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5
배서진 교수는 자신의 강좌를 수강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암암리에 족보나 꿀팁 등이 선후배들 사이에서 전수되어 퀄리티가 크게 떨어지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이걸로 시간상의 이득을 보았으면 더욱 나은 산출물이 나와야만 했다·
그녀의 고민을 들은 나는 간단한 제안을 했다·
학생들이 만든 완드의 단점들을 낱낱이 까발려줄 테니까 학생들과 대련을 할 기회만 만들어달라고·
머리가 똑똑한 사람답게 배 교수도 꾀를 부렸다·
완드의 시범평가를 내게 넘기고 대신 대련의 기회를 주어 성적을 만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배서진 교수는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성적을 잘 줄 생각이었지만 학생들의 위기감을 고취시킴으로써 평생 잊지 못할 수업을 선사할 셈이었다·
악랄한 발상이 역시 교수답다·
영문도 모른 채 C와 D 폭격을 받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학생들은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는 희소식에 완드를 수리하고 보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메 뭐해요?”
“증인이 필요해서요· 가뜩이나 고위직 자제분들 많으신데 나중에 보복하려고 들면 큰일나잖아요·”
“에이 애들인데 뭔 보복까지야! 걱정 안 해도 돼요· 다들 착해 착해·”
음대생들보다 더욱 금수저인 친구들이 이론마법학과 학생들이다·
전생에도 내게 대련을 청하는 이들은 많았는데 내게 패배를 당한 이들은 분풀이로 뭐 공작이니 백작이니 가문까지 총동원해 언제나 주변을 헤집곤 했다·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다·
[NoName]
[Just Chatting – 한국대 도장깨기]
[방송 시간 – 0:02:39]
[시청자 수 – 4910]
그나저나 방송도 방송대로 문제이다·
게임 말고는 마땅한 컨텐츠가 없어 시청자들을 보기도 애매했다·
나는 언제나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즉석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스트리머들을 보면 가끔 그 능력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점점 방송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곡성을 내는 것도 안쓰러웠다·
심심하니까 방송을 켜야겠다· 그런데 방송을 할 소재가 없네· 나중으로 미뤄야지·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맞물린 의식의 흐름이 지금까지 쭉 이어져온 것이다·
“가위 바위 보에서 무조건 이기는 방법은 뭘까요?”
-방송 켜고 첫마디가 가위바위보ㅋㅋㅋㅋㅋ
-너무 어지러워요
-여긴 어디야 나메야?
-나 너무 추워··· 나메 없는 세상은 얼어붙었어···
-선생님 제발 생방 끄지 말아주세요ㅠㅠㅠ 선생님 제발 생방 끄지 말아주세요ㅠㅠㅠ
-어? 여기 우리 학교 체육관인데?
-한국대? 저 사람들은 누고?
-그래서 이기는 방법이 뭔데!!!!! 알려주고 가!!!!!
“음··· 여기가 어디냐면 한국대 김웅첨단체육관이라는 곳이에요· 김웅이라는 분께서 150억을 기부하셔서 지어진 최첨단 시설이죠· 벽면과 천장 그리고 바닥에는 전부 방마나 처리가 되어 있고·”
-그래서 가위바위보를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냐고!!!!!
-‘가위바위’ 할 때 미리 가위내고 있다가 ‘보!’할 때 보자기내면 심리상으로 무조건 이김·
└ 너 천재냐?
└ 그러네 상대는 본능적으로 주먹이 내지네ㅋㅋㅋ
-선생님 요즘 한국대에서 자주 보이는 것 같아요!
-설마 진짜 입학이라도 한 거임?
“말해도 상관없나? 입학 그런 건 아니고 한국대 홍보대사로 오늘 막 뽑혔어요· 되게 뜬금없긴 한데 저보고 홍보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셔서 이렇게 다양한 수업을 체험해보고 있습니다·”
아직 저쪽은 준비가 덜 됐나?
