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IlllIllIl: 아무튼 방송은 오늘이래· 애초에 과반수가 찬성했던 안건이니까 울 클랜이 어떻게 나오든 나한테 뭐라 하기 없기다?]
[plzplzlqzlq: 왜 과반수야 4명 중에 겨우 너하고 시아만 찬성했었는데· 우리 클랜 터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넌 각오해라 진짜·]
[혜지면밤이된다: 뭐 얼굴 나오는 건 민준 오빠가 희생해줬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클랜이야 터지면 다시 만들면 되지]
[IlllIllIl: 노네임은 함묵증 컨셉인데 과반수에 산정하는 수준도 참ㅋㅋㅋ]
[혜지면밤이된다: 미르 오빠도 출연료 액수 듣고선 놀랐으면서]
[혜지면밤이된다: 방송 끝나자마자 입금해준대]
[plzplzlqzlq: 노네임씨는 어떻게 해? 진짜 돈 안 나눠 줄 생각이야?]
[IlllIllIl: 아니 내가 뭐 벌써 떼먹기라도 했나]
[IlllIllIl: 계좌번호를 안 알려주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IlllIllIl: 함묵증 컨셉 지키고 싶은 이유라면 나한테 귓말로 알려줘도 상관없다 일러줬는데도 끝까지 한마디 안 하는 걸]
[plzplzlqzlq: 아무튼 민준 네가 끝까지 책임지고 잘 건네드려·]
“이 양반은 나한테만 신경질이야!”
‘제발부탁’의 클랜장 이미르가 클랜홈에서 나가자마자 민준은 신경질적으로 애꿎은 바닥만 내리쳤다· 가운뎃손가락은 덤이었다·
친구창을 열어 문제의 주인공을 찾아 스크롤을 쭉 내렸다·
[NoName – 게임 중 13:47:08]
“지겹지도 않나···”
이제 남들 퇴근하고 저녁 먹고 여가생활을 즐기기 시작하는 저녁 8시 노네임 그는 이미 14시간째 레거시 오브 레전드에 접속 중이었다·
2009년에 출시한 리오레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결국 그 야성을 막을 수 있는 컴퓨터 게임은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30년대 후반부터 캡슐이 대중화 되면서 가상현실게임이 우후죽순 나오기 시작했다·
리오트게임즈는 유행에 편승하여 ‘레거시 오브 레전드’라는 캡슐용 후속작을 내놓았고 후발주자임에도 단번에 점유율 1위의 자리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레저넌스’나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에 조금 밀리는 실정이었지만 여전히 플레이어층은 두꺼웠다·
표민준 자신도 적절한 대체재를 찾지 못해 이 망할 게임만 매 시즌 3000판씩 박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한 해에만 8150판 지난 6년 동안 50000판 이상을 쏟아부은 이 앞에서는 한없이 작게 보일 따름·
아무리 재능 없는 자라 할지라도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했다면 무엇이든 성공했으리라·
하지만 노네임 이 사람은 그 주장을 반증하기라도 하듯이 민준과의 티어 차이는 명확했다·
“브론즈 3··· 그래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공한 인생 아닐까? 진정으로 게임을 게임답게 즐길 줄 아는 거지! 괜히 나처럼 매판 화내면서 수명 단축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와 대비되는 민준의 그랜드마스터 휘장이었지만 정작 그는 썩 기뻐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응답없는 친구 창이 하나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명 스트리머 ‘딜리트’의 ‘다큐4일’이 한창 방영되고 있었다·
최근 트위시와 브이튜브에서 대박난 컨텐츠·
여러 게임의 프로게이머나 스트리머 인터넷 유명인들의 삶을 취재하는 내용이었다·
아직 자기 클랜을 취재했던 영상이 나오려면 시간이 꽤 남았었다·
“이게 이렇게 재밌나·”
솔직히 돈을 준다길래 기꺼이 출연했었지만 민준은 이 컨텐츠가 왜 뜬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NoName – 게임 탐색 중 14:39:40]
[NoName – 대기실 14:39:43]
[NoName – 클랜 진입 중 14:39:48]
눈을 떠보니 나는 어느덧 클랜 로비에 소환되어 있었다· 마침 내가 찾는 인물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당 50만원· 하루에 18시간씩 꼬박 일주일을 해야 간신히 벌 수 있는 돈이다·
경제적 파산이 곧 이승과의 작별이 된 나의 세계에서 스트리머가 진행하는 다큐에 출연해보자는 클랜원 민준의 말은 구미가 당겼다·
처음에 미르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돈이 급했던 민준과 시아가 찬성하면서 딜리트의 다큐4일에 출연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비록 나는 가상현실의 몸이긴 했지만 엄연히 클랜 대기실을 촬영할 때 내 아바타 모습을 병풍처럼 비추었으므로 나에게도 배분하는 게 당연했다·
