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4
사람들의 입장이 너무 늦어진다는 관계로 불꽃놀이 축제는 30분 뒤로 미뤄졌다·
당연히 VR 월드를 말하는 게 아니고 현실 세상을 말하는 거였다·
원래라면 폐장 시간이 오후 6시일 테지만 오늘만 이례적으로 10시까지 한다고 하니 여러 부분에서 삐걱거리나보다·
시간이 붕 떠버린 우리들은 아델라의 손에 이끌려 놀이공원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밤에 오니까 정말 으스스하다···”
윤슬이 가디건을 고쳐 입으며 감상을 토로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밤의 놀이공원은 이질감과 위화감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거리는 텅텅 비어 바닥의 벽돌의 모양까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인파가 몰려 있는 메인 스트리트에 비해 이쪽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했다·
비록 놀이기구들은 탈 수 없었지만 아델라는 이런 거리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꽤나 좋아보였다·
특히나 밤에 최적화된 눈이 번뜩이며 우리가 못 보는 곳도 샅샅이 가리키곤 했다·
“이번엔 저기 가보자!”
그녀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인생네컷 사진관이었다·
부스에 들어서자마자 여유롭게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밤인데도 기계가 여전히 작동되는 걸 보고 작게 놀라기도 했다·
“와! 작동되나 본데?”
“해볼까···?”
“난 어떻게 하는 지 몰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AI였던 고양이 수인 버튜버 외적으로는 모든 인간관계를 차단해버린 아싸 그리고 이쪽 세계의 경험이라고는 거의 전무한 초등학생의 발언이 차례대로 이어졌다·
모아놓고 보니 어지럽네·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싶은 조합이었다·
찰칵-!
“으냑!”
갑자기 터진 플래쉬에 아델라가 혀를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은 윤슬에 아델라가 눈살을 지푸렸다·
곧바로 나온 사진을 보고 다들 이상하게 나온 표정에 서로 놀리기 바빴다·
“나메 언니 왜 이렇게 웃기게 나왔어 키힉!”
“너무 귀여워! 나메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내 다키마쿠라가 되어줄 생각은 없는 거지? 돈은 많이 줄게···!”
특히나 윤슬에게 무언가 보이지 않는 제동장치가 실시간으로 해제되고 있는 느낌은 착각같은 게 아니리라·
더 이상 둘러볼 것도 없어서 다시 메인 스트리트로 돌아가려는 찰나 잔잔한 음악소리가 언덕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팔짱까지 낄 사이까지 친해진 두 소녀는 잰걸음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뒤늦게 내 짧은 다리를 알아챈 소녀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팔을 휙휙 내지르며 재촉해보지만 나는 굳이 뛸 생각까지는 없었다·
오래 살수록 뛰는 게 본능적으로 싫어진다· 삶에 쫓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저들도 언젠가는 내 심정을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스의 아고라를 재현해놓은 듯한 광장에서 버스킹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공식적인 축제는 아니고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자발적으로 하는 모양이었다·
맨 앞열에 있는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팔을 좌우로 흔들며 노래에 호응했다·
계단 중간쯤에 자리를 잡은 우리들은 도쿄에서 볼 수 있는 별을 감상하며 노래를 배경으로 삼았다·
하늘에는 달과 별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이 고요한 풍경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지금도 양옆 소녀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킥킥대며 웃고 있었으니·
“근데 왜 넌 나메를 언니라고 부르는 거야?”
“아 그니까 내 말이! 한번 언니는 영원한 언니래잖아!”
“아흫 겨우 그런 이유였어? 귀여워!”
“겉모습에 속지 마· 속은 완전 능구렁이에 꼰대! 잠깐만 겉모습? 생각해보니까 나메 언니는 아바타랑 똑읍읍-!”
“조용 아델라·”
“왜에? 뭔데에?”
이걸 진짜 말할 뻔했네·
이미 어디 가서 말한 거 아니야?
“아니야!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고!”
“아 뭐야 뭔데···!”
“괜찮아 몰라도 되는 말이야·”
“그럼 나 Q&A권 쓴다? 방금 하려고 했던 말이 뭐였는지 알려줘···!”
“그건 방송할 때 쓰라고 준 거지 지금 써버리면 어쩌자고·”
“어··· 언제 쓸지는 내 마음이거든?”
윤슬이 치사하게 합방 때 약속했던 Q&A권을 써버렸다·
“답변 대신 벌칙 받을게·”
“그럼 저기 가서 노래 한 곡 불러줄래?”
“뭐?”
“꺄핰핰핰핰핰핰핰! 나메 언니가 노래를! 와 너 좀 대단하다? 다시 봤어·”
“히히·”
배꼽을 잡고 웃어대는 아델라를 향해 윤슬이 조그마하게 브이자를 만들었다·
질문은 허초였고 벌칙이 실초였다니·
우리 셋 중에 제일 영악한 건 이 벌꿀오소리 아닌가?
