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0
[이사벨라 엔트비더 vs 이사벨라 엔트비더]
[Map: 솔리테어 마을]
[이사벨라 엔트비더가 당신의 팀에 합류하였습니다·]
[거점을 점령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십시오·]
“저의 진명은 이사벨라 엔트비더· 제 도플갱어를 죽여주세요·”
1백의 중무장한 기사들을 향해 고고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제가 당신들을 고용한 이유입니다·”
* * *
이사벨라 엔트비더는 오만한 여자였다·
그 오만함의 출처는 뛰어난 마법적 재능에서 나왔는데 그녀는 솔리테어 마을에서 제일 가는 기재(奇才)였다·
열 살의 나이에 지계마도의 기초를 다지고 열두 살에 화계마도의 원리를 깨우쳤다·
그리고 스물 서른이 지나 이사벨라의 보랏빛 머리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유명한 모험가로 이름을 떨쳤다·
한 길드의 수장 자리까지 오른 이사벨라 엔트비더는 용병 1백명을 고용해 작은 전쟁을 선포했다·
대상은 그녀와 이름마저 같은 이사벨라 엔트비더· 그녀 또한 솔리테어 마을 출신의 제일 가는 기재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도플갱어는 마법사가 아닌 검을 다루는 자였다·
챙-!
검과 검이 교차했다·
짧은 대치 속에서도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나는 검을 고쳐잡고 뒤로 물러서 다시 적 이사벨라와의 탐색전을 벌였다·
힐러 혼자 대군 속에 갇힌 상황이다· 조금만 버티면 카리리가 동료들을 이끌고 구하러 올 것이다·
“설마설마 했는데 C지역에 NPC만 혼자 보낼 생각을 하다니·”
적들은 영리하게 작전을 잘 짜왔다·
첫 점령지에 대한 인원배분은 게임의 승패에 크게 기여하는 요소다·
물론 역전의 역전이 자주 일어나는 게임이라고는 해도 초반에 2개의 점령지를 먼저 점령한 쪽이 앞으로 5분간의 주도권을 꽉 쥐게 된다·
그래서 초반에 영향력이 적고 발 빠른 힐러를 홀로 정찰병으로 보내는 작전은 언제나 유효했었다·
하지만 상대는 내가 올 곳을 정확히 예측해버렸고 그것도 NPC를 보냄으로써 완벽하게 카운터를 쳐버렸다·
내가 여기를 버리고 중앙으로 합류한다 한들 적들은 전부 B지역에 몰려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전략은 상당히 좋았어· 어디까지나 초반 NPC와 일대일이 불가능하다면 말이야·”
스탯상으로 제한 시간 내에 NPC와 일대일을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시간을 끄는 것만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어디서 한눈을 파는 거냐!”
물결 모양의 날을 가진 플랑베르주가 내 좌측 옆구리를 향해 쇄도했다·
짧게 잡은 스키아보나로 검을 쳐낸 뒤 곧바로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사선으로 내리쳤다·
이사벨라도 반사신경 하나는 썩 좋았다·
나는 내지르는 공격에 위축되지 않고 검을 차례대로 쳐내가며 자세를 굳건히 잡았다·
“발악하는 것도 거기까지다!”
검사 버전의 이사벨라는 길거리의 왈패들처럼 투박하게 싸운다는 정보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녀가 플랑베르주를 머리 위로 높게 들어올려 그대로 내 머리 위로 내리찍을 심산이었다·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검의 궤적에 주목했다·
검을 맞댄 순간부터 검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십수년간 다져진 경험이 본능처럼 각인되었다·
가까스로 피한 공격· 양손검이 머리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검에 담긴 무게와는 다르게 이사벨라는 그것을 너무 자유롭게 다루었다·
마치 목검을 다루듯이 가벼운 동작이 연이어 펼쳐졌지만 땅이 파이는 정도를 보면 일격 하나는 제대로였다·
“도플갱어에 빌붙은 하수인 같으니라고! 여기서 죽어라!”
