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1
하루종일 폭설이 내리는 어느 겨울 밤이었다·
카리리가 체나와 합방을 진행한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카리리가 아무리 인기가 많아봤자 일개 버튜버였을 뿐이다·
브이튜브 구독자 90만? 평균 영상 조회수 50만?
체나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3주 연속으로 1위를 달성하여 국위선양을 이룬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다른 한쪽의 뮤직비디오는 무려 억단위로 조회수가 나왔으니까·
신종 어그로라고 하기에는 질이 저급했다·
하필 그 대상을 한국에서도 한창 인기몰이 중인 아이돌을 타겟으로 했다는 점이 팬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소속사에게 처벌을 요구하는 항의가 폭발했을 즈음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안녕하세요· 엔티스엔터테인먼트입니다·
소속 아티스트 ‘체나’ 김샛별의 향후 일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체나는 현재 월드 투어 스케줄을 마치고 휴가 중에 있으며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연락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본사에서 계획한 일정은 아니지만 인터넷 방송에서도 공인으로서의 입장을 확고히 할 것을 약속받았고 팬분들께서 우려하시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어··· 어서오소리! 와 체나 언니···! 이게 얼마만이야 너무 반가··· 아니 반갑제비!”
“여기 앉으면 돼? 아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서 조금 신선하네요· 가수 체나입니다·”
윤슬은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신 옆에 앉아있는 진정한 ‘연예인’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방송을 시작할 때 현실 카메라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찍은 건 LK와 김우주의 합방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세 번째 게스트가 무려 체나였다는 소식에 수만 명 아니 순식간에 십만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방송에 몰려들었다· 맨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도 금방이었다·
오죽하면 채팅창에 렉이 걸려 일시정지 되었을 수준·
“윤슬이는 요새 잘 지내나보네? 젖살도 빠지니까 더 이뻐졌다·”
“꺄아악! 어··· 언니 그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 반칙이야 반칙!”
“그래?”
체나의 칭찬에 카리리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얼굴을 붉혔다·
보기만 해도 혼이 빨려나갈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평범하게 귀여운 아이돌처럼 생겼다는 평가가 전부일 지언데 체나의 칭찬은 윤슬에게 더없이 영광스러운 말이었다·
“그리고 여기선 그 이름으로 부르면 안 돼·”
“그럼 뭐라고 부르면 되는데?”
“카리리···! 나는 사바나의 왕 카리리라구! 크··· 쿠와와와앙···!”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급류에 댓글창을 읽고 진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만 저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카리리는 잽싸게 주제를 틀었다·
“그··· 그럼 바로 가상현실로 가볼까나?”
역시 현실 모습으로 방송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간곡한 마음을 담아 제안한 카리리·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가상현실?”
“대신 샛별 언니는 예쁘니까··· 아··· 아바타 그대로 본떠도 될 것 같아···!”
체나가 온다고 해서 미리 렌트로 최상급 캡슐까지 구비해놓았다·
그리고 그 성능이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체나가 가진 외모를 가상현실에 그대로 구현할 수 있었다·
카리리 방송에서의 전매 특허 ‘참참참 Q&A’·
참참참에서 걸린 사람은 상대방의 질문에 답변하거나 랜덤벌칙을 수행해야 하는 코너·
아슬아슬하게 수위를 넘나드는 질문을 오늘도 다량으로 준비한 카리리는 뿌듯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참참참! 아자 나이스! 대가리 딱 대라!”
“잠깐 너 갑자기 너무 적극적으로 변한··· 꺄악! 뭐야 왜 바로 때려?”
“아 맞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까먹어버렸어!”
코너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정보들이 모이게 되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체나가 카리리의 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
이는 카리리가 연습생 시절 당시 그녀와 같은 호실을 썼다는 사실에 대중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카리리가 한 때 아이돌 연습생이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많았으니까·
-와 시청자 수 30만ㅋㅋㅋㅋㅋ
-오늘 진짜 레전드네
-월드스타의 힘 ㄷㄷㄷㄷ
트위시 브이튜브 동시송출로 평소보다 10배 가량의 시청자가 모였다·
특히나 이는 윤슬 본인에게도 더욱 뜻깊은 합방이었다·
체나는 한때 본인이 희망했던 진로에서 이미 정점을 찍어버린 우상·
굳이 애쓰지 않아도 텐션은 높았고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앗 노래 부르기! 그럼 카리리는 들국화로!”
