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0
“여러분들은 가장 최초의 기억이 무엇인가요?”
내일 이 영상을 보고 있을 사람들은 몇 살 때를 떠올릴까? 세 살? 네 살?
부모님에게 매를 맞아 울었던 기억 혹은 미아가 되어 혼잡한 거리를 헤맸던 기억·
충격적인 기억일수록 최초의 기억이 될 확률이 높겠지·
“저의 첫 기억은 게임 속 세상이었습니다· 그 게임의 이름은 레거시 오브 레전드였고요·”
설아는 거의 1년간을 마나 포션을 구매하기 위해 나를 프라이빗 룸에 두고 하루도 빠짐없이 게임을 돌렸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거다·
칭호작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쉬이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캡슐마다 캡슐을 담보로 하여 소액을 대출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아마 그 금액은 100만원을 넘지 않았겠지·
음식과 물 대신 마나포션으로 삶을 연장하고 점점 짧아지는 폭탄의 심지를 지켜보는 설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나잇대의 소녀가 경험하기에는 끔찍한 경험이었을 거다· 정말로·
“어머니는 저라도 살리기 위해서 다시는 가상현실에 접속하지 않으셨고 저는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계속해서 게임을 해나갔습니다·”
게임을 한다·
칭호를 얻는다·
칭호를 판다·
돈을 번다·
마나를 산다·
다시 게임을 한다·
그 지겨우리만치 오랫동안 반복된 끔찍한 일상은 무려 7년동안 거행되었다·
“2044년 3917판 2045년 8392판 2046년 8505판 2047년 8469판 2048년 8538판 2049년 8150판 그리고 2050년에도 최소 4000판 이상을 했습니다· 그게 제가 유일하게 살 길이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네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
[나는 내 이름을 모르는 걸·]
[괜찮아· 내가 이제 지어줄게·]
나는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메라는 엄청 예쁜 이름이 이렇게 있는걸·]
그녀의 따뜻한 말에 덜컥 겁부터 먹었다·
[우리 나메는 꼭 살아줘·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엄마 몫까지 살아줘·]
도대체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왜 설아는 계속 함께 할 수 없는지·
혼란스러웠을 어린 아이는 계속해서 설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꼭 기억해줘 너의 엄마는 노설아 한 명뿐이라는 걸· 자랑스러운 우리 딸 나메·]
“그래서 저의 이름은··· 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닉네임이 먼저였고 이름이 그 다음이었죠·”
그래 웃기지도 않은 신파극이다· 그 뒤로 나는 한동안 여운에 잠겨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정말 설아가 살 수 있었던 방법은 없었을까·
내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더 일찍 차렸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이 상황을 빠르게 인지하였다면
설아가 혼자 그 고민을 떠안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메야!”
“···?”
“화이팅!”
문득 카메라 삼각대 너머로 설아의 모습이 환상처럼 비쳤다·
내일 있을 결승에 힘내라는 듯이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웃어보이는 그녀·
그래 이렇게 환각으로나마 볼 수 있으니까 너무 반갑네·
신기함으로만 따지자면 마법보다 뇌쪽이 한발 앞선다고 생각한다·
어쩜 이렇게 진짜 같을까·
눈을 한번 가볍게 감았다 뜨니 그녀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양 사라져있었다·
‘이번 주 일요일에 보러 갈게·’
다시 영상촬영에 집중하기로 했다·
죄송한 생각이지만 구출에 도움을 준 세민과 마범일 형사님의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였다·
앞으로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에 최소한 피해는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다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건 있었다·
“저는 이 나라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관심과 배척·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무관심 속에서 하찮은 삶을 이어나갔고 여러분들의 배척 속에서 마음씨 좋은 분께 입양되기 전까지는 무국적자로 지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어린 아이는 무국적자로 살아도 큰 손해는 없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포션값을 혼자 벌기 위해 트위시에 가입하여 수익창출 신청을 할 때도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가·
알게 모르게 대한민국에서는 무국적자와 난민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보육원의 아이들은 하도 영악하여 누가 부모님이 있고 없고 출생이 어떻고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와 끝까지 함께해주었던 건 오로지 아린이 뿐이었고 내가 인간혐오에 걸리지 않았던 것도 그녀의 공이 정말 컸었다·
“지금까지 제 얘기를 꺼내왔던 건 비단 저의 불행을 자랑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이 기회에 여러분들이 이웃 친구 혹은 부모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입니다·”
유나가 아카데미에서 왕따를 당했던 것도 그녀가 처한 상황을 알아보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리리가 그 모진 시선을 받았던 것도 애써 진실을 외면하려는 대중들의 탓이 적지 않게 있었다·
악의는 없었다·
그런 말이 옛날부터 너무나도 싫었다·
