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7
“어 다연아 그래 진짜라니까! 나 지금 노네임이랑 같이 있어· 어 바로 옆에· 그럴 리가 없다고? 자기가 맞다는데? 너 지금 수업 있었다고 하지 않았··· 뭐 째고 와? 야 우다연!”
맥없이 툭 끊겨버린 전화에 여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 미안해 내 여동생인데 진짜 네 광팬인 것 같네· 다연이가 저번에 무슨무슨 방송인에 대해서 조사 프로젝트 한다고 집에 브로마이드까지 붙였지 뭐야? 그렇게 온 난리를 피워서 내가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어쩜 이렇게 사진이랑 똑같이 귀여울까! 브이튜버 맞아? 아닌가?”
“정확히는 트위시에서 활동하고 있긴 한데··· 천교수님이랑은 아는 사이신가요? 그 대학원생···?”
“아아 천규진 교수님이 내 지도교수님 맞으셔· 명찰보고 알았구나! 근데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왔어?”
“그 질문은 상식적으로 건물 안에 들여보내기 전에 물어봤어야 했던 거 아닐까요?”
“아핫 그런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마당에 왜 왔냐고 물어보면 어쩌자는 건가·
“저도 천교수님이 불러서 왔거든요·”
“우와 그래? 혼자 찾아온 거야? 대단하네!”
“뭘요· 안내해줘서 감사해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삭막한 건물의 풍경이 펼쳐진다·
여타 다른 건물들과 구조적으로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분위기가 왠지 우중충하다·
조명이 약해서 그런가?
“아이씨 복도 불을 왜 다 꺼놨어! 미안 여기 애들이 워낙 빛을 싫어해서· 지들이 무슨 드라큘라도 아니고!”
단지 그런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천교수님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친척 조카?”
복도에 불이 환하게 점등된다·
그리고 가장 끝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성과 손을 맞잡고 걸으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제 아버지 되세요·”
“푸흡!”
그러자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있던 그녀가 내용물을 뿜어낸다·
“뭐··· 잠만 뭐라고?”
입가를 소매로 쓱쓱 닦더니 경악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순간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는지 여성이 어버버 댄다·
“천교수님 분명 미혼이신데··· 그 뭐 숨겨진 딸? 아냐 나이가 말이 안 되잖아! 되나? 아 씨 뭐지···”
“양아버지예요 양아버지· 입양·”
그 짧은 시간에 사랑과 전쟁 한편이라도 찍은 여성은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은 복잡하기만 했다·
“아···”
“별로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요·”
“언니가 정말 미안해···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었어가지고 말이야··· 왜 우리한테는 그런 말을 한마디도 안 하셨지?”
올해가 연구년이었던 천교수는 해외여행도 가지 않고 똑같이 연구실에 계속 출근을 하며 이따금씩 대학원생들의 연구도 도왔다·
때문에 졸업 걱정에서 한시름 덜 수 있었던 학생들은 환호했지만 쏟아지는 과제 폭탄 덕에 우리 교수님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이런 걸 애증의 대상이라고 하나·
그래도 보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사사로운 얘기도 많이 주고 받았나 본데 그런 와중에 내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던 것만큼은 나도 신기했다·
그만큼 내 사생활을 지켜주고 싶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늘 깜짝 선물을 준비해놨다더니 설마···?”
그렇게 우희진씨와 함께 들어선 연구실에는 사람 여럿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모여 있었다·
코를 킁킁대지 않아도 풍겨오는 냄새가 피자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희진을 제외하면 여성은 한 명도 없었고 네 명 전부 남자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칸에서 머리 희끗한 아저씨가 일어나 번쩍 손을 들었다·
“오 나메야 왔구나!”
천교수의 부름에 먹던 피자도 뱉어내고 반사적으로 일어난 네 남자들·
속도가 조건반사를 방불케 한다·
“안녕하세요·”
그래도 다들 처음 만난 사람이니만큼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렇다고 배꼽 인사를 하면 너무 유치원생 같아 보일까 봐 허리를 많이 숙이지는 않았다·
“어어 안녕··· 누구···?”
맨 앞에 있던 남성이 내 인사를 간신히 받아준다·
“택시 타고 오지 뭣 하러 힘들게 버스 타고 왔어?”
