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0
연어 덮밥이냐 큐브스테이크 덮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서 둘 다 시켰다·
“나메야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
입 안 가득 음식물들을 계속 쑤셔 넣으니까 겨우 현기증이 가셨다·
토실토실한 연어 뱃살이 혀에 찰싹 달라붙었다·
든든한 지방으로부터 느껴지는 포만감에 식욕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
근데 간장을 너무 많이 넣었나 혀에 짭조름함이 가시지 않아 추가로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더 넣었다·
지금 내 두 볼은 다람쥐처럼 빵빵해져 있겠지만 남의 시선이 대수인가·
마지막으로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시며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러를 꼭 한 가지 방식으로만 다루리라는 법은 없어요·”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역도부 부원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현재는 기분이 살짝 고양된 상태이니 직접 가르침을 하사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극단적으로 말해서 구 소련의 고위층들도 낮에는 공산주의 밤에는 자본주의였잖아요? 비유하자면 대충 그런 거죠· 두 명제가 이율배반적이지만 않다면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나가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에요·”
이건 너무 어려웠나?
하긴 평생동안 오러 하나를 똑바로 못 다뤄서 온갖 사유와 사고실험을 해대는데 두 종류 이상의 오러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조절하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인 듯싶었다·
마지막으로 연어 한 점과 고기 스테이크 한 점을 동시에 입에 넣어 식사를 마무리했다·
아쉽지만 밥은 많이 남겼다· 내 위장이 작아서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반소월이 가진 의문에도 답해주었다·
“또 가볍지만 무거운 것이 뭐가 있을까요· 바로 대출이에요· 당장의 주머니는 무겁지만 잔고는 한없이 가볍죠·”
“대출?”
“제가 마지막에 보여드린 오러는 체내의 ‘칼로리’를 소진하여 짧은 시간 안에 극단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요· 물질과 달리 마나나 오러는 음에서도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음의 칼로리’를 설정하면 가까운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다 쓸 수도 있죠·”
물론 에리시톤의 원리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체계적으로 규율되어 있다·
현상 그 자체로 태어난 것이 스스로 사고를 하고 인격을 가질 만큼 드래곤의 머리가 아니고서야 상상하기도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오러의 힘을 과학적으로 소명하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시장경제에 간단한 경제모형을 도입하듯 인간은 오러를 철학적으로 다룸으로써 더욱 정밀한 내적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뭐든지 의심해보세요· 그래야 뭐라도 정의할 수 있어요·”
그렇게 철학과 학생들에게 오래 생각할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모두가 떠난 와중에도 반소월은 눈을 감고 계속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확실히 침식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도저히 그녀를 힘으로 이길 수가 없었다·
반소월은 어지간한 성국의 신부들보다도 마음이 고요하고 진중했다·
내가 약한 건지 그녀가 강한 건지·
저 아이는 이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불편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 어느 정도 눈치 챈 반소월에게 물었다·
“평소에 공부는 어떻게 하세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걸 최대한 외우거나 녹음을 하지· 그리고 수업내용은 대필 도우미가 작성해서 건네준 걸 바탕으로 가상현실에서 복습하고·”
“아 가상현실이 있었구나· 그래도 같은 수업을 두 번이나 되돌려보려면 힘들겠어요·”
“힘든가? 아냐 재밌어· 근데 다음 학기부터는 21학점을 들어야 하는데 아직 4과목은 사람이 안 구해져서 조금 곤란한 참이야·”
대필 도우미?
혹시 이건 신연호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까?
“소월 언니를 도와줄 사람을 한 명 알고 있긴 한데 그분한테 한번 부탁드려볼까요?”
이로써 난 빚은 다 갚았다·
그런데 반소월이 예쁘긴 해도 참 재미없고 금욕적인 수도승 같던데 그의 사랑이 성공할지는 앞으로 두고봐야 알 것 같았다·
* * *
오늘까지가 세피론 재단 사람들이 주최한 교수들과의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에밀리 마야코브스키가 500mL 생수와 간식거리를 각 자리에 세팅할 동안 로버트 퓰러 박사가 내게 츄파츕스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의 입에는 이미 똑같은 사탕이 하나 물려 있었다· 아마 담배 대용인 것 같다·
“혹시 노나메양은 외계인이라도 되는 건가요?”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하하하하·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참으로 아쉽네요· 저희랑 같이 미국으로 갔으면 정말 좋을 텐데·”
“배려해주신 덕분에 저도 꽤나 재밌었어요·”
“그래요?”
