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7
세계 최대의 음향 전문 기업 야마하·
모든 종류의 악기는 물론이고 스피커 오디오 믹서 보컬로이드 오디오 코덱까지 음향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개발하는 기업이다·
가상현실 기술의 등장과 동시에 야마하는 발빠르게 시장 확장 전략을 세웠다·
바로 가상현실 악기 연주 시뮬레이션 ‘마에스트로’를 출시한 것·
악기가 없는 일반인들도 값싼 구독료만 지불하면 다양한 악기를 체험해볼 수 있었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의 악기 구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적 생태계를 구축하였다·
첫 출시 이후 팔다리 없이 태어난 한 남성이 마에스트로에 접속해 VR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기까지의 일화를 담은 광고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이러한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아낸 광고는 칸 라이언스 국제광고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최종적으로 야마하는 VR 음악산업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마에스트로 레볼루션(Yamaha Corp·)에 접속하시겠습니까?]
[Music for All· All for You·]
한국대학교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피수정·
그녀는 나메에게 가서 마에스트로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였다·
그에 대해 바크 학생들은 의문을 품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대학 후배들에게 마에스트로를 권하지 않는 사람이 피수정이다·
가상현실 아바타 체형에 적응해버리면 현실에서의 연주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피수정 교수가 이번만큼은 생각을 달리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나메가 자기 몸에 적응을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거든·”
“자기 몸에 적응을 못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가상현실 생활이 아주 오래된 친구라서 그런가?”
“아···”
곡 해석 자체는 완벽하다·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를 전부 꿰차고 있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아쉬웠던 부분이 만약 몸이 잘 안 따라줘서 그런 거라면 이 ‘마에스트로’는 훌륭한 보완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 이 게임 계정은 가지고 계세요?”
“어? 아 있지! 4인까지 공유돼서 나메도 내 파티에 포함시키면 될 거야·”
“4인이면 프리미엄 계정 아닌가···?”
그렇게 피수정 교수와 나메는 각각 캡슐에 들어가 마에스트로에 접속했다·
여느 오픈월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대기실·
아직 게임 아바타를 생성하지 않은 나메는 현실의 모습 그대로 소환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피수정 교수·
“···?”
나메 그리고 현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고 있을 학생들은 그녀의 아바타를 보고 모두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이 사람 아바타가 대단하다·
우아한 빅토리아풍 드레스가 피수정 교수의 등장과 함께 펄럭였다·
벨벳 소재로 만든 부피감 있는 스커트 부분과 고급진 자수 프릴 레이스 등의 디테일적인 장식이 드레스의 가치를 높였다·
몸의 라인을 부드럽게 감싸는 곡선의 디자인 허리에는 코르셋도 함께 착용한 듯 싶었다·
드레스의 상단 부분도 아름다운 진주와 자수가 빼곡히 놓여 있었고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점은 그녀의 머리카락이었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든 아주 새빨간 머리가 양갈래로 나뉘었고 심지어는 그게 하필 또 드릴머리라는 난감한 모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귀여우면서도 대담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마치 오늘이 사교계 첫 데뷔인 어린 귀족 영애의 모습과도 같았다·
“아··· 아냐! 이거 내 원래 아바타가 아니라 우리 딸이 만들어 준 거야! 진짜 아니라고 애들아!”
피수정 교수는 뒤늦게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아바타를 변경했다·
아쉽게도 여기 안에서는 현실세상이 보이지 않아서 학생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없었다·
아마 쿡쿡 웃어대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추측해볼 뿐이다·
평범하게 검은 머리와 검은 일자 드레스로 돌아온 교수는 카메라 앞에 서서 제자들에게 열심히 해명하느라 바빴다·
마침 그녀의 머리 위에 게임 닉네임이 눈에 띄었다·
[Bloody Crystal]
[Maestro / World Rank #113]
저런 중2병스러운 닉네임을 본다면 기껏 열심히 한 해명도 못 믿을 것 같은데···
“근데 월드 랭크는 뭐예요?”
“아 이거 말이니? 마에스트로는 다른 사람들이랑 연주로 대결할 수 있어·”
“그거 그냥··· 리듬게임 아니에요?”
“맞아! 리듬게임!”
“맞다고요?”
이게 왜 진짜임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음대 교수가 현실 악기 리듬게임을? 이건 양학이 아닌가?
“나메야 내가 하는 거 한번 잘 봐줄래?”
