐야! 몸이 바뀌었어? 언니랑 나랑 몸이···!”
“내 몸으로 오두방정좀 떨지 말아줄래?”
“헛 내가··· 아니 설마 언니야?”
“그래· 잠시 몸을 바꾼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제부터 잘 들어 아델라·”
아델라의 두 볼을 손바닥으로 짝 쳤다· 나 자신에게 행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튼·
볼살이 눌리고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이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메피스토펠레스를 소환시켜서 우리가 직접 물리쳐야 해· 이해해?”
“어어··· 이해해·”
“그런데 메피스토펠레스가 현신할 수 있는 육체는 제한되어 있어·”
어째서라고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웨어소프트 측에 똑같이 질의했으니까· 복잡한 ASI 전문 용어를 섞어가면서 설명하길래 일단 어구 그대로 외우기는 했다만 전부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만약 메피스토의 소환이 아델라의 육체를 수반한다면 단순히 아델라의 정신만 세이브시켜 놓고 클리어 이후 되돌리면 되는 일이 아니냐고 제안을 해봤지만 이에 대해선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일단 스토리가 진행 중인 오픈월드에 모델 데이터를 업로드하는 게 불가능할뿐더러 설령 기존의 다른 NPC에 덧씌우는 것조차도 복잡한 아델라의 코드를 전부 담아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담아낼 용량이 부족하다더라·
그럼 더미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데이터 용량이 많은 모델을 찾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해서 살펴보았더니 이를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게 딱 한 명 있었다·
플레이어 ‘나’·
여기서부터 모든 작전은 시작된다·
“지금부터 나는 죽음의 월계수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거야· 그럼 메피스토펠레스도 머지않아 강림하겠지· 마치 교황이 바알제붑으로 변한 것처럼 말이야·”
“나 대신 희생하겠다는 소리야? 그건 절대 안 돼!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줘··· 왜 자꾸 그러는 거야 제발···!”
“아델라 말을 끝까지 들어봐! 희생하는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나한테 아무런 설명도 안 해주고 몸부터 바꿨다는 소리는 이미 언니는 마음속으로 굳혔다는 얘기 아니야? 맞잖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아델라의 울음을 들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릴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꾹 닦아주고 그녀의 이마와 내 것을 맞대었다·
“잠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거야·”
“넘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델라·
“응 윤회의 월계수와 불사의 저주와 함께라면 나는 죽지 않아· 다만 다른 세계로 튕겨나갈 뿐이야·”
여기서부터 설명하기가 까다로웠다·
윤회의 월계수는 게임오버가 됨으로써 플레이어를 세이브 포인트로 돌려보내는 명령어를 담고 있었고 불사의 저주는 5초 동안 무적 판정을 얻는 특성이었다·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아델라의 고개가 끄덕였다·
“그럼 믿고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지?”
그녀는 목소리에 힘을 주고 비장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이해를 못해도 오로지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보일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 신뢰에 보답하지 않는 건 어른으로서 보일 태도가 아니지·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금방 돌아올게·”
[RECOVER]
[system: trig/0xf29a31 복구 마법사를 실행합니다·]
[객체 ‘여명의 고양이 – 아델라’ 존재 확인·]
[‘메피스토펠레스’를 강제 소환합니다·]
* * *
[HP: 18391/43750(40500+3250)]
[HP: 8391/43750(40500+3250)]
[HP: 1/43750(40500+3250)]
[특성 – 불사의 저주 (1/5)]
[YOU DIED]
[특성 – 불사의 저주 (2/5)]
[특성 – 불사의 저주 (3/5)]
[특성 – 불사의 저주 (4/5)]
[특성 – 불사의 저주 (5/5)]
[system: 이미 처리된 명령입니다·]
* * *
세계가 재구축된다·
가장 먼저 건축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문명 트레일러를 역재생하듯 벽돌 하나하나가 위에서부터 증발하는 광경에 장엄함이 느껴졌다·
그 다음은 푸르른 숲과 강이 색채를 서서히 잃어간다·
마지막으로 다리를 지탱하고 있던 대지가 무너져내릴 즈음 나는 우주 사이를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우주는 정말 환했다·
온통 백색으로 가득찬 허무의 공간·
“이게 오픈월드구나· 그래도 우주는 어두운 게 더 아름다운 것 같네요·”
이럴 때 채팅창이라도 있다는 점이 참 다행이었다·
-몬가··· 몬가 일어나고 있음···
-이젠 하나도 모르겠다
-이것도 계획인가요 선생님?
