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2
이건 내가 카리리 제왕이 되기 전의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쓸모없는 년· 이 웬수덩어리가 뭘 잘했다고 눈을 그렇게 떠!”
적어도 엄마라면 나를 배신하지 않을 줄 알았다·
매일같이 술만 마셔대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에게서 나를 지켜주었던 엄마가 이제는 내 얼굴에 도자기 그릇을 던졌다·
수십 개의 조각으로 깨져버린 도자기가 바닥을 나뒹군다·
이마와 볼에서 피가 턱까지 내려와 투두둑 떨어지고 있는데도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때 그 파편난 도자기는 아마도 내 마음을 대변하지 않았을까·
나는 다시 집에서 나왔다·
엄마한테 얘기한대로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고 소속사와 상호 동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너무나도 매끄러웠다·
데뷔가 임박했다고 말씀하시던 건 전부 거짓말이었나보다·
회사에서는 처음부터 나에게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는 게 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5년 만에 처음 맛보는 소세지빵을 먹고 칠칠맞게 눈물이 나왔다·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먹는 첫 번째 끼니·
목이 막혀오는 이유가 차라리 허겁지겁 쑤셔 넣은 빵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흐읍··· 흐끄윽··· 흐아아아아앙···”
5년이 통째로 사라졌어···
나한테 도대체 남은 게 뭐지?
무리하게 다리찢기를 하려다가 핏줄이 다 터져버린 허벅지
유리세정제로 전신거울을 예쁘게 잘 닦는 방법
기껏해야 노래 조금 있어보이게 부르고 춤선을 예쁘게 가져가는 기술들?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친구는 당연히 없었고 이제와서 다시 다니자니 마법학은 무슨 수학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뭘 할 수 있으려나 싶었다·
이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놓은 쓰레기 조각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는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말이다·
적어도 돌멩이는 아무런 생각이 없기라도 하지·
나는 매일같이 죽을 것 같다는 멍청이같은 생각을 달고 사는데·
내가 바보라서 그런걸까·
의사선생님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결격사유 투성이인 사람이 아이돌을 어떻게 해·
열네살의 학생이 갈 곳은 마땅치 않았기에 다시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듣기로는 가출팸 같은 게 있다는데 무서워서 그런데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결국 고성이 오가는 집에서 방문을 꼭 잠그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나는 언제나처럼 비밀 아지트에 접속했다·
[인생망한 중2얌···]
내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써서 올려보았지만 크게 반응은 없었다·
나보다도 제대로 인생을 망친 사람이 수두룩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아 나는 저렇게까지는 살지 말아야지라며 잠깐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었지만 다시 찾아오는 극심한 우울감까지 몰아내지는 못했다·
“죽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댓글 하나가 달렸다·
-님 인생 제대로 망했네ㅋㅋㅋㅋㅋㅋ
누가 그걸 모른데?
반박할 힘조차 없어서 죽은 눈으로 스크롤을 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새로고침을 했을 때
-인생 망했을 때 복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 이 중에 하나라도 안하면 걍 자살추천함
1· 코인올인: 확률은 1%도 안 되겠지만 혹시 모른다 네가 그 행운아일지ㅋㅋㅋㅋㅋ
2· 원양어선: AI나 로봇으로 절대 대체 안 되는 든든한 국밥같은 직종!
3· 생동성알바: 일반적인 알바로는 부족하다면 그건 네가 알바를 제대로 안 찾아 본 게 아닐지?
4· 자원입대: 돈은 많이 준다! 적어도 돈만큼은! 해외파병은 따따블!
5· 버튜버: 어차피 와꾸나 능력 되는 놈들은 여기 안 오잖아· 노베에서 시작하려면 답은 이거밖에 없음ㅋㅋㅋㅋ
“씨이··· 꾸준글이잖아·”
이런류의 게시물에 꾸준하게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
도대체 무슨 심정으로 다는 지도 모르겠다· 우월감을 느끼려나·
평소라면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글에 유독 ‘버튜버’라는 단어가 눈에 콕 들어왔다·
고된 연습생 생활을 지냈을 때 가끔씩 인터넷에서 찾아보던 여러 버튜버 방송들·
만약 나라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브이튜브에서 여러 버튜버 영상을 찾아보려고 앱을 열었을 때·
[브이튜브 추천 영상: (다큐멘터리)벌꿀오소리에게 천적이란 없다!]
도자기처럼 약해 빠진 나와는 전혀 반대되는 제목이 펼쳐졌다·
그래 이거야·
* * *
카리리라는 인물은 윤슬의 훌륭한 대체제로서 제 역할을 다 해왔다·
윤슬이 창조해낸 인물은 내적으로 강하고 거리낌이랄 게 없는 성격을 가졌으므로·
하지만 그것도 작년 체나의 죽음 이후로는 유명무실해진 말이었다·
카리리로 있는 동안에는 단 한번도 겪지 못했던 공황발작이 가상현실 접속 중에도 계속해서 도졌다·
그리고 따갚대 스크림에서 탈주하게 된 오늘
그녀는 불가항력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
부엌 식탁에서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퍼진다·
거실과 안방에는 불이 모두 꺼져있었다·
작은 전등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하나에 의지하여 남매들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다만 동생 설태양은 지금 이 적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나 오늘은 집에 안 갈게·”
“왜?”
“누나 상태가 이런데 어떻게 가라고?”
“괘··· 괜찮아 뭐 한두번 이런 것도 아니고···”
“오늘은 유독 심했어·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
윤슬의 시뻘게진 눈에는 벌건 핏줄이 도드라져있었다·
“그럼 엄마한테 전화하고 올게·”
그녀는 부모님과 별거 중이었다· 여기는 설윤슬의 집이었고·
매일같이 끊이지 않는 부부싸움으로 식기와 골프채 가끔은 날붙이까지 날아다니는 집안 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중학교 2학년 동생인 설태양도 가끔씩 이렇게 윤슬의 집에 놀러오면서 해방감을 만끽하곤 했다·
“엄마가 뭐라셔?”
