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2
사복과 교복차림의 아이들이 혼재되어 있는 아퀼라 호텔 지하 1층의 아케이드 공간·
그 중에는 나메를 필두로 한 무리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다소 어두운 조명과 천장에서 빙빙 돌아가는 미러볼이 불법 오락실 느낌을 흠씬 자아냈다·
“펀치기계다 펀치기계!”
“최고 점수 9570점··· 헐 대박 저건 대체 어떻게 깨냐?”
“나메는 키가 작아서 못하겠네? 손이 안 닿잖아 키킥·”
“···”
“야 나메 놀리지 마! 나메야 우리 저기도 구경하러 가자·”
유나는 작게 볼을 부풀리는 나메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질질 끌고 다녔다·
아직은 첫째날이니만큼 세피론과 알테어 학생들간의 기싸움도 별로 찾아볼 수는 없었다·
특히나 어린 학생들일수록 경쟁심이나 적개심보다는 어색함이 앞섰기 때문에 서로서로 부딪히는 일을 되도록 피하는 분위기였다·
“여기도 저기도 사람이 너무 많네···”
이하루가 침울한 기색으로 말했다·
볼링이나 에어하키 포켓볼과 같이 인기 많은 놀이기구는 전부 누가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상황·
그동안 나메는 무인자판기에서 뽑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작은 혀로 낼름거리다가 의견을 내보았다·
“대련 구경하러 가지 않을래? 너무 오래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힘들어? 애들아 나메가 힘들대!”
“저기 빈자리 생겼다· 자리 뺏기기 전에 빨리 가자!”
완드꽂이에는 다양한 길이의 연습용 완드가 구비되어 있었다·
미리 입구를 선점한 초등부 고학년 학생들은 완드를 챙겨서 대련장에 입성하는 중이었다·
“6학년 선배인가봐·”
“우리 아카데미 사람인가? 교복을 안 입어서 잘 모르겠어·”
“츄릅·”
“어? 나메야 나도 아이스크림 한 입만 먹어도 돼?”
“이미 다 먹었는데·”
“아앗···!”
혹시라도 먹을 것을 빼앗길까봐 소립자 및 마립자 방벽을 제공하는 수정구 뒤쪽에 숨어있던 나메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유나가 금세 울상을 지었지만 나메가 나중에 하나 더 사주겠다는 말로 토라진 기분을 달랠 수 있었다·
삐이이익-!
그 사이에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비프음이 울렸다·
파지지직-
여학생이 완드로 전격마법을 시전해서 직진으로 돌진하는 남학생을 향해 쏘아냈다·
웅장한 번개가 내리칠 때 결코 직선으로 내리꽂지 않듯이 그녀의 마법 또한 수십 갈래로 뻗어나갔다·
“헉 저러면 안 위험한가?”
“정통으로 맞으면 금방 방벽이 다 닳아버릴 텐데·”
“저건 무슨 마법이야 나메야?”
“그냥 뭐 기초적인 아크방전 마법이겠지·”
“그럼 누가 이길 것 같아?”
나메의 고개가 아래로 향한다·
오랜 고민도 없이 그녀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네· 솔직히 둘 다 실력이 고만고만해서·”
아이들의 실력이 얼마나 출중하든 간에 나메의 성에는 차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엄청 잘 싸우는 것 같은데···”
“빨리 움직이는 게 능사는 아니야·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어야지·”
“노나메· 그럼 저기서 어떤 움직임이 군더더기인지 알려줄 수 있어?”
중간에 파고든 윤시후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메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시후 옆으로 자리를 땡겨앉아 해설을 덧붙였다·
“잘 봐봐· 일단 스텝이 문제야· 전기 마법이 시전되고 있는 동안에는 저 오빠처럼 단순하게 돌진해서 거리를 좁히는 게 일단 정석은 맞아· 그런데 마법진이랑 가까워질수록 보폭이 점점 짧아지고 잔발을 쓰는 횟수가 많아지지? 본능적으로 마법을 피하려고 하는 건데 사실 바보같은 짓이지· 저러면 오히려 손해야·”
“오오···”
“그리고 기껏 붙었으면 파훼를 하든지 시전자의 몸을 잡아 바닥에 눕히든지 그것도 아니면 근거리에서 마나를 교란시키든지 해야하는데 어쭙잖게 타격싸움으로 가니까 전격마법 때문에 대미지만 입고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거야·”
“그럼 나메 네 말대로라면 저기 누나가 가뿐히 이기겠네?”
“그것도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어·”
“왜?”
나메의 설명이 끝나는 순간 여학생은 계속되는 타격을 버티지 못했는지 스스로 가드를 포기하고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등이 푹신한 쿠션벽에 닿았다·
기회를 포착한 소년은 주저하지 않고 단번에 도약하였다·
“흐아아아압!”
소년의 오른손과 왼발이 붉은 화염에 휩싸였다·
“이럼 대충 승부가 정해졌네· 저 오빠가 이겼어·”
쨍그랑-!
방벽이 떨어져나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러를 가득 실은 주먹이 소녀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한 탓이다·
소녀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남은 방벽을 재정비하려는 찰나 소년이 몸이 공중에서 두바퀴를 돌며 길쭉한 다리를 뻗었다·
720도 돌려차기·
콰아아앙-!
