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2
시대마다 형태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대한민국에 교육 열풍이 꺼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40년대 중반부터 공교육이 쇠퇴하고 기껏 때려잡은 사교육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의 부름에 응답한 ‘천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은 예전의 코너진행 방식을 답습하여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와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옛날도 지금도 PD와 작가들은 언제나 천재에 목말라 있었다·
생활의 달인이 소재의 고갈로 언제부턴가 맛집 탐방 코너로 노선을 변경했듯이 천재발굴단도 자신들의 코너 이름을 덕후발굴단이라고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평범한 아이들을 과대포장하는 기술만 나날이 쌓여갔다·
“이번엔 달라· 특별편으로 두 개 묶어서 편성해놓은 거 위에 결재까지 다 맡았으니까 무를 수도 없어· 너희들 가서 절대 사고치면 안 된다?”
1년에 몇 번 없다는 진짜 천재를 촬영하는 날이 막내 PD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천재발굴단의 CP(Chief Producer)로부터 최대한 많은 영상 소스를 긁어오라는 명을 받았다·
하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만큼 촬영현장에는 언제나 많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아이가 촬영에 잘 협조해주지 않는 건 다반사고 가끔 부모가 갑자기 말을 바꾸어 취재를 거부한 적도 없지 않았다·
더불어 방송이 조금이라도 잘못 나가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사람도 보았으니 언제나 첫 만남은 긴장되는 법이었다·
“제목은 정했어? 박여름 PD 작명센스 좀 볼까?”
가장 막내 PD에게 에피소드 제목을 짓게 하는 게 천재발굴단의 관례였다·
젊은 사람들의 번뜩이는 창의력이 더욱 대중들에게 와닿을 수 있기 때문·
하필 처음으로 맡은 방송이 노나메라니 그녀는 콩닥거리는 심장을 잠재우고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원조 천재소녀 함초롱의 환생· 독학으로 수학 난제를 해결한 노나메양 어때요?”
“무난무난하긴 한데··· 특별편 치고는 살짝 밋밋해· 정말 네가 지은 거 맞아? 120대1 경쟁률 뚫고 들어온 애가 겨우 이 정도면 약간 실망인데?”
“어··· 그게···”
그녀가 눈동자를 힐끔힐끔 옆으로 굴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선배가 당황한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응? 설마 네가 대신 지어줬어?”
“아니 박여름 PD가 지은 건 공중파에 그대로 내보내기에는 너무 아닌 것 같아서요···”
“왜 그걸 네가 판단해? 원래 제목은 뭐였는데?”
“진짜 말해요···?”
막내 PD의 동공이 사정없이 떨린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자기도 말하기 민망한지 개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곤댔다·
“스위···”
“잘 안 들리는데 조금만 크게 말해줄래?”
“스위스 정부가 전전긍긍하고 독일 총리가 후회하는 1000억짜리 코리안 슈퍼 천재 노나메양··· 이요·”
“어헉!”
“풉!”
“하하하핳 근데 왜 천억이야? 백억 아니었어?”
“올림하면 천억이니까?”
“반올림이 아니라?”
“원래 올림이 국룰이에요·”
“그냥 1조라고 하지 그러니···”
“와아··· 요즘 애들은 다른 의미로 대단한데? 너 PD하기 전에 무슨 국뽕티비 운영하다 왔니?”
“네에···”
“네에?”
“그냥 쪼오끔···! 그렇다고 제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건 아니고요! 돈 좀 짭짤하게 만지고 싶어서···”
막내의 당돌한 고백에 선배들의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제작진들은 나메의 집 앞까지 도착했다·
만나기로 한 시각이 다가왔지만 오전 9시는 다소 이른 시각일 수 있어 미리 전화를 했다·
“예예예 아 예 감사합니다· 아 예 그럼 촬영팀 오면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오늘 날씨도 야외촬영은 글렀다·
대신 첫 번째 날이니만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평소 그녀의 일상들을 촬영하는 식으로 평범하게 진행할 계획이었다·
“준비 다 끝났어? 가자·”
“잠시만!”
우산을 펴고 차에서 내리려는 작가와 PD를 만류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애 앞에서는 언제나 입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말하기 전에 두세 번 아니 열 번은 생각하고 말해·”
과거의 아픔이 있는 아이이다·
자칫 잘못해서 트라우마라도 건드렸다가는 일이 정말 커질 수도 있다·
제작진들이 다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파트로 향했다·
* * *
똑똑똑-
“안녕하세요 저희 ZBS 천재발굴단에서 왔는데요! 여기 수학 난제를 증명했던 친구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혹시 노나메 양이 맞나요?”
