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4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의 승리 구조는 3단계로 간략하게 서술할 수 있다·
체크포인트 점령 중립 보스 처치 마지막으로 위그드라실 파괴·
아군과 아군 npc들의 리스폰 장소를 계속 전진시키기 위해 특정 체크포인트를 점령해야 한다·
또한 중간중간 아군에게 유리한 버프를 주거나 아군으로서 합류할 수 있는 중립 npc들을 처치해야한다· 판정은 무조건 막타가 기준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설령 실패했더라도 적진의 위그드라실을 파괴하기만 한다면 승리하는 복잡하고도 단순한 구조였다·
정말 뭉개서 비유하자면 게임 초반부터 드래곤 한타가 끊임없는 롤 또는 골드와 경험치를 획득해 성장에도 신경써야 하는 오버워치였다·
[녹턴 나일링크 vs 프리드리히 황태자]
[Map: 아르세리아 숲]
[녹턴 나일링크가 당신의 팀에 합류하였습니다·]
[거점을 점령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십시오·]
“노··· 녹턴 나일링크라고 해요!”
“우와 얘 누구야? 정말 귀엽다!”
“그러게 스토리에선 한번도 못 만나본 것 같은데·”
“제 이름은 녹턴 나일링크···! 아 빨리 가야 해요! 저희 팀을 봤을 때 A지역을 먼저 점령하는 게 유리해보이는데 따라와주시겠어요?”
녹턴 나일링크가 허공에 팔을 붕붕 휘둘러댄다· 다급하게 재촉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하지? 처음에는 둘씩 가는 게 정석이려나?”
“그렇게 합시다· 야 우리 둘이 B 거점으로 가자·”
“예 형님·”
“그럼 궁수님은 저랑 같이 npc를 따라가죠·”
자연스럽게 나는 마법사 소년과 짝을 맺게 되었다·
그럼 남은 건 C 거점이려나?
“힐러는 마법사랑 조합이 안 좋은데···”
“왜?”
“아··· 아냐! 아니에요···”
-첫판 뉴비가 왜케 찡얼대냐
-와 진짜 너무 야하다ㅋㅋㅋㅋㅋ
└ ㄹㅇ이게 야동이지
-아직도 이 겜에 뉴비가 있었구나
-조합 왜 이래?
-첫판 6명에 상대는 플다 미쳤고ㅋㅋㅋㅋㅋㅋ
-아무리 전투력 밸런스 신경썼다지만 말이 되냐?
└ 고통받는 노네임 벌써부터 맛있다!
-ㅋㅋㅋ혹시 저격 성공한 놈 있냐
-상대 저거 카리리 부캐 아님?
└ 뭐야 찐이네?
└ 이게 우연이라고?
└ 백퍼 저격이다 이건
우리는 오른쪽 C 거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숲길은 전날 비를 머금었는지 잘팍거렸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수림의 풍경이 끊기고 시야가 확 뚫렸다·
‘C’라고만 간단히 적혀있는 푸른 정육면체 상자가 하늘 위를 맴돌고 있었다·
“적과 곧 마주친다· 신호를 보내면 너 먼저 돌격해·”
“나는 마법사인데? 아 맞다 네가 힐러구나···”
공터에서는 이미 npc 무리들이 서로 격돌하고 있었다·
거점에 조금 늦게 도착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게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조합 진짜 암울하네ㅋㅋㅋㅋㅋㅋ
-기사 한명씩은 끼고 다니지
-초보면 오히려 A에 6명 다 가서 하나라도 확실하게 먹는 게 나았을 듯
└ ㄴㄴ 다 A 보내고 노네임이 혼자 B가서 다 쓸어버리면 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왠지 될 것 같아서 더 웃기네ㅋㅋㅋ
소년은 일단 착실하게 npc들을 물리쳤다·
아직 막타라는 개념에 익숙지 못해 골드가 질질 새고 있었지만 게임은 언제나 대국적으로 봐야한다·
적의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라·
어쩔 수 없이 저들의 계략에 놀아주어야 겠다·
나는 소년과 함께 C거점에 들어가 점령도를 올렸다·
“우효 겟또다제!”
“미친 진짜 노네임이잖아? 아니 님 스토리 언제 다 깼어요? 전투력은 또 머선 일이고?”
