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2
‘천규진 교수가 순수수학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그것이 천교수와 같은 층 연구실을 쓰는 백교수의 생각이었다·
천교수의 전공분야는 소재공학·
비록 연성진쪽을 주로 다루어서 이론물리나 해석학에도 배경지식이 있다 쳐도 그가 무리수를 두었음에는 틀림없었다·
그는 천교수가 분명 아이의 부모에게 스타 만들기의 일환으로 청탁을 받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노네임이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증언한 사람이 되어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고·
‘마리아인지 뭔지 그 사람이 증명을 다 써준 거겠지·’
결국에는 가명임이 드러난 1저자·
기존에 ‘가짜 천재’들을 만들어낼 때 언제나 마법학쪽이 아닌 수학을 주제로 삼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업계 자체가 마법학보다 훨씬 작아서 일단 최신 수학 트렌드를 알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었고 이는 다시 말해 증명을 검토해줄 인원이 전 세계를 놓고 보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증명을 몇십 페이지씩 내버리면 당연히 그간 검증에 들어가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많은 게 자연스러웠다·
그동안 인기를 쪽쪽 빨고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질 때 잠적해버리면 그만이니 그야말로 20년 전에나 쓰인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그럼 왜 천교수가 이런 청탁을 받아들였나·
‘그건 나도 모르지·’
천교수는 한국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넘어가 석박사를 한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은 인물·
이론연성공학만큼 돈이 안 되는 분야가 없으니 천교수는 결국 폴리페서(정치교수)로 전향하려나보다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었다·
도대체 저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도 최소한 정치계에서 입김이 센 축에 속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으니까·
빵빵-!
자율주행기술은 나날이 발전해가는데 퇴근길의 러쉬아워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하나도 없는 정부를 규탄하며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
[172 – Twish TV]
“이 녀석이 차를 썼으면 채널이라도 좀 똑바로 돌려놓고 가지·”
백교수의 퇴근길에는 언제나 132번 골프채널이 함께하였다·
웬 게임중개방송의 등장에 채널을 다시 돌리려던 백교수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따갚대 그룹스테이지 5전 전승! 더! 블로리 팀의 결승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최근 기자회견에서 노네임이 무슨 게임대회에 참여하였다는 소식은 얼핏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인터뷰어 옆에는 일곱 살의 어린 아이와 동물 후드티를 입고 있는 소녀가 긴장한 채 무대에 서 있었다·
백교수는 트위시의 방송을 계속 지켜보았다·
무언가 어려운 게임용어를 섞어가면서 말했기에 곧 50대에 접어들 백교수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더 많았다·
그리고 마지막 인터뷰 질문이었다·
[노네임님은 카리리 선수와 더불어 따갚대에서 유일한 미성년자 스트리머이신데요! 부모님께서 지금 이 방송을 보고 계신다면 정말 자랑스러울 것 같네요! 혹시 이 자리를 빌어서 부모님 두 분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마이크를 넘겨준 인터뷰어·
중간 위치에서 마이크를 전해달라고 지시받은 카리리·
소녀의 눈과 손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반면 카메라에 비친 어린 아이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정면을 응시하였다·
[어··· 음··· 갑자기 말하려니까 머리가 하얘지네요· 그래도 나 어제 오늘 조금 잘한 것 같았는데 엄마가 보기엔 어땠을지 모르겠네· 앞으로도 계속 멋지고 씩씩하게 살아갈 테니까··· 끝까지 지켜봐 줘· 오늘따라 엄마가 너무나도 보고 싶은 날이네· 많이 사랑해·]
[우와 노네임 선수의 직설적인 고백! 듣기만 해도 너무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께서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그런데 어머님이랑은 지금 따로 떨어져 사시나보죠?]
[하늘나라에 계시거든요·]
[네···?]
“뭐?”
빵빵-!
백교수의 외마디 단말마가 경적소리에 묻혔다·
[그리고 아버지는 없으니까 생략할게요·]
더불어 마이크를 건네받은 인터뷰어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 * *
6개의 팀이 이틀 동안 진행한 풀리그에서 나메의 팀은 5전 전승을 이루어 결승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믿고 있었다고 카리리!
-넌 우리들의 영웅이야!
-월뭇잎마을 수준ㅋㅋㅋㅋㅋㅋ
-ㅋㅋㅋ태세전환 개웃기네
스크림에서의 발전과 풀리그에서의 전승을 이룬 것에 비해 나메의 활약이 전만큼 돋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이는 나메의 인터뷰 한번으로 쏙 들어가게 되었다·
[월오아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게임이에요· 그리고 저희 더 블로리 팀은 주연을 카리리씨로 정했고요·]
[똑같은 자원을 누구에게 몰아주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에요· 저를 키워봤자 크게 변하는 건 없겠지만 카리리를 키우면 오브젝트 한타를 이기게 할 수 있으니까요·]
[캐릭터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요? 아뇨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사기라고 하는 카리리의 탱어쌔신은 저희 팀 모두의 노력이 들어간 산출물이에요· 그 노력을 잘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저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이 세상에 하나씩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제 활약을 보고싶은 분들께는 이번 몰락전에서 제가 주인공으로 나오니까 레거시 오브 레전드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라 조금 횡설수설한 것 같은데 응원해주신 모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캬
-퍄퍄퍄퍄퍄퍄
-말 잘한다!!!