긴급수복 스크롤로 멋지게 완드를 치켜든 남학생은 곧바로 다른 여학생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갔다·
보완할 게 많은데 먼저 나서면 어떡하냐고 잔소리가 아무튼 심했다·
역시 이론마법학과 학생들답게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몸에 배어있었다·
[‘한화가을야구기원’님이 1000원 후원!]
-헉···! 그럼 저 사람들 다 이법과 학생들인가요?
“그렇죠· 복수전공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과는 다 같아요·”
-캬
-한국대 이론마법학과 ㄷㄷㄷㄷ
-졸업하자마자 초봉 1억을 보장해주는 학과가 있다?
-근데 한국대 홍보 웨핢?
└ ㄹㅇㅋㅋ
└ 아 우리가 한국대를 몰라서 안 갔던 거냐고ㅋㅋㅋㅋㅋ
-우와 한국대가 이런 학교였군요!!! 꼭 한번 원서 넣어봐야겠습니다!!!
-우리 킹갓트수들은 지금까지 몰라서 안 간 거긴 하지 ㄹㅇㅋㅋ
-다들 ㅈㄴ 똑똑해보인다
└ 칭찬임 욕임?
└ 당연히 욕이지
-아카데미 1황들 ㄷㄷㄷㄷㄷ
“아 곧 시작하려나보네요· 시청자 여러분들이 심판이에요· 잘 지켜봐주세요·”
한 팀이 납땜 비스무리한 작업을 마치고 교수에게 가서 최종 컨펌을 받고 있었다·
-???
-아니 뭘 하려는 건데!
-제발 설명해주고 뭘 해줘·ㅋㅋㅋㅋㅋ
-저번처럼 막 산 타면서 구렁이 잡지나 말고!
└ 그거 천연기념물이었다매?
-나메나메야 네가 뭘할지 나 벌써부터 너무 두려워···
-선생님 제발 자중하십시오·
└ 선생님(아장아장)
└ 선생님(뚜방뚜방)
-진짜 너무 귀엽다 노나메··· 너란 여자···
└ 미친놈·· 미친놈···
“여러분은 마법대련을 아시나요? 몸에 방벽 두르고 싸우는·”
-ㅔ
-그걸 모르면 간첩이죠·
-그러고보니 올해 아카데미 대항전도 얼마 안 남았네
└ 10월인데 한참 남았지···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지 나메나메야?
-나도 마법만 쓸 줄 알았어도ㅠㅠㅠㅠㅠ
-방벽 있어도 누가 내 얼굴에 주먹 휘두르면 개무서움·
-요즘은 물방/마방 몇 대 몇으로 만드나?
└ 아니 님아 그건 게임 용어고요ㅋㅋㅋㅋㅋㅋㅋ
└ ㅋㅋ 되게 직관적이긴 하네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
└ 한 3:7?
└ 세상 많이 좋아졌네 나 때는 1:9라서 주먹으로만 싸웠어야 했는데
└ 1:9면 마법이 아예 안 통하겠네ㅋㅋㅋㅋㅋ 진짜 야만의 시대에 살았냐?
“일단 룰은 간단해요· 완드의 구조와 이해 수업의 일환으로 언니 오빠들이 각자 완드를 만들었어요· 각 조의 대표는 그걸 가지고 저와 마법 대련을 할 거예요·”
[‘2D는 생명이다’님이 10000원 후원!]
-나메나메야 그건 말이 안 된다· 한국대 이법과를 그것도 마법 대련을 무슨 수로 이길 건데ㅋㅋㅋ
-저 중에 무조건 아카데미 대항전 우승자 있다에 내 300렙 월오아 계정 걺·
-ㄹㅇ 한명 한명이 최소 자기 아카데미 대표였을 텐데ㅋㅋㅋㅋ·
-님들 대항전이 머에여?
└ 이것도 모르면 대체 얼마나 잼민이라는 거냐?
-그럼 나메는 뭘로 싸워요?