민준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오두커니 섰다·
“꼬맹아 그렇게 보고만 있으면 나보고 뭐 어쩌라고·”
민준이 표독스럽게 쏘아붙인다·
얜 또 왜 이렇게 화가 났어?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하지·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그렇다고 내 명의의 계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풀어야 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중국산 캡슐의 문제인지 아니면 나를 납치한 범죄집단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언어 프로세서 모듈이 서버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에 현재 나로서는 게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대화가 불가능했다·
특이하게 클랜 내에서 하는 말들 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만큼은 감지덕지했다·
그럼 수화를 하면 되지 않느냐·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상현실도 엄연히 현실에 준하는 공간인만큼 통신매체이용음란죄 규정에 의하여 스토킹이나 성희롱 등을 방지하기 위해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시스템이 있다·
즉 대화나 의사표현을 시도하려고 하면 뇌파를 차단함으로써 행위 자체를 억제시키는데 신원 등록이 되지 않은 모든 계정은 전부 이 제재를 받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깜빡이는 것·
깜빡
깜빡깜빡
“아 진짜 답답하네!”
민준이 계속 답답해하고 있는 동안 계좌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방안이 떠올랐다·
중국 사이트에서 칭호를 거래할 때 현금이 들어오는 임시 계좌가 있는데 그게 유효기간이 일주일이 조금 더 되니 그쪽으로 보내달라 하면 될 것 같았다·
452-5213-8019-108903
나는 전적 및 통계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총 4장의 스크린샷을 찍어 차례대로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민준의 앞에서 지긋이 한 곳만을 확대해 응시했다·
“뭐 어쩌라고? 나보고 보라고?”
노골적으로 창을 띄워서 보여주니 민준도 안 볼 수도 없었다·
“얘도 너 같은 트롤러냐? 게임 끝날 때까지 452 대미지밖에 못 넣었네·”
좋아·
이대로만 해줘·
“이건 네 전적이네? 사람이냐? 5213 대미지?”
마침 전 판에 내가 딱 5213 대미지를 넣어서 기억하기에 이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나 자신을 칭찬하며 다른 두 개의 숫자를 각인시켰다·
“뭘 말하고 싶은 건데?”
민준이 여전히 의문을 표하자 나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내가 머리가 좋으면 뭐 해· 쟤가 빡대가리인데·
게다가 중국 계좌라 그런지 통상적인 한국식 계좌하고는 자리 수가 달라 유추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흥미를 잃고 자리를 떠나려 하자 나는 서둘러 그의 앞을 막아서며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어떻게 하면 이 절박한 상황을 어필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 클랜명이 각인된 동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발부탁]
제발 부탁이야·
네가 이 돈 안 주면 이 게임이 연장점검이라도 하는 날에는 죽는다고·
엄마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켜낸 생명인데
눈을 떠도 나갈 수 없는 캡슐에 갇힌 걸 절망하고 다시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심정을 알아?
이 정도로 했으면 제발 좀 알아달라고·
“뭐야 오랜만에 우리 네임이도 왔네? 둘이 뭐 하냐?”
“시아? 아니 이 꼬맹이가 아까부터 뭐라 하는 것 같은데 하나도 모르겠잖아·”
“452 5213 8019 108903? 무슨 암호 같은 건가? 난 이런 거에 약한데·”
“난들 아냐?”
“네임이 네가 부른 거 아냐? 아니면 이렇게 올 리가 없는데·”
“돈 받고 싶으면 계좌 알려달라 했지· 안 알려주면 내가 다 먹을 거라고·”
“···?”
“아?”
“이거 계좌번호 아니야?”
민준과 시아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역시 하나보다는 둘이 낫구나·
깜빡깜빡깜빡깜빡
“이 지독한 컨셉충 새끼···”
“어허 애 앞에서 나쁜 말 금지!”
