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으으으···”
“정신이 드니?”
타이밍 좋게 소녀가 깨어났다·
늑대를 물리치자 마자 깨어난 게 조금은 작위적인 상황이었지만 뭐 프로그램이 이렇게 짜여있으니까·
이 소녀가 이제 안내자 역할인건가?
“누··· 누구세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어서 마법 쓰게 해줘·”
“···?”
이게 아닌건가?
상호작용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 채팅창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방금 마법 어케 쓴 거임?
-???????????
-핵인가
-NPC도 렉 걸린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
뭔가 상황이 똑바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알겠다·
“언니가 늑대로부터 구해주신 건가요?”
“그래·”
“언니도 제게서 월계수를 빼앗아가실건가요?”
“월계수는 또 뭔데?”
내가 도리어 의문을 표하자 소녀의 표정은 더욱 혼란에 빠져갔다·
-레피가 가지고 있는게 아르세리아의 월계수임
-원래 이 세상은 마왕의 저주를 받고 있어서 아무나 마나를 못 다룸
-하지만 월계수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신물임
뭐 이리 마법 체험 프로그램에 설정을 덕지덕지 붙여놨을까· 정말 귀찮기 그지없다·
“난 마법만 쓸 수 있으면 돼·”
“결국 월계수가 목적이잖아요!”
“나뭇잎 따위는 필요 없어·”
“이건 나뭇잎 따위가 아니라!”
레피가 성을 내기도 전에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쪽에 흔적이 있다· 샅샅이 수색해!”
레피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손을 오들오들 떨었다· 월계수를 추적하는 이들이 따라붙은 모양이었다· 나는 레피에게 제안했다·
“저들로부터 도망치고 있던거지? 내가 도와줄까?”
“언니···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언니가 어떻게 도와주실건데요?”
레피의 눈길이 잠시 내 정수리에 꽂혔다·
지금 자기보다 키 작다고 무시하는거야 뭐야· 이래선 도와줄 마음도 사라진다·
그냥 마법 까짓거 늑대 열 마리만 더 찾아도 완전 마법진을 만들 수 있는데 괜히 실랑이할 이유도 없지·
“월계수를 내놔·”
“이건 안 돼요!”
“그러든지·”
“아아 가지 마세요! 제발 도와줘요!”
레피는 마법을 쓰게 해준다는 월계수인지 뭔지 하는 아이템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leviatan’님이 1000원 후원!]
-지금 월계수 동기화 정도로는 미사일 마법을 딱 한번만 쓸 수 있을 거임·
추적자들이 눈 앞까지 당도했다·
-적은 3명인데 마법은 1번밖에 못 쓰는 기적의 튜토리얼
-사실 추적자들 다 안 잡아도 스토리 상 넘어가긴 함
-그런거였음? 괜히 될 때까지 무한리세했네
-한국인 성질 수준 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보여주면 된다는 거지?
적이 예상보다 가깝긴 하지만 마법진을 그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1서클 상위시전: 극좌표계 부여·”
앞서 알려준 방법으로 처음부터 유도 미사일을 생성해낸다·
유도 미사일이 3서클 마법인 이유는 시간 차원이 결여된 3차원의 공간 마법이기 때문·
하지만 1서클 마법진으로도 충분히 그 권한을 빌려쓸 수 있다·
어디까지나 유도 미사일(물리)이기 때문에 폭발 능력은 전무했다·
금속 덩어리가 월계수의 마나를 받으며 매섭게 추적자의 몸을 가격했고 한명이 쓰러지자마자 이윽고 다른 이에게 쏜살같이 돌진했다·
슈우우우욱 콰과광!!!
“쉽네요 뭐·”
-????????
-어케 했음?????
-갈고리 수집 장인인가? 근데 진짜 원리가 뭐임?
-알려줘
-엄마 왜 나는 유도 미사일 못 쏴? 엄마 왜 나는 유도 미사일 못 쏴? 엄마 왜 나는 유도 미사일 못 쏴? 엄마 왜 나는 유도 미사일 못 쏴?
