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8
윤슬이와는 그 뒤로 이틀을 계속 같은 침대에서 잤다·
방을 분명 깨끗하게 청소해줬는데도 그녀가 내 방에서 나가기를 극구 거부했다·
결국 그녀가 나를 베개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예언은 현실이 되어버렸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찌뿌둥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내가 7살이라고 하는 브이튜브 영상은 당연하지만 조회수를 끌어모으기 위한 자극적인 제목에 불과했다·
7살 (아바타를 착용한) 천재 소녀·
웃기지도 않은 제목이었지만 그 효과는 뛰어났다·
자극적인 영상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간식거리였으니까·
하지만 문제점은 그걸 제목만 보고 또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사람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점이었다·
최근엔 내가 외출을 아예 하지 않아 내 얼굴이 알려질 염려는 없었지만 소문이 계속 퍼지다보면 언제까지고 내 정체를 숨기고 다닐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 재단이야 학생들에 대한 비밀 엄수를 확실히 하니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아카데미 아이들까지 입을 다물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다행히 초등학교 2학년들은 아직 뉴스와는 많이 동떨어질 나이이긴 했지만 그게 언제 가족으로 퍼지고 다시 사회로 퍼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어딘가에는 나를 목격한 사람이 글을 올렸을 지도·
그래서 카리리를 통해 당분간은 사람들이 나를 14살이라고 믿게끔 부탁을 전했고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여주었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할까? 내 방송 보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1만명 정도인데?”
“나는 나대로 필살기를 써야지·”
“필살기?”
“응 이거·”
[받은 메일함: 999+]
어차피 제목만 바뀌어서 계속 날아오는 것들이라 스팸 메일이나 다름 없었다·
윤슬의 눈동자가 화면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 프로게임단 클러치 이스포츠입니다· 우와 이거 설마 프로 제의?”
“이것 말고도 많아·”
온갖 군데에서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프로게임단은 물론이고 각종 언론사 그리고 대학교에서까지·
각양각색의 목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컨택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는 방송을 하는데 방해만 되었기에 애써 무시했던 이들이었지만 이제야 그 쓸모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나메가 7개의 난제에 대한 증명을 올린 날 이에 대한 가장 뜨거운 반응은 당연 노네임의 트게더와 노네임 마이너 갤러리 그리고 노네임 팬카페에서 이루어졌다·
[1· 노네임을 들어올린다·][41]
1· 노네임을 들어올린다·
2· 7년 안에 롤 5만판을 한다·
3· 2주 안에 롤 마스터까지 등반한다·
4· 18회차 안에 월오아 10/10/10을 클리어한다·
5· 월오아 쇼케이스에서 KDA 134를 찍는다·
6· 롤 몰락전을 무패로 본선까지 진출한다·
7· 300년간 증명되지 않은 난제 7개를 증명한다·
8· 노네임을 내려놓는다·
[댓글]
-진짜 사람이노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두 번 들어올리면 세상 멸망하겠네
-이 모든 게 14살이라니 미쳤냐고 노네임!
-근데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뭔가 그냥 믿겨지는 거 있지?
└ 나도 딱 이 심정임ㅋㅋㅋㅋ 저 중에 하나만 했으면 지랄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노네임이 다 해버리니깐 그냥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제 탬플릿에서는 6개였는데 7개로 추가됐네ㅋㅋㅋㅋㅋㅋ
└ 내일 또 올리는 거 아니냐ㅋㅋㅋㅋㅋㅋㅋ
└ 노네임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아ㅋㅋㅋㅋ 내려놓지 말라고
└ 지금 게임이 문제냐! 저거 증명 진짜 맞는 거임?
-천재는 천재인데 차원이 다른 천재네 ㄷㄷ
└ 인방 데채 웨핢?
-기자들 보고 있나?
└ 기자들이 상주하는 마이너 갤러리가 있다?
-저기 노네임씨가 7년 안에 롤 5만 판 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 말 그대로 44시즌부터 50시즌까지 5만판 했음
└ 네??? 그럴 리가 없는데?
└ 뭐 밥 먹고 하루종일 롤만 하면 가능한 수치긴 함
[노네임이 14살 미소녀가 아니면 나 진짜 자살할지도 모름][24]
우리들은 노네임 팬이니까 계속 믿어주는 거지만···
솔직히 마음이 아예 안 흔들리는 건 아님···
만약에 노네임이 50살 아저씨였다면?
난 그 참담한 현실을 견딜 수 있을까?
노네임은 무조건 여중생이어야 돼···
아니면 그때 사람 하나 죽는 거야···
[댓글]
-ㅅㅂ 광기 앞에서 쌌다···
-지금 말은 못하는데 다들 속으로는 이 생각 중일걸ㅋㅋㅋㅋ
-곧 지워질 예정인 글입니다
-여중생 필즈상 가능하냐?
└ 함초롱 19세 필즈상 22세 노벨상도 경이로운 수준이었는데 이건 뭐ㅋㅋㅋㅋ
└ 필즈상보다는 아벨상이 진국임· 상금도 100배 더 많음
└ 얼마인데?
└ 100만 유로니까 대략 14억원쯤
└ 미쳤네;;
-국뽕러들 미쳐 돌아가네ㅋㅋㅋㅋ
-노네임 검색하니까 어떻게 게임보다 국뽕영상이 먼저 뜨냐
└ 근데 제목 어그로가 심해서 그렇지 영상은 의외로 볼만함
└ 그게 세뇌당한 거다;;
└ 아니라니까? 생각보다 괜찮다니까?