그럼 어쩔까·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을 뿐이다·
그럼 피해자는 혼자 과거의 고통 속에서 헤매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가해자가 되기 싫다면 최소한 방관자라도 자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계실 여러분들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일 겁니다· 그 많은 레거시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들을 기억하고 그 복잡한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의 검술과 마법 스킬들을 외우고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앞으로 할 부탁들도 정말 간단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사람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어나가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니까·
영상은 이걸로 마지막이었다·
[녹화종료 9:32]
10분이 조금 안 되네·
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누구에게 보이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가 싫어졌다·
나머지는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해주겠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하지만 이 지독한 권태감은 나를 영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상현실에 접속했다·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0:01:31 – NoName]
“오전에 날씨가 좋길래 브이로그를 한편 찍었어요·”
그래 조금 덥긴 했어도 오늘 날씨가 썩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 * *
영상이 끝났다·
약간의 웅성거림과 소란스러움·
하지만 스타디움을 꽉 채운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데시벨이 결코 크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었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되었다·
마이크를 들고 캐스터보다 한 두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다·
“잠깐 제가 일곱 살이라는 사실은 다들 머리에서 지워주시고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캐스터님에게는 잠시 양해를 구했다·
시간이 지체되어 인터뷰 시간의 끝이 다가왔기 때문·
그래서 되도록 간단하고 빠르게 진행하였다·
“저는 이전에 방화대교 폭파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청을 신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실명 ‘노나메’로 국민제안을 신청하였으며 그 내용은 발푸르기스 소탕 작전의 재조사 요청입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캡슐에 갇혀 외딴 폐가로 옮겨졌던 시점은 분명 방화대교 폭파 사건 이전이었습니다·”
페르소나 파이시로 분명히 그 아수라장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델라의 본체가 남긴 기억에는 그녀와 동기화되지 않은 캡슐 두 대가 남아있었고 하나는 설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분명 나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첫째 사건의 전후관계를 명확히 파악해주십시오· 정말 방화대교 폭파 사건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그 전부터 인질 구출에 대한 작전이 선행되어 있었는지· 만약 후자로 밝혀진다면 진실을 숨긴 이유와 그 책임자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청자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꼭 부탁드립니다·”
나는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어쩌면 이런 인사를 하는 것도 처음이라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으면 저들 한명이라도 더 간청을 들어주지 않을까·
하지만 시간상 느껴지는 압박 때문에 10초 이상은 가지 못했다·
그래 이제 거의 다 왔어 노나메· 힘을 내·
두 번째 부탁은 그냥 정말 간단하고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부탁이니까·
“둘째는··· 지금 봉안당에 계신 우리 불쌍한··· 엄마의 처우를···”
설아는 그런 낡고 쓰러져가는 봉안당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 그 어떤 사람보다도 위대한 사람이니까·
“개선··· 읍··· 흐으··· 해··· 주셨으면··· 합···”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표현은 진짜 식상해서 안 쓰려고 했는데·
이러면 애써 미리부터 영상을 찍은 의미가 없잖아···
그래 눈물까지 흘러내리지는 않았으니까 울지는 않은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인터뷰를 끝맺었다·
“들어주셔서 다들 감사합니다···”
“너무 수고했어! 우리 나메 장하다!”
“···!”
어렴풋이 들려온 보드라운 목소리에 흠칫하여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 보고싶었다고 말하려던 참에 설아는 또 잽싸게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평소에도 자주 보이면 좋겠는데 꼭 이렇게 내 생일 직전에만 온다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메는 진짜 아가야···
어제 댓글이 1시간만에 거의 150개가 달린 걸 보고 놀랐습니다··!!
마나인방을 인생픽으로 지정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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