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2
땀에 푹 젖은 아이들이 샤워를 끝마치고 관람석에 도착했다·
그동안 초등부 3학년 아이들이 분전하여 승리를 따냈지만 4 5학년이 참패를 당하면서 스코어는 다시 2대2로 맞추어졌다·
천교수의 목건강을 생각하여 해설방송은 당분간 나 혼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다른 학부모들과 인사를 나눌 사이 내 옆에는 유나와 하루가 자리를 차지했다·
“도대체 우리 하루는 무슨 깡으로 그런 말을 인터뷰에서 했을까? 응?”
하루가 내 허리를 와락 껴안으며 용서를 빌었다·
“으아아아앙 살려만 주세요! 다시는 안 깝칠게요!”
“됐어· 바로 앉아·”
“하루 너 요즘 나메랑 가깝게 지낸다? 나메야 이리온!”
“서유나 너도 은근슬쩍 안아들려고 하지 말고·”
“치잇!”
유나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휙 돌렸다·
나는 뻔한 수작에 넘어가지 않고 방송을 켜서 다음 6학년 중계를 준비했다·
[‘초전도캣’님이 10000원 후원!]
-고학년들 대련인데도 막힘없이 해설하는 나메 양이 너무 신기해요! 대항전에 나오는 마법들을 전부 알고 있는 건가요?
“뭐 그렇죠· 초등부까지는 마법 종류에 제한이 있기도 하니까요· 효율 좋은 마법들만 고르면 몇 안 되니까·”
“그럼 네가 참가하는 건 룰이 어떻게 되는데?”
바로 뒤에서 윤시후가 화면을 비집고 들어와 물었다· 방송에 얼굴이 팔리는 건데 신경도 안 쓰이나·
“2서클 이하까지는 무제한· 3서클은 한 종류만 사용하는 걸로·”
“3서클··· 넌 근데 4서클도 쓸 수 있지 않아?”
“난 8서클도 써봤지·”
“거짓말· 8서클 마법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데·”
“맘대로 생각해·”
2 3학년의 승리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던 분위기는 2연속 패배로 움츠러들었다·
점점 세피론의 응원은 줄어들고 알테어를 연호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시무룩해진 2학년 아이들을 위해 서마루와 서노을이 열심히 분위기를 띄워보았지만 역시 승리 없이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도중 6학년의 남궁진과 성은별이 단상 위로 섰을 때 엄청난 함성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영웅 등장 baam!
-믿고 쓰는 창천남궁 등장이요!
-줄이면 XX
-ㅋㅋㅋ 그냥 얘네는 적폐 그 자체임·
-요요 긴장감 하나도 없는 거 봐라4가지 없게
-옷차림 봐라 둘 다 놀러왔냐?
-도복을 입고 오네 어지간히 미친 클랜이다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뜨거운 환영의 인사를 방송에서 내비쳤다·
“그렇게 유명한 선배들이었어?”
“창천남궁 클랜장님이 저 선배 외할아버지시잖아· 너 진짜로 몰랐어?”
라온 클랜장의 손자인 김한결이 얼굴을 불쑥 내밀고 말했다·
“남궁세가는 중국 문파 아니야?”
“남궁세가 말고 창천남궁· 창천남궁은 한국 클랜이야·”
“아니 왜 클랜 이름을 그렇게 지었대?”
“처음 만든 사람이 무협 팬이었다고 우리 할아버지가 말해줬어·”
“얼탱이가 없네· 네 할아버지는 그분의 친구라도 되시니?”
“음··· 아마도 그럴 걸?”
그냥 한번 던져본 질문에 끄덕이는 김한결·
하긴 이 바닥도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인맥으로 돌아가는 사회니까 이상할 것도 없지·
두 단계만 건너면 서로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니 새삼 이 재벌들 사이에서 유나와 지혜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안 되겠다· 이하루 너 지혜랑 자리 바꿔·”
“아니 왜!”
“서민들끼리 놀 거야·”
전생에 황실 소속이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6학년들의 경기는 해설할 필요도 없이 승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두 명이서 교체도 없이 상대 다섯 명 전원을 23분 만에 몰살시켜버리며 우리는 기분 좋게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 * *
[세피론은 때아닌 황금세대 풍년? 6학년만이 아니라 여기 2학년도 있다!]