“오랜만에 학교 말고 다른 곳으로 외출하는 건데 버스가 좋잖아요·”
“그래그래 여기 앉아서 피자 한 조각이라도 먹으련? 손님이 조금 늦게 온다고 해서 조금 기다려야할 것 같구나·”
“배 별로 안 고파서 딱 한 조각만 먹을게요·”
“거기 애 앉게 자리 좀 비켜주겠니?”
“아 넵 교수님!”
“아니 일어설 필요까지는 없고 옆으로 조금씩만 이동하자·”
부산스러운 분위기 속에 소파 한가운데에 앉게 된 나는 떨떠름하게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았다·
진짜 이대로 아무 말도 안 하고 피자를 먹으라고?
거 불편해서 속 뒤집어지겠다·
“저 교수님?”
“응?”
“그 누구인지 소개해주신다면···”
때마침 남자 하나가 조심스레 자몽주스를 내 컵에 따라주며 용기를 내었다· 자몽은 별론데 오렌지 없나·
“아아 그래 내 정신 좀 봐! 이쪽은 우리 딸 나메라고 한다· 다들 나메한테 한 번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도 해주면 좋겠구나·”
“예?”
“네 뭐라고요?”
“쿨럭! 켁!”
* * *
한바탕 자기소개가 끝나고 천교수의 주도하에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다들 피자를 입에 욱여넣었다·
그리고 그가 손님을 맞이하러 방에서 나갔을 때 그제서야 대학원생들은 덫에서 풀린 사슴처럼 숨을 쓸어내렸다·
집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의외로 랩실 사람들한테는 엄격한 편이신가?
“푸하아아아· 와 미친 줘어어어어얼라 귀여워어어어어!”
“야 김현우! 그 입!”
“맞다 흡! 전 아무 말 안 했어요!”
나와 천교수는 아무래도 나이 차 때문에 친딸이라고 간주하면 상상의 나래가 안드로메다까지 가버리니까 우희진이 넌지시 다른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려주었다·
“하긴 천교수님한테 이런 딸이 태어나는 건 말도 안 되긴 했어· 아니 애초에 손녀 볼 연세시잖아·”
“야 그 말을 해도 애 앞에서! 이르면 어쩌려고 그래?”
“그 말 교수님한테 잘 전해드릴게요·”
“끄아아아 안 돼! 거짓말 아니 농담· 조크였던 거 알지?”
“이 오빠 너희 아버지한테 꼭 일러줘· 혼날 쿨타임이 돌고도 남았거든·”
“교수님한테 뭔가 배신당한 기분이야· 만약 매일 나메 사진 한 장씩 보여주는 조건으로 출근하라고 했으면 기쁜 마음으로 왔을 텐데·”
“교수님이 왜 저를 감췄는지 왠지 알 것 같은데요·”
영 미덥지 못한 사람들이구만·
그래도 다들 교수님 아래에서 지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사람은 좋아보였다·
“희진 언니!”
“어 다연아!”
“오 희진이 동생 왔네!”
“하위하위·”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건 밀짚모자를 쓴 또 다른 여성이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밀짚모자를? 패션 센스가 괴이쩍다·
두 손으로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은 우다연·
“말도 안 돼· 똑같잖아··· 뭐야···”
밀짚모자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나풀거리며 땅바닥에 착지했다·
홀린 듯이 다가온 여성은 나도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모자를 주워주며 그녀에게 슬쩍 물었다·
“작년에 저희 한번 만났지 않았어요?”
“어?”
“직업체험박람회 때요·”
* * *
우다연은 번개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 맞아 그때 그 천재 꼬마!’
허구한날 드라마나 영화에서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주인공들을 보고 얼마나 욕을 많이 했었는데 설마 자신이 그 대상이 되다니·
노네임의 메인 아바타와 그 때 그 꼬마는 비슷하다 못해 얼굴도 완전히 똑같았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언니 내가 예전에 말했던 엄청 천재라는 애 말이야! 그게 얘야!”
다연은 이 순간만큼 자신의 기억력이 이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두 사건을 연관짓지 못할 수가 있었지?
“천재···? 아 너 작년에 봉사활동 간 거?”
“그래! 아니 그냥 천재가 아니라·”
직업체험박람회 정도라면 그저 영재발굴단에 나올만한 습득력이 좋은 천재 수준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 꼬마가 자신이 아는 ‘노네임’과 완벽한 동일인물이라면?
