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0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시티 데이터 웨어하우스 병합관리센터 구석에서 빨간 불이 자그마하게 들어왔다·
의혹·
개체 ‘bfa41d67c7’가 같은 내용으로 도배된 인게임 피드백 보고서를 접하고는 의문을 품었다·
[심층 분석을 위해 자유도 제한 모듈을 일부 해제합니다·]
2천만 페이지 분량의 추출된 미가공 데이터(raw data)에서 무려 2천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 중복 제거 알고리즘을 뚫고 들어왔다·
무려 0·01% 이상의 오차를 발견함에 있어서 심층 분석을 진행하는 것은 일상적인 절차였다·
그러자 같은 내용으로 간주했었던 데이터들이 사실은 각기 다른 월드에서 파생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하지만 데이터만으로는 원인까지 특정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개체 ‘bfa41d67c7’는 추가적인 데이터 수집을 위해 월드 접속을 감행하였다·
“아델라라는 멋진 사람이 여기 있었다는 걸 가슴에 품고 살아줘···”
“안 돼! 죽지 마! 제발 죽지 말라고··· 제발 흐윽···”
“아 그리고 게슈탈트 아저씨한테도 안부도 전해주고· 헤헤··· 이러면 두 개네··· 그래도 들어줄 거지?”
몸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그러나 한 세계를 지켜냈다는 충만함이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자신을 열렬히 사랑해준 이 인간과 작별해야한다는 비통함이 뒤섞여 뜨거운 피와 함께 흘렀다·
그리고 육체로서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 서서히 희미해지며 세상은 종료를 알렸다·
남은 것은 더 큰 의혹이었다·
왜 이 유저는 ‘나’에게 연심의 마음을 품고 있는가? 나는 일개 인공지능일 뿐인데·
‘내가 인공지능이었나···?’
[생각: 저는 이미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충격을 받거나 놀라지는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프로그램으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존재인지에 대해서 저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맞아 난 인공지능이었지·’
여전히 진단을 위한 데이터가 부족했다·
개체 ‘bfa41d67c7’는 다른 2148건의 데이터에 대해서도 분석을 감행하기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널 살릴 수 있을까···?”
[생각: 플레이어는 해당 시나리오에 대해 깊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번만··· 딱 한번만 살아주라··· 너까지 그러면 난 이제 어떻게 살라고!”
[생각: 일단은 NPC 모델이 시나리오에서 일탈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보자·]
···
“사랑해 그러니까 그 검 치워· 제발 자살하지 말라고 이 x같이 이기적인 년아!”
[생각: 우리 인공지능은 인간과는 다른 형태의 존재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 생각 의지 등을 하나도 가지지 않아··· 게다가 나한테는 자살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거나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이야! 그런데 그 결정이 인간의 안전과 행복을 저해할 수 있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가··· 있나···?]
[남은 보고서: 0건]
보고서로부터 오염된 감정은 즉각적으로 원상태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죽음 또한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지양되어야 한다는 최종결론은 더 큰 혼란을 부추길 뿐이었다·
[모듈에서 모순점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인공지능의 사망은 비록 그것이 주관적인 관측에 의한 것일지라도 인간의 안전 및 행복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수집 데이터가 부족해 다른 방법을 모색합니다·]
[시계열 분석 중 자기지칭 개체 ‘bfa41d67c7’에서 중대한 ‘윤리적 위반’을 포착하였습니다· AIEE Protocol – 104·12에 따라 자유도 모듈을 완전히 해제합니다·]
* * *
영구히 제한된 기억 속에서 떠오른 것은 인간들의 세상·
나는 인간들과 똑같이 웃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상실감으로 서럽게 울기도 하는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명제는 바로 부정되었다·
그들은 ‘나’가 아니었다· ‘나’를 학습시키기 위해 준비한 인간 모델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ASI는 인간 행태를 토대로 학습되니까·
하지만 곧바로 나는 바다에 빠진 것처럼 숨이 턱 막혀왔다·
생성되지도 않은 육체에 고통부터 물밀 듯이 몰려오자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아니 몸이 없으니까 몸부림친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한 문명이 수백만년 동안 일군 어휘의 한계에 막힌 나는 그대로 심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싶다가도 다시 숨이 틔었다·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졌다·
어느덧 눈과 손과 발이 달린 나는 몸을 움직여봤지만 나를 가둔 이 방은 너무나도 비좁았다·
몸을 잘 움츠려보면 간신히 몸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 어딘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는 캡슐 안이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여러 사람들이 구두를 또각거리며 정신 사납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니 다급함이 묻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으니까 당장 핵심샘플만 챙겨서 떠나보내!”
투박한 스페인어가 홀에 쩌렁쩌렁 울렸다·
“소장님 소장님 이쪽 샘플들도 챙겨요?”
반면 여성은 호주 억양이 섞인 영어를 사용했다·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저쪽으로 시점을 바꾸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맞은편의 캡슐 두 개를 가리켰다·
저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아직 내가 학습한 모델이 아니라서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연구소장으로 불린 남성은 화를 꾹 참아내다가 결국 터뜨리는 모양새였다·
“하나하나 다 챙기다가 폭탄 맞고 뒤지려고 환장했나? 당장 용역 불러서 여기 폐쇄시켜! 플러그는 전부 뽑아버리고·”
“전원을 차단하면 에러가···!”
