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보는 법이 없다·
하지만 과연 어른들만 그런 것일까?
난 오늘 포x몬을 100마리나 잡았어·
난 가을이야기 계정에 100만원이나 질렀어·
난 레저넌스 시나리오 모드 100등 안에 들었어·
아이들도 숫자를 좋아한다·
특히나 서열은 그들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NoName의 이름을 단 유저는 사람들에게 제각기 다른 인상을 심어주었을지언정 단 하나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Season 2044: 3917판]
[Season 2045: 8392판]
[Season 2046: 8505판]
[Season 2047: 8469판]
[Season 2048: 8538판]
[Season 2049: 8150판]
[Season 2050: 4033판]
짧게는 20분 길게는 40~50분이 걸리는 게임을 하루에 23판씩 하루도 빠짐없이 돌려야 나오는 수치·
큰 숫자에는 경외심이 따르고 호기심을 동반한다·
도대체 누구일까·
누가 자신의 인생을 이까짓 게임에 갈아넣고 있는걸까?
누가 하루에 두세판만 해도 열불이 쏟아지는 게임을 누구는 자신의 삶인 것마냥 계속하여 즐기는걸까?
사람들은 그 광경을 목도한다·
“포지션은 어디로 갈래? 원하는 곳 있어?”
“빨리 게임을 끝내려면 어디가 좋아?”
“아무래도 지금은 바텀이 낫지· 내가 주포지션이 서폿이기도 하고·”
“그럼 원딜을 맡을게·”
시아는 열심히 지난 6개월간 변동한 패치내역을 확인하는 나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때?”
“뭐가?”
“마스터까지 자신 있어?”
시아는 그녀가 게임을 못한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적어도 브론즈 실력대는 아니겠지·
분명 그녀 스스로 캐리한 게임이 많았고 옛날에는 리플로도 자주 돌려보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를 데리고 일주일 안에 마스터까지 올려줄 수 있는가에 대한 자신감을 묻는 다면 시아는 자신감 있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오늘은 시즌 오픈 첫째날 그만큼 롤에 열정이 있는 수많은 게이머들이 향후 1년간의 포부를 다짐하는 시기였다·
그만큼 랭크는 혼잡하고 팀운이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만약 그가 같은 챌린저와 듀오를 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나메의 실력은 여전히 미지수·
“글쎄 말이야 게임이 적성은 아니라서·”
“그런 사람이 1년에 8천판을 박아?”
“그래도 자신은 있어·”
롤에서 쌀먹을 할 수 있는 컨텐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미스테리한 사람이다·
“언제까지 볼거야? 어차피 이 구간에서는 그렇게 세세하게 안 봐도 돼·”
무슨 논문 심사하는 교수님마냥 세부적인 상향 하향 변경 시스템과 수치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내가 못해서 지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그래·”
“뭐 그렇다면야···”
나메는 생각보다 게임을 진지하게 하는 주의였다·
그동안의 트롤짓을 일삼으며 브론즈 4와 브론즈 1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벌써 픽 네 차례야! 조합은 내가 너한테 맞출 테니까 빨리 골라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나메는 고민했다·
시아의 말대로 바텀의 영향력을 대폭 상승한 패치가 이번 시즌에 들어서서 많이 이루어지긴 했다·
하지만 모든 원거리 딜러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스테리아]
“아스테리아를 한다고? 그거 이번에 나온 신챔인데 할 수 있는 거 맞아? 승률도 지금 43%인데·”
“확실해· 서폿은 유미나 룰루로 해줘·”
유미와 룰루는 전형적인 아군 원거리 딜러 보조를 위한 픽이었다·
시아는 차라리 서폿으로도 강제캐리가 되는 룩시나 판테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일단은 첫판이니까 나메의 의견을 존중했다·
“게임 시작하면 네 목소리도 방송에 같이 나올거야· 유념해두고·”
“설아?”
“응 나 부른 거야? 왜 뭐 문제있어?”
“아니야 잘해보자·”
* * *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을 때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가끔은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예전에는 벌레를 별 거부감 없이 생으로도 먹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거미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이곤 했다·
이 죄책감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몸의 원주인이 따로 있고 그의 인생을 탈취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전생의 기억은 그대로지만 몸이 달라진 연유로 사고의 이질감이 죄책감의 형식으로 표출되는 걸까·
우리의 뇌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때문에 방어기제가 생기고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는다·
내가 처음 사람들에게 말을 제대로 못 걸었던 이유도 그랬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거치지 않는 뇌는 발전하지 않는다· 오로지 전생의 기억만으로 도출되는 지식은 절대로 깊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 생소한 경험을 익숙하다고 느껴버리니 거기에서부터 몸이 괴리감이 느끼는 것이다·
[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내가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랜만이네· 여기를 또 기어들어온 거야?’
“자 그럼 대망의 노네임씨와의 합방 컨텐츠 마스터 등반 시작할게요!”
‘그렇게 게임이 좋았어? 나는 너 때문에··· 매일매일··· 죽을 것만 같았는데···’
“자 가보자 노네임씨! 노네임씨? 나메야?”
‘죽어··· 그래 같이 죽는 거야! 원래 너는 7년 전에 나와 같이 죽었어야 했어! 그냥 이대로 숨을 멈추라고! 숨 쉬지 마!’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해하다만···
‘한번 더 그 숨을 내뱉으면 내 손으로 직접 네 목을 졸라버릴거야· 이 가증스러운 새끼· 죽어· 네가 그러고도 내 딸이야? 죽어·’
역시 저번에 아린이와 게임했을 때 본 헛것은 단순히 심신미약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미안 어서 가자·”
“리쉬할 시간은 없겠다· 바로 라인으로 가야겠네·”
“게임하면서 말을 못할 것 같아· 미안하지만 마이크는 끌게·”
“어?”
