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4
5월 초 어른들의 사정으로 월오아의 스토리가 전면 개편되면서 아델라라는 인물은 더 이상 게임 속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한 때 플레이어의 직업에 따라 가장 어울리는 무기를 다루게 되는 특수한 NPC·
하지만 그녀의 정체성만큼은 뼛속까지 도적이었다·
월오아가 한 달 동안 영업정지를 당했을 무렵 아델라는 도적을 핍박하는 악랄한 무리들에 맞서 변호사 역할을 자처해왔다·
주로 커뮤니티에서·
[Adella: 넌 뒤졌다· 월오아 서버 열리면 바로 캐삭빵 뜨자니까?]
[돚거는죄악이야: 네 다음 다딱이ㅋㅋㅋㅋ]
[Adella: 니도 다딱이잖아·]
[돚거는죄악이야: 난 탑레 마스터 200점인데? 풉킥풉킥!]
[Adella: 아오 얼법시치!]
“끄아아아아아아앙! 대체 언제 열리는 거야 이 망할 게임은!”
삭제된 NPC 아델라와 똑같은 커스터마이징으로 유명세를 얻은 ‘Adella’·
그 안에 있는 사람마저 실제 아델라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현재는 사이버 워리어로 몰락해버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뿐이었다·
“네가 과거에 무슨 영광이 있었다고·”
프라이빗 룸 소파에 누워 있던 나메가 조용히 일침을 가했다·
그러더니 아델라가 온갖 짜증을 얼굴에 다 담아내고는 바닥에 누워 팔다리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도적 좋단 말이야! 도적 진짜 좋다고! 왜 아무도 안 믿어주는데!”
“내가 믿어줄게·”
“와 이 영혼없는 공감 봐· 언니는 완전 T야·”
“그런가보지·”
“우씨!”
아델라는 자신의 앙탈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내는 나메가 더욱 미웠다·
문득 그녀가 새치름하게 나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래서 말인데· 언니도 재미없는 힐러 하지 말고 나랑 같이 도적 계정 하나 새로 파서 듀오 돌리자· 어차피 스토리는 하루면 다 깨잖아? 종결캐 만드는 거 일도 아닐 거 아냐·”
“힐러가 더 승률이 좋은데 굳이?”
“아아 도적끼고 방송해주랑! 도적의 위대함을 알려달라고· 언니 시청자들도 엄청 많잖아·”
“그럴 거면 네가 방송 해·”
“하 진짜 짜증나!”
오늘도 심드렁한 얼굴로 마법서적을 탐독하고 있는 나메·
그녀를 향해 아델라가 까슬까슬한 고양이 혀를 베에- 하고 내밀었다·
“맞다 아델라·”
“으엇··· 왜?”
나메가 책을 덮고 몸을 일으키자 아델라가 서둘러 혀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너 방송해볼 생각 없어?”
* * *
“흐음···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데뷔는 무리야·”
“왜! 대체 왜!”
벌꿀오소리의 통보에 아델라는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인공지능 자체를 방송인으로 내세운 채널은 이미 많잖아· 근데 문제될 게 있어?”
이미 인공지능은 사람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인간의 말에 대응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에 가끔 사회적 신념과는 동떨어진 말을 할 때가 많았다·
대부분의 인공지능 방송 컨텐츠는 이러한 요소를 재미거리로 삼았다·
“일단 제일 큰 문제는 저작권이지· 아무리 웨어소프트가 나메한테 모든 권리를 이양했다고 말해도 NPC가 회수당했다는 걸 보면 처음부터 지분이 여럿으로 나뉘어져 있을 가능성이 커·”
“ASI 제작사를 말하는 거면 난 어겨도 딱히 상관없다고 보는데·”
어차피 불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저작권은 무슨· 오히려 그쪽에서 찾아와주면 좋다·
하지만 카리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디자인도 문제야· 델라는 현재 아바타 그대로 가져가고 싶은 거 맞지?”
“응· 다른 몸은 절대로 사양이야·”
“그러면 최소한 아바타 디자인을 수주한 회사에게 따로 찾아가서 영리적 목적의 사용허가를 받아야 해·”
카리리는 과거 무료 배포 모델의 출처를 표기하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했다가 영리적 목적 사용이 금지된 아바타라는 사실이 밝혀져 시청자들에게 봉변을 당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잘못을 거듭하지 않기 위해 확실한 절차를 밟을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소되었을 때 아델라의 방송 데뷔는 환영한다는 입장이었다·
“인공지능 버튜버는 많지만· 델라의 케이스는 확실히 특별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엄청 유명하기도 하고· 게다가 최초의 강인공지능이니까·”
“난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몇 번을 말해! 나메 언니가 얘한테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델라가 눈을 퍼뜩이며 나를 닦달했다·
“윤슬 언니· 저게 인공지능처럼 보여?”
“응?”