“공통룰은 2서클 이하 마법만 사용하기로 했고 뭐 당연하지만 완드를 평가하는 수업이니만큼 핸즈프리(완드만을 사용하는) 대련이니까 시전은 손이 아니라 완드로만 하기로 했어요·”
사실 저 장난감 완드만 써서 대련하는 것도 이미 상당한 페널티를 안고 시작하는 거다·
“제 완드가 좀 좋은 거다 보니까 벌써 제가 많이 유리하긴 한데··· 뭐 굳이 저쪽에서 핸디캡을 준다고 하네요· 직접타격도 일절 안 하겠다고 했고·”
그럼 남은 방법은 오러를 둘러 주먹다짐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건데 이조차도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내쪽이 크게 유리했다·
“제 완드요? 이거예요 한번도 안 보여드렸나·”
천교수가 생일선물로 사준 스위스제 간이 연성진 작성기·
3천만원을 호가하는 매우 값비싼 제품이다·
내가 방송 카메라 앞에 꺼내보이자 채팅의 물살이 두 배는 빨라졌다·
-헉···!
-딱 봐도 명품 아님?
-아 템빨이면 인정이지ㅋㅋㅋ
-근데 수업 겨우 두 달 듣고 완드를 만들어낸다는 게 사람이냐?
└ 이래서 한국대 이법과 이법과 하는 거지·
멀리서 헤벌레하고 날 바라보는 이들도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확실히 어린이가 쓰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제품이긴 하지·
키즈 에디션이 자주 나오는 대중적 명품 오메가나 롤렉스와는 달리 이건 전문가용에 가까운 제품이다·
특히 ‘회상’ 시리즈는 편의성을 줄인 대신 보조기능이 다양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가정파괴자엄준용’님이 1000원 후원!]
-개미쳤다 IWC 샤프하우젠 ㄷㄷ 근데 누가 사줬어요?
[‘공룡 정글’님이 3000원 후원!]
-혹시 스위스에서 사준 거 아님···?
-????????
-스위스가 갑자기 왜 나와·
-님 위대한 세대 기밀문서 모름?
-헉헉ㅎㄱ헣겋거헉허겋거
-벌써 밑작업 준비한 거야?
-근데 진짜 신빙성 있는데···
-아니 한국은 대체 뭐하고 있어!
-저거 공짜로 받으면 나라도 스위스로 가겠다ㅋㅋㅋㅋㅋ
-설마 가는 거 아니지? 아니지? 계속 아시아 서버에 남아줄 거지?
“아 이제 준비 끝나서 시작해도 된다네요· 그럼 시합 재밌게 즐겨주세요·”
[‘아득바득까득이득’님이 20000원 후원!]
-누구한테 받았는지 알려주고 가! 아니 알려주세요 선생님!
* * *
강북의 알테어 아카데미 차석 졸업 ‘신연호’·
중등부 시절 세피론 아카데미와 치렀던 아카데미 대항전을 우승시킨 장본인·
그는 학업성적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부모와 선생의 권유로 진로를 이론마법학과로 전향하였다·
하지만 대련의 꿈을 버리지 못해 결국 전국체술대회에 몰래 참여하게 되었고 고등부 2학년임에도 선배들을 짓누르고 8강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해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출전한 대회에서 무려 8강이다·
마법을 다루는 재능은 물론이고 철학과 학생들 상대로도 오러 활용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니 일대일 대련에서만큼은 이론마법학과 내에서도 최강 소리를 들었다·
교수가 평가 방법을 완드를 활용한 대련으로 바꾸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웃음지은 건 신연호였다·
‘역시 꼬맹이 너도 나랑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구나·’
치열한 수 싸움이 펼쳐지는 대련에서밖에 느낄 수 없는 즐거움과 황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기들이 안타까웠다·
비록 같은 아카데미 출신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한국대에 입학할 아이의 선배로서 대련이 뭔지 제대로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개인방송을 켜기 전까지는 말이다·
“핸즈프리 말고는 그럼 완전 프리룰로 하시는 거죠? 캐스팅 자유 직접 타격 자유·”
“야!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어!”
