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8
“목검은···”
“죄송해요··· 피곤해서 저 먼저 들어가볼게요···!”
카츠하타 당주에게 한국여행 보고를 끝마친 에미카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와 꽁꽁 묶어놓은 머리를 풀었다·
혹시나라도 잘못해서 떨어질까봐 그녀는 반투명한 뿔을 손가락으로 살살 건드려보았다·
당연하지만 이 뿔은 오러하트처럼 마나가 뭉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기관이다·
툭툭-
머리에만 진동이 미세하게 전달되고 뿔 자체에는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간이시전으로 만들어놓은 거라 마나가 완전히 차단된 장소로 들어가거나 가상현실캡슐을 사용하면 마법이 끊기면서 뿔도 같이 사라질 수 있어· 뿔을 키우는 방법은 적당히 조용한 곳에 가서 편안한 자세로 마나를 끌어모으면 돼· 뿔이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까지 자라면 그때부터 뿔로도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될 거야·]
무릎을 꿇고 정좌자세로 다소곳하게 앉은 에미카·
명상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어도 전혀 자랄 기미가 안 보이자 결국 나메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다·
[나메짱: 한 시간?]
[카츠하타 에미카: 응· 아니면 얼마나 더 해야할까? 설마 반나절씩이나·]
[나메짱: 뭐 신경써서 하면 하루만에 끝낼 수는 있겠지· 한 18시간?]
[카츠하타 에미카: 에에? 그렇게까지는 시간이···]
“아니야· 오늘까지는 휴가였잖아· 밤을 꼴딱 새야겠지만 조금만 참고 해보자·”
명상을 하면 평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저녁매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카츠하타 가 식솔들의 발걸음 소리가 천장을 쿵쿵 울려댄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결국 한 때 뿐이었다·
‘지루해··· 졸려···’
지루함과의 사투를 끝내니 이번에는 눈꺼풀이 조금씩 감겨왔다·
명상을 하려면 눈을 감아야하지만 결코 잠에 빠져서는 안 된다·
졸음이 몰려올 때마다 에미카는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굳게 닫힌 방문 너머에서 에미카가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을 즈음 그 사실을 모르는 바깥 사람들은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 저마다 수군거렸다·
“한국에서의 충격이 컸나보지?”
“분명 비행기 탈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쓰으읍· 결국 사춘기가 온 것인가·”
“사춘기···! 우리 카츠하타 아가씨가···!”
여행에 돌아온 뒤로 소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역시 한국에서의 패배가 마음에 걸린 것인가·
아침식사 준비가 한창인 카츠하타 본관에서는 차후 당주로 점찍어둔 어린 후계자에 대한 걱정이 쏟아졌다·
“카츠하타 양을 부르게· 추분의 날 행사에 대해서 에미카에게도 당부할게 있으니 원로원보다 늦으면 경을 칠 줄 안다고 전해라·”
나이 지긋한 노인이 나타나 단호한 어투로 결국 소집령을 내렸다·
3월부터 5월 그리고 9월부터 11월까지 카츠하타 유파에서는 합숙이 의무였다·
아무리 후계자라도 예외는 없었다·
드르륵-
하마터면 히키코모리 고위험군이 될뻔한 카츠하타 에미카가 식당에 들어섰다·
아무리 대외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도 같이 오랫동안 부대끼고 살다보면 감흥이 적어지기 마련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신비스러운 천재검객 소녀일지 몰라도 카츠하타 식솔들에게는 그저 귀엽기만 한 막내인 에미카·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 초췌한 표정으로 나타나 팔로 눈을 비비적대며 터덜터덜 걸어왔다·
“허업!”
“뭐··· 뭐야 저거?”
“헤어밴드?”
“악마 코스프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친한 선배 타치바나가 다가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에미카 너 꼴이 이게 뭐야! 중2병도 아니고 지금 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이런 망측한 건 빼고 와야지!”
에미카는 올해 14살로 정확히 중2에 들어맞는 나이이긴 했다·
평소에 얌전한 아이가 더 활개를 친다더니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카츠하타 가에서 이런 기행을 펼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야 이거 왜 안 빠져?”
“그거 내 뿔이야···”
“어?”
“내 머리에서 난 뿔이라고·”
“에에엥?”