“인공지능은 저렇게 안 멍청해· 아델라는 진짜 사람이 맞아·”
“아오···! 이 세상엔 내 편이 정말 하나도 없네!”
“근데 아델라의 디자인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알아?”
“그거야 뻔하지·”
갑자기 카리리가 아델라에게 척척 걸어가더니 그녀의 가슴팍을 밀쳐 소파에 눕혔다·
“뭐냥···?”
아델라의 손과 발을 번갈아가면서 들어본다·
순식간에 동물병원에 끌려간 고양이처럼 아델라는 뒤늦게 반항의 의미로 꼬리털이라도 곤두세워보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카리리는 마지막으로 아델라의 혀까지 억지로 잡아 꺼내고는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이런 세세한 디테일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거든·”
결국 아델라가 기겁하여 소파 뒤로 몸을 날렸다·
“독일의 아티리얼·”
“아티··· 뭐?”
소파 뒤에서 쥐죽은 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리리의 설명이 이어졌다·
독일의 제약회사 베링거인겔하임 직원들 넷이 사내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만든 가상현실 아바타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결국 회사는 유능한 직원 넷을 잃었다·
그들은 직접 ‘아티리얼’이라는 회사를 차리기에 이르렀고 고급 아바타 제작 의뢰만을 받는 기업으로 변모하였다·
다만 아티리얼에 아바타를 의뢰하는 절차는 매우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21세기임에도 직접 방문 외에는 일절 주문을 받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큰 인지도를 쌓은 유명인들에게만 작업물을 허락했다·
지금은 주문이 너무 밀려 신규 고객을 받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그럼 어떡해? 나 방송 못해?”
“무슨 소리야· 사회적으로 큰 인지도를 쌓은 유명인이 여기 있잖아· 엣헴···!”
카리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언니 그 벌꿀오소리 아바타도 아티리얼에서 주문한 거였어?”
“당연한 말씀· 험난한 버튜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의 투자는 기본이라고·”
아델라가 고개를 휙 돌려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대충 아무나 손님으로 받아주나보다·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을 차별하면 욕 먹지·”
“응 동감이야·”
“너희들 진짜 너무하네···”
침울해진 카리리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선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차피 잘 됐어· 사파리 드림 1기생 아바타를 주문하기 위해 독일에 가려던 참이었거든·”
“그래 잘 됐네· 그럼 난 이제 할 일은 다 한 거다?”
카리리에게 받은 어처구니 없는 미션도 어찌저찌 해결했다·
그녀에게서 별말이 더 나오지 않는 거 보면 단니엘하고도 잘 이야기가 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아델라라는 워낙 독특한 캐릭터에 밀려서 잘 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니엘 언니는 아직 자신을 다 내려놓지 못해서 조금 더 정신개조가 필요하지만··· 아마 이번 독일로 전지훈련을 갔다 오면 괜찮아질 거야·”
“니엘 언니도 데려가는구나· 근데 무슨 전지훈련씩이나?”
“그래서 아델라와 나메의 역할이 매우 커·”
“꼭 나도 가는 것처럼 말한다?”
“나메도 당연히 가야지! 그럼 안 갈 생각이었어? 네가 아델라 보호자잖아·”
독일에 간다고?
이세계에 가본적은 있어도 해외여행은 무리다·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힘들지만 고국 땅을 떠난다는 심리적 저항감이 왠지 모르게 작용했다·
“나메 너 꼭 가야 돼! 디자이너분께서 네 아바타를 보고 싶다고 데려오면 할인해준다고 했단 말이야!”
“이게 본심이었구만?”
천교수님 얘기를 꺼내며 에둘러 거절하기로 했다·
“이번 달에 천교수님이 마력발전소에 출장을 가시거든· 따지고 보면 윤슬 언니도 아직은 미성년자고 니엘 언니도 겨우 열아홉인데· 절대 허락해주시지 않을 거야·”
이때 나는 이걸 변명으로 삼으면 안 됐었던 것 같다·
* * *
샤넬 컬렉션의 울 트위드 재킷 전체적인 올블랙 패션과 대비되는 백발의 여성은 저 멀리서부터 검은색 하이부츠를 또각거리며 다가왔다·
어쩌다가 이런 여행에 동참하게 된 걸까·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나메도 안녕? 여름 방학은 잘 보내고 있어요? 가끔 인터넷에서 근황은 확인했는데·”
“네 뭐 그럭저럭·”
천교수에게 독일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는 어디로 전화를 돌리더니 너무나도 쉽게 승낙을 해주었다·
당연히 우리끼리만 보내는 건 아니고 다른 믿을만한 보호자를 구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대상이 구온유 교장이라니·
둘이 대체 무슨 관계인 건지·
“해외여행은 처음이에요?”