“욕했어·”
“짐은?”
“학원에서 바로 왔으니까 그냥 내일은 여기서 등교하면 돼·”
“너 알아서 해· 저녁 더 안 먹어?”
“어· 누나 너무 요리 못해·”
“기··· 기껏 만들어줬더니 이 개시키가···?”
“응 셀프패드립 수고·”
“설거지는 네가 해!”
윤슬이 눈을 부릅 떴다·
소파에 누워 다시 여가시간을 보내려던 태양은 할 수 없이 고무장갑을 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윤슬의 지분 100%로 이루어진 집에서 태양은 철저한 을이었다·
“아니 누나는 부자면서 왜 집에 식기세척기 하나 안 산대?”
“매번 사야겠다 생각은 하는데··· 흐어어엉 다 귀찮아아아아아·”
“주문하는 것도 귀찮아? 누나 그런 무기력증도 고치려고 노력 좀 해봐·”
태양은 진심을 담아서 한 충고였지만 윤슬은 들은 체 만 체였다·
그녀는 본업과 관련되지 않은 일에는 아무런 흥미도 찾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이 캡슐을 사용하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오히려 윤슬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VR만큼 제격인 게 없어 태양도 뭐라 할 수만은 없었다·
“그냥 아프다고 하고 방종하지 하필이면 그런 거짓말을 쳐야 됐어?”
무슨 초인종이니 택배이니·
괜히 말을 덧붙여가지고 사건만 키웠다·
아파서 게임을 못 한거면 다들 이해해주기라도 할 텐데·
“카리리는 절대 아프지 않아·”
“허 또 RP야?”
“그리고 네가 그런 상황을 겪어봐···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런 생각도 안 드는데· 난 최··· 최선을 다 한 거라고···!”
태양이 보려고 틀어놓은 티비에는 여전히 노네임의 방송이 송출되고 있었다·
윤슬은 소파에 거꾸로 누워 검은 머리카락을 마룻바닥에 내려놓은 기묘한 자세를 취했다·
카리리의 갑작스러운 탈주로 이후 스크림이 취소되어버려 각자 감독 코치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었다·
노네임은 이미 다 가르친 것인지 아니면 가르칠 것도 없어서인지 그녀는 묵묵히 랭겜을 돌리고 있었다·
“노네임 어때? 개멋지지?”
부엌에서 설태양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맨날 윤슬의 집에 놀러올 때마다 노네임이 롤 프로들을 발랐다는 등 자신이 노네임 방의 ‘장문인’이라는 등 그녀와 관련되지 않은 주제가 안 나온적이 없었다·
“응·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싶어·”
동생의 권유에 못 이겨 강제로 본 방송이었지만 의외로 그녀의 방송은 신선하다 못해 참신하다고까지 느껴졌다·
모두가 마찬가지인 생각이겠지만 저게 진짜 14살이라고?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노네임 방송의 오프닝 송으로 자신의 노래가 나왔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을 때는 당황하기도 했었다·
“누나 방송 끊을 생각은··· 없는 거지?”
“미쳤어···? 야 내가 너 용돈 주는 것도··· 다 방송해서 버는 거야 임마!”
“알았다요! 미안하제비!”
“하아··· 상대하지를 말자·”
설태양이 카리리가 자주 쓰는 말을 따라한다· 그는 다른 또래들보다 일찍 철이 든 아이였다·
어쩌면 애써 이렇게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의도한 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윤슬은 문득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려는 찰나 설거지를 마친 태양이 다가와 소파에 위태롭게 걸터누운 윤슬을 뻥 차버리고는 자리를 독차지했다·
“비켜· 내 자리야·”
콰당-
“진짜 설태양···! 너 뒤질래!”
“뒤지기 싫은뎅·”
철이 들기는 무슨!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집에 보내는 게 더 나을 뻔했다·
“어디 가? 방송 더 안 봐?”
“응· 자러 갈 거야·”
“벌써? 누나 오늘은 절대 커뮤니티 같은 거 확인하지 마라 알겠지?”
“안 볼 거거든···!”
방으로 돌아온 윤슬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폰을 켰다·
동생의 충고에도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에고서핑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이건 카리리라는 인물에게 있어서 일종의 의례나 다름없기 때문·
하지만 머리로는 대충 예상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은 일개 개인이 전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아···”
원체도 무단방종이 잦았던 카리리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공황증상 때문에 이제는 컨셉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대로 누워봤자 불면증 약을 복용하더라도 잠이 안 올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설윤슬보다는 카리리로 지내는 게 편하기에 그녀는 다시 캡슐에 몸을 실었다·
벌꿀오소리라면 절대로 상처받지 않을 테니까·
[NoName님이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2/3)]
그런데 이건 또 뭐지?
[Kariri: 뭐야뭐야? 울 네임이 나 또 보구 싶어서 연락했엉?]
[NoName: 같이 놀이공원 가지 않을래?]
[Kariri: ?]
놀이공원이라니·
노네임의 뜬금없는 제안에 윤슬이 눈썹을 찡그렸다·
VR 스페이스를 말하는 걸까?
그런데 왜 하필 지금?
[Kariri: 방송 중?]
[NoName: 아니·]
[Kariri: 다른 한 명은 누군데?]
[NoName: 아델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뭐야··!! 나도 같이 데려가줘요··!!
카리리가 얼마나 부자인지 잘 가늠이 안 되시는 분이 계실 텐데 그녀가 사는 집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대략 30억원(도곡 렉슬 아파트)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게 진짜 인간승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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