샤샥-
두 손으로 에미카의 머리카락을 들춰보았다·
당연하게도 플라스틱 밴드나 뿔의 접합부를 찾을 수 없었다·
에미카의 얼굴이 점점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당주와 원로원이 식당에 들어서자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따가운 시선이 한 사람에게 쏟아진다·
오늘따라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노인들이 눈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저··· 저!”
“이런 파렴치한!”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장난을 쳐!”
“제가 다 설명드릴 수 있어요!”
식탁을 박차고 나온 에미카는 식당 가운데로 돌아와 당주 앞에 마주섰다·
“이건 장난감 같은 게 아니라 마법이에요! 저는 중2병에 걸리지도 않았다고요! 코스프레는 더더욱 아니고요!”
평균 나이 45세 그것도 5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진실을 털어놓기 위해서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카츠하타 에미카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급한대로 새로이 구한 목검을 꺼내보았다·
식당은 검을 대동해서는 절대 안 되는 가장 대표적인 ‘해검각(解劍閣)’이다·
이미 무례를 넘어서 규칙까지 어겨버린 후계자를 보고 노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성을 질렀다·
“일단 진정들 하시고 에미카의 말을 들어봅시다· 원래 이럴 아이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결국 중앙에 앉은 당주가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말리기에 이르렀다·
“에미카 말해보렴· 대신 정당한 이유가 없을시 오늘 소란에 대한 처벌은 각오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이게·”
에미카가 고개를 슬쩍 숙이고는 눈을 딱 감았다·
그냥 나메에게 들은대로만 설명하면 된다·
[일단 가칭은 마왕의 뿔인데 정식 명칭은 나중에 또 바뀔 수 있어· 바이오아카식에서 대략 한 달 뒤에 출시할 마법이고 언니는 일종의 우리 회사 신제품 테스터인 거지· 원로원인지 뭔지 그분들에게 가서 이거 엄청 대단한 마법이니까 혹시 투자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라고 가서 말해줘·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럼 무슨 마법이지 빨리 설명하거라 카츠하타 에미카·”
“마왕의 뿔···”
“마왕? 내가 생각하는 그 마왕? 그럼 네가 마왕이라도 되었다고 지금 말하는 거니?”
“아아니··· 그게··· 정해진 게 아니라 저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아·”
“이렇게 말하려던 게 아닌데··· 흐윽··· 흐아아아아앙! 왜 제 말을 끝까지 안 들어줘요!”
결국 에미카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이야 나메야 대박이다 대박· 어떻게 이런 귀한 분을 다 섭외를 해왔니?”
“잠깐만· 제대로 주문한 거 맞아요?”
카페 의자를 꾹 잡아 내 옆자리에 앉으려는 백호찬을 제지시켰다·
그러더니 그가 한차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카라멜 프라푸치노에 통 자바칩 추가· 에스프레소 휘핑 모카 시럽 카라멜 드리즐까지· 맞지?”
“통과·”
“네 나이 때에 카페인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데··· 어쨌든 이 기사 봐봐·”
[지구촌뉴스) 할로윈은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일본에서는 마왕 코스프레 열풍이?]
나는 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에미카의 활약을 눈을 담았다·
일본에서 추분의 날은 공휴일로 지정된 명절이다·
특히 카츠하타만큼 유서깊은 가문은 자체적으로 성묘 행사를 진행하였다·
카츠하타 유파가 정한 교육 정책 방향은 그녀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어린 일본 마도사들의 성장을 기원하고 독려하는 연설에서 에미카는 ‘아데라’ 마법을 언급하며 검술 기조의 변화를 예고했다·
“예고하기만 하면 다냐· 마법 시연 때 우리 기업을 언급해줬다고!”
“네에네에· 제가 그러라고 시켰으니까요·”
“이런 마케팅은 몇십억을 주고도 못하는 거 알지? 아유 우리 나메 정말 대견하기도 해라·”
“아 좀 떨어져봐요! 가만히 좀 보자 제발·”
아쉽게도 에미카는 ‘전승검’을 파괴시킬 수준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나보다·
대신 그녀는 1서클 아데라 마법을 혼자 시연해보임으로써 수많은 노가다를 하고 있을 이론마법학자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이미 시중에 있는 마법만으로도 스스로 시전할 수 있음을 보였으니 즉시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것이다·
다만 내 예상과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부분이 있었다·
대중들은 마법의 잠재력을 칭송하기보다 귀여운 에미카가 뿔을 달고 있는 점에 더욱 주목하였다·
유행은 전염병과도 같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은 돈냄새를 귀신같이 잘 맡았다·
장난감 회사와 헤어밴드 회사들이 서로 앞다투어 ‘마왕의 뿔’ 에미카 에디션을 찍어내며 한 철 장사를 진행했다·
공짜로 바이오아카식의 마법을 홍보해주는 셈이니 우리로서도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원래 마법은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광고선전비가 무지막지하게 많이 들거든·”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는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어요?”