앞에는 npc의 전선 뒤에는 도끼와 석궁을 든 사내들·
골드 수급도 하지 않고 우리가 오기만을 계속 기다린 것이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 근접 대 원거리라 포위되면 무조건 죽을 텐데!”
“난 힐러잖아· 네가 나가서 싸워야지·”
“이씨 난 몰라 진짜!”
“얼마만에 맛보는 뉴비냐 이게! 노네임님은 이따 메인 디쉬로 먹을 테니까 거기서 딱 기다리고 있어요!”
* * *
하늘이 비눗방울들로 가득찼다·
뜨거운 불씨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비눗방울들을 열심히 터뜨려보지만 여전히 비눗방울들은 연못에 풀어놓은 올챙이 떼처럼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
-법사 의외로 잘 싸우고 있는데?
-잘 싸우는 게 아니라 이건ㅋㅋㅋㅋㅋ
-힐량 미쳤냐!
[초급 힐]
스토리에서는 자주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힐을 많이 쓴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마치 마법진에 적정량의 마나를 주입하듯이 줄어든 체력의 제곱근에 비례하는 스킬활용이 중요했다·
자주 쓰지도 말고 쓴다면 완벽하게 체력을 채울 정도로만·
때문에 소년은 이미 치사량의 피(비눗방울)를 흘렸음에도 멀쩡히 서 있을 수 있었다·
“나 은근 잘 싸우는 걸지도!”
비눗방울에 둘러싸인 소년이 외쳤다· 그림이 영 아름답지 않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네임빨이잖아!
-힐량 개미쳤고
-이게 종결캐다!(희망편)
-게임 시작 이제 3분 지났는데 이렇게나 스탯에서 차이가 난다고?
-줫사기네ㅋㅋㅋㅋ
-아니 거품 때문에 시야 방해 너무 심한데? 그냥 피로 바꿔주면 안 됨?
“아니 뒤지게 안 죽네·”
“안 되겠다 힐러부터 고고·”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남성들· 게임 초반에는 전투력 차이가 심하지 않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얼핏 보면 동작이 뻔해보여도 벌써부터 방향을 틀 생각을 하고 있다·
어쭈 최선을 다하겠다 이거지?
내 실력을 아는 사람인만큼 막상 전투에 들어가니 눈빛이 다들 진중하기 짝이 없다·
스키아보나를 앞으로 꺼내 달려오는 그들 사이를 반으로 갈라본다·
진짜 대인전 스토리에서는 완벽하게 느낄 수 없었던 사람 간의 심리전·
공격은 누가 먼저 할 것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도끼가 잔상을 남기며 내 머리를 향해 스쳐 지나갔다·
“이걸 피해···?”
다대일 전투는 최소한의 보법만을 사용해야 한다· 왼발을 뒤로 빼 몸을 단번에 숙이고 동작을 준비했다·
하루에 수천번씩 휘두른 근육 기억이 팔을 장악한다·
허리춤에서 시작하여 하늘로 끝나는 하늘베기·
푸른 섬전이 번쩍이고 남성의 울대에 사선이 그어졌다·
[Critical!]
단번에 체력의 절반을 잃은 남성이 뒤늦게 몸을 빼보려고 하지만 사냥감은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이어지는 찌르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남성의 갑옷에 막혔지만 이는 의도한 바였다· 적은 한명이 더 있어서·
곁눈질로 다른 상대를 포착하고 손아귀에 힘을 최대로 실었다·
검 끝에 제대로 걸린 남성을 옆의 사람에게 날렸다·
그리고 한바퀴 빙글 돈 스키아보나가 횡으로 그어진 선을 따라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감히 석궁을 들고 근접전을 걸어?”
“하지만 이렇게 노네임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또라이냐ㅋㅋㅋㅋㅋㅋ
-진짜 악질이네 이거
-팬이에요는 못 참지ㅋㅋㅋㅋㅋ
촤아아악-!
스키아보나를 검집에 집어넣고 아직도 출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마법사의 치유를 도와주었다·
“누나 부캐였어?”
“아니 본캐·”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할 수 있어? 심지어··· 힐러잖아 근데 어떻게?”
한 직업은 다른 직업의 스킬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페널티가 없는 게 어디인가?