아공간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빠른 대전’이라고 적힌 게이트로 입장하는 피수정 아니 블러디 크리스탈씨·
오케스트라처럼 약간 둥글게 배치된 좌석에 8명이 모두 착석하며 곡이 시작되었다·
[A· Vivaldi 사계 협주곡 제2번 사단조 RV 315 여름 제3악장 프레스토]
[난이도: ★★★★★★]
* * *
마에스트로는 다른 온라인 게임에 비해서는 한국에서 한참 인기가 뒤떨어지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정적인 팬층도 있고 한국도 여전히 음악 강국이라는 일명 국위선양을 위해 인생을 갈아넣는 이들이 많았다·
게시글이 적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이 쉽게 묻히지도 않는 애매한 리젠율을 가진 마에스트로 갤러리에 오랜만에 빅뉴스가 떴다·
[마에스트로 갤러리]
[바이올린 빠대에 마에스트로 떴다요! 근데 한국 국적을 곁들인?][45]
(대기실 스크린샷·jpg)
빠른 대전 하고 있는데 마에스트로 떴길래 순간 내가 랭겜을 돌린 건가 싶었음·
근데 바로 옆에 활도 제대로 못 잡는 노비스 친구들 있는 거 보면 빠대가 맞긴 맞더라·
님들 봤음? 10초만에 5명 아웃되고 나 포함 3명이서 게임함ㅋㅋㅋㅋㅋ
그리고 결과창도 보셈·
(게임 결과 스크린샷·jpg)
[#1 Bloody Crystal: SS랭크 / 999038점 / 정확도 100%]
[#2 올리니가조아요: S랭크 / 772823점 / 정확도 95·58%]
[#3 나한테만지라이야: B랭크 / 481044점 / 정확도 81·47%]
이게 사람이냐? 기계지 엌ㅋㅋㅋㅋ
도대체 사계-여름 SS랭크는 어케 하는 거임? (진짜 모름)
뭔가 이렇게 만난 게 영광인 것 같아서 악수하러 갔는데 닉네임 옆에 태극기 있더라·
그래서 이 사람 찐 한국인임?
[댓글]
-말투 잼민이 같네 너 몇 살이냐?
└ (작성자): 님이 알아서 머하게요
└ (작성자): 15살임
└ 중3? 근데 사계 여름 S랭크라니 님도 개고수네요 ㄷㄷ
-겨우 로열 엑스퍼트인데 니 등급대에 마에스트로를 만나겠냐
-우리나라 레전드 바이올리니스트 피수정님이시잖아ㅋㅋㅋㅋㅋ 이걸 못 알아보네
└ (작성자): 네?
-마에스트로 다는 사람은 VR 콩쿠르 우승해야 돼서 프로일 확률 99%임 거의 예외 없음
-우리 블크님 이 똥망겜 안 접었구나ㅠㅠㅠ 역시 믿고 있었다구ㅠㅠㅠㅠㅠ
-리플레이 안 남겼냐? 저 정도 사람이면 원래 돈 내고 봐야하는데·
└ (작성자): 그렇게 대단한 분일줄 몰랐죠···
[재업) 옛날부터 쥬덱스인지 유덱스인지 빠는 놈들은 정말로 이해 안 갔음ㅋㅋㅋ][28]
(2046년 바이올린 월드랭킹 순위·jpg)
1년만에 메이저 콩쿠르 3개에 입상하시면서 한국 최초로 10위권 뚫은 블러디 센세ㅋㅋㅋ
반면 유덱스는 실력 다 뽀록나서 랭킹 100등 안인데도 아직도 마에스트로 못 달고 비르투오소죠?
판수로 찍어누르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애초에 이 바닥은 재능으로 먹고 사는 곳인데 아마추어가 그렇게 찬양받는 이유도 난 잘 모르겠다~ㅋ
[댓글]
-진짜 개오랜만에 보는 떡밥이누ㅋㅋㅋㅋㅋ 이게 5년 전 념글이냐?
└ 이 시절이 진짜 마에스트로 전성기였는데·
└ 아! 찬란하고도 아름다웠던 갈드컵의 추억이여!
└ 지긋지긋한 갈드컵이 그리워지다니··· 진짜 망겜 다 됐구나ㅋㅋ
-유덱스 얘는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네
└ 지금 한창 대학생일 나이 아님?
└ 그렇게 어렸다고?
-유갈들 진짜 재능 앞에서 오열하고 무너지는 게 개꿀잼이었는데
-이건 오히려 유덱스가 찬양받아야 할 부분이지··· 재능 없어도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건데···
└ 그래서 랭킹 98위 콩쿠르 예선 탈락?
└ 유갈들 아직도 안 죽었네ㅋㅋㅋㅋ 생존력 하나만큼은 바퀴벌레 인정
[유덱스가 누구임?]
이 씹덕 노래만 연주하는 새끼들 또 비씹덕 차별하네·
[댓글]
-닥눈삼 ^^
-유덱스 모르면 마갤을 왜 함?
-씹덕 노래 연주 안 할 거면 마에스트로를 대체 왜 함?