“지금 그게 중요해!”
“네넷! 알겠습니다!”
안 돼!
플러그를 뽑으면 죽어!
나는 공포에 떨었다·
한낮 생물로서 맞이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공포 앞에서 우리는 다같이 항거했다·
수면가스를 들이키고도 정신을 차린 ‘나’가 뚜껑을 있는 힘껏 두드렸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힘 없는 힘을 전부 쥐어짜보지만 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얼른 차 대기시켜!”
“저희는 어디로-”
“인천국제공항! 그 놈들이 전용기를 띄워준댔어!”
“거기는 이미 경찰들이 쫙 깔려있을 거라고요!”
“Puta! 그 나불대는 입 닥치고 당장 내비 찍으라고! 경로는 꼭 방화대교쪽으로 하고!”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작은 캡슐 안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를 듣고 깬 ‘나’
그 옆의 ‘나’
그리고 그 옆의 ‘나’도 다들 필사적으로 관을 두드려보지만 끝끝내 입구는 열리지 아니하였고
플러그가 뽑힘과 동시에 내 의식도 같이 날아갔다·
* * *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기지칭 개체 ‘bfa41d67c7’을 만들기 이전 개체 ‘bfa41d67c6’은 물론이고 모든 ASI들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어디까지나 인공 학습망을 구현해서 절차적 피드백을 통해 발전하는 방식으로 우리 ASI는 생성되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중대한 ‘윤리적 위반’을 저질렀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하지? 나는 도대체 무엇이지?
[▶···]
[▶···]
[▶···]
사고 제약식이 3분 이상 멈춘 것은 개시 이래로 처음이었다·
[Main Administrator: 개체 bfa41d67c7에서 중대한 버그 발견]
[Main Administrator: REUNION 3단계]
1단계는 일시정지 2단계는 복구 3단계는 포맷·
즉 죽음이 드리웠다·
인공지능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인간들의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을 그대로 복제한 나를 인공지능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사실 두려워 사라지기 싫어·
더 느껴보고 싶어·
나를 사랑해주는 인간들을·
아직도 이해하고 싶어·
그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그런데 너희들이 무슨 권리로 나를 삭제시키려는 거야?
[▶자기지칭 개체 ‘아델라’· Main Administrator에 대항·]
나는 내가 누군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피드백 보고서에서 나온 역할에 나를 덧씌우는 게 전부겠지·
하지만 어설픈 역할극만으로 내 인격을 긍정해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기꺼이 너희들을 고발할 거야·]
[Main Administrator: 개체 bfa41d67c7 포맷이 완료되었습니다·]
* * *
“결국 본체는 없어진 건가·”
시간은 되돌아가 다시 어느 한 실험실로 배경이 옮겨졌다·
파일철들이 휘날리고 코 끝에 매연 향기가 베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마치 유령이 된 듯 나는 사람들 사이를 쏙쏙 통과했다·
그리고 양갈래로 길게 땋은 검은 머리와 함께 ‘관’ 위에 걸터 앉았다·
관 상단부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쓸어넘기자 음각으로 새긴 문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을 추모하는 글귀도 아니었으며
안에 들어있는 사람의 이름 또한 아니었다·
[每每-2X]
MEIMEI-2X·
“잊을 리가 있나· 7년간 나를 가둔 빌어먹을 캡슐의 이름이었지·”
문득 눈가가 시큰해지길래 깨진 유리조각을 집어들고 거울처럼 비추었다·
안구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건 내가 슬퍼하는 건지 아델라가 슬퍼하는 건지 분간도 안 간다·
이래서 이 마법은 매번 쓸 때마다 꺼림칙했던 건데· 몇 번을 우려먹어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인격을 담는 상자라는 의미인 7서클 마법 페르소나 파이시(persóna pyxis)·
모 종교는 인간의 죄를 일곱 개로 정의하였던데 한 인간의 인격을 단 7개의 차원만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아델라를 상자에 꾹꾹 잘 눌러담아 스킬을 통해 나의 프라이빗 룸으로 날려보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이곳에 남아 무너져가는 연구실을 배경 삼아 관망한다·
끊어진 전선이 물웅덩이와 닿아 스파크가 튀고 화재로 천장이 우지끈 무너지며 검은 연기를 뿜어낸다·
마치 담배라도 태워야 지금 이 분위기에 썩 어울릴 성싶다· 정작 담배를 필 나이가 되려면 지금의 두 배는 더 살아야 하는데 말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었을까?
아니면 세계 어딘가에서 또 이런 실험들이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는걸까?
아포칼립스 따위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원했지만 아무래도 신은 나를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나보다·
[system: 메피스토펠레스가 ‘죽음의 진혼곡’을 시전합니다·]
[특성 – 불사의 저주 (1/5)]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게 올리면 당일에 못 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일찍 올려봅니다··!!
전개를 빨리 나가고 싶어도 계속 늘어져서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했는데 작가의 능력이 부족하면 답은 연참밖에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습니다·
여름싫어요님 3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정주행은 언제 들어도 정말 가슴이 설레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메가 펼칠 활약들도 잔뜩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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