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8
“맞네! 바이올린 연주로 유명한 친구!”
남자가 손뼉을 짝 마주치며 말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야 맥키 너 이제까지 못 알아본 거야? 얘도 틱톡 유명인이잖아!”
카메라맨은 내게 틱톡 어플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좋아요 1500만 개로 저번 달에 주간 영상 1위까지 오른 바이올린 소녀! 맥키 너도 다른 사람 영상 좀 챙겨봐라· 명색이 틱톡커인데 같은 동업자도 못 알아보면 어떡하냐?”
“틱톡에 동업자가 어딨어·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
갑자기 말문이 막힌 맥키는 나를 바라보더니 황급히 주장을 바꿨다·
“아아 맞지 동업자지! 하하··· 우리가 정말 미안했다· 원래 그렇게 심하게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우리 경호원들이 너무 의욕이 앞섰나봐· 이만 가자 펠릭스·”
“어딜 가? 너 연락처는 받아놓고-”
“잔말 말고 빨리 가자고! 함께해서 더러웠고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꼬마야!”
“이게 아까부터 보자보자 하니까!”
“나메야 참아! 좋게좋게 끝났잖아!”
윤슬이 내 겨드랑이를 붙잡아버리는 바람에 나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다리를 휘저을 수밖에 없었다·
경박하기 짝이 없는 남성 둘이 경찰서를 도망치듯 빠져나갔고 결국 사건은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이 독일이라는 나라는 진짜 정이 다 떨어질대로 떨어지네·
나는 마지막 남은 사탕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화를 삭혔다·
“얘들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온유 교장이 도착했다·
경찰서 유리문이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란스러운 등장이었다·
“교장 선생님· 사건은 다 해결되었다고 하니까 이제 가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온유 교장은 무릎을 살짝 꿇어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눈알을 옆으로 굴렸다·
“교장 선생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어디 다친 데 없어서···”
이윽고 연로한 여성의 손이 내 등을 천천히 그리고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방금까지 있었던 가시 돋친 감정들이 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다치긴요· 그래서야 세피론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볼 수 없죠·”
그래도 명색이 교장이라고 학생들을 걱정하는 모습도 보여주네?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그녀의 품에 내 머리를 기대었다·
먼 외국 땅에 와서 그런지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나날이다·
* * *
프랑크푸르트 구도심 중심부에 위치한 뢰머 광장은 관광객들이 자주 들리는 명소이다·
특히나 오늘과 같이 좋은 날씨에는 누구나 셀카봉 하나쯤은 필수로 지참하고 다니기 마련·
그런데 광장 주변을 둘러싸는 목조 건물과 바닥에 혈흔이 묻어있었다·
방금 막 도착한 일본인 관광객 일행들은 섬찟한 광경에 주민들에게 물었다·
“아노··· 이거 정말 사람 피입니까?”
“묻지도 말게나! 쬐깐한 꼬마가 주먹을 휘두르더니 사람 넷을 아작냈다네!”
“그렇습니까? 대낮에 독일 이 한복판에서?”
“정말이야! 내가 영상도 찍어놨어!”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POLIZEI’(경찰) 문구가 새겨진 조끼 입은 경찰들이 환경미화원을 대동해 거리를 청소했다·
마법진 몇 개가 바닥을 훑고 지나가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마냥 깔끔한 거리로 재탄생되었다·
방금 여행객들에게 친절히 답변을 해준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광장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저··· 저놈이야! 보이나? 저 꼬마가 그랬어!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여기에 돌아온 거지···!”
그가 가리킨 곳에는 정장차림을 한 할아버지들이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며 버스킹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사람이 워낙 많이 모여있었기에 일본인 소녀는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아이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카츠하타 양· 저희는 갈 길이 바쁩니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다음 비행기를 놓칠 지도 몰라요·”
이들에게 프랑크푸르트는 그저 경유지일 뿐이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광장쪽을 바라보던 소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일행에 합류했다·
그동안 공연장에서는 곡 하나가 끝나고 나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른 한 소녀가 짧은 다리로 인파 사이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오늘도 평소와 같은 로우 트윈테일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노나메였다·
연주자들이 팁 상자 대용으로 바닥에 엎어놓은 바이올린 케이스에 그녀는 쥐고 있던 동전을 짜르르 투하했다·
“정말 고마워요 천사 아가씨!”