“너무 멘트가 작위적이에요· 이러면 시청자들이 믿고 볼 수 있겠어요?”
“어?”
문틈으로 얼굴을 빼꼼 내민 나메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시간 전 제작진들은 미리 방과 거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앞으로의 촬영일정에 대해 천교수와 나메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우르르 밖에서 나가 처음 만나는 것처럼 연기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PD의 어색한 인사는 아무래도 나메의 성에 차지 않은 듯 싶었다·
“그리고 보통 문이 열리기도 전에 고개부터 숙이지는 않죠· 이러면 마치 제가 문을 열어줄 거라는 사실을 다 아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하하··· 그런가? 그럼 다시 할 테니까 언니들에게 한번만 기회를 더 줄래?”
“그냥 진행하시면 안 될까요? 들어오세요·”
천교수가 서재에 들어가서 다른 PD들과 인터뷰를 하는 사이 막내PD를 포함한 제작진들은 나메와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메는 별말 없이 거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해외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를 꼬아서 다른 다리에 올려놓는 모습까지 전형적인 사회에 찌든 어른의 모습이 아이에게서 튀어나와 귀여움을 연출했다·
“지금 영어 뉴스 나오는 것도 다 알아들어?”
“네· 미국에서 부채한도를 상향하여 추가 차입을 하는 안건이 통과되지 않으면 50조 달러 규모의 디폴트가 발생할 거라네요· 이는 영국의 모기지 금리 상승과 실업률 악화 전 세계적인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거라는 추측까지·”
“우와 대박!”
“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이 협상을 안 할 리가 없겠죠· 그냥 생색내기로 경제상황이 이렇게 심각하다 보여주는 것 뿐이에요· 급락했던 주가도 다시 반등할 거고·”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기도 없이 영어로만 흘러나온 뉴스였다·
조그만 입에서 재잘재잘 흘러나오는 내용들이 범세계적 경제위기에 대한 논의들이라니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나메는 그럼 아침마다 이렇게 뉴스를 보는 거야?”
“티비로는 잘 안 봐요· 그냥 인터넷 뉴스로 보지· 그래도 공중파에서 나오신 분들인데 저까지 티비를 안 보면 너무 상처받으실 것 같아서·”
시청률이 3%만 나와도 대박났다고 일컫는 시대이다·
결국 텔레비전은 대중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방송국들은 작아진 파이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1인 방송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나메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뉴스를 픽 꺼버렸다·
갑자기 뼈를 맞아버린 PD들에게 나메는 자신의 방으로 따라오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방이 약간 텅 빈 것 같네?’
PD들은 생각보다 깔끔한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3면이 책장으로 되어 있다던가 벽에는 포스트잇이 가득하다던가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메는 공부를 여기서 하는 거야?”
“논문 스터디는 저녁에 부엌에서 천교수님이랑 같이 하고요 개인적으로 찾아볼 일이 있으면 대부분 가상현실에서 하죠·”
“아하 가상현실!”
요즘 알파세대들은 공부도 전부 가상현실에서 한다더니 나메는 그쪽의 선두주자였다·
몇몇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천재발굴단 PD들은 여러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해본 결과 본인이 편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공부를 하는 게 학습효율이 제일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계획적인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혹시 시간표 같은 게 있니?”
“머릿속에 들어있죠· 시간까지 정해놓지는 않고 그날 할 분량만 정하는 편이에요·”
“그럼 평소에 하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원래는 운동을 할 시간인데 아직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기는 민망한 수준이라 양해해주실 수 있을까요?”
“운동? 무슨 운동?”
“그냥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요가 비슷한 거예요·”
“으음··· 아! 그럼 이건 어떨까?”
PD 중 하나가 폰을 꺼내 미리 저장해놓은 동영상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독일에서 찍힌 영상이 있는데 혹시 여기 나오는 아이가 나메 맞아?”
나메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독일에서 찍힌 영상이라고 하면 분명 ‘그 영상’ 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예상대로 나메가 자신들을 위협하는 남성들을 저 멀리 날려보내는 영상이 송출됐다·
“네 맞는 것 같네요···”
“이런 동작은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 아니면 당시 상황이라도 설명해줄 수 있을까?”
“상황이요?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고 싶으신 거예요?”
