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나의 생일은 6월 11일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게 별 대수인가·
그냥 내 첫 가상현실 접속 기록날짜가 그 날이었으니 그렇게 정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빠를 수도 있겠지만 큰 차이는 아닐테지·
공교롭게도 내가 캡슐에서 구해진 날도 정확히 6월 11일· 즉 정확히 7년째 되는 해에 나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6월 11일이라는 날짜는 내 생일이기 때문에 각별한 것이 아니었다·
[노설아: 2022· 2· 21 ~ 2045· 6· 11·]
설아의 정확한 사망 일자를 추정할 수 없어서 나는 내 손으로나마 그녀의 혼이 떠나버린 날짜를 나의 생일로 맞추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녀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봉안당은 유골을 담은 항아리로 빼곡했다·
이곳에 안치된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들의 혼백은 가족의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을까? 아니면 죽음은 그 자체로서 종결인 것인가?
뭐 운이 좋지 않다면 어디 판타지 세계에서 환생이라도 하겠지·
나는 설아가 그저 영원의 안식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한참동안 서서 빌었던 것 같다·
“사진이 없네·”
다른 고인들을 모신 칸에는 재를 담은 항아리 외에도 꽃이나 가족사진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설아의 칸만 삭막하게 있는 것이 조금 안쓰러워졌다·
“다음에는 선물이라도 사올게·”
설아는 무엇을 좋아할까 생각하며 착잡한 마음으로 납골당을 나온다·
어느새 보름달이 중천에 걸려있다· 천규진 교수님이 차에서 내려 나를 반겨준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실거다· 이렇게 씩씩한 딸이니 말이야·”
“그러실까요·”
“아무렴·”
내가 설아를 만나보는 동안 천규진 교수는 근처 포장마차에 들려 호빵을 사왔는지 나에게 하나를 건넸다·
“뜨겁다· 호호 불어가면서 먹어라·”
“맛있네요· 저녁으로 때워도 되겠어요·”
“오늘 점심 안 시켜 먹었더구나·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거니?”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차에 타기 직전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게 들켰나?
“결제내역 확인 문자가 안 뜨더라고· 오류가 난 줄 싶었는데 역시 아무것도 안 먹었구나·”
“원래도 잘 안 먹었어요· 포션만 먹어도 배부르기도 하고·”
“이런 말 하면 너무 꼰대같다만 잘 챙겨먹어야 건강하게 잘 큰단다· 그나저나 네가 먹고 있는게 약이 아니라 포션이었니?”
“네 한번 맛보실래요?”
“포션은 종군마도사들만 마실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약국에서도 팔긴 하는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단숨에 들이키면···
“쿨럭! 쿨···럭! 흐윽 쿨럭쿨럭!”
포x리 스x트 치고는 조금 역할 수도 있을텐데·
주행 시스템이 인공지능이었어서 다행이지 30년 전이었으면 곧바로 대형 교통사고였다·
천규진 교수는 맥을 못 출 정도로 기침을 계속 토해냈고 아직도 혀에 그 기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잔기침을 이어나갔다·
“크흠··· 이런걸 쿨럭· 매일 마셔야 한다고?”
“교수님 너무 엄살이 심하세요·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역한건 맞지만 포션의 효능감 때문에 나름 기분이 고양되는 플러스 요인도 있었다·
뒷맛까지는 참기 어렵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상으로 천규진 교수는 격한 거부감을 드러내보였다·
“아무래도 더 좋은 포션을 구해봐야겠구나· 크흠· 큼·”
집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8시·
우리 둘 모두 저녁을 먹지 않았기에 우리들은 오는 길에 치킨집에 들려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다·
그는 접시 2개와 컵 2개를 식탁에 차리고 냉장고에서 정말로 시원해보이는 맥주를 한병을 꺼내왔다·
“저도 따라주세요·”
“응?”
“아 혹시 한국에는 술 먹는데 나이제한이 있었나요?”
혼자만 치사하게 컵에 따르길래 나도 한컵 부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쪽의 법이 가물가물하게 기억났다·
“혹시 예전에 술 마신 적 있니?”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물 말하는 거였어요·”
오랜만에 술 냄새를 맡으니까 먹고 싶어지네·
옛날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래도 지금은 눈 앞에 요염한 자태를 내뿜는 닭다리에 집중해야지·
“하루종일 심심하지는 않았고?”
“뭐 그냥저냥 잘 놀았어요· 제 방에 캡슐도 조금 쓰고· 교수님은 뭐 특별한 일 없었어요?”
“나야 우리 수업 대학생들 최종성적 사인하고 결산보고서 쓰는게 전부지· 틈틈이 우리 랩 애들 연구하는거 잘 돌아가나 봐주고·”
“치킨도 정말 맛있어요·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뭘 감사 인사를 다 하고··· 남세스럽게!”
