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
잠이 오지 않았다·
잠자리가 바뀌면 보통 그런 편이었다·
전생에서도 불면증을 달고 살았지만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난 또 네가 어디로 사라졌나 했다· 침대를 놔두고 캡슐 안에서 잔 거니?”
천교수가 딸기잼을 발라준 토스트를 내게 건네며 물었다·
“캡슐이 편해서···”
정체불명의 박스 안에 들어있었던 물건의 정체는 다름아닌 가상현실 캡슐·
사용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 쓰던 것을 아직 버리지 않고 놓아둔 것이었다·
“이번 주까지는 출근이라서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늦어도 저녁 먹기 전까지는 올테니까 점심은 배달음식이라도 괜찮을까?”
“좋아해요 배달음식·”
보육원에서는 통 먹어보지 못 해봤으니까· 맛이 궁금하긴 하다·
천교수는 대학교가 자신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점을 내게 연신 사과하며 집을 나섰다·
나가면서 굳이 내 토끼귀 잠옷을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야·
그가 집을 떠난 뒤로도 그가 만들어준 토스트를 천천히 음미하며 정말 오랜만에 아침을 먹어볼 수 있었다·
‘이제 진짜 뭐 하지?’
갑자기 시간이 붕 떠버렸다·
겨울방학은 끝나지 않아 학교에 등교할 일도 없다·
돈을 벌려고 아득바득 방송을 할 이유도 없다· 아니면 모든 걸 의지하기에는 미안하니까 포션값이라도 벌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의 파도에서 유영하다가 배달음식 생각이 나서 한번 검색해보기로 했다·
‘치킨 피자 떡볶이 냉면··· 김피탕?’
한때 친숙했던 음식 정체모를 이름의 음식도 있었다·
벌써 주문할 생각은 없었고 어떤 방식으로 주문을 해야하는지 미리 알아보기 위해 카드번호를 인공지능에 입력했다·
[세한카드 입력되었습니다: 이미 등록된 카드입니다·]
[소유주 확인 절차를 진행합니다: 노나메씨 확인되었습니다·]
나를 천규진 교수의 가족으로 인식해서 특별히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국마력공사에서 노나메님께 청구서를 발송하였습니다· 결제기한 내 납부 부탁드립니다·
청구목적: 무허가 긴급 하위서클(3) 마법 작성
청구금액: 481738원
결제기한: 2051/01/31
청구 내역에 대한 문의는 청구업체로 연락바랍니다· +더보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문자가 내게로 발송되었다·
“이··· 이게 뭐야···?”
순간적으로 피싱 문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자의 형식과 공식 인증 마크까지 달린 지라 의심은 곧 사그라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상세 내역을 확인하였다·
[3서클 연성진 ‘리소그래피’ 및 3개의 다중마법 사용에 관한 세부 청구서]
예전에 내가 아린에게 시현해주었던 마법이었다·
학교에서 2서클 이상의 마나를 사용하면 사용료를 내야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별 제약없이 마나를 다룰 수 있기에 특정한 마법만 그런 줄 착각하고 있었다·
약 5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내 앞에 들이밀자 나는 눈 앞이 그만 깜깜해졌다·
‘지금이 23일 월요일이니까··· 다음주 화요일까지 납부하라고?’
내가 돈이 어디 있다고?
‘아···!’
천교수가 내게 준 카드·
그리고 국가는 내가 지불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하지만 기껏해야 점심 하나 사먹으라고 준 카드를 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결제하는 데 차마 쓸 수가 없었다·
“안돼 어떻게든 내가 벌어야 돼·”
머리를 굴려보자 나메야· 똑똑한 머리를 두어서 어디다 쓰니·
아직 미성년자니까 당연하게도 사채를 쓸 수는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사채와는 지독한 인연이 있어서 연관되고 싶지도 않고·
그럼 역시 방송밖에 없다는 건데 문제는 내가 하루에 버는 금액이 많아도 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8일을 꼬박 벌어도 40만원으로 한참 부족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걸·’
내 시야에 밤을 같이 지새웠던 중고 캡슐이 아른거린다·
정말 기구한 운명이기도 하지·
나는 고민할 새도 없이 캡슐에 몸을 실었다·
* * *
[후원목표: ₩500000 (0%)]
-ㅎㅇㅎㅇ
-방장 ㅎㅇ
-이 사람 왜 닉네임이 빈칸임? 뭐라 부름?
-그래서 우리도 그냥 방장이라고 부름
“안녕하세요·”
-어제 왜 방송 안 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방종해버리고 말이야·
-근데 후원 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
-헉
-50만원 입갤ㅋㅋ
-방장 돈 급함?
“네·”
-월세 내야하나보네
-당장 담배 40갑 안 피면 죽는 병에 걸렸을 수도 있지
-요즘 담배 한갑에 만원이 넘음?
-ㅇㅇ;;
“다음주까지 내야해서요·”
-아하
-근데 우리는 돈이 없는걸
-ㄹㅇㅋㅋ
“급하다면 급하네요·”
[‘잠수가취미인사람’님이 1000원 후원!]
-방장님 그럼 게임도 해주나요?
[후원목표: ₩1000 / ₩500000 (0·2%)]
-방장 방금 후원창으로 눈 돌아감 ㅋㅋㅋㅋㅋ
-쥐꼬리만큼 벌어서 언제 다 채우려고
“고려해볼게요·”
[‘대학원생살려’님이 1000원 후원!]
-게임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네·”
-대학원생은 지금 일할 시간 아님?
-방학이잖아
-대학원생이 방학이 어딨어
-방학은 없어도 방송 챙겨볼 시간은 있음;;
-트위시에서 게임 안 할거면 대체 방송은 뭐하러?