“저번주에 전임상검사 통과됐고 바로 임상1상 돌입했어·”
“아직도?”
“지금 엄청 빠른 거거든? 전임상검사도 원래 2 3년 걸리는 단계인데 우린 지금 2개월만에 된 거라고·”
“아니요 너무 느려요··· 임상2상 생략해서 전부 최단기간으로 잡으면 얼마나 걸릴까요?”
“임상2상을 생략한다고? 그것도 불가능에 가깝지만 만약에 허가받는다고 쳐도 FDA 승인까지 최소 3년은 걸릴 거야·”
3년은 너무 길다·
백신은 긴급사용승인까지 받으면 10개월이면 허가가 나는데 치료제는 왜 안 되는 걸까·
“그래서 말인데 나메야 이거 판매가는 연에 1만 달러로· 너도 경제 배웠으면 알지만 차후에 인플레이션도 고려해야···”
“무조건 3천 달러 이하에요· 이건 절대로 타협이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마세요·”
“별 효과도 없는 가짜 약들도 막 5만 달러 10만 달러씩 하는데··· 하아 알겠다·”
“어차피 개발 기간이 짧을수록 원가회수도 쉬워지잖아요· 그러니까 백호찬씨가 빨리 좀 되게 만들어보세요·”
그리고 내가 전생에서 일군 지식들을 거의 공짜로 알려준 셈인데 말이야·
“임상검사 하는데 아웃소싱 비용이 장난이 아니야! 지금 국가에서 받은 지원금이 줄줄 새고 있어·”
결국 돌고돌아 맨날 돈이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한 과정에서조차 돈이 필요하다·
나는 눈을 살포시 감고 두 손으로는 깍지를 껴보았다·
입으로는 프라푸치노를 쪽쪽 빨아가면서 생각에 잠기었다·
“마왕의 뿔 출시를 늦추죠·”
“그건 또 왜 늦추는데? 지금 하루빨리 캐쉬카우를 만들어야 기업이 유지된다니까?”
“카츠하타 유파에서 곧 투자금이 들어올 거예요· 얼마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걸로 못해도 한 달은 버틸 수 있지 않겠어요?”
“늦추는 이유는?”
“버전을 두 가지로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아봅시다· 하나는 3서클 간이시전 된 형태로 다른 하나는 5서클 원본으로· 후자를 아주 비싸게 팔아치우면 돈이 많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무슨 수로? 네가 말해준 성능으로만 보면 그렇게 매력 있는 마법도 아닐텐데·”
당연히 마왕의 뿔은 마족들에게 맞추어진 기관인만큼 인간이 사용하면 효과를 거의 못 본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마기를 정화시키는 능력이야 중동지역이나 마력발전소를 제외하면 쓸 곳도 마땅치 않고 뿔로 대기 중의 마류를 읽어내는 능력은 정말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니까·
“제가 어디에서 이런 말을 들었어요· 사람들이 사고 싶었던 걸 만드는 회사는 이류라고요·”
“···?”
“평소에 별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회사가 진정한 일류라는 점에 대해 동의하시죠?”
“어어? 어 나도 그 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
“이번엔 제가 마케팅에 힘 써볼게요·”
[회신: 세피론 재단]
[귀하의 아카데미 대항전 출전을 허용합니다·]
중등부에는 키 규정이 없었거든·
120cm 이하인 중학생은 세피론 아카데미에 여태까지 한번도 없었으니까·
누군가의 부상으로 인해 급조된 규정이라면 당연히 초등부에만 기재되어 있을 거라는 내 추측이 맞았다·
재단에 문의해본 결과 다소 억지긴 하지만 나는 중등부 출신으로 아카데미 대항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메드럼님 9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매번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나메 크레페 값에 보태겠습니다!!
신제품 개발 혹은 마케팅에서 중요한 명언이죠!!
사람들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의외로 잘 모른답니다··!! 그래서 마차 시대에 증기자동차가 성공을 했고 피처폰 시대에 애플이 성공을 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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