왜 이런 음식은 전 세상에 없던 걸까·
역시 미식의 발전은 황실의 몰락과 부르주아의 부상이 필수불가결한 것일까하는 시답잖은 생각도 해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이젠 황실을 하루라도 일찍 몰락시켰어야 하는건데 말이야·
“나메야 혹시 전에 다니던 학교는 어땠니? 친구들이랑 이제 헤어지게 돼서 슬프지는 않아?”
“딱히 뭐···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는데 전학 가버리고 항상 혼자 다녔어요· 꼭 다녀야 하나요 학교?”
“아쉽게도 의무교육이란다· 혹시 나메가 괜찮다면 말이야· 나는 나메가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아카데미?”
아카데미가 무슨 말이지? 아카데미가 그냥 학교 아닌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천규진 교수는 한국의 아카데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일반 학교와 비교하자면 마법 특성화 학교라고 볼 수 있겠지· 너도 알겠지만 네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다양한 마법학을 배울 수가 없었지?”
“기껏해야 룬문자를 종이에 따라 쓰는게 전부였어요·”
“마법은 정말 돈이 많이 드는 학문이야·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각 마학 재단에서 설립한 학교들을 아카데미라고 따로 부르고 있어· 여기 강남쪽에는 세피론 재단에서 만든 세피론 아카데미가 제일 유명하지·”
“신기하네요· 그런 아카데미가 전국에 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는 총 8개가 있지·”
전생에서의 지식으로 따져보면 각 마탑에서 수도에 직접 아카데미를 건립한게 되나?
생각해보면 그 강대한 카이젠 제국도 예산 상의 이유로 아카데미를 2개밖에 세우지 못했다· 그것도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인재들로 항상 넘쳐났었지·
“뭐 꼭 가야하는 거라면··· 그래도 아카데미가 낫겠어요·”
적어도 아카데미 부지에서는 마법을 쓸 때마다 돈을 내지는 않겠지?
나중에 한번 검색해 봐야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게다가 나메가 보면 마법진을 그릴 때 조금 특이한 문법을 사용하잖아? 저번에 채점할 때 AI까지 돌렸는데도 일일이 번역하느라 정말 힘들었는데 아마 아카데미에 가면 국제표준 룬문법도 배울 수 있을 거란다·”
“사실 큰 상관은 없지만 전문서적을 읽으려면 확실히 숙지해야겠네요·”
“그렇지?”
“교수님도 아카데미에 다니셨나요?”
“나는 말이지···”
천교수는 잠시 먹다 만 치킨을 내려놓고 회상에 잠긴다·
“세피론 아카데미에 중등과정까지는 다녔었어· 하지만 별로 적성에 안 맞아서 아카데미에서 나와 일반고를 졸업했지·”
“적성에 안 맞는거 치고는 지금 한국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계시네요·”
“하하 그러게 말이다 사람 미래는 모르는 일이야·”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안 사실인데 한국대학교도 그 명칭에 국가 이름을 내세울만큼 한국에서는 가장 알아주는 교육 기관이었다·
천규진 교수는 거기서 나아가 마학대학 교무부학장과 이론연성연구소 소장까지 맡고 있으니 생각 외로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는게 실감이 났다·
“쿨럭! 케흠!”
지금이야 저렇게 닭목을 발라먹는데도 요란스럽기만 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래도 사람은 착했다·
‘아카데미··· 현대의 마법···’
모두 궁금증을 유발한다·
전생에서보다 고도로 발달한 마법학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과연 ‘마탑의 7난제’ 중에서 풀린 것들이 여기에도 있을까?
밥 먹고 마법진만 그리는 그 인간들도 정말 머리를 꽁꽁 싸맸는데 말이야·
나는 천규진 교수가 제안한 아카데미 입학이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면 뭘 해야돼?”
“응? 아카데미를 가려고? 야 정글 갱 온다 빼빼!”
“정확히는 편입하는거라는데 아무 준비도 필요 없다고 해서·”
지난 주 천규진 교수가 나에게 세피론 아카데미 입학을 권한 뒤로 나메는 한동안 아카데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잠시 시아와 나는 요새에 들어가서 한숨을 돌렸다·
“고등부 편입이 얼마나 빡센데! 특히 고등부라면 추천서하고 면접만 3번이나 거쳐야 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
“그럼 중등부나 초등부는?”
“뭐 조금 덜하겠지만 애초에 아카데미 편입은 추천서 없이는 안 돼· 네가 가려는 거야? 아니면 지인이?”
“몰라· 시아 우리 다이브 당한다· 상대 미드도 왔어·”
“응? 아니 이 타이밍에 4인 다이브를 한다고?”