-다 사라져버리고 없는데?
-실패한 거야?
“일종의 꼼수를 썼다고 보면 되는 거죠· 윤회의 월계수는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하지만 불사의 저주는 캐릭터를 객체로 삼으니까·”
-????
-네?
-?
-진도가 너무 빨라요 교수님!
-혼자 다른 게임 하는데?
“쉽게 말해 불사의 저주는 체력이 0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발동이 되는 조건이에요· 원래대로라면 5초간 불사의 저주가 모두 끝나고 사망판정이 나와야하지만 월계수가 삼은 객체는 플레이어 자체· 불사의 저주는 표면적으로 아델라라는 ‘육체’에 걸려있기 때문에 저주가 끝나기도 전에 사망판정이 나면서 두 개의 월드가 생성되었고 여전히 제가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기존 월드는 사라지지 않아요·”
웨어소프트는 오픈월드 중첩 시스템으로 다중스택 방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리트라이를 하게 될 경우 기존 세계를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쌓는 방식이 아닌 체크포인트에서 시드값을 저장해 서브월드를 미리 준비시키고 언제든지 대체하는 식이었다·
“5장의 포커카드가 있다고 쳐봐요· 지금 메피스토펠레스가 소환된 세상을 스페이드 에이스라고 하면 지금 그 카드는 맨 뒤로 넘겨졌어요· 다시 그 카드를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나올 때까지 계속 뽑아야죠
“정답· 역시 똑똑한 사람이 좋아· 그러니까 1부에서부터 지나왔던 길을 그냥 다시 걸어오기만 하면 됩니다· 중첩된 세상이기 때문에 적들도 모두 스페이드 에이스에 있을 테니 싸울 일도 없죠·”
척하면 척 알아듣는 게 예사롭지 않잖아?
원래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라는 건 아무리 견고해보여도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 내가 롤에서 아스테리아의 궁극기가 타이맷 아이템을 지참했을 시 요새에도 대미지가 들어가는 걸 알아낸 것처럼·
하물며 과학에서도 불확정성의 원리가 존재하고 수학에서도 불완전성 정리가 증명되었는데 겨우 인간이 마법과 접목하여 만든 기술 따위가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는 법이다·
불가능이 엄밀하게 증명될 수 없다면 그것은 곧 가능하다는 소리·
결국 엔지니어들을 들들 볶으니 이렇게 참신한 아이디어가 하루만에 나오지 않는가·
드디어 이 빌어먹을 게임을 끝낼 생각에 반사적으로 꼬리가 씰룩거렸다·
-헉 꼬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분 좋으신가보다
-만약 방장님 말이 사실이라면 클리어 되겠는데요?
-진짜 변태 같은 구현력에 감탄만 나오네ㅋㅋㅋㅋ
[‘고양이교미가제일좋아’님이 1000원 후원!]
-노네임님 정말 뜬금없는 얘기라 죄송하지만 어제 방송하셨을 때 발음이 조금 새시던데 혹시 치아교정 하셨나요?
다음 오픈월드 로딩을 기다리는 동안 방송에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
잠깐의 기다림도 못 참는 건지 얘네들은 금세 다른 이야기로 나를 끌어들였다·
“아뇨· 제가 언제 발음이 샜다고 그래요?”
[‘고양이교미가제일좋아’님이 10000원 후원!]