언제 또 이렇게 석학들과 토의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는가·
어쩌다보니 재롱잔치로 변질될 때가 더 많았지만 가끔씩 서로 말이 통하는 분야가 나왔을 때 이렇게나 즐거울 수가 없다·
“그런데 노나메양· 저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왜 계속 한국에 계시려는 거죠?”
“네?”
“한국의 문화를 폄훼하려는 건 아니지만 전문인력들의 처우에 있어서는 꽤나 박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한국의 정치인들은 비아카데미 출신이 많고 마치 30년 전 일본처럼 세습정치를 지향하고 있으니 미래를 찾아보기가 힘들더군요·”
로버트 퓰러는 무덤덤하게 그리고 신랄하게 한국을 까기 시작했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세계적으로 보아도 우수합니다· 특히나 맨파워는 세계 제일을 다툴 수준이니 이는 저희 재단이 한국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그작-
로버트는 어금니로 사탕을 씹어 산산조각 냈다·
마치 과자를 먹듯 몇 번 우물대다가 목으로 꿀떡 삼켜버린다·
“하지만 우수한 인력은 정부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니 클랜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클랜들은 우수한 인력을 오로지 돈벌이에만 활용하고 있으니 저희는 이 생태계가 썩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사님은 한국에 대해 정말 잘 아시는 것처럼 얘기하시네요·”
“저희 외할머니께서 한국 분이셨죠· 나메양 안타까운 말씀을 하나 드리자면 한국 정부는 발푸르기스의 행적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을 겁니다· 뭐··· 보수당 중에서도 아웃사이더 격인 이조원 대통령은 조금 생각이 다를지 몰라도 그의 측근들까지 변하리라는 법은 없죠·”
“그게 무슨 소리죠?”
“남한에서의 UN군 합동훈련을 가장 적극적으로 거부한 게 다름 아닌 한국이었으니까요· 이상한 일이지 않나요? 한국의 ‘집권여당’이 UN군 주둔을 반대하는 ‘야당’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도 모자라서 더 적극적으로 ‘옹호’하다니요· 이건 저희 재단 사람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입니다만 발푸르기스가 한국정부와도 모종의 커넥션이 있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요· 그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퓰러 박사의 위아래를 훑었다·
“원하시는 게 뭐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셨으면 하네요·”
“나메양은 진짜 어른보다도 어른 같아서 신기해요· 세피론 재단은 노나메양의 재능을 인정해 향후 20년간 정식으로 재단 본부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가 자신의 명함을 내게 넘겼다·
전자명함인 모양인지 내가 받자마자 얇은 종이에서 모래시계 로고가 중앙에 뜨더니 그의 인적사항이 좌르륵 나열되었다·
“이미 저희 내부에서는 만장일치로 통과된 사안이에요· 나메양이 이 명함에 싸인만 해주면 자동으로 승인이 날 거랍니다·”
“본부의 일원이라 하면 김용성 실장님도 거기에 포함된 건가요?”