-상대 다 저격이냐ㅋㅋㅋㅋㅋㅋ 팬미팅이 따로없네
-팬이에요 ^^
-본인은 아카데미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입시에서 다 떨어짐ㅠㅠㅠ
-요즘 아카무새들 ㅈㄴ 많네 일반고에서도 대학 잘만 보내는데
-아카데미 8개밖에 없는데 명문대는 과반수가 아카데미 출신이잖슴ㅇㅇ
[매니저: 어허 게임 방송인데 게임 얘기만 하세요]
-아니 쟤들이 먼저 얘기 꺼냈잖아
-(차단된 채팅입니다 – 600초)
-와 이걸 역으로 3명을 잡아버리네ㅋㅋㅋㅋ 8분만에 겜 터졌다
-노네임은 진짜 전설이다
-혜밤이는 서폿만하니까 진짜 현지인이라 해도 믿겠네 챌포스가 안 느껴짐
-요즘 메타에 서폿은 캐리가 안됌
-ㄴ됨 ㅂㅅ아
“후아· 진짜 순 미친놈들 아니야! 어지간히 떼를 부려야지 병사들도 없는데 생다이브를 쳐?”
“아무튼 편입은 추천서 말고는 준비할게 따로 없다는 거지?”
“어? 어··· 사실 요새 입시는 나도 잘 모르겠어서· 나도 아카데미 다녔었는데 3년 내내 편입생 한번도 못 봤고 말이야·”
[‘그그그웬’님이 5000원 후원!]
-혜밤님 아카데미 다녔어요? 왜 몰랐지?
“엥 몰랐어? 내가 한번도 안 말해줬나? 딱히 숨긴 적은 없었는데·”
-혜밤 명문대 여신 썰도 그럼 진짜임?
-이게 이렇게 재평가 된다고?
-혹시 군필여고생은 아니죠?
“아카데미 좋죠· 좋은데 너어어어무 힘들어· 시험기간에 하루에 6시간 자는 애들은 다 유급당해요 거짓말 안 하고· 전 대학 와서 더 편했어요·”
[‘미솔라시도’님이 3000원 후원!]
-대신 학점은··· 아하 여기까지
“죽을래?”
“이거 게임 끝났다·”
[트리플 킬]
시아는 뒤늦게 합류하여 그닥 치열하지도 않았던 전장을 둘러보았다·
“여기 다이아 마스터 구간 맞아? 티어 가리고 보면 무슨 골플구간에서 양학하는 줄 알겠네·”
나메도 그녀에게 동감하는 바였다·
상대 팀 모두 마스터라고 부르기에는 덜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다·
“아스테리아가 사기라서 그래·”
그래도 나메는 그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대변해주고는 싶었지만·
-상대 캘리 현재승률 76% 전 시즌 그마 812점 오열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숨도 못 쉬고 털리네 이게 챌린저의 품격?
-혜밤보다 그냥 노네임이 미친거임
-노네임 매드무비 때문에 아스테리아 승률 지금 41%까지 나락갔음ㅋㅋㅋㅋㅋ
-저게 똥챔이야 사기챔이야;;
결국 여론을 돌리기에는 무리였다·
“와 47연승은 살면서 처음해보네· 왜 지금까지 리오트가 듀오를 없앴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시아는 지난 전적들을 쭉 훑어보았다·
주로 저티어 스트리머를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부캐 ‘혜지면달이뜬다’는 어느덧 누런 옷을 벗어던지고 영롱한 다이아몬드Ⅰ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나메의 아이디는 이제 마스터 승급전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대롱헤롱’님이 100000원 후원!]
-마스터 무패 달성시 500000원!
“네? 50만원이요?”
당초 마스터 달성 시 후원 금액 50만원에 더해서 50만원을 추가로 주겠다는 큰손의 등장에 시아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처음부터 50만원을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굳이 후원을 따로 받을 이유가 없었던 흡?”
“야! 그런 말은 입밖으로 하는 거 아니야!”
시아가 나메의 입을 가로막으며 말을 끊었다·
“원래 승급전은 내일 하기로 했는데 음· 나메야 오늘 시간 돼?”
“2시간 정도는 더 할 수 있어·”
“2시간이면 승승승으로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좋아 나메야 오늘 마스터 가보는 거야!”
시아는 방제를 바꿨다· 그녀의 눈은 그 어느때보다도 결의에 차있었다·
[NoName-혜밤 무적의 전차 듀오: 마스터 승급전 _ _ _ _ _]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메는 43년생이고 시아는 48학번입니다·
하지만 언니라 안 부르고 이모라고 부른다면 시아가 분명 슬퍼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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