조금 곤란하다·
확실히 시청자들의 말대로 게임을 하는 것은 트위시에서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하는 코스·
저스트채팅 방송 비율이 다른 플랫폼보다 압도적으로 적었다·
이제와서 플랫폼을 바꿀 수도 없고···
그래서 이번에는 집단지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치 티비에서 퀴즈 프로그램에 참여한 패널들이 관중 찬스를 쓰는 상황·
“뭘 하면 돈을 주실 건가요?”
-돈 달라는 거 숨길 생각도 없네 이 사람ㅋㅋㅋㅋㅋㅋㅋ
-방장이 원래 노빠꾸긴 해
-게임 해줘
-레저넌스 하면 못해도 하꼬라도 시청자 50따리는 찍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인찬스를 쓰기로 결심했다·
[혜지면밤이된다 – 게임 중 2:31:54]
[(발신)혜지면밤이된다: 어떻게 하면 방송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요?]
현재 친구 창에 유일하게 접속해 있는 인물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게임 중이라서 답장이 어려우려나·
하지만 생각 외로 그녀는 답장이 매우 빨랐다·
진행하던 게임 마저 나가버릴 정도로·
[혜지면밤이된다 – 대기실 2:32:08]
[혜지면밤이된다: 너 뭐야 해킹당했어?]
[혜지면밤이된다: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뭐지··· 아니 반년 동안 갑자기 잠수 타놓고선 방송은 또 무슨 말이야?]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요·”
[혜지면밤이된다: 적은 액수면 내가 빌려줄게·]
“남의 도움은 받기 싫어서 그래요·”
[혜지면밤이된다: 이 알림음 소리는 뭐야? 너 지금 방송 중이야?]
[혜지면밤이된다: 잠시만 방송 가리고 대기실에 나 초대해봐·]
“잠깐만 화면 가릴테니 양해 부탁드려요·”
[NoName – 대기실 00:08:17]
무미건조한 3평짜리의 작은 방·
[혜지면밤이된다님이 초대를 수락하였습니다]
[NoName님의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이윽고 펼쳐지는 원형의 소환진·
“야!”
분홍색 포니테일을 휘날리는 여성이 내 어깨를 격하게 붙들고 흔들었다·
“너 접속도 안 하고 어디 갔었어! 우리한테 이상한 메시지만 남기고 말이야!”
닉네임 ‘혜지면밤이된다’·
이름 유시아·
부캐로 여러 남성 스트리머들을 홀리고 다니는 천상계 유저·
하지만 다 필요없고 그저 나에게는 소중한 클랜원이었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해도 움직이지 못해도· 그저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사람·
“돌아왔어· 연락 못해서 미안해·”
“컨셉은 이제 버리기로 한 거야? 잘 생각했어 우리 네임이!”
“네임이 아니야 시아· 나메야· 노나메·”
“나메라고 부르라고?”
“응· 그게 내 이름이니까·”
“뭐 알겠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아· 내가 하는 말도 다 농담인 줄 아는 거겠지·
“너에게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어· 무엇보다 그동안 어디 있다가 이제야 VR에 접속한거야?”
그녀가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물어본다· 쓰다듬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뱅뱅 휘저어보기도 한다· 언제나 나를 만날 때 하는 습관들이었다·
“여러 일이 있었어· 학교에 다니고 집을 구했어·”
“너도 아직 학생이었구나? 왠지 어릴 것 같았다니까· 표민준 걔는 맨날 널 아저씨라고 음해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니까?”
“별로 신경은 안 써·”
“네 성격에는 뭐 그렇겠지· 그런데 돈이 필요하다는 건 무슨 소리야?”
“마법을 함부로 썼어· 사용료를 내야한다고 해서···”
“정확히 얼마인데?”
“481738원 정도·”
“도대체 뭘 했길래 그래?”
시아는 나를 아예 그녀의 무릎에 앉혀놓고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내 어깨가 가볍게 들려 몸이 붕 떴고 그녀의 품에 안착했다·
“아무튼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거지? 그럼 나랑 듀오나 해서 랭크 올릴래? 돈 버는데는 티어 찍기만큼 좋은게 없단 말이지· 너 아직도 브론즈잖아·”
“사람들이 돈을 낼까?”
“내 계정이랑 같이 방송공유로 송출하면 시청자는 충분할 거야· 안 그래도 나도 복귀각 잡았어야 해가지고· 대신 게임하면서 너랑 계속 얘기하고 싶은데 괜찮아?”
“괜찮아· 너무 사적인 것만 아니면·”
“좋았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늘부터 하는거다? 나 지금 당장 방송 켜서 합방 예고한다고 말해둘테니까 네 방 사람들한테도 가서 얘기해놔· 이따가 점심 먹고 1시에 공유 신청 보낼게· 무르기 없기!”
말괄량이 분홍 머리는 제 할말만 다 하고 뿅하고 대기실에서 사라졌다·
원래 시아는 이런 성격이었지· 오늘 유난히 하이텐션인 것 같기도 했다·
게임이라···
게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녀와 데이트 한다는 생각으로 방송에 임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세뇌해야지·
“저 돌아왔어요·”
-이미 시청자 다 빠져나갔어요
-실친이랑 만났음? 아니면 그냥 겜친?
-그래서 이제 뭐함?(진짜 모름)
“오늘 롤 합방하기로 했어요· 아실 지는 모르겠지만 ‘혜지면밤이된다’님이랑요· 아마 마스터까지 같이 올려볼까 해요·”
-????
-내가 아는 그 혜밤?
-뭔 헛소리야 또ㅋㅋ
-수상할 정도로 갈고리를 유발하는 방송
민심이 안 좋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럼 그랜드 마스터···? 챌린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0만원을 케이크처럼 쉽게 먹는법: 한국 승리에 20만원을 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축구를 이긴다면 새벽 연참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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