그녀 입장에서는 우리 팀의 이사벨라가 도플갱어였다·
양손으로 쥐고 있던 플랑베르주· 그녀는 돌연 검을 왼손으로만 지탱하고 다른쪽으로는 주먹을 뻗었다· 그것이 향하는 것은 내 머리쪽이었다·
투핸드소드의 반동을 무려 한 손으로만 지탱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오른팔이 공기를 가르며 내게 쏘아졌다·
승리를 예견하는 확신에 찬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눈빛과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과를 보이기 전까지는 어느 하나 확실한 게 없다는 현실을 일깨워줘야겠지·
왼팔을 들어 머리 위로 가드 자세를 취했다·
나는 아예 집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
“박투술을 할 거면 확실하게 검을 버렸어야지·”
검을 몸에서 떼지 않아야 한다는 집착· 투핸드소드를 한 손으로 제어하는 기예를 보이면 뭐하나·
그래봤자 쓸 수 있는 건 한 손일 뿐인데·
그리고 육탄전에서는 두 팔 없이 싸운다는 건 양쪽 날이 무딘 검으로 싸우겠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그녀의 소매를 잡아 팔을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플랑베르주를 뒤늦게 가져와보려고 해도 속도가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손목을 비틀고 이대로 상체를 앞으로 밀고 나간다·
그녀의 무게중심이 모여있는 다리를 걸고 그대로 몸을 한바퀴 회전시켰다·
“크흑···!”
공중에서 눈이 서로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 그녀는 자신이 곧 바닥을 구르게 될 거라는 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쿠웅!
내 등을 중심축으로 공중을 부유한 그녀는 낙법도 제대로 치지 못하고 땅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여성 주위로 흙먼지가 피어 올랐다· 갑옷이 덕지덕지 붙은 몸뚱이가 신음을 터뜨렸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손잡이 끝 부분을 발로 콱 찍어 검을 위로 튕겨냈다·
다시 수중으로 들어온 스키아보나를 크게 휘둘렀다·
촤악-
육신을 베는 걸림이 없었다·
이사벨라가 바닥을 뒹굴며 계속해서 찔러 들어오는 검을 피해보려하지만 사실 급할 것도 없지·
확실하게 역동작이 걸렸을 그 찰나를 판별해 그대로 허벅지에 검을 찔렀다·
애써 급소를 피해보려고 몸을 웅크리고 도리어 나를 밀쳐내려고까지 한다·
“일어나지 말고 있어·”
퍽-
가속화 스킬까지 겸비한 발차기로 그녀의 머리를 후려쳤다·
몸을 다시금 휘청거린 이사벨라· 일시적이긴 하지만 명백히 기절 판정이었다·
이사벨라의 길쭉한 몸에 급소가 훤히 드러났다·
경동맥 늑골 명치· 어느쪽을 찔러도 만족스러울 터·
“리스폰 장소로 돌아가라·”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 위에 올라타서 체중을 담아 역수로 쥔 검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Critical!]
[치국평천하: 중첩된 일격을 가할 때마다 3%에 해당하는 추가 피해가 들어갑니다·]
[현재: 38스택]
[6964(1709+5255)]
[레드팀 NPC가 처치되었습니다· 리스폰 타임: 30s]
맵 전체에 적군 NPC가 일기토에서 졌다는 알림이 퍼진다·
NPC는 스킬 같은 거 모른다니까· 그것이 나에게 NPC를 보낸 적들의 패착이었다·
콤보를 안 끊기고 계속 몸을 대주는데 어떻게 참아·
서로 파밍하는 것도 잊고 1레벨에 NPC를 물리쳤다·
[Level Up! 1 → 3]
시스템도 내 업적을 길이 칭송해주나보다· 레벨도 단번에 2나 올랐네·
게임 속 세상이라 땀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습관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쪽 화면을 송출하는 옵저버 카메라를 향해 간단히 브이자를 날려주고 남은 병사들을 물리치기 위해 다시금 검을 들었다·
어째 힐러인데 검을 더 자주 사용하는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리라·
피로 추정되는 액체를 털어내고 자리를 옮겼다·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이제 겨우 한걸음일 내디뎠을 뿐이었다·
* * *
이사벨라 엔트비더는 자신의 도플갱어를 죽여야만 하는 당위성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제는 딱 한 개 남아있는 ‘만병통치약’·
서로가 서로를 도플갱어로 규정하며 삶을 연장해나가기 위해 모든 걸 내건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말이 우스운가요? 나는 당신들의 고용주예요! 이렇게 쉽게 명령을 어기면 안 된다고!”