삐빅삐빅삐빅
채팅창이 정신없는 와중에 알람이 울린다·
벌써 출발할 때가 된건가·
“죄송해요· 오늘은 다른 선약이 있어서 방송은 여기까지 해야할 것 같네요· 일단 오늘 밀린 도네 질문은 취소해드릴 테니까 내일 다시 보내주시면 답변해드릴게요·”
* * *
[삐빅! 어린이입니다·]
일회용 카드를 갖다 대자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표면적으로는 탑승자가 어린 아이이므로 주의를 요하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목적을 지녔지만
실상은 어린이가 아닌 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사용했을 때 공개적으로 고로시하기 위한 고도의 장치이다·
절대 이 나이를 먹고 어린이 소리를 들어서 찔려서 하는 생각이 아니다·
[이번 정류장은 한국대학교 행정관 입구입니다·]
주말의 캠퍼스는 한산하다·
그것이 1월의 한겨울이라면 더더욱·
나는 항상 이러한 종류의 교육기관하고는 영 친하지 않았다·
첫 생애에서도 결국 한 학기 이상을 수강하지 못했고 전생의 아카데미에서도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자퇴를 하게 되었다·
사실 아린이가 전학 간 뒤로 쭉 초등학교는 혼자 다니고 있었다·
여전히 내 이름은 메를린 보육원에 남아있기에 선생님들은 자세한 실정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배우는 것도 없고 등교하는 보람도 없었다·
차라리 천규진 교수의 강의가 더 재밌으면 재밌었지·
보강 강의를 듣기 위해 때때로 점심을 거르고 학교를 몰래 빠져나와도 아무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오버 테크놀로지 시대라 해도 초등생에게까지 위치추적기를 달아 놓지는 않으니까·
같이 강의를 들으며 친해진 이들도 몇몇 있었다·
대학생들은 대개 눈치가 빨랐는데 천규진 교수가 나를 편애하는 사실을 통해 시기하기는커녕 나에게서 하나라도 지식을 더 뽑아먹으려고 안달 난 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흔쾌히 그들의 학점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버스에 내리고서도 한참을 걸어서 마침내 교수가 성적 확인 및 클레임을 위해 마련한 건물까지 도착했다·
나는 이 학교의 학부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성적 확인이 안 돼서 직접 확인하는 겸 그리고 천규진 교수의 개인적인 부탁 겸으로 왔다는 사실을 안내 데스크에 설명해주었다·
물론 전자는 말하지 않았다·
“천규진 교수님이라··· 응! 여기 3층 306호로 가면 돼· 306호는 소강당이니까 길 찾는 데에는 별로 어렵지 않을 거야·”
다행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당 문앞까지 오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안에서부터 새어나온다·
그 목소리들 사이에서는 수업에서 들었던 익숙한 음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금은 격양돼 있는 걸 보면 시험 문제에 관하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하지만 교수님 이 수식은 부분점수를 받을만 하지 않나요? 비록 교수님께서 의도하신 부분은 아니겠지만 제 풀이과정으로는 정답을 도출하는데 필요한 과정이었어요·”
“호연 학생의 주장은 이해했어요· 하지만 잘 보세요·
차원 이항 방식으로 정답을 도출하려면 필요한 수식이 2개가 아니라 3개가 되어버려요·
여기 2개의 수식만 가지고는 방정식이 부정형이 되어버려서 정답이 한 개로 딱 나올 수가 없어요·
학생은 우연히 정답을 맞추었을 뿐이고요· 제가 정답 점수까지 깎지는 않겠지만 이 풀이로는 부분점수를 주기 어려울 것 같네요·”
보기에는 나름 건설적인 의견 교환의 현장처럼 보이지만 내 말에 수긍하지 않으면 정답 점수까지 깎아버리겠다는 교수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펼쳐졌다·
결국 학생은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었는지 어깨를 축 늘어진 채 강당을 빠져나왔다·
나는 강당 맨 앞줄에 앉아 다른 이들이 모두 질의를 마칠 때까지 멍하게 있었다·
마냥 아무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고 때때로 점수를 받아간 이들의 희열과 때때로 기존 점수마저 빼앗긴 이들의 절망을 느끼면서 감상에 젖었다·
“안녕안녕· 누구 기다려? 혹시 교수님 딸이야? 아님 조카?”
“야 함부로 말 걸면 애 놀래잖아! 그냥 얌전히 기다려·”
“우리는 저기 저 사람 친구들인데 하도 오래 걸려가지고 심심해서 한번 말 걸어봤어· 괜찮지?”
“저기 미안해 얘가 아직도 철이 없어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나란히 내 뒷자리에 앉았다· 여학생은 남학생의 머리를 가격하려는 도중에 내가 말렸다·
“아니에요· 저도 교수님 기다리고 있어요 가족은 아니고·”
“아하 그렇구나· 진짜 귀엽다· 이름이 뭐야? 몇 살?”
“7살이에요·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요 백정호씨 송가연씨·”
“어라? 우리 이름 어떻게 알아? 어디 명찰 달려있나?”
두 학생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사이에 마지막 학생이 단상에서 내려온다·
“두 달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제 이름은 노나메에요·”
그들의 표정이 놀람과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걸 뒤로 하고 나는 교수가 고대했던 만남을 성사시켜주었다·
“안녕하세요·”
천연덕스럽게 교수에게 인사를 건넨다·
“여기는 어쩐 일로 들어왔니?”
“성적확인 말고 올 이유가 있을까요·”
조금은 짓궂게 대답하며 교수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약간의 당혹스러움 호기심·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처럼 조급해하여 되물어보거나 나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단정짓지 않는다·
그는 내가 무엇을 덧붙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역시 이 사람은 마음에 든다·
이렇게 사람을 떠보는 것은 큰 결례인 것을 알면서도 황실에서의 습관을 결국 끝내 고치지 못했다·
이쪽 세상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작 대신이나 직할참모부대의 대장들에게 같은 취급을 했다간 목이 남아나지를 않겠지·
“제 소개가 늦었네요 노나메라고 합니다· 연성진 해석학 수업의 성적을 확인하러 왔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51년 1월 현재 PC방 점유율 순위는 1· 레저넌스(FPS) 2·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 (RPG) 3· 레거시 오브 레전드(MOBA) 입니다·
가을이야기는 겨울방학을 맞아 엑사버닝 이벤트로 점유율 9위를 유지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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