“아 싫은데···”
“그럼 같이 부르러 갈래?·”
“맞아 너 잘 부르더라 윤슬아· 브이튜브에서 봤어· 그럼 나 그거그거 노래해주라· 뭐였지 고양이 송?”
“쓰읍! 아델라 제발 가만히 좀 안 있어?”
“언니가 어쩔건데! 어어쩌얼거언데에! 아무것도 못하쥬?”
“맞아 나메야 너···!”
갑자기 윤슬이 눈을 번뜩이며 내 손목을 잡아챘다·
“생각해보니까 너 내 고양이송도 방송에 틀었잖아! 잘 됐다! 그럼 노래는 알겠네!”
“다시보기도 안 올렸는데 어떻게 알아? 보고 있었어?”
“안 보고 있어도 다 방법이 있지 히히·”
커뮤니티에 있는 모든 글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을 테고· 도대체 윤슬이 어떻게 안 거지?
“가자가자가자!”
술에 취하면 얌전한 사람도 180도 돌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윤슬은 이 달밤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한껏 취한 건지 텐션이 잔뜩 업된 상태로 나를 단상까지 이끌고 갔다·
키 160도 안 되는 여자한테 끌려다니기만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할 따름이다·
“오 다음 곡 하실 건가요?”
“네넷···! 저희 둘이 이렇게 부를 거예요!”
“우와 초-귀여워! 동생?”
“친한 동생이에요! 가족이 되면 더 좋고···!”
“무슨 말이야?”
나비넥타이를 맨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마이크 두 개를 건네받은 윤슬이 내 손에도 하나를 쥐여주었다·
“진짜 부르라고?”
“내가 같이 왔잖아· 주위 시선에 신경쓰지 말라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노래였으면 인정을 할 텐데·
고양이송이 뭐야 고양이송이·
저기 저 계단에서 얄미운 고양이가 팔짝팔짝 뛰며 열심히 환호를 유도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아델라라는 걸 눈치챈 몇몇 관중들이 벌써부터 술렁이기 시작한다·
VR 스페이스 10년차 경력쯤 돼 보이는 프랑켄슈타인씨가 브이튜브에 들어가 음원을 틀어준다·
“하아·”
“부끄러움은 잠시 뿐이라구···! 나도 이 몸으로는 처음이지만 우리 같이 잘해보자! 응?”
“그래··· 1절까지만 부를 거지?”
“아니? 히힛 다 부를 건데? 노래 시작한다 쉿!”
* * *
“이건 내 알람으로 써야겠다 저장 저장저장저장!”
아델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동영상을 재생했다·
[고양이 소릴 내봐~ 같이 먀먀먀먀먀~]
나메와 윤슬이 기타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일품이었다·
특히나 먀먀먀 거리는 대목이 나왔을 때 윤슬이 일부러 자신의 마이크를 멀리 떼어버려 나메의 목소리만이 홀로 아고라에 울려퍼졌다·
이 광경을 모두 카메라에 담은 아델라가 나메를 놀리기에 급급하다·
반면 나메는 팔짱까지 끼며 이를 애써 무시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왜에 나메도 잘 불렀는데···! 델라야 나도 그 영상 나중에 보내줄 수 있어?”
“아 한명한명 보내주기 귀찮은데 그냥 인터넷에 확 업로드 시켜버려?”
아델라의 협박 아닌 협박에 나메의 눈이 일순 가늘어진다·
“헤헤 장난도 못 치나· 에이씨 늦게 왔더니 좋은 자리 다 뺏기겠네· 저기라도 가보자·”
불꽃놀이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파티를 명목적으로 이끌고 다녔던 아델라가 거침없이 인파를 헤쳐 나가며 길을 만든다·
안내요원의 지시에 따라 앞의 사람들부터 차례대로 앉기 시작했다·
조금씩 뒤로 밀리는 인파에 세 소녀들이 주춤주춤 거리다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너무 좁은데?”
“안 되겠다· 나메 언니는 내 위에 앉아·”
“굳이···?”
“빨리! 다른 사람들 다 앉잖아· 언니만 혼자 서 있을 거야?”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아델라가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양반다리를 한 아델라 위에 나메의 작은 몸이 겹쳤다·
아델라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자세를 바로잡은 나메가 슬며시 물었다·
“안 무거워?”
“응· 귀여워!”