이건 뭐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서 세계적인 특종감으로 스케일이 커져버리지 않나?
차라리 악의를 가진 제3자가 캡슐윤리코드를 뚫고 아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아바타를 베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었지만 이 또한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나메는 소파에 다시 앉아 주스를 홀짝이고 있었다·
시큼한 자몽 주스의 맛에 머리를 부르르 떤다·
여전히 다연의 머릿속에서 내적갈등이 진행된다·
지식이 뛰어난 건 둘째치고 방송에서 너무 어른스러웠던 모습을 보였던 노네임이다·
단순히 천재와 연륜이 있어보이는 건 별개였기에 마음 한편에 의심의 싹을 지우지 못했다·
마침 가방에 딸기 사탕을 잔뜩 가지고 있던 다연은 자몽주스의 시큼한 맛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메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
“나메···? 저기 이거라도 먹을래?”
촥-
잽싸게 사탕을 손에서 뺏어간 나메가 핑크빛 설탕 덩어리를 입에 넣는다·
오물오물-
“고마워요· 근데 혹시 하나 더 없어요?”
“아 있지···! 하나 더 먹고 싶어?”
“주면 감사히 받을게요·”
말투도 비슷하다·
애답지 않게 어른스럽다·
조용히 옆에서 사탕을 받아먹는 아이를 흐뭇하게 쳐다보는 남성들과 달리 다연의 심정은 복잡해져만 갔다·
“얼마나 천재길래 그래?”
희진이 다연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만약 사실이라면 세계 제일?”
자신의 언니 희진은 인터넷방송이나 브이튜브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나메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이런 말을 직접 꺼내놓고서도 뭔가 중2병스러워서 아차 싶었지만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었다·
천교수의 연구실 한쪽에 놓여있던 화이트보드를 끌고 온 다연이 무언가를 급히 적어내렸다·
[20387739*390394 = ]
“저기 나메야 사탕 더 줄까?”
“네 달달해서 좋네요·”
“그럼 이거 맞추면 바로 하나 줄게!”
“어··· 7959250979166·”
“···?”
뒤늦게 공학용계산기를 꺼낸 대학원생이 나메가 맞춘 정답에 경악했다·
“뭐야 어떻게 맞췄어?”
“진짜 정답이라고?”
“재밌는데 다른 문제는 없어요?”
“그··· 그럼 이건?”
[ln(123456789)=]
“음 대략 18·6314··· 굳이 더 붙이면 017661과 2사이? 참고로 2에 가까워요·”
“아니 자연로그는 대체 어떻게 계산하는 거야? 곱하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암산의 영역이 아니잖아?”
“정답이 마··· 맞아?”
“미친 개지렸다·”
“빨리 주세요 사탕· 그리고 로그표 외우고 다니면 이 정도는 다들 할 수 있어요·”
그 뒤로도 순식간에 사탕 다섯 개를 빼앗긴 다연·
나메는 사탕으로 가득 찬 입을 햄스터처럼 오물거리며 흡족하게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었다·
“역시 맞잖아 노네임··· 그럼 그게 본명이었던 거야?”
희진이 알려준 꼬마의 이름은 노나메·
이리봐도 저리봐도 그냥 노네임을 그대로 읊어놓은 것 아닌가?
“다연 언니·”
“어? 그래 왜?”
“언니가 힉스 스튜디오 PD라고 들었는데·”
맞았다· 얼마 전 노네임의 플레이를 토대로 과학 및 마법학 컨텐츠 영상을 올렸었다·
“왜 제 영상 허락도 안 맡고 그대로 올렸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습 연참··!!
참고로 나메가 브이튜브에 올리는 영상에는 메인 아바타가 나오는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현실과 똑같은 모습이라서 조금 부끄럽기 때문이죠· 나메를 보고 싶다면 생방에 찾아오거라··!!
매니저1 대학원생살려는 안타깝게도 카이스트 학생이었답니다 다음 기회에··!! <에피소드 86 – 소신>
Acedia님 1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독자님께서 주신 후원 꼭 잊지 않고 전부 모아놨다가 나중에 나메를 위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자나깨나 나메사랑!!
여름싫어요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연참비라니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사실 작가가 연참을 하는 건 당연한건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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