[‘나는 사천왕 중 최약체’라고 밝힌 세피론 2학년 김한결· 우리들의 수장은 ‘노나메’·]
[종군마도사 출신 프리랜서 ‘김건’ 개인 인터넷방송에서 알테어 아카데미의 면학 분위기에 대해 욕설과 함께 비판 “알테어 XX는 업보를 치를 때가 됐지·”]
[노나메의 중등부 3학년 출전 전문가들은 ‘글쎄···’라며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
[단독 인터뷰) 현직 종군마도사 ‘정XX’ – 마나용량만 받쳐준다면 노나메도 중등부에서 충분히 활약할 가능성 있어·]
“하여간 초등부는 이래서 문제야· 돈으로 뽑으니까 맨날 세피론 따위한테 개발리는 거잖아·”
“맨날 똥은 우리가 다 치운다니까· 이럴 거면 쓸모도 없는 초등부 확 없애버리지·”
“우리 중등부에서 다 이겨버리면 돼· 그럼 고등부 형 누나들이 눈치 있으면 한번은 이겨주지 않겠어?”
정말 몇 년만에 세피론 아카데미가 전반전에서 앞서가는 3-2 스코어가 나왔다·
기자들은 드디어 강남과 강북의 전세가 역전되는 거냐며 점심도 거르고 추측성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알테어 아카데미 초등부 교장이 전면에 나서기도 하였다·
다만 학생들이 불만을 가진 건 그 불똥이 알테어의 중등부에게까지 튀었다는 사실이었다·
“7년 동안 한번도 승리를 못 따낸 주제에 얼마나 우리들을 우습게 봤으면 초딩을 출전시키냐? 그것도 중3 경기에?”
손톱에 붙은 젤 네일을 제거하던 여학생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날카롭게 벼무린 오러가 지나갈 때마다 매니큐어 부스러기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이 기회에 실력 다 뽀록나는 거지· 우리는 뭐 영재 아니고? 나도 4살 때부터 5개 국어하고 아이큐 150 나왔는데 그냥 방송 안 나오고 조용히 뼈빠지게 공부하면서 살잖아·”
교복바지에 손을 넣고 질겅질겅 껌을 씹던 남학생의 인상도 퍽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맞아맞아 꼭 유난 떠는 애들이 있어· 어릴 때부터 인터넷 방송 하는 것도 그렇고 또 뭐냐 롤···? 월오아? 그런 이상한 씹덕 게임을 대체 왜 하는 거야·”
“그걸 또 하게 냅두는 부모님도 좀 이상함·”
입술에 새빨간 틴트를 칠한 여학생이 입에 물고 있던 딸기사탕을 빼서 말을 속사포처럼 뱉어내고 옆에 있던 주근께 가득한 남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초등부는 그렇게 펑펑 놀아도 성적 잘 나오나보지· 야 오덕재 너 초등부 세피론에서 졸업했잖아· 거기가 원래 그런 데야?”
3학년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덕재를 향했다·
다같이 세피론을 욕하는 분위기에서 그는 적당히 타협안을 내놓았다·
“아···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애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럼 대체적으로 열심히 안 했다는 거네? 그래서 너도 세피론 버리고 알테어 왔잖아·”
“그렇지· 응···”
“솔직히! 우리 학교 50등이 그쪽 10등보다 잘할 텐데 아무튼 좀 억울하다는 거야·”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학생들이긴 해도 다들 오덕재에게는 친절히 대해주는 편이었다·
특히나 성적이 전부인 아카데미 사회에서 오덕재는 자신이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에 언제나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에게 밉보이면 그날로부터 아카데미 생활이 순탄치 못하게 되는 건 확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나저나 빨리 시합 끝나고 MCT 오빠들 폐막식 공연이나 보고 싶은데! 고등부 째면 자리 다 뺏기겠지?”
“미녕쓰 포카 받으면 중복된 거 나 주라·”
“안 돼! 전에도 너한테 이미 많이 갖다 줬잖아!”
“맞다 황주영 걔는 근데 왜 막판에 안 나왔음?”
황주영 리허설 도중 낙오하게 된 세피론 아카데미 학생을 말하는 것이었다·
“장난감 말하는 거? 아이스크림 먹고 배탈났다나 뭐라나···”
“와 이걸 이렇게 빼는 거 보소? 이날만을 위해서 진짜 제대로 된 마법 배우고 왔는데· 내가 리허설 때 너무 팼나?”