그녀와 그녀의 시청자들이 몹시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별 수 있나·
나는 시아와의 음성 채팅도 차단하였다· 이제는 오로지 전장의 나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그리고 또 하나·
“요즘 내가 엄마를 보러 통 안 갔었지· 정말 미안해· 교수님께 부탁해서 오늘 저녁에라도 당장 들릴게·”
‘넌 죽어야 해·’
“엄마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의 딸이면서 엄마의 딸이 아니야·”
‘죽어· 그냥 죽으라고·’
“설아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
‘···’
“하지만 설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건 내가 그만큼 설아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겠지· 맞아 설아와 함께 게임한 나날들이 그리워· 나는···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가진 나메는 그동안 혼자 씩씩하게 자라왔거든· 키도 2cm나 컸다?”
‘···’
“잘 모르겠어· 왜 나만 이런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걸까?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로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분명 있었지·”
‘그럼 죽으면 되잖아·’
“그럴 수 없는걸· 엄마도 분명 원할 거야· 난 우리들을 캡슐에 가둔 인간들을 찾아낼거야·”
‘넌 힘이 없어·’
“아니 나는 강해· 나 노나메는 에스타샤 라티아스 데 카이젠은 유낙원은 엄마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강해질 거거든· 꼭 복수해줄게·”
‘··· 게임에 지지나 마· 멍청이 같으니라고·’
조금은 분이 풀린걸까· 환청이 잦아들었다·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더블 킬]
‘아스테리아’·
올해 1월에 나온 신규 챔피언·
그녀는 셀레나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로 제국이 항성파괴자라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그녀의 가족들은 뜨거운 용광로에 산 채로 희생되었다·
아스테리아는 가족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 했지만 결국 그들이 융해되고 응축된 셀-코어만을 얻는데 그친다·
독특하고도 암울한 스토리를 가진 소녀·
그만큼 그녀의 딜 메커니즘은 다른 챔피언들과는 이질적이었다·
마치 새미라와 냐르를 합쳐놓은 듯한 컨셉·
아스테리아는 상대 적을 공격할 때마다 사거리가 늘어나고 물리 관통력이 증가하는 대신 방어력이 감소한다·
30% 60% 지점마다 빙의의 정도가 강해지며 그녀의 스킬들은 보조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러다가 100%가 되면 아스테리아는 사거리 500을 잃고 새로운 무기를 가지며 궁극기 ‘초신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극단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챔피언·
게다가 사거리가 원거리 딜러 중에서 가장 짧기 때문에 자칫 라인전이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한타 때에도 이동스킬의 잔여 횟수와 더불어 사거리 계산을 정확히 해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 역설적으로 상대 사거리 안에 들어가야 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상대가 논 타게팅 챔피언들이 많을 때 그 리스크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뀐다·
시아는 라인전이 강한 룰루를 제대로 활용했다·
이스리얼과 제레스의 강한 압박을 견뎌내고 적절한 쉴드 타이밍과 스킬 견제로 불리한 상성임에도 불구하고 체력 없이 서로 집을 안 가고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상대 정글은 탑에 있는 것이 확실시된 상황· 미드는 빨라도 합류하는데 16초 이상이 걸린다·
내가 상대 병사들을 타고 앞으로 이동스킬을 쓰자 이스리얼은 평타와 q 제레스는 e 스킬로 응수한다· 평타는 맞아주고 곧바로 예상했던 두 스킬을 피한다·
주도권은 내게로 넘어온 상황에서 내가 평타와 스킬을 섞어가며 공격을 했고 이들은 내 결투에 응해주었다·
그러다가 이스리얼이 사거리 우위를 점하기 위해 뒤로 비전이동을 쓰고 제레스가 나와 숲풀에서 몰래 다가온 시아 사이에서 고립되는 진형이 갖추어졌다·
제레스가 그제서야 뒷점멸과 q 스킬로 대응해보지만 내 강화된 장막에 반사되어 뒤의 이스리얼까지 대미지가 들어간다·
미드 합류까지 8초 모두 처리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은 시간이다·
아까 q 이동스킬로 상대 병사의 체력을 빼놓았는데 타이밍에 알맞게 선 6렙이 찍힌다· 남은 이동스킬은 단 1회· 현재 빙의도는 약 95%·
챔피언에게 타는 이동스킬은 빙의율을 5% 증가시키니 정말 알맞은 타이밍이었다·
높은 빙의율은 방어력을 포기하는 탓에 이미 스킬 한 대만 맞아도 죽을 체력이었지만 나는 곧바로 적들에게 쇄도했다·
곧바로 룰루의 급성장으로 상대 2명을 띄우고 나는 한턴을 벌어 아스테리아의 궁극기 ‘초신성’을 사용하였다·
장악한 지역 내에 별조각 10개가 흩뿌려지고 내가 그 조각을 모두 회수하기까지 단 1초만에 더블킬을 알리는 신호가 전장에 퍼졌다·
뒤늦게 상대 미드가 궁극기를 모두 사용한 내게 달려들어보았지만···
죽지 않는 선에서 딜교를 통해 다시 사거리를 채우고 아껴놓은 점멸로 거리를 벌려 카이팅을 한다·
[트리플 킬]
나는 지지 않아·
앞으로 더 강해질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님 20화까지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아가 평가하기로 나메의 플레이스타일은 철저한 계산에 따른 수싸움과 심리전 그리고 팀원들의 기량까지 고려한 역할분배에 있다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그냥 피지컬로 찍어누르는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