-저마다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하나씩 있다 명언이네 ㄷㄷ
-노네임 약간 명언병 있는 것 같음ㅋㅋㅋㅋ
-모든 걸 오글거린다고 묻어버리는 쿨찐충들보다는 훨씬 나은데 뭐
-너무 귀엽다ㅋㅋㅋㅋㅋㅋ
-진짜 횡설수설 하는 건 카리리였고
-카소리 ON 해버리니까 영어 통역도 포기하는 게 걍 개웃김ㅋㅋㅋㅋㅋㅋ
두 소녀가 가진 독특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관중들의 호응도 정말 좋았다·
이에 따라 의욕이 앞섰던 인터뷰어는 기존 질문 리스트에는 없는 목록을 내지르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요청하면 보통 선수들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그대로 화면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까지 지을 수 있고 중장년층에게 게임에 대한 인식도 전환할 수 있으니 가히 일석삼조라 볼 수 있었다·
-나도 노네임의 부모님 시켜줘!!!
-얘를 공부를 시켜야 돼 게임을 시켜야 돼
└ ㄹㅇ 행복한 고민이겠네ㅋㅋㅋㅋㅋㅋ
-어떤 분일까 궁금하긴 하다
[어머님이랑은 지금 따로 떨어져 사시나보죠?]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하늘나라에 계시거든요·]
채팅창이 터졌다·
아니 모두가 터진 줄로만 알았다·
빠르게 지나가던 채팅창이 그 순간만큼은 멈추어버렸으니까·
-어?
-내가 잘못 들은 거냐?
-하늘나라···? 하늘나라···?
-SKY 말한 거 맞지?
-????????
-비··· 비비비··· 비비···
-비이이이이사아아아아아아앙!
-빨리 탈룰라···! 탈룰라가 필요해!
-진짜 초비상!!!!!!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두 분 다?
-헉!
-장난 아니라 찐인 것 같은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실화냐고···
-방금 노네임이 뭐라 했음? 나 못 들었어
-인터뷰 눈나 ㅈ됐네 ㄹㅇ
-진짜 고아라고? 이제 14살인데?
-문신 중퇴 히키코모리··· 아앗··· 아아 그래서···
-ㅠㅠㅠㅠㅠㅠ 이렇게 복선이···
방송이 터져버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 * *
“그런 걸로 상처받을 나이는 이제 한참 지났죠· 게다가 모르시고 그런 거잖아요· 진짜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사과하셔도 돼요·”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아나운서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뭐라 말을 하려다가도 파르르 떨리는 입술 때문에 다시 울먹거려서 오히려 내가 달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사실 부모가 없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있으면 좋았겠다 정도지 전생에서도 오히려 부모라는 존재 때문에 발목이 잡혀 꿈을 접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특히나 전쟁 이후부터는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 길거리에 더 많이 보일 정도로 생을 위협하는 상황 아래에서는 혈연관계는 쓸모가 없었다·
인터뷰 언니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월오아 팀원들의 애정어린 시선을 받고 이번엔 롤 대회를 앞두고 팀의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나메야···”
“아니 시아 언니 그렇게 유난 떨 것 까지는-”
“나메야! 우에에에에엥 난 네가 그런 것도 모르고 흐끅!”
유시아가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바타 바꾸지 말고 올 걸·
“왜 그래 이제 대회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미니맵 못 봐서 갱 당하면 어쩌려고·”
“너··· 너···”
“왜···?”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울지만 말고 말을 해 말을!”
“흐으윽··· 내가! 히끅 내가 우리 나메 엄마가 되어줄 테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 입양 가서 잘 살고 있거든! 그리고 우리 양아버지 언니랑 못해도 서른살 넘게 차이 날 텐데·”
갑자기 도래한 침묵·
“흑··· 그건 좀·”
“그래· 어서 밴픽이나 준비하자·”
“응···”
다들 정말 유난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청자들 반응 더 보고 싶다··!!
문곰문고문곰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움직이니까 몸이 쑤신 데가 많네요··!! 응원해주신 덕분에 안 다치고 잘 수료하고 왔습니다!!
죔죔님 2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다음 달부터는 연참도 꼭 자주자주 하겠습니다!! 진도가 느려지는 것 같으면 언제나 연참으로 해결하라고 배웠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울 따름이네요··!! 계속 나메와 함께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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