여자· 초등학생· 8살· 테러 피해자·
그리고 국가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아이·
수천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체 누가 그녀에게 주먹을 휘두를 수 있을까?
“왜요?”
나메가 전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니 신연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너만 프리룰로 해· 난 이 완드만 써서 공격할 테니까·”
“저한테 주먹 써도 진짜 상관 없는데·”
“나메야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날 여기서 매장시킬 생각인 거야?”
주먹은 무슨 어깨를 내빼는 시늉이라도 했다간 바로 다음 날 언론에서 대서특필 될 것이 뻔했다·
신연호의 머릿속에서 기레기들의 기깔난 제목이 몇몇 떠올랐다·
‘8살 아이에게 진심전력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한국대 학생· 성적만 좋으면 한국대 프리패스?’
‘엘리트들의 인성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OO클랜 자녀들의 겁 없는 행패 계속 이어져·’
주먹보다 펜이 더 강한 시대이니만큼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나메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셨다·
교수가 강당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대련 룰을 설명하는 동안 나메와 연호는 몸에 방벽을 두르기 위해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기실은 강당보다는 깜깜했다·
밝은 LED 형광등 대신 은은한 빨간색 조명이 이들을 맞이해주었다·
방 중앙에는 성인 몸집만 한 커다란 수정구가 안치되어 있었다·
때로는 투명한 다이아몬드 같기도 하고 때로는 붉은색 빛깔을 띠는 것 같기도 한 수정구에 두 사람이 양쪽에서 오른손을 갖다 대었다·
[Access Approved: 이론마법학과 배서진 교수]
[평균출력: 5000kE]
[소립자 : 마립자 = 2 : 8]
천천히 고밀도 에너지가 몸을 휘감는 동안 나메는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하였다·
그런 귀여운 모습이 괜히 기특해 보였던 연호가 웃으며 말했다·
“나메 학년에서는 누가 제일 세? 혹시 나메가 일짱인 거야?”
“네?”
“대련 말이야· 학년 대련 순위가 나오잖아·”
“세피론 아카데미는 4학년부터 대련 수업이 있어요·”
나메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별 감정이 실리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 너 그러면 오늘 대련이 완전 처음이야?”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어요·”
“야! 너 어쩌려고 그래! 이거 방벽 이론도 모르면 이따가 싸울 때 어떻게 하려고···!”
몸집이 작아 방벽 주입이 먼저 끝난 나메는 손목과 발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풀어주고 있었다·
무슨 싸움에 미친 학생인 줄만 알았더니 사실 오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싸우는 거랜다·
신연호는 기가 차서 뒷목을 붙잡았다·
그런 신연호를 바라보는 나메의 눈은 더없이 싸늘했다·
“제 방송 안 봤나 보네요· 구독이라도 했으면 살살 해드릴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안 했겠죠?”
한번이라도 그녀의 월오아 방송을 시청했다면 신연호 같은 반응이 나올 수 없었다·
“그럼 완드가 잘 작동되기를 바랄게요·”
나메가 먼저 대기실을 나섰다·
대기실의 붉은 조명 때문일까 길게 늘어진 소녀의 그림자가 검붉은 빛으로 불길하게 일렁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래님 5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인생픽에 선정해주셨다니 너무너무 영광이고 앞으로도 재밌는 이야기로 쭉 보답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점점 다가오는 알테어 아카데미와의 대항전··!! 나메의 활약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익명의 후원자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나메나메가 또 치트키를 써버렸네요!! 시청자들 관전은 반칙이지!!
이제 대학생들은 가불기에 걸렸습니다· 학점을 잘 받고 싶으면 나메의 방벽을 깨뜨려야 하지만 수천명의 삼촌 이모 팬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대련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
적당히 봐주면 아마 나메가 화낼 거고 인정사정 없이 해버리면 순식간에 매장당하겠네요·
참고로 여기는 철학과가 취업이 잘 되는 세계입니다· 오러의 존재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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