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8
누구나 마음 속에 자신만의 방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그곳에서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뛰놀 수도 있으며 현실에서는 못다 한 상사의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을 어떻게 꾸밀지는 본인의 자유겠지만 나는 그 권한을 전적으로 이 불쌍한 아이들에게 맡겼다·
“샤덴프로이데·”
나와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했던 ‘나’·
나의 불행이 곧 자기네들의 기쁨이라며 시종들이 내게 어린 시절 붙여준 별명이기도 하였다·
현재 내 기억의 근간을 이루는 자아를 일으켜 깨웠다·
[날 여기서 꺼내줘·]
모든 힘을 잃고 본능밖에 남지 않은 샤덴프로이데가 몸을 축 늘어뜨리며 간곡히 부탁했다·
어차피 들어줄 수도 없는 요청이라 고개를 내저었다·
내 고유마도를 여기서 선보일 수는 없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2황녀 조세핀 플로리아 카이젠·”
[단순무식한 년·]
“응 나도 잘 알지·”
질투의 침식을 개조한 제 2식(式) 고유마도는 눈으로 본 상대의 회로술식을 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유마도의 기능이지 침식 그 자체의 능력이 아니다·
식욕이 신진대사를 제어하고 나태는 오러의 형질을 변화시키며 분노가 방벽에 간섭하는 것처럼
샤덴프로이데는 오러의 형질을 똑같이 베낄 수 있다·
[근데 요즘은 사람 같은 거 잘 안 죽이나봐?]
“···”
자신이 직접 오러하트를 파괴해 죽인 대상에 한해서만·
[질투: 오러 동기화 – 조세핀]
* * *
오덕재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드러났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 오러 때문인가?’
오덕재는 나메에게 나이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는 걸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그에게 경보를 울렸다·
흡사 같은 학년의 이민영과도 비슷한 야수적이고 흉포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무리 오러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아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 방심해선 안 돼·’
나메는 보란 듯이 황금색 오러를 전신에 둘러 자리를 박차고 덕재는 그와 동시에 마법진을 작성한다·
[시전: 마찰계수 조정]
[시전: 싱크홀]
호흡을 가다듬고 양옆에서 시전되는 마법진을 흘겨보는 나메·
신발 밑창에서 솟아나온 뾰족한 오러로 바닥에 고정시키고 약한 지반을 폴짝 넘어 지그재그로 간극을 좁혀나갔다·
경이로운 광경에 스스로 마법진을 깨뜨린 덕재는 가드를 올려 정면에서 나메의 공격을 받아냈다·
팡-!
파앙-!
무자비한 로우킥 다시 공중에서 반바퀴를 회전해서 복부를 꿰뚫을 기세의 미들킥이 덕재의 몸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쌔애애애액-!
지근거리까지 파고든 나메가 공기를 가르며 인정사정 없이 주먹을 꽂아넣는다·
반격의 기회를 엿보는 덕재의 눈동자가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며 중심을 잃었다·
나메가 가하는 공격마다 야수같은 황금빛 오러가 소용돌이치며 살점을 물어뜯었다·
타격 한번한번에 덕재의 소립자 방벽이 뭉텅이로 깎인다·
만약 맨몸으로 직격당했으면 뼈가 으스러졌을 터·
그 순간 나메의 눈이 흉흉하게 번뜩이고 두 다리가 강하게 바닥에 밀착되었다·
[간이시전: 연막]
휘몰아치는 공격 사이사이에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나메가 왼손을 뻗자 덕재의 얼굴 앞에 마법진이 시전된다·
시전시간이 극도로 단축된 캐스팅·
마법진을 파훼하기 위해 팔이 올라가고 가드가 깨진 순간 귓가를 가르는 혹독한 바람소리가 그를 재차 덮쳐왔다·
“흐읍!”
콰아아아아앙-!
복부 정중앙에 내꽂히는 일격·
나메의 다리에서 시작해 허리 어깨와 팔로 이어지는 오러의 고차원적인 운용·
지극히도 단순한 공격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내포하였기에 천지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덕재의 몸이 반으로 접혀 뒤로 날아갔다·
“커헉!”
솨아아악-
동시에 나메의 주위에서 발생한 강한 충격파가 바닥을 휩쓸었다·
“크으윽··· 방벽이 있어도 개아프네···”
파도치는 모래사장을 딛고 덕재가 손으로 두 무릎을 지탱하며 일어섰다·
맷집은 상당했지만 넝마가 된 옷자락 때문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슬슬 너도 오러가 떨어지나보네· 그치?”
“아직 충분해요·”
“전광판에 10%라고 나오는데 거짓말은· 그러게··· 그 선배 말대로 올해 아니면 널 영영 못 이길 것 같은 느낌이야·”
“올해도 힘들 걸요? 저에게 이기는 건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아요·”
“하하하하!”
그는 팔을 서서히 들어올리더니 끝내 광소를 터뜨렸다·
“하아··· 하아··· 그래 그렇게 자신감 있게 나온단 말이지! 흐아아아아아!”
[시전: 압축계수 조정]
[합동시전: 유압 리프트]
능숙한 더블캐스팅과 더불어 덕재가 주먹으로 지면을 강하게 때려박는다·
나메의 발밑에 마법진이 둥글게 생성되더니 강한 반발력에 그녀의 몸이 허공 위로 높이 떠올랐다·
“아무리 너라도 공중에서는···!”
[범시전: 아크방전]
[합동시전: 절연파괴]
콰지지지직-!
하늘에서 내리치는 무자비한 포격·
쿠과과과과-!