“막말로 저 안에 50살 아저씨가 있을지 70살 할머니가 있을지 모르면서 그런 말을 잘도 하네·”
“네임이는 아가야· 지켜줘야 돼·”
민준과 시아가 토닥거리며 노는 동안 나는 민준이 재생시켜 놓은 다큐4일을 찬찬히 감상했다·
내일이면 50만원이 들어올 텐데 이 정도의 여유는 괜찮지 않나 싶어서였다·
클랜원이라고는 4명밖에 없건만 뭐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싶다·
프로게이머의 현생 전업 스트리머들의 현생 취재가 끝나고 광고가 두차례 지나간 뒤 익숙한 우리 클랜의 정문이 보였다·
새가 지저귀는 배경음이 깔리고 평화로운 시점에서 전개되나 싶었지만 언제나 현실은 내 예상을 웃돌았다·
[아니 점화 텔포 카르밀 뭐냐고! 전 판에 나 저격했을 때는 정화 유체화 들었으면서!]
승급전 마지막 판인 스트리머 상대로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주는 민준의 캐릭터는 전장을 누비며 도합 25킬을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해낸다·
참담한 승승패패패에 마스터의 꿈에서 멀어져가는 스트리머의 표정은 더 가관이다·
[여기서 3명이 대기해서 역갱각을 보네? 잠깐 얘 방플 아니야?]
3인 다이브를 준비하던 또 하나의 스트리머에게 미르가 4인 역갱으로 화답하며 게임이 터지는 장면도 일품이었다·
[이거 치니까 돈 주네요· 오빠도 빨리 쳐봐요·]
게임 처음 하는 여성 초보자인 줄 알고 듀오 방송을 진행했건만 자원이란 자원은 다 뺏어 먹는 서포터 시아도 씬스틸러를 장식했다·
결국 그 판 스트리머는 0/7/9라는 불명예스러운 전적으로 끝냈지만 시아는 서포터인 주제에 18/1/2로 게임을 지배했다·
뒤이어 밝혀지는 그들의 본계정 닉네임들이 나왔을 때가 진정한 하이라이트였다· 실시간으로 댓글창이 요동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IlllIllIl: GrandMaster / 래더 랭킹 512위 / 상위 0·00669%]
[plzplzlqzlq: GrandMaster / 래더 랭킹 780위 / 상위 0·01019%]
[혜지면밤이된다 Challenger / 래더 랭킹 294위 / 상위 0·00384%]
역시 사람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댓글창을 보아라· 그들을 욕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여론이 좋아지지 않았는가·
[ㅗㅜㅑ]라던가 [퍄퍄퍄] 같은 말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시청자들이 쉴 틈도 안 주고 곧이어 그들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편집한 영상이 나온다·
일반인들이 쉬이 접하지 못하는 괴물들이 도사리는 구간 그런 곳에서 마치 하나의 주인공이 된 민준 미르 시아는 그야말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최종 기획자인 딜리트도 만족스러운 반응에 텐션이 올라가 여러 가지 해설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내가 이들과 같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뒤이어 나오는 나의 플레이 장면들·
그곳에서 나는 시작의 마을에서 몇 분이고 가만히 있기도 했고 죽어가는 동료들을 무시하며 지나치거나 때로는 그 장면을 능욕하려는 듯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론은 당연히 최악·
다시 수많은 활자 조합물들이 내 눈을 덮었다·
거기에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이 곧 ‘삭제된 댓글입니다’로 변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검열되기 전 내용은 내 뇌리에 똑똑히 각인되었다·
어쩌면 그들의 분노도 정당하겠지·
하루에 몇 없는 시간을 쪼개어 힐링하려고 한 게임에 나같은 트롤러 새끼가 껴 있으면 기분 잡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유독 하나의 댓글만큼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하여 내려온다·
내려와서·
내 정수리에 닿는다·
[이건 즈그 엄마도 암 걸려 죽을 듯 ㅋㅋㅋㅋ]
영상 최후반부는 수미상관식으로 다시 ‘제발부탁’ 클랜의 정원이 클로즈업된다·
다른 세명과 떨어져 있는 나는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내가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을 규칙적으로 깜빡거리며 한 명이라도 영상을 통해 내 구조신호를 알아주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깜빡 깜빡 깜빡
까암빠아악 까암빠아악 까암빠아악
깜빡 깜빡 깜빡
진짜 지옥 같은 세상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순 악질들밖에 없는 클랜원들···!!
참고로 주인공이 프로게이머를 하는 스토리는 일절 나오지 않습니다! 헌터 게이트도 없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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