“또 들국화야? 너 아직도 그것만 불러?”
“장인정신으로 수만 번 깎은 노래를 무시하지 말라구 후훗!”
카리리는 방송 설정을 몇 번 만져서 시청자 가시화 모드를 실행시켰다·
그러자 프라이빗 룸 밖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각자 응원봉을 손에 쥐고 앉은 장관이 펼쳐진다·
어쩌면 설윤슬이 아이돌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주어졌을지도 모르는 미래·
그러나 카리리는 고개를 내젓고 노래에 집중하였다· 자신은 아이돌이 아니라 버튜버였으니까·
한국 최고의 아이돌에게 한국 최고의 버튜버를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을 제대로 보여주자·
“그리운 추억도 아련한 마음도·”
체나는 그녀가 노래를 완창할 때까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곡이 끝나고 터져나오는 함성 소리에 카리리는 찔끔 눈물까지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흐읍· 정말 다들 감사해요! 이번엔 체나 언니가 불러볼래? 이번에 신곡-”
“아냐··· 오늘은 별로·”
“아 그래? 목 관리는 중요하지···! 그러면 필로우 타임 코너로 가볼까?”
일명 눕방·
아이돌들이 했다 하면 대박인 코너·
카리리가 진행하고 있는 것들에는 이렇게 외부에서 영감을 받아 따온 것이 많았다·
두 미소녀가 한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을 듣는 건 흔한 장면이 절대로 아니었다·
“윤슬··· 아니 카리리는· 정말 이름 적응이 안 되네 이거 하하· 왜 중간에 아이돌을 그만둔 거야? 나는 윤슬이 너랑 같이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무엇보다도 우리들 중에서 제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였는데·”
“카리리는 말이지! 아이돌일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어·”
“응?”
“나는 아이돌 자체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야· 그냥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고 춤을 추고 싶었던 거지· 그게 꼭 아이돌일 형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렇구나···”
“하지만 언니가 조금 부럽기도 해! 가상현실에서 노래하는 것도 이렇게나 감동적인데 실제 사람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가슴이 팔딱팔딱 뛸까!”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모인 적이 없었다·
체나는 매 콘서트마다 이런 전율을 느끼고 사는걸까·
눈을 감고 카리리의 고백을 낱낱이 듣고 있던 체나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카리리야· 난 오히려 네가 정말 부러워·”
“에? 내 어디가?”
체나가 그녀의 뺨을 살살 쓸었다·
간지러움에 작은 비명을 내지른 카리리였지만 이내 눈을 크게 뜨고 체나의 말에 집중했다·
“아무도 가보려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개척하고 이렇게 자유롭고 재밌게 인생을 사는 네 모습이· 어쩌면 아이돌이라는 이름은 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을까··· 뭐 그렇게 생각해!”
“에이 언니 여기선 진실만 말해야 한다니까! 이거 진실게임이라고!”
“하핫 들켰나? 맞아 나 다음으로 잘 어울리는 게 너야!”
“그럼그럼! 그래야 체나 언니지!”
카리리는 이렇게 게스트의 매력을 살려주는데 재능이 있었다·
기존의 매력은 강화시켜주고 반전매력을 찾아 전달한다·
체나가 단순히 좋은 곡과 좋은 소속사를 만나 스타반열에 올랐다며 시기하는 대중들에게 평소에 이렇게나 사려 깊고 매력있는 사람이라는 걸 널리 알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카리리는 만족했다·
“우리 다음에 또 이렇게 합방했으면 좋겠다·”
내심 욕심을 부려보지만
“아마 안 될 거야·”
“역시 스케줄 때문에 바쁘겠지?”
“응··· 그러니까 너도 한번뿐인 인생 후회없이 재밌게 놀아·”
“응! 카리리 명심할게! 사바나의 왕위를 되찾는 그날까지!”
[Just Chatting – 체나는 신이에요!]