보기만해도 흐뭇해지는 광경이다·
연주자들과 관람객 가릴 것 없이 아빠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혹시 저도 연주해봐도 되나요?”
“아가씨는 바이올린 연주할 줄도 알아? 몇 살인데?”
“여덟 살이요·”
“허허! 자 여기 한번 잡아볼래?”
“네네·”
엉거주춤하게 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나메는 아주 편안하고 능숙하게 자세를 잡아보았다·
“오?”
손가락으로 미리 현을 짚어보거나 활을 쥐는 자세에서 상당한 내공이 느껴졌다·
“일행이 있는데 혹시 그녀도 같이 연주해볼 수 있을까요?”
“일행? 어우 좋지! 바이올린 하나 더 필요해?”
“아뇨· 한 명은 가상현실에서 연주할 거라서요·”
“가상현실?”
* * *
단니엘은 미리 인근 PC방에 들러서 가상현실에 접속 중이었다·
나는 독일에도 PC방이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놀라움을 표했지만 윤슬은 당연하다는 뉘앙스로 설명해주었다·
하기야 모든 집에서 부피가 큰 캡슐을 구매할 수 없는 노릇이지·
게다가 헬멧 형태의 구식 캡슐로는 성에 안 차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PC방이 들어서는 것도 자본주의의 순리에 따라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홀로그램 송출기로 바닥에서 아바타 하나가 형체를 드러냈다·
앞으로 니엘이 활동할 아바타 ‘유덱스’의 밑바탕이 될 임시 모델이었다·
“아가씨들은 어디서 왔나요?”
“저희 한국에서 왔어요· 남한에서요·”
“오 남한! 남한에서 오신 천사님들이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신다고 합니다! 다들 큰 박수 주세요!”
성대한 환영에 니엘의 볼이 붉어졌다·
설윤슬과 구온유 교장이 가까운 곳에서 우리들을 응원했다·
“캡슐 별로 안 무서워하네 니엘 언니?”
“세상에는 폐쇄공포증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 근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이거 너무 부끄러운데···”
“이제 시작이야 니엘 언니·”
카리리의 아메리칸 드림 아니지 ‘사파리 드림’의 계획은 데뷔 이전부터 시작이었다·
왜 소속사들이 데뷔하기도 전인 연습생들을 데리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인지도에 있었다·
[시작이 반이야· 다시 말해 시작부터 반을 먹고 들어가지 않으면 실패한 거라구!]
카리리는 전직 아이돌 연습생답게 데뷔는 시작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 꼭 성공시켜야 할 이벤트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버튜버가 있다면 사람들은 생방송 다시보기 외에는 보고 즐길거리가 없다·
즉 데뷔 이전부터 미리 컨텐츠를 만들어놓아 착실하게 인지도를 쌓아가는 플랜은 내가 보기에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 나도 같이 해야 돼?]
[전문용어로 낙수효과!]
[뭐래··· 그냥 나한테 빨대 꽂는 거잖아·]
[아아 한번만 나메야! 이번 순회공연까지만 어울려주라 나랑 약속했잖아!]
그렇게 나는 현실에서 단니엘은 가상현실에서·
유럽 각 도시를 순회하며 바이올린 버스킹 공연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
스위스의 취리히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짧은 여행은 막을 내렸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윤슬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모습을 담아낸 영상을 확인했다·
모든 연주회에서 첫 곡은 언제나 ‘아리랑’으로 시작했다·
“제목은 뭘로 할까? 외국 버스킹에서 대한민국 띵곡 아리랑을 연주한다면? 어때? 그래도 조금 약한가?”
역시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답다· 국뽕이 뭔지 아는 여자구나·
가볍게 그녀를 무시한 뒤 나는 수면안대를 끼고 일단 잠부터 청하기로 했다·
돌아올 때는 구교장님이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줘서 훨씬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이제 한동안은 집에만 처박혀서 꼼짝 않고 있어야겠다·
이렇게 힘든 유럽 여행은 한번으로는 족했다·
* * *
[야 니들은 백억 준다고 하면 한국 떠날 거임?]
-백억은 무슨 백만원만 줘도 떠난다 이 개같은 나라
-사실 지금도 떠나고 싶은데 비행기표 살 돈도 없음ㅠㅠㅠㅠ
-백억 받고 한국 떠나기 vs 그냥 살기
└ 그러고보니 밸런스 게임이 한참은 잘못됐는데요?ㅋㅋㅋㅋ
└ 한국이 무슨 살기 좋은 나라인 줄 아나 프레이밍 오지네
-개부럽다 누구는 돈도 받고 스위스 시민권도 준다는데···
└ 누구?