-그럼 한번 ‘한양양장점 옆 한영양장점 한영양장점 옆 안양양장점’ 발음해보실래요?
이런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룬어도 아니고 한글인데·
자고로 6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에 사용되는 룬은 명명법부터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입으로 되뇌이지 않으면 나조차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어진 문자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구강 구조를 배려해주지 않는다·
겨우 면접 전에 연습해보려는 문구 정도야 뭐·
“하냥냥장점 옆 하냥냥장점 하냥냥장점 옆 아냥냥장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천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캬퍄
-이게 고양이고 이게 캣츠지ㅋㅋㅋㅋㅋㅋ
-ㅋㅋㅋ대체 뮤지컬 보러 왜 감!
-아델라가 말끝마다 냥 붙이는게 컨셉충이 아니었네ㅋㅋ
└ 어쩔 수 없었던 거임ㅋㅋㅋㅋㅋ
-진짜 졸귀다ㅋㅋㅋㅋ
“어?”
-다들 조용!
-쉬이이이잇!
-숨어숨어숨어
-돔황챠~~~~
“잠깐만 이거 생각보다···”
살랑거리던 꼬리가 추욱 늘어지고 귀가 뻣뻣하게 뒤로 눕혀진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너무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픈월드 스택이 많이 쌓이지는 않아 우려하던 점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 막 생성되고 있는 월드는 내가 알던 곳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하얀 배경은 어느새 검은 밤하늘로 가득 찼다·
차가운 한기를 품은 바람이 팔을 스치길래 아델라의 검은 망토를 꼭 둘러맸다·
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아봤는데 어깨가 무언가에 퉁하고 걸렸다·
누군가가 번듯하게 잘 쌓아올린 돌담이었다·
수도의 어느 한 인기척 없는 골목가 이미 모두가 잠에 빠져 가정집에서는 미약한 불빛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여기는 프롤로그에서의 아르세리아 숲도 1부에서의 어비스 15지부도 아니었다·
보스몹들이 전부 사라진 세상이다· 그래서 각 보스의 출현 지점만 찍고 서둘러 다음 오픈월드로 넘어가려던 계획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내가 어딜 걷는 지조차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걸을 때마다 발걸음이 무거워지길래 늪에 빠지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하염없이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다보니 올빼미 우는 소리 사이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아기 울음소리··· 맞죠?”
-개무섭고···
-여긴 또 어디여
-고양이 울음소리 아님?
-ㄴㄴ 진짜 아기가 우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이런 스토리는 난생 처음본다
시청자들도 나도 동시에 수상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에서는 ‘아기’는 물론이고 ‘어린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델라와 같이 제도를 빠져나왔을 때 그 복잡한 시장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건 오로지 어른이나 노인들뿐이었다·
그저 게임적 허용이겠거니 넘기려는 찰나 너무 사실적으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나는 모든 인터페이스를 있는대로 켰다·
[▶퀘스트 알림 – ON]
[▶NPC 자막 – ON]
[▶내비게이션 도우미 – ON]
[▶미니맵 – ON]
[▶히트 이펙트 – ON]
[▶크리티컬 이펙트 – ON]
[▶킬카운트 알림 – ON]
역시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현재 챕터를 서술하는 알림을 켰을 때
[▶챕터 알림 – ON]
[Unused Data / A-2 level 관리자 외 접근 금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세상에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스토리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모두에게 잊혀지고 버려진 세상(더미 데이터)에·
그때였다·
-뒤뒤뒤뒤뒤!
-방장님 뭐가 와요!
-꺄아아아아아아악!
어둠에서 단숨에 거리를 좁혀온 터라 미처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옆구리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지고 몸이 점차 기울어졌다· 이대로라면 넘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딱딱한 바닥과의 충격이 내 귀에 들리기도 전에
덩달아 모든 인터페이스가 희미해지면서 필름이 끊기듯 시야가 암전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간뿐만 아니라 이제는 시간까지 뚫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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