소녀의 몸이 두세 번 통통 튀기며 날아갔다·
“야호 피카츄를 물리쳤다! 내 불주먹맛 어때? 불닭볶음면보다 맵지? 엄청 아프지?”
대련에서 승리한 소년의 깐족거림에 그녀는 분한듯한 신음성을 토해냈다·
“두고 봐· 넌 다음에 꼭 전기구이 통닭으로 만들어준다·”
“응 아니고요· 하나도 안 통하쥬? 따갑지도 않쥬?”
“야! 한판 또 뜨던지!”
“헷 잠깐만· 사과도 안 하고 도망가는 꼬맹이들은 참교육해야하지 않겠어?”
6학년들의 대련은 그렇게 허무하게 종료되는 듯 싶었다·
“우리도 이제 슬슬 양치질 하러··· 응?”
나메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방금 대련에서 승리한 소년이 관람석까지 뛰어 올라와 그녀의 친구들 앞을 막아섰다·
“안녕 2학년 친구들? 대련은 잘 봤어?”
실눈을 뜬 소년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네 멋있었어요!”
순진한 나메의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목소리로 그들을 칭찬했다·
“그런데 아까 누가 우리보고 고만고만하다 바보같다 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혹시 너희들은 들었어? 응?”
“어···”
“누가 선배한테 겁도 없이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환청을 들은 것도 아닐 테고 말이야· 빨리 와서 자수해· 시간 질질 끌면 오빠 진짜로 화낸다?”
“제가 그랬어요·”
나메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소년은 고개를 뻣뻣하게 든 나메를 내려다보았다·
한창 선배가 무서울 나이이기도 하건만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에 소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세피론 아카데미의 천재님이 보시기에는 뭐가 그렇게 아쉬웠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들자면 끝이 없죠· 나쁜 마음으로 한 말은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마요·”
“그래? 그럼 나한테도 알려줄래? 정말 궁금하네·”
소년이 나메에게 수정구 키를 던져주었다·
대련장으로 따라오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노나메 너 말이야· 요즘 티비에 자주 나온다고 아주 눈에 뵈는 게 없어보이는데·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싸가지가 없었어?”
“그런 말 옛날부터 자주 들었어요·”
“오늘 아침에 강당에서도 말이야· 선배들을 봤는데 인사도 안 하고 계속 멀뚱멀뚱 지나치더라? 우리 아카데미 규칙 몰라?”
“무슨 소리세요·”
나메가 가장 작은 완드를 꺼내고 수정구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고개가 삐딱하게 돌아갔다·
“저는 오늘 오빠 여기서 처음 보는데· 알테어 아카데미에서 오신 분 아니에요?”
* * *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육체와 정신을 관철했다·
또래보다는 큰 오러하트에서 황금색의 마나가 요동치며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현재 내 몸은 유리대포나 마찬가지이다·
그래 롤 캐릭터로 따지면 내가 주로 썼던 아스테리아와 비슷하겠지·
몸의 연약함을 섬세한 오러의 운용으로 메우고는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가 한계일지 모르겠다·
‘난 지금 불안해하고 있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구에게 제압당하고 끝끝내 살해당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어렴풋한 불안감이 때때로 휘몰아친다·
만약 자고 있는 사이에 누가 내 목을 조르면 어떡하지?
내게 악의를 품은 사람으로부터 나는 충분히 저항할 수 있을까?
아무리 침식이 마나를 무한정으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지녔다 하더라도 내 몸이 어디까지 버텨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러한 의문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지나친 피해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라우마라는 게 생각보다 이성적인 사고만으로는 잠재우기 어려운 법이다·
내가 언제나 타인보다 강해져야한다는 강박증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나는 계속해서 강함이라는 허상을 좇을 것이다·
난 사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누가 말려주기 전까지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나도 황녀님도·
나도 나메도 겁쟁이니까·
[시전: 아크 방전]
키르히호프 제2법칙과 맥스웰 방정식만 알면 쉽게 구축할 수 있는 아크방전 마법·
반대쪽의 소년은 두 주먹에 푸른 불꽃을 피워내며 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지민이랑 똑같은 전기 마법을 쓸 줄 아는 거야? 대단한데?”
“가끔씩은 제가 무서워질 때가 있어요· 왜 이러고 사나 회의감이 들 때도 있고· 옛날 기억은 싹 잊고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제 삶은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해요·”
“뭐라는 거야?”
수학 난제를 풀고 수천 개의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여덟 살 아이가 결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는 없겠지·
결국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해나가다 보면 ‘나는 왜 환생을 하였는가’에 대한 막막한 질문이 바리케이트를 친다·
역시 잘 모르겠다·
벌써부터 너무 먼 미래는 생각하지 말자·
일단 앞에 있는 친구를 계속 지지다 보면 심란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빨리 끝내고 이따가 유나 아이스크림도 사주러 가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가짜글쟁이님 5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나메 팬아트 너무 잘 봤습니다!! 너무 귀여워서 갤러리에도 저장을 했을 정도예요!!
요즘 나메가 많이 피곤해하는 것 같네요!! 머리가 아플 때는 푹 자는 것도 좋은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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