“핳 그거? 하핳 야 그거 진짜 쓸 거야? 너 그러다 나중에 징계 먹어!”
“운영위원회 통과된 거면 문제없잖아 인정?”
“아니면 노나메 골려줄 때 쓰던가· 후·”
여학생은 손톱에 입김을 살짝 불고는 손을 탈탈 털어냈다·
“어떻게?”
“뭐··· 울 때까지 간지럽히기? 엄청 귀여울 것 같은데·”
“하하하 사이코냐? 너 백퍼 네티즌들한테 매장 당한다에 내 손모가지 건다·”
“싫음 말구·”
“왜요? 해보세요· 재밌을 것 같은데·”
아래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긴 양갈래 머리를 전후좌우로 휘날리는 소녀를 보고는 오덕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딱딱하게 굳었다·
“어어··· 노나메···?”
“우와 뭐야? 어떻게 우리가 말하는 거 딱 알고 찾아왔어?”
“식당 입구까지 가로막고 재미난 얘기 하고 있으시길래·”
“아 우리가 막고 있었구나· 언니가 미안해! 여기 지나가!”
“미안하셔야죠 사람 지나다니는 길인데· 애들아 먼저 가 있어·”
그러자 나메의 뒤를 따르던 아이들 5명이 쪼르르 식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중학생들은 나메를 바라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작은데?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거나 맞아?’
이재환과 박준용의 키가 각각 170대 초반과 후반·
네일을 정리하던 조수연도 170에 맨날 호빗이라고 놀림받는 이민영이 150이었다·
가슴팍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메의 작은 키가 그제서야 체감이 갔다·
이런 아이를 상대하라고 내놓는다는 건 알테어를 제대로 무시하는 처사였다·
“이따가 우리 시합이지? 근데 너희 선배들이 사실 너어무우나아도오 약해서 나메를 못 지켜줄 것 같은데 안 무섭겠어?”
조수연이 허리를 굽혀 나메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캡슐에 7년동안 갇혀있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요·”
“와 센데···? 얘 진짜 장난 아니다!”
“허어 그러게···”
“그나저나 아까 저희 아카데미 선배보고 장난감이라고 칭하신 거 사과하세요·”
갑작스러운 타 아카데미 후배의 명령에 중등부 학생들은 다같이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가 왜?”
“여러분들끼리 뒷담화하신 건 상관없지만 제 귀에 들린 이상 사과하셔야죠·”
“정말 이상한 논리네 친구야· 사실 장난감이라는 말도 엄청 착하게 부른 건데 우리는 많이 억울하다 야?”
“그래요? 그럼 사과하지 마세요·”
“어?”
티비에서 본 나메의 성격상 계속 붙들고 늘어질 것 같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에 당황한 건 오히려 알테어 학생들 쪽이었다·
‘얘가 겁을 먹었나?’
나메가 치마 뒷주머니에서 작은 장치를 꺼내더니 버튼을 꾹 눌러보았다·
[맞아맞아 꼭 유난 떠는 애들이 있어· 어릴 때부터 인터넷 방송 하는 것도 그렇고 또 뭐냐 롤···? 월오아? 그런 이상한 씹덕 게임을 대체 왜 하는 거야·]
[그걸 또 하게 냅두는 부모님도 좀 이상함·]
그들끼리 쑥덕거린 대화들이 그대로 재생되었다·
자신들이 저런말을 했었나?
하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면 확실했다·
노나메가 누구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팬덤을 보유하기로 유명한 아이였다·
저게 인터넷상에 퍼지는 순간 네티즌들의 신상털기와 더불어 부모님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아내야 할 것이다·
겁에 질린 사춘기 학생들은 서둘러 그녀의 녹음기를 탈취하려고 팔을 뻗었다·
“야! 그거 이리 내놔!”
“자 여기요·”
“어? 그래 고맙다?”
녹음기를 넘겨준 나메는 싱글생글 웃으며 식당 밖으로 몸을 돌렸다·
“방금 녹음된 파일은 제 계정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어요· 이번 대항전에서 절 이기시면 지워드릴게요· 사과하실 생각은 딱히 없으시다니까 제가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제안해드리는 거예요· 아이큐 150이니까 잘 알아들었겠죠 알테어 아카데미 선배님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절대 노나메한테 덜미를 잡혀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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