“뭐라는 거니·”
나메를 두 팔로 껴안은 아델라가 이제는 머리를 윤슬에게 기댔다·
이윽고 세 소녀의 시선이 하늘에 꽂힌다·
가로수길에 내려앉은 정적이 불꽃놀이를 보러 놀이공원에 찾아온 모두 이들에게 기대감을 불어넣을 즈음이었다·
피유융-
귓가를 울리는 폭죽 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왔다·
이에 환호성을 지를 틈도 주지 않고
어두운 밤하늘에 번쩍이는 불꽃들이 쏟아지며 형형색색의 빛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웠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춤추는 듯한 불꽃들이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불어났다·
하늘에 걸린 화관 위로 또 다른 꽃잎들이 모습을 드러내 터져나가는 신비로운 모습에 소녀들은 멍한 얼굴로 저마다의 감탄사를 내지를 뿐이었다·
나메가 손가락을 가리켜 무어라 말해보지만 흥분으로 고조된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폭죽소리에 묻혀버린다·
[Noise Cancelling – Party_1]
아델라가 주변 사람들의 소리만을 차단하니 그제야 나메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노란색은 나트륨 빨간색은 스트론튬 보라색은 구리과 스트론튬을 섞어서 만든 거래·”
“와 여기서도··· 정말 하나도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이야·”
아델라가 기가 찬다는 듯 투덜거렸다·
이에 웃음을 지은 나메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불꽃탄의 화약의 위치에 따라서도 불꽃의 모양과 크기가 결정되고· 사방으로 퍼지는 국화 모양 땅을 향해 낙하하는 수양버들 모양···”
“언니는 그냥 조용히 감상하고 있어줘 제발· 계속 그러면 귀에 바람 불 거야·”
“푸훗!”
아델라의 품에 꼼짝없이 붙들려있던 나메는 입을 다물었다·
영락없는 자매같은 모습에 윤슬이 킥킥대더니 이후에도 계속 옅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아델라가 대뜸 물었다·
“윤슬아· 너도 내가 인공지능처럼 보여?”
“어? 아아··· 아니? 정말 사람 같아· 응···”
“그렇지? 그런데 그거 알아? 나메 언니가 그러는데 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진거래·”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델라가 나메의 뒷모습을 천천히 응시했다·
이번에 그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아기가 태어나잖아 그렇지?”
“어어? 아아 어··· 그렇지···”
때 아닌 아델라의 성교육에 윤슬의 볼이 빨개졌다·
“그럼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불러줄 수는 없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인공지능이 아니라·”
“그러니까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윤슬이 불쑥 던진 질문에 아델라가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눈에 쓸쓸한 빛이 어렸다·
“아니 되고 싶은 게 아니야· 난 이미 사람이고 원래도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거야·”
아델라는 다시 말없이 나메를 꼭 껴안았다·
몸을 조여오는 압박감에 나메가 공기를 내뱉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하지만 저항하지는 않고 계속 안겨 있는 모습이다·
“나메 언니는 알아? 나 아직도 무서울 때가 있다? 언니가 이대로 날 버리고 떠나버리는 게 아닐지·”
초조한 감정이 절실히 목소리에 드러났다·
“언니가 죽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해· 잊혀지지가 않아· 아직도 자다가 악몽을 꿔서 일어나버리기도 해·”
목소리에 먹먹함이 있었다· 물기에 젖은 모습을 차마 보여줄 수가 없어서 아델라는 나메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메를 만나고 계속 좋았던 추억만을 보내게 된 그녀였지만 이 모든 것이 허황된 꿈이고 거짓이라는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서 차곡차곡 쌓여왔다·
“만약에 내가 언니한테 버릇없게 굴어서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그러니까 제발 어디 가지 말아주라···”
그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듯 나메는 그녀를 둘러싼 아델라의 손을 잡아주었다·
“내가 그러니까 계속 언니라고 부르랬잖아· 동생을 버리고 가는 언니가 어딨겠어·”
나메의 다소 짓궂은 말에 아델라의 고개가 조금씩 들려왔다·
“가족이잖아·”
무신경하게 내뱉는 말이었음에도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아델라는 줄곧 외로웠다· 처음부터 거짓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사실 거짓이고 다시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여관에서 깨어나버리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를 끝마쳤다·
자신이 잊혀지지 않도록 열심히 VR 월드를 돌아다니며 여러 인연들을 맺고 추억을 쌓고 서명을 받아왔지만 결국은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러네 결국은 가족뿐이네·”
계속 언니라고 부르도록 시키는 게 이런 이유에서였나·
만약 모든 게 가짜일지라도 눈앞에 쪼그마한 꼬맹이와 맺은 인연만큼은 진짜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웃음을 되찾고 남은 불꽃놀이 쇼를 감상하기로 한 아델라는
‘잠깐 발광하고 하늘에서 퇴장해버리고 마는 불꽃보다는 영원히 밤하늘에 걸려있는 저 별처럼 되게 해주세요·’
소원을 빌었다· 계속·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리리 구원 에피소드인 척 하는 아델라 에피소드··!! 카리리는 아직 스토리가 더 남았습니다· 조금 아쉽지만 이제 다음 아델라의 등장은 마나인방 3부에서 기대해주세요!! ‘계속’이라는 말이 참 여운이 남네요· 계속해서 소원을 빌었다는 의미지만 앞으로도 아델라의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요즘 아침날씨가 다시 추워졌습니다··!! 독감에 걸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감기에 걸려버렸네요· 모두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감기인줄 알았는데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하 지난 6월 11월에 이어서 벌써 3번째네요· 피폐 내용을 썼더니 벌을 받았나 봅니다· 그래도 크게 아프지는 않으니까 내일은 연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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