수십 갈래의 크고 작은 보라색 낙뢰가 공기를 가르고 대지를 뒤덮는다·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구전설화에서 글자의 형태로 후대에 전수되었고
성현들의 지혜를 녹여 인류의 염원을 실현시킨 전격 마법으로 재탄생했다·
사방으로 스파크를 흩뿌리며 타는 냄새가 코끝을 찔러올 때
보라색 마나가 다시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고유마도 – 마왕의 뿔]
[시전: 접지]
“그래봤자 사람이 지구보다 강해질 수 있나요?”
마왕의 뿔을 피뢰침 삼아 전격 마법을 아예 무효화시키는 나메·
파지직-!
뿔이 게걸스럽게 번개를 먹어치우는 동안 앞으로 유유히 걸어온다·
오덕재가 새로이 마법진을 작성하려는 찰나 그는 돌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마나가 떨어진 건 내쪽이 먼저였나···!”
마법을 억지로 쓴다면 오러하트뿐만이 아니라 심장에도 무리가 갈 것이다·
마나가 없다면 오러를 쓸 수밖에·
“흐아아압!”
바닥을 딛고 있던 발에 추진력을 가한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속도로 그의 몸이 스프링처럼 튕겨져 나오며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미친 듯이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으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메도 마찬가지·
뻑-!
나메는 훼이크 하나 없는 올곧은 공격을 옆으로 흘려내고
옆구리를 걷어차며 덕재의 중심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흐어억!”
깊은 곳에서 선명한 비명이 우러나온다· 방벽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일까·
턱-
가까스로 나메의 발목을 잡아챈 덕재가 팔을 확 당겨 그녀를 넘어뜨렸다·
“절대 포기 못해···!”
분명 거의 다 떨어진 마나로도 마법을 포기하지 못하는 덕재가 최후의 술식을 작성하였다·
“아크 방전 마법··· 자폭할 작정이에요?”
“이길 수 없으면 널 이기지라도 못하게 해야지· 하··· 하하하!”
나메가 작은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퉁퉁 쳐보지만 지근거리에서는 전혀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모든 오러를 나메의 발목을 잡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맥스웰 방정식이 거의 다 작성되기 직전에 나메가 모래를 한 움큼 쥐어 그의 얼굴에 흩뿌렸다·
“크아아악! 내 눈!”
[시전: 아크방-]
“감히!”
[파훼: 아크방전]
마법진이 채 시전되기도 전에 나메가 폐곡선을 선적분하여 나온 결괏값을 도출하여 파훼를 성공한다·
“뭐야 왜 마법이 안 나와!”
놀라울 정도로 빠른 파훼술식에 오덕재가 눈을 비비며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시전되지 않은 마법에 대한 부담은 오로지 시전자가 진다·
이내 찌릿찌릿한 격통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끄아아아악! 흐으··· 아아악!”
탈락을 시킬 거라면 지금이 적기·
아까의 격전으로 머리끈이 끊어져버려 나메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옵저버 카메라가 전투의 최후를 예측했다는 듯이 줌을 최대로 땡겨 나메의 표정을 화면 안에 담아냈다·
하얀 피부 위로 땀과 모래와 먼지가 전부 뒤섞여 꾀죄죄해진 얼굴을 찡그렸다·
고고고고-
피부 위에만 야트막하게 둘러진 오러가 마치 성난 불처럼 이글거리며 뿜어져나온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뜰 수 없다는 듯 햇빛이 구름에 가려 대련장 전체에 그늘이 지었다·
[시전: 융기]
[연쇄시전: 융기]
[연쇄시전: 융기]
3개의 기둥이 땅에서 솟아오른다·
나메는 깃털같이 가벼운 몸으로 기둥들을 차례대로 밟고 하늘 높이 뛰어오른다·
황금색의 오러가 태양을 대체한다·
공중에서 몸을 한바퀴 돌려 회전력을 극한으로 챙긴 나메는
이윽고 오른쪽 다리를 쭉 뻗어
발뒤꿈치로 덕재의 몸을 내리찍었다·
[카이젠 황궁무술: 대지 가르기]
콰아아아아아앙-!
일점에 모인 충격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두둑-
가녀린 체격에서 나오는 막대한 중량이 살과 근육을 짓누른다·
스스스스-
투명한 소립자 방벽이 극한까지 압축되며 참가자를 보호해보지만
쨍그랑-!
유리조각처럼 허무하게 떨어져나가며 충격의 일부는 오덕재가 오롯이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덕재는 일말의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남성의 육신이 모래더미에 파묻히고 마찰열로 무채색의 연기가 주변에 피어오를 즈음
기적을 만들어낸 소녀는 엉거주춤 바닥에 주저앉아 말 없이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소슬소슬한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스치고 지나갔다·
입 안에 씹히는 모래알을 뱉기도 귀찮아 침을 모아 꿀떡 삼켜버린다·
간단히 입술만 쓱 닦으며 차가운 바람을 깊게 한계까지 들이마쉰다·
“흐읍·”
뜨거운 날숨과 함께 나온 대련의 소감은 짧고 명료했다·
“가을바람이 달달하네·”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4명의 부심과 1명의 주심이 일제히 달려와 참가자들의 안위를 살폈다·
역사에 다시 없을 대련의 승패가 결정되고 관중들의 환호성이 메아리치듯 터져나오니
비로소 가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정말 ‘마나 살 돈 많아서 인방 안함’이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나메는 인방판을 떠난 적이 없답니다!! 언젠간 다시 돌아올 거예요!! 아마도?
나메가 가진 전생(에스타샤)의 기억은 ‘샤덴프로이데’를 주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메는 전생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답니다··!! 이러한 내용은 생일파티(2)에서 ‘지금 나의 기억에는 들어있지 않은 다양한 인연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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