└ 노나메 모르냐? 지금 이민 가기 1초 전이잖아·
└ 걔가 갑자기 이민을 왜 가?
└ 스위스가 백억 불렀음· 다른 나라는 오죽하겠냐?
[스타포착)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노나메]
[ThesePatch=강화령기자] 한국 발푸르기스 박멸 작전의 유일한 생존자 ‘노나메’가 8월 2일 오후 인천시 중구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하고 있다·
일주일 전 나메의 출국사진과 함께 보도된 인터넷 기사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소식을 전한 기자는 처음에는 댓글로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연예인도 아닌 애매한 일반인이 비행기에 탄 걸 굳이 기사를 통해 알아야겠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윽고 나메가 스위스로부터 제안받은 금액이 적게는 100억 많게는 300억으로 추정한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바로 상황은 반전되었다·
언제나 돈과 관련된 이야기는 좋은 말이든 싫은 말이든 주목을 받는 법이었다·
겨우 8살 꼬마 아이가 백억의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니꼬워 하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대기업 임원들이 연에 5억을 벌고 전문직들도 최상위 레벨이 연에 몇십억 벌까 말까 하는데 8살한테 100억? 장난하냐 진짜ㅋㅋㅋㅋ 박탈감 들어서 인생 못 살겠네·]
-그럼 너도 8살 때 난제 증명해봐·
└ 증명되려면 아직도 1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며· 전부 다 사기치는 한통속이라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 한국대 교수들을 사기꾼 취급ㅋㅋㅋㅋ 하긴 방구석 워리어가 무슨 말을 못하겠어·
-받을만하다고 생각하는 거랑 별개로 허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냐? 내가 평생 죽어라 일해도 100억 절대로 못 벌 것 같은데···
└ 2222
└ 333 나메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비참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음·
대중들의 관심에 힘입어 그녀의 근황을 전하는 채널들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시사 브이튜버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의 목격담을 긁어 모아 영상을 제작하였으며 그녀가 유럽 방방곳곳을 쏘아다니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니 그저께까지 스위스에 있었다며ㅋㅋㅋ 언제 오스트리아까지 갔음?]
-잘츠부르크도 어제고 지금은 베네치아다 게이야ㅋㅋㅋ
└ 노나메! 결국 파스타의 고향까지 갔구나!
-진짜 이탈리아랑 뭔가 있는 건가?
└ 이탈리아 경제위기라면서· 걔네들이 돈이 어디 있다고 그래·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아닐 거고 이탈리아는 아직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니면 이미 이민 절차는 끝나고 지급받은 돈으로 유럽여행을 다니는 게 아니냐 하는 추측마저 나돌고 있을 때·
카리리와 노네임의 브이튜브 채널에서 동시에 영상이 올라왔다·
설윤슬이 야심차게 기획한 국뽕 가득한 영상이다·
유럽 한복판에서 바이올린을 든 두 소녀가 아리랑과 k-pop을 연주하고 있었다·
실제로 현장에 있었던 소수의 유럽 팬들이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아주었고 이에 뒤따라 알고리즘을 통해 찾아온 충성스러운 미국과 동남아시아 k-pop 팬들이 환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영상 말미에 나메가 한국행 비행기에서 곯아 떨어진 5초짜리 쿠키영상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베스트 댓글]
-왜 다시 돌아왔어? [좋아요: 6·8천회]
전에 ‘왜 진짜 떠나?’로 베스트 댓글을 먹은 사람과 동일인물이 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백억 원이다·
나메가 한국을 버리고 떠나도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을 터·
그런데 그녀는 보란 듯이 유럽에 찾아가 한국을 알리는 노래를 연주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태를 보고선 몇몇 사람들이 조용히 외쳤다·
-진짜 애국자다·
그 외침은 잔잔한 호수의 첫 번째 물결이 되어 대한민국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00억 받고 탈조선하기 vs 그냥 살기’
어쩌다보니 나메가 애국자 취급을 받게 되어버렸네요!!
스토리가 조금 질질 끌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이제 슬슬 3부의 메인 스토리로 접어들어보려 합니다!! 10화 정도로 계획했던 분량이 33화까지 올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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