스킬이 안 되면 스킬 같은 평타를 쳐라· 말로 하는 게 어려워 그에게 내 검을 쥐여주었다·
소년의 바로 뒤에 밀착하듯 붙어 손잡이를 잡은 소년의 손 위로 내 손을 포갰다·
“자··· 잠깐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그리고 느껴봐 네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발 위치를 교정하고 무릎을 손수 굽혀주었다·
검은 휘두르는 것이 아닌 어울리는 것·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있듯이 제어권 내에서 마음대로 날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뭐 그것도 사람마다 달리 느끼겠지만·
[카이젠식 손목베기]
[system: 미틀레하우(Mittlehauw) 판정]
레벨이 부족해 시각적인 풍압까지는 유발하지 못했지만 경로상에 있는 병사들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골드가 짤그랑 들어온다·
힘은 내가 다 줬는데 떨리는 건 소년의 팔이었다·
“알겠어?”
소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뺨에 붙어있는 거품을 폭 터뜨렸다·
이것도 아마 피겠지? 그는 내가 피를 닦아준 것으로 착각할 것이다·
“C는 먹었으니까 템 사고 중앙으로 합류하자· 곧 오브젝트 타임이야·”
소년은 전보다 순종적으로 변했다·
체크포인트로 선정되자마자 상점 주인이 땅에서 솟아났다·
처음부터 다량의 골드를 입수한 나는 공격력에 올인한 아이템을 마구 사들였다·
-아니 주문력 안 올림?
-님은 ad아니라 ap 가야해요!
-템 잘못 갔다!
“이거 이기려면 물리로 가야할 것 같네요·”
C에서 만난 것만 근접캐 둘이었다· 그리고 우리 팀원들과 적의 실력 차가 암울할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났다·
내가 직접 싸워야 할 상황이 자주 일어날 것 같아 합리적으로 한 선택이었다·
[1차 에픽 보스: 레나 카일로스]
아군에게 유용한 위치의 그림자 포탈을 제공해주는 중립 NPC·
그녀를 사냥하기 위해 한데 모였는데 다들 잔뜩 주눅 든 모습이었다·
“1데스도 아니고 모두 2데스씩이나? 아이고야!”
“우리 리스폰 장소까지 쫓아와서 대기타고 있었거든요···! 어쩔 수 없었어요!”
“다행히 C는 먹었네요· 그런데 녹턴이 지금 체력이 하나도 없어서 이번엔 못 싸울 것 같은데·”
“저쪽은 쌩쌩한가?”
“아마 90% 이상··· 지금쯤 거의 만땅일 거예요·”
“사실상 6대 7이라니·”
“아니 그런데 적들이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전부터 ‘노네임 내놔!’ ‘우리 노네임을 돌려줘!’ ‘노네임 복수할 거야!’ 막 이러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소년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덩달아 다른 사람들도 내 머리 위에 뜬 닉네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NoName(사제)]
“일단 갑시다· 게임은 이겨야죠·”
뉴비들이 참혹하게 당한 게 내 탓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제각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 유명인 그런 건가?”
오브젝트로 향하는 동안 쌍검을 든 도적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구태여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전투 전 마나를 아끼려고 힐을 안 쓰다 보니 사람들의 몸에 비눗방울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대학원생살려’님이 1000원 후원!]
-노네임님 옵션창에서 검열 모드 해제할 수 있어요! 시간 날 때 그거 해주시면 될 듯!
시청자들도 눈에 조금 거슬리나보다· 전투가 임박하니 빨리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옵션창을 열었다·
[옵션 – 검열 – 혈흔]
[주의: 비눗방울을 붉은 피로 바꾸시겠습니까?]
[만 15세 미만은 사용이 불가능한 설정입니다·]
-?????
-???
-뭐냐?
-?
-뭐여 시부레?
“아 맞다···”
이걸 어쩐담·
“제가 아직 나이가 안 돼서요·”
훗날 매니저들이 전하기로는 방송이 일순 마비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4 – 사전조사>에서 언급된 비눗방울 검열이 이런 식으로··!! 나이트메어 때는 버그로 검열 없이 해서 좋았지 노나메!! 시야에 방해된다고 느껴지는 플레이어들을 위해 다행히도 피나 비눗방울을 전부 끄는 옵션도 존재한답니다·
그나저나 롤과 오버워치가 합쳐진 ‘파라곤 디 오버프라임’이라는 게임이 있다고 하길래 찾아봤는데 다행히 월오아와는 완전히 달라서 조금 안심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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