“아 네· 처음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전생에서는 국경 넘기를 밥 먹듯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전생의 경험일 뿐이니까·
8월의 공항은 여러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출구쪽에는 아예 몇몇 기자들과 사람들이 빽빽하게 몰려있었는데 아마도 입국하는 연예인을 기다리는 듯싶었다·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안내데스크에는 벌써부터 하와이 바닷가 패션 차림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도 보였다·
촌스러운 분홍색 꽃무늬 셔츠에 파란색 땡땡이 반바지 머리에는 밀짚모자까지 쓰고 있다· 튜브까지 있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근데 이 사람 왠지 낯이 익었다·
“단니엘···?”
“어! 나메야 안뇽!”
니엘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그 패션은 뭐야?”
“나메야말로 그 옷차림은 뭐야? 너 사장님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
“사장님?”
카리리를 말하는 거면 오늘 평범하게 입고 왔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윤슬이 단니엘을 보더니 볼을 부풀리고 입을 막았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는 모습이다·
“니엘 언니! 너무 예쁘게 하고 왔다!”
“잠깐만 왜···! 설마 나 속은 거야?”
“나메야 이제 다 모였으니까 빨리 출국심사 하러 갈까?”
도대체 어떤 말로 구슬리면 저런 옷을 입힐 수 있는 걸까·
윤슬은 수치심에 맥을 못 추리는 단니엘의 손목을 끌고 갔다·
결국 면세점에서 윤슬이 니엘에게 새 옷을 사주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이코노미석 네자리를 끊은 우리들은 운이 좋게도 비행기 가장 맨 앞 중앙에 앉을 수 있었다·
구온유 교장이 내 오른쪽에 앉았고 왼쪽으로는 차례대로 윤슬과 니엘이 짐을 내려놓았다·
내가 몸집이 작은 편인데도 좌석이 그리 넓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독일까지의 장거리 비행이니만큼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두 소녀들은 기대감 때문에 그런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특히나 윤슬이 니엘에게 계속 장난을 걸며 친해지려는 노력을 보였다·
툭툭-
좌석 뒤에서 작은 노크가 느껴졌다·
내가 의자를 잘못 기울인 게 문제가 되었나 싶어 좌석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헛! 와악! 그··· 노나메···!”
“네 안녕하세요·”
“헐 대박! 나메님 저 팬이에요! 브이튜브 잘 보고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출국장에서 보안요원 말고는 딱히 아는 체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렇게 또 시청자를 만나게 되네·
“그런데 독일로는 왜 가는 거예요···? 설마! 탈조선?”
“오빠 그게 애한테 지금 할 소리야!”
갑자기 옆의 부인이 남성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다·
“그건 아니고· 여행 같은 거예요·”
“와아아 너무 귀엽다···! 독일 가서도 많은 영상 부탁할게요! 저희가 요즘 나메님 영상 보는 맛으로 살거든요·”
“조금 쑥스럽네요· 감사드립니다·”
“혹시 나메님은 인스타 같은 SNS는 안 해요? 요즘 영상 안 올라와서 사진이라도 봤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SNS요? 하지는 않는데··· 생각은 해볼게요·”
안전벨트를 메고 비행기가 이륙했다·
창문으로 땅이 점점 멀어지는 풍경을 보면서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 해졌다·
객실 승무원들이 곧바로 점심 기내식을 준비해주는 모습에 살짝 놀라기도 했다·
나 혼자만 오믈렛 스파게티와 함박 스테이크 나머지는 비빔밥과 불고기였다· 이상하게도 내 입맛은 한식보다는 양식쪽이었다·
아까 대화를 엿들은 윤슬이 물었다·
“나메는 인스타 안 해?”
“계정만 있고 하지는 않아·”
“그럼 한번 사진 찍어서 올려봐! 사람들이 분명 좋아해줄 걸? 얼굴 나오는 게 부담스러우면 음식 사진이라도 찍는 게 어때?”
“굳이?”
“아아 모처럼 추억이잖아· 내가 좋아요 눌러줄게·”
결국 윤슬의 권유에 못 이겨 폰을 살짝 기울여 사진을 찍었다·
니엘과 윤슬 그리고 나의 기내식이 어설프게 담겼다·
“그냥 이대로 업로드 해?”
“그럼 너무 허전하지 않아? 짧게 감상 한 줄이라도·”
“그냥 기내식인데 감상이 느껴질 게 있나?”
심지어 아직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NoNaMe_11]
(기내식 사진·jpg)
[비빔밥보다는 스파게티가 맛있어 보였어요·]
“자 이제 먹어도 되지?”
“웅! 맛있게 먹어!”
밥 먹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사진부터 찍는 게 어느새 대한민국의 관례가 되었다·
아무튼 요즘 아이들의 문화는 너무 어렵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파게티 >>> 비빔밥· 허걱··!!
여담이지만 백호찬이 집을 일찍 구해서 민우와 아린이는 잘 들어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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