일단 담임선생님인 재클린 캐롤은 세피론 소속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카데미 출신으로 본부가 채용한 입장이지 파견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가 미소를 빙그레 띄우며 답했다·
“누가 일원인지까지는 함부로 밝히면 안 되는 게 관례라서· 나메양이 들어온다면 기꺼이 알려드리죠·”
태도는 호의적이다·
그는 내게 환심을 사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재단의 정보력을 과시하였다· 발푸르기스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 때문이겠지·
다시보니 로버트 퓰러 이 사람은 학자라기보다는 사업가의 특징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역시 관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건가·
내가 계속 고민하는 스탠스를 취하니 그가 추가로 말했다·
“세상은 돈으로만 움직이지 않아요 노나메양· 돈은 그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뿐입니다· 한국인들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죠· 당장 주는 월급 성과급만 보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나메양이 그러한 관점에서 탈피하라고 저희 세피론 재단은 나메양에게 충분한 재화를 지불할 용의도 있습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수중에 먹고살기 충분한 재화가 들어오면 인간은 더 높은 가치와 목표를 설정해 나아가는 법이다·
“하지만 적을 텐데요·”
“적지 않습니다· 1년에 원화로 40억· 20년간 당연히 세후입니다· 수학 잘하니까 계산할 수 있잖아요 800억·”
800억원은 무슨· 물가상승률 5%로 계산했을 때 현재가치 49848841371원이다· 어디서 약을 팔려고·
이 사람들도 스위스가 내게 얼마까지 제시했는지는 전혀 모르나보구나·
“됐어요·”
“나메양? 이건 대단한 조건입니다· 심지어 겸업 허용 조항까지 달려있으니 절대로 적은 금액이 아니라고요!”
“알아요·”
맞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라온 클랜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파트너 마법사들도 연 세후수입 200억을 넘기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재단의 정보력도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가 겨우 500억원 가지고 자본주의에서 탈피하니마니 한다는 게 우스울 뿐이다·
부국 카이젠의 농노 1가구의 연수입이 대략 200실버 골드로 계산하면 3골드이니 현 시세로는 250만원 언저리로 기억한다·
히아센이 나를 회유하기 위해 대체 얼마까지 제시했더라?
[2년이야 에스타샤· 이 제국의 미래를 자그마치 2년 동안 파는 거라고! 그래도 부족해?]
대략 카이젠 황실의 2년 예산이었으니까 단순계산으로 해봐도 1800만 골드· 15조원이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화나네? 무슨 제국 전체를 들먹이는 것처럼 말하더니 겨우 황실에 한정된 예산이었잖아·
어쨌거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건 정말로 싫어한다·
로버트 퓰러씨에게도 좋은 인상만을 가지고 살고 싶으니 이 얘기는 앞으로 자제해달라고 해야겠다·
“저의 재능을 높이 사는 점은 정말로 감사드리지만 아직은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학업에만 집중하고 싶어서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어투네요· 혹시 금액이 부족했으면 제가 직접 재단 예산과에 가서 말해보겠습니다·”
박사도 은근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럼 어디 한번 이 자리에서 당장 전화를 걸어보세요· 제가 원하는 조건은 20년 연금 같은 조건이 아니라 일시불로 5000억원입니다·”
“농담해?”
마지막에 번역 마법이 수명이 다했는지 ‘are you kidding me’라는 유창한 미국식 발음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농담하기는·
7서클 마법 두세번 쓰면 다 날아갈 금액이구만·
로버트 퓰러의 이런 모습은 또 예산에 일희일비하는 학자답다·
“박사님! 노나메양! 저희들 준비 다 끝났습니다!”
단상쪽에서 에밀리의 외침이 메아리치며 들려왔다·
“좋은 부하직원을 두셨네요·”
상사가 옆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훈수나 두고 있는데 말이야·
슬라브계 장신 미녀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따라 사람이 많네요?”
“마지막 날이니만큼 박사님께서 아예 일반인들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거든요· 나메양도 괜찮죠?”
로버트 퓰러 박사의 정치적 속셈이 뻔히 보였다·
미리 세피론 재단으로 오도록 회유한 다음에 공개적으로 나를 채갔다는 소식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가 필사적으로 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저야 상관없죠· 너무 시끄럽게 구는 사람만 없다면야·”
“제가 다 처리해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그녀가 한쪽 발을 들며 허공에 휙휙 뻗었다·
처음 봤을 때는 로봇처럼 딱딱하게 굴던 에밀리도 몇 번 만나다 보니 유한 모습을 보였다·
“싸움 잘하세요?”
“저 무에타이 6단이거든요·”
“아하·”
이 사람한테는 절대로 대들면 안 되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규일님 2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후원금 나메의 크레페로 대체되었습니다··!!
여자 하나를 얻기 위해 15조를 태우는 히아센 그는 대체··!!
500억이면 카이젠 제국에서는 겨우 자작이나 백작 가문의 1년 수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귀족들은 대체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다루다보니 나메가 돈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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