[방송 시간 – 5:29:10]
[시청자 수 – 384927]
* * *
합방 다음날이었다·
[오늘 새벽 4시 가수 체나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범죄 등 외부 요인은 없으며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사망원인은 계속 조사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 * *
대한민국을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에 뉴스 보도가 아침부터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유가족은 그녀가 남긴 유서를 지금 당장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저 그것이 체나의 뜻이니 조금만 믿고 기다려달라는 말만 뻐꾸기처럼 되풀이할 뿐이었다·
한 가수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에 전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결국 체나의 유서가 세상에 공개되는 건 한 달이라는 기간이 지난 뒤였지만 그 전부터 사람들의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몇몇 네티즌들에 의해 체나가 이미 오래 전부터 중증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정황이 뒤늦게 알려졌고 비난의 화살은 전부 소속사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물줄기가 한쪽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강물이 커다란 바위를 만나 두 갈래로 갈리듯 그 다음 차례는 카리리였다·
-친했던 언니가 우울증이었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음?
-방송 끝나고 체나한테 뭐라고 한 거 아니야? 결국 마지막에 만난 사람은 카리리잖아
-뭐 약점이라도 잡힌 거 아님?
-진짜 ㅈㄴ 어이없네;; 방송 다시 보는데 체나랑 맞먹으려고 드네 계속ㅋㅋㅋㅋ
-버튜버가 뭐냐? 보기만 해도 토나온다
-그딴 거 보는 사람치고 정상인 없던데ㅋ
-그니까 더러워;;
-왜 하필 마지막을 이런 애랑 ㅋㅋ;;
-똑같이 나가 뒤지셈
-귀척하면서 육수들 돈 빨아먹는 년들이 다 그렇지 뭐
-니가 죽인 거야 가서 자수해
쾅쾅쾅-
“설윤슬씨 집에 계시나요? XXX에서 나왔습니다! 잠깐 인터뷰좀 가능하실까요?”
“XXX 기자입니다! 설윤슬씨 잠깐만 시간 좀 내어주시죠!”
기자들이 윤슬의 집에 들이닥쳤다·
현관문 앞에 서서 무릎을 꿇은 소녀는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설윤슬씨!]
[안에 계시나요!]
[체나씨가 따로 하신 말씀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니라고 난··· 하아··· 하아···”
윤슬의 시선이 초조하게 흔들렸다·
뜨거운 공기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오지만 어째서인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마구 떨리는 심장이 이대로 제 기능을 못하고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온몸이 마비돼서 숨도 못 쉬고 이대로 죽어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기도가 막혀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이 그녀를 조여온다·
[사고 전날 가수 체나는 과거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었던 설윤슬씨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티비에 인터넷 사이트에 ‘설윤슬’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다닌다·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었던 게 아닌데·
힘없이 윤슬의 몸이 바닥을 기었다·
차가운 마룻바닥이 뜨거운 열감을 식혀주나 싶었지만 다시 오한이 들어서 소용이 없었다·
[완치라 함은 공황을 경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공황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과거 설윤슬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이미 한 차례 박살내버린 괴물이다·
그리고 그 괴물이 이제는 카리리에게까지 손을 뻗어왔다·
반쯤 엎어진 채로 윤슬은 계속 목놓아 울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아직 자신은 완치된 것이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데뷔도 못한 년이 질투나서 죽였나보네 불쌍해 우리 체나 언니ㅠㅠㅠㅠㅠ
-ㅈㄴ 여우같이 생김 체나는 저런 애를 왜 만난 준 거야? 어이없어;;
-얼굴 다 팔려서 쟨 이제 밖에 어케 나돌아다니냐
-우리가 알빠노ㅋㅋㅋㅋ 그게 싫었으면 얼공을 하지 말든가 인기 다 빨아먹고선
세상은 소녀에게 매정했다·
줄곧 가뭄이었던 사바나에 큰 홍수가 났고 그 자연재해는 아무리 무적의 카리리 제왕이라 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사회의 악의 어린 시선과 험담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무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만큼은 소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누가 누구를 동경하고 있었을까요?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네요· 두 단어의 의미도 완벽하게 일치하고요·
참고로 체나에 대해서는 <에피소드 43 – 상담> 편에서도 한번 언급이 나왔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찾으러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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