└ ㄹㅇㅋㅋ
└ ㄹㅇㅋㅋ 이번에 VY1V9 신곡 지리더라 꼭 들어보셈 ㅇㅇ
-유덱스가 누구냐면 인간기계 인간매크로 인간터미네이터 라고 불리는 사람임·
-하루에 하나씩 SS랭크 뜬 곡 올렸던 닝겐인데 정확도가 걍 말이 안 됨·
└ 나중에는 일주일에 하나 꼴로 백만점도 뜸· 초견의 천재임·
└ (작성자): 그러네? 프로필 보니까 SS랭크만 2000개가 넘네 개지린닼ㅋㅋ
└ (작성자): 근데 왜 아직까지 마에스트로를 못 달았음?
-일단 ㅈㄴ 개같이 연주함;;
-이게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아무튼 저같은 막귀가 들어도 차이가 꽤 심해요·
-말년에는 많이 나아졌어 그래도···
└ 뭘 말년이얔ㅋㅋㅋㅋ 잘 살고 있을 사람을 냅다 죽여버리네·
[똑똑 저기요··· 노네임 발견했어요오···][54]
오랜만에 블크님 등장하셔서 호들갑인건 인정하겠는데···
관객석에 계신 이분 노네임님 아닌가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줌아웃 화면·jpg)
[댓글]
-어그로ㄴ 노나메가 이딴 똥망겜을 왜 함?
-진짠데?
-누가 노네임인데? 저 금발머리?
└ 맞네 저거 월오아 아바타 아녀?
└ 월오아는 또 뭐고?
└ 아재요;;
-떠··· 떴냐? 떠··· 떴다!!!!!!!!!!
-블크 노네임이 동시에 온다고? 이러다가 유덱스도 돌아오겠넼ㅋㅋㅋ
└ 이 댓글은 곧 성지가 됩니다·
-마에스트로 붐은 온다! 아니 제발 와주세요···
-당장 음악 스트리머들 싹 다 불러!
└ 아ㅋㅋ 브이튜브각은 못 참지·
-언냐들··· 나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 * *
단니엘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셨던 부모님으로부터 지어진 이름이었다·
‘신은 나의 심판자’라는 의미를 가진 구약성경의 인물 다니엘에서 ‘심판자’만 따와 라틴어로 유덱스(jūdex)라는 닉네임을 지었다·
이제는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고 헛구역질을 하게 되는 ‘마에스트로’·
그녀가 부모님 다음으로 제일 싫어했던 인물은 단연코 ‘블러디 크리스탈’이었다·
단순히 칭찬받고픈 마음에 영상을 올리면 언제나 그녀와 비교질하는 못된 글이 올라왔다·
단니엘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실력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어렸을 당시에 정말 하늘 같았던 어머니보다도 더 뛰어난 연주자라고 생각했으니 완벽하게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팬들과 안티팬들이 쉴 새 없이 만드는 대립 구도에 어느새 단니엘도 동화되어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블크를 증오하는 감정을 품게 되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어린 날의 악몽으로 치부하고 잊고 살았을 무렵 그녀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블러디 크리스탈·
이름 그대로 피수정·
예전과 단 하나도 다를 것 없이 그녀는 빨간 드릴머리를 하고 있었다·
“니엘아 여기 왜 왔어? 괜찮아?”
니엘의 트라우마를 알아주는 몇몇 친구들이 다가와서 부축해주었다·
왜 몰랐을까·
태풍이 휘몰아치고 천둥이 울리며 우박이 내리는 듯한 표현 틀림없이 동일인물이었다·
“괜찮아···”
니엘은 조용히 구석에 앉아 교수와 나메가 노닥거리는 걸 구경하였다·
행복해보인다·
곡을 그저 정복하고 심판할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 자신과는 달리 피수정 교수는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게 부러웠다·
“나메는 무슨 곡 할 거야?”
“저는 아무거나 상관 없어요·”
“이왕이면 아는 게 낫지 않아? 네 브이튜브 계정하고 연동시키면 알고리즘 추천으로 랜덤곡이 재생되는데 그럼 그렇게 할까?”
“그런 기능도 있어요? 진짜 갓겜이네요·”
“하핳 갓겜이지 맞아! 나처럼 선택장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능이거든! 나메도 약간 그런쪽이구나!”
금발머리 여성의 아바타·
니엘도 예전에 티비에서 한두번 본 적이 있었지만 자세히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렇게나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구나···’
알고리즘이 추측한 나메의 취향이 반영된 곡은·
[나한테만지라이야: 님 이 곡 대체 뭐임?]
[연애 서큘레이션 (Cover – 카리리)]
[난이도: ★☆]
카리리의 커버송 ‘연애 서큘레이션’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열두안즈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카리리는 오늘도 고로시를 당하네요!!
익명의 후원자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탈모 치료제는 나메도 만들 수 있다고 장담 못하는 분야니까요··!!
노비스가 제일 낮은 등급이고 마에스트로는 VR에서 권위있는 대회에서 우승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타이틀입니다··!! 따라서 기계채점 50%에 심사위원 5~10명의 채점 50%로 순위가 매겨지는 거죠!!
한국대에도 울려퍼지는 카리리의 ‘연애 서큘레이션’··!! 역시 브이튜브 알고리즘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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