└ 이미 뇌수 질질 흐르네ㅋㅋㅋㅋㅋㅋ
노네임은 7개 중 5개의 영상 속에서 항상 자신을 2저자라고 밝혔기에 1저자에게도 이목이 쏠렸지만 그 어느 대학에서도 ‘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테라루비’라는 명단을 찾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가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다소 맥 빠지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 다음으로 관심이 모인쪽은 역시나 천규진 교수쪽이었다·
노네임의 정체를 유일하게 안다고 생각되는 인물은 한국대학교에서 마학대학 교무부학장과 이론연성공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었다·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역시나 안 받네요·”
“힘들게 얻어온 전화번호인데··· 에휴 어쩔 수 없지·”
“설마 인터뷰를 이런 식으로 수락할 줄이야· 이거 마치···”
“기자회견이네·”
“그러네요 기자회견이네요·”
기자들은 저마다 책상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노네임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며칠간 그녀의 트위시 및 브이튜브 채널은 각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 댓글로 도배되고 있었다·
그 많고 많은 이들 중에서 자신의 언론사가 인터뷰에 선정되었을 때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설마 모든 사람들을 단번에 수락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그래서 인터뷰가 아니라 일종의 기자회견으로 변모한 공간은 19개의 신문사에서 온 47명의 사람으로 가득 찼다·
뿐만 아니라 소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까지 드문드문 껴 있는 터라 장기자는 넌지시 다가가 물었다·
“혹시 어디서 오셨나요?”
“저희 LG 소속입니다!”
“LG에서는 왜? 설마 광고 문의하려고···?”
“아아 아뇨아뇨 LG 게임단이요! 월오아·”
“아하···”
궁금증을 해결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남성·
언뜻 봐도 잔뜩 움츠러든 후배가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네요·”
“다들 눈엣가시인 거지·”
“그러니까 그 업보를 왜 우리가 받아야 하냐구요···!”
기자회견에 초청된 QBS 기자들은 사방에서 매섭게 쏘아지는 눈초리를 감내해야만 했다·
마치 누구는 몰라서 보도를 안 했겠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편집국장의 말대로 뻔뻔해져야만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선배였던 장성문 기자는 방이 울릴 정도로 헛기침을 크게 하고는 몸을 꼿꼿이 폈다·
그제야 시선이 조금 거두어지자 후배인 여성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와 나온다···!”
무대 뒤에서 노네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맞추어 터지는 수많은 카메라 플래쉬에 여성이 깜짝 놀라 뒤를 둘러보았다·
“아니 가상현실인데도 사진을 찍어야 돼요?”
“그럼 배너에 무슨 사진 걸게· 너도 빨리 사진기 들고 찍어·”
“아 넷···!”
처음 받아보는 불빛 세례가 익숙하지 않은지 노네임은 눈을 찡그렸다·
키의 절반이나 되는 듯한 의자에 폴짝 올라가 앉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역시 천재들은 어딘가 이상한 면이 있어· 취향 한번 특이해·”
“나이가 들기 싫은가보죠· 선배도 내일 모레면 반칠십이잖아요·”
“뭐 반칠십? 나 맥이는 거지?”
“쉿 조용!”
툭툭-
마이크를 간단히 확인한 노네임이 기자회견의 시작을 알렸다·
“저도 시간이 많은 건 아니라서 최대한 중복되지 않게 질문 부탁드립니다·”
이 많은 인파 사이에서 태연하게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그녀에게 놀라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번쩍 들었기 때문·
“노네임씨는 계속 본인을 14살이라고 주장하셨는데··· 정말 맞습니까?”
장기자의 바로 옆에 있던 자의 질문이었다·
처음부터 무례한 질문이 나왔다·
아직 자신들은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한 해명을 해달라·
그러나 노네임은 간단하게 ‘예’라고만 일축하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질문들도 하나같이 날이 서 있었다·
“공동저자로 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테라루비를 언급하셨는데 혹시 어떤 분인지 어떤 관계인지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사제관계입니다· 어떤 분이신지는 여기서 말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요·”
“한국대학교 천규진 교수와도 사제관계인가요?”
“네·”
“두 분들이 얼마나 본 증명에 관여했나요? 더불어 노네임씨는 정말 스스로의 힘으로 난제들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나요?”
회관에 싸늘한 침묵이 내리앉았다·
다른 기자들도 표정 변화없이 계속 노트북과 노네임을 번갈아가면서 답변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장기자는 예상과는 다른 무거운 분위기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아니 질문들이 왜 이래···? 여기가 청문회도 아니고···”
“다들 뭔가 작정하고 왔나 본데요···”
질문의 의도가 전부 불순했다·
마치 너 말고 실제로 증명을 도와준 다른 사람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것 같다·
“선배님 여기 과장님한테 톡···!”
장기자는 과장으로부터의 연락을 확인받았다·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걸린 하나의 칼럼·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사라지지 않는 가짜 ‘천재소녀’ 만들기· 이제는 아동학대죄로 엄중필벌을 고려해야 할 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쪽 한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범죄의 법적 최고 형량은 5년이 아닌 10년입니다· 게다가 단속도 매우 심하게 하는 편이기 때문에 스트리머들의 개인정보유출은 전부 해외거주민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죠·
특히나 가상현실 아바타는 법적으로 보호되는 프라이버시기 때문에 제3자가 이를 현실에 있는 특정 사람과 연관시키는 행위는 진실 거짓을 불문하고 빨간줄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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