이사벨라는 화를 버럭 내었다·
그러나 이를 듣는 금발머리 여성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계속 앞만 보고 걸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무시하기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항의했다·
첫 작전에서 그녀는 여섯의 정예 대원에게 셋 셋으로 쪼개져 언덕과 평원을 선점할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파티의 유일한 힐러를 담당하는 ‘노네임’이 돌연 나리엘 늪지로 가버리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결과가 좋았잖아요· 앞으로 잘 싸워봐요!”
얼음법사 ‘달토리’가 싸움을 중재시켰다·
“우리 노네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말이오· 조금은 믿어봐도 괜찮을 것 같소이다·”
“우우··· 우에엑···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안 어울려·”
“우욱 무슨 컨셉이야 이건 또!”
심심맨이 역할극에 심취해 때아닌 사극 어투로 말했다·
달토리와 브라우니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가는 건 덤이었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고· 잘 들어· 나는 내 인생 모든 걸 여기에 걸었어· 30년 동안 어떻게 하면 저 망할 놈의 도플갱어를 불태워 죽일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고! 그리고 그 결실을 맺을 때가 지금이야·”
이사벨라의 눈이 이글거렸다· 더불어 그녀의 스태프에서도 불길이 치솟아 그녀의 격분을 대변해주었다·
“약하더라·”
“뭐?”
노네임의 조롱 섞인 웃음·
“어떻게 이렇게 약한 친구를 어떻게 아직까지 못 죽였나 싶어서·”
노네임이 늪지에서 도플갱어를 격퇴한 건을 언급하며 평했다·
분위기가 다시금 험악해진다·
아군 NPC와 굳이 이렇게까지 대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나 싶어 한용철이 노네임을 말렸다·
“에헤이 노네임 왜 그래! 이사벨라씨 빨리 다음 오더 부탁드립니다!”
따갚대 승리가 간절한 용철의 외침이었다·
“저 사람 오더 듣지 마요· 앞으로 오더는 내가 다 할 테니까·”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반기를 든 노네임·
두 여성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고용주를 거역하겠다는 소리야?”
“얼굴만 같으면 다 도플갱어인가보지?”
“뭐?”
“아냐· 용철님 이번 오브젝트는 적에게 내주는 게 좋겠어요· 우리는 그동안 반대편에서 성장시간을 더 벌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렇게 유리한 상황에서 적을 그대로 내버려두자고? 너 사실 스파이지! 도플갱어측에서 보낸 스파이 아니냐고! 여러분 현혹되지 마세요· 지금은 당장 싸우는 게 맞아요!”
오더를 내리거나 트롤러에 대응하는 알고리즘은 인물별로 달랐다·
그리고 이자벨라는 상당히 화가 많은 축에 속해있었다·
저 황금머리 도라이는 아군이 아니라고 NPC가 강하게 외쳐보았지만 어째서인지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우리 노네임찡 또 기막힌 생각이 있구나! 이사벨라 언니도 화내지만 말고 어서 따르라고!”
“또 세기의 천재님이 하는 오더 아니겠어요! 분명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겠죠·”
이사벨라는 용병들이 매몰차게 돌아서는 걸 보고 당황에 찰 수밖에 없었다·
대륙에서 제일 가는 기재라고 주위에서 떠받들어주고 언제나 그 기대에 부응해왔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았다·
“아니 왜···? 그럼 달토리님은?”
“죄송해요 헤헤· 하지만 노네임 오더 들어서 지금까지 틀려본 적이 없으니까·”
그나마 B지점을 공략하면서 오더를 가장 잘 따랐던 달토리마저 이사벨라가 아닌 노네임 측에 붙어버렸다·
“노네임은 엄청난 천재거든요!”
급기야 이사벨라는 6명 전원을 패작러로 인식할뻔했지만 사실 그 편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럴 땐 자신이 정말 틀린 거라고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디 한번 두고 보죠· 얼마나 자신 있는지·”
일행과 다시 합류한 이사벨라는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9118님 4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빨리 연참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고 오겠습니다··!! 당분간은 미리보기 제공이 안 되는 점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익명의 후원자님 46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빨리 최신화까지 달려오셔서 이 메시지를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1부보다 재밌는 2부 2부보다 재밌는 3부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타임로드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게 너무 재밌는 것 같습니다··!! 더욱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최근들어 만족스럽지 못한 퀄리티의 글을 보여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대회 스토리는 최대한 압축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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