“응응· 그런 거 포함해서 전부·”
나메가 한차례 턱을 짚으며 고민을 했다·
정말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는 수위가 맞는지 판단해본 것이다·
“여기서는 Die Chinesen sind wirklich überall· 그리고 안 좋은 영어 발음으로 계속 저보고 어머니가 어디 계시냐고 묻다가 이 부분에서는 Vielleicht ist er bereits krank und gestorben라고 했어요· 여기 콜록거리는 남성은 계속 코로나라고 외쳤고요·”
“···? 독일어도 할 줄 알아?”
“의사소통 정도는·”
나메를 바라보는 PD들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한시간도 안 찍었는데 이대로 방송에 내보내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의미를 번역해달라는 말에 나메의 답변이 이어졌다·
“중국인들은 정말 어디에나 있네· 어쩌면 이미 병에 걸려서 뒤졌을 지도 몰라·”
“자··· 잠깐만! 촬영중단! 촬영중단!”
“저를 지키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욕했는데 누가 이 상황에서 참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도 너희 부모님들도 똑같이 죽여서 크라우트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썩 꺼지라고 했죠·”
크라우트· 양배추 절임이자 독일인들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김치나 된장과 비슷하다·
나메는 인종차별에 인종차별로 대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순식간에 방송심의를 통과할 수 없는 수위까지 이야기가 흘러들어가자 PD들이 기겁하며 촬영을 중지했다·
하지만 촬영본을 함부로 삭제할 수 없는 노릇·
‘망했다···’
어린 PD과 조연출들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을 CP 선배의 얼굴을 보기 두려워졌다·
“아 죄송해요· 너무 부적절한 말이었나요?”
“그게···”
나메의 눈꼬리가 축 처졌다·
비에 쫄딱 맞은 아기고양이 같은 표정을 짓는 소녀를 보고 제작진들의 가슴이 아려왔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소녀의 역린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도 예전 나메의 대회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욕보였으니 소녀가 거친 언행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잠시 회의에 들어선 제작진들은 결심을 굳혔다·
“이것도 방송에 내보내자·”
“너 미쳤어?”
“나메가 말한 부분만 편집하면 되지· 그리고 천재발굴단 시청자층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봐·”
아무리 유명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들 한국 예능을 유럽에서까지 챙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아시아권 국가들은 다르다·
특히나 천재발굴단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던 국가를 차례대로 읊어보면 3위가 인도네시아 2위가 터키 그리고 1위가·
“중국···! 그런데 그럼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니예요?”
독일인들의 말만 따지고 보면 한국보다는 모두 중국을 비하하는 내용이었다·
현재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싫어해도 겉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조금 과장 보태서 독일과 중국의 외교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지 호들갑을 떠는 막내 PD에게 선배들이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었다·
“알빠노? 우리는 시청률만 챙기면 돼·”
자본주의 마인드를 장착한 선배들은 다시 촬영을 재개하였다·
“제가 지금 몸이 좀 아파서 직접 이 자리에서 보여드리기에는 무리인 것 같고· 가상현실에서 보여드릴게요·”
“나메야! 그럼 너 방송하는 것도 같이 찍을 수 있을까?”
“방송이요? 트위시 방송 말씀하는 거예요?”
“응! 사실 다음 일정이긴 한데 오늘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어때 괜찮아?”
“조금 갑작스럽긴 한데 뭐 한번 해보죠·”
“여름아 카메라 감독님께 연락해서 가상현실에도 촬영부 지원 필요하다고 전해줘·”
“넵!”
가상현실에 접속하기 전 나메는 캡슐의 전원을 켜서 청소모드로 대기시켜놓았다·
전기와 마나가 동시에 들어오며 먼지가 배출구로 빠져나갔다·
방금까지 막 천교수를 촬영하다가 방금 나메의 방으로 들어온 카메라 감독은 앞으로 할 일정에 대해 전해들었다·
사람들과 몇마디 말을 나누다가 갑자기 나메에게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
타이밍 좋게 옆에 있던 제작진 하나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나메친구는 티어가 어떻게 돼요?”
“티어요? 아아·”
그제서야 카메라 감독의 의도를 알아챈 나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티어 질문이 빠지면 섭섭하지·
“어떤 게임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월오아는 그마이고 롤은 챌린저인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문곰문고문곰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선물까지 보내주시다니 너무 압도적으로 감사드릴 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반민초파이지만 나메는 민초도 좋아한다고 하네요!! 나메가 더운 여름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같이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게임방송의 방송 시작··!!
생생한 전달을 위해 웩슬러 지능검사도 하고 왔는데 정말 쉽지 않네요· 도대체 만점은 어떻게 나오는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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