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4
매직 드림 컨테스트는 리허설 따위 없이 모두 즉흥으로 진행된다·
클랜 홍보를 위해 찾아온 마도사들의 현생이 무척이나 바쁜 탓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컨테스트는 ‘마법 시연’이 주를 이룰 뿐 ‘스토리’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전 대본을 건네받은 유명 성우 출신 내레이터는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어떻게 흥미롭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헨젤과 그레텔’·
이곳 네버랜드에서 수십 번이나 더 겪어본 이야기였지만 그놈의 ‘각색’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스토리가 대본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가문 사람들과 존윅을 찍는 경우도 있었고 헨젤과 그레텔이 역으로 마녀를 과자로 만들어 잡아먹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다소 오싹오싹하지만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동화의 구색은 맞추니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언제나 인기가 많은 코미디 컨텐츠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녀가 받아본 로미오와 줄리엣의 내용은 한참이나 예상범위를 벗어났다·
이런 주제를 대중들 앞에서 시연해도 되는지 싶을 정도로·
“이··· 이건 하렘물?”
* * *
베로나 가문의 잘생긴 청년 로미오 아니 라온 클랜의 유망주 신연호는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네 사촌 벤볼리오가 얘기해 주더라고· ‘만물을 내려다보는 태양도 천지개벽이래 그런 미인은 못 봤을 걸!’ 정말 네가 그렇게 말했어 로미오?”
줄리엣이 로미오의 멱살을 부여잡고 쏘아붙였다·
이는 도도하고 차가운 얼음공주 로잘린을 칭하는 말이었다·
“줄리엣 내가 그때는 잠시 눈이 삐었나 봐· 그 아이가 변신마법을 쓰고 있어서-”
“여러분! 로미오가 원래 좋아했던 사람이 제가 정말 아끼는 동생 로잘린 캐퓰릿이었답니다! 사랑하는 나의 로미오가 아동성애자였다니··· 이게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립니까?”
“줄리엣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조용히 해! 발언 중이야!”
줄리엣이 억울하듯 가슴을 팡팡 치며 대중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로잘린이 누구야?’ ‘로미오가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어?’ 등의 아리송한 반응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사실 로미오는 줄리엣이 아니라 로잘린을 연모하고 있었으며 이는 셰익스피어도 공언한 사실이었다·
로렌스 신부가 주관하는 비밀 결혼식 직전 그 사실이 줄리엣에게 발각되자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자초지종을 들었다·
“로잘린이 누구냐고요? 바로 저 아이입니다!”
줄리엣이 커튼 너머를 가리켰다·
밝은 조명이 팍 켜지며 소녀의 검은 실루엣이 드러났다·
이윽고 커튼이 양쪽으로 열리며 셰익스피어의 스토리를 아작내버린 주인공이 등장했다·
키 112cm의 노나메는 발코니 세트장 위로 폴짝 올라가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대중들이 로미오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저런저런 썩을 놈··· 새파랗게 어린 아이를···”
“어머 진짜 노나메잖아? 너무 귀엽다!”
“엄마 나도 저 옷 사줘!”
“로리콘은 참교육 해버려! 줄리엣 이걸 참아?”
신연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 로맨스 극의 주인공이라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차출되었는데 졸지에 아동성애자 취급을 받게 되다니·
‘진짜 너무해··· 다시는 내가 이거 참가하나봐라·’
하늘색 망토를 두른 나메는 로미오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그쪽에게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앙증맞은 손이 허공을 스쳐지나갈 때마다 눈송이가 피어올라 비눗방울처럼 관객석쪽으로 날아갔다·
어린이 관객들이 이를 잡아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대마법사 로잘린은 여전히 로미오를 좋아했답니다· 하지만 로미오는 나이 차이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과연 로미오는 로잘린의 눈을 피해 줄리엣과 무사히 결혼을 치를 수 있을까요?]
프로 성우의 차분한 내레이션이 귀에 팍팍 꽂힌다·
“하하···”
한번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극 밖으로 퇴장하는 나메· 이제 그녀는 결말부가 되어서야 다시 등장할 것이다·
신연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의 한 학기 장학금을 위해서라면 어쨌거나 이 막장 드라마의 엔딩을 봐야만 했으니까·
* * *
무대 뒤로 내려오니 여러 클랜원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꺄아악 카와이’ 같이 짐승에 가까운 소리들은 가볍게 무시하고 대충 사람 말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그 중 하나는 우리 세피론 아카데미 6학년에 다니는 남궁진 선배였다·
“노나메 너··· 너 왜 라온 클랜 무대에서 참가하고 있어? 헨젤과 그레텔 나오기로 했잖아? 우릴 배신하다니!”
“거기도 나오고 여기도 나오고··· 그리고 배신이라뇨· 원래 라온 클랜에 먼저 나가기로 했거든요? 그 다음에 창천남궁 클랜에서도 허락해준 거고· 엄밀히 말하면 제가 라온 클랜을 배신한 셈이죠·”
“야! 그게 그거잖아! 우리 경쟁 구도인데 둘 다 참가해버리면 어떡해!”
“뭐 어때요· 제 클랜도 아닌데·”
“그러네· 하긴·”
빠른 수긍을 하는 남궁진의 태도가 보기 좋았다·
“선배도 컨테스트 나가요?”
“응·”
“무슨 역할인데요·”
“파랑새· 헨젤과 그레텔 자매를 과자집까지 안내하는 역할이야·”
“그럼 악역이네요·”
“악역··· 응? 악역이 맞나?”
내가 허를 제대로 찔렀나본지 남궁진이 한참동안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뭐 마법 쓰는 것도 있어요?”
“당연하지· ‘창천화창(蒼天火槍)’이라는 우리 클랜 고유마도를 쓸 거야· 4서클 같은 3서클 마법인데 창이 나선형 홈을 따라 이동하면서 마찰열을 일으키고 각운동량을 극대화시키는 원리지·”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설명·
근데 얘는 정말 다 알고 설명해주는 건가?
“그럼 깜짝 퀴즈· 각운동량 보존법칙은? 맞추면 5만원·”
“어어··· 음··· 어어··· 김연아···”
“김연아?”
“우리 과외쌤이 분명 알려줬는데 뭐였더라··· 아 잠깐만 있어봐 설명해줄 수 있어!”
그럼 그렇지·
이런 류의 마법은 무턱대고 외우기만 해도 시전은 되니까·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쓸 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아카데미 대항전을 5년 연속으로 이긴 사람은 역시 떡잎부터 다른 걸까·
“그런데 화창이면 화계마도?”
“응! 난 화계마도밖에 안 써·”
“아니 파랑새가 무슨 화계마도를 써요?”
“뭐··· 뭐 어때! 파랑새가 불을 다루지 말라는 법이 있어? 막 입에서 브레스도 좀 뿜어주고!”
자기가 말해놓고도 민망했는지 남궁진은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그럼 나메 너는? 대단한 마법이라도 준비해왔냐?”
남궁진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나메는 바닥에 사방치기 판이 있는 걸 확인하고는 1번 네모 앞에 섰다·
“서클은 자유도예요·”
“응?”
“1서클 2서클 3서클· 여기까지가 하위서클· 자연현상을 기술하고 모방하고 때로는 이용하죠·”
각 숫자에 맞추어 앞으로 전진할 때마다 양갈래 머리가 위아래로 요동친다·
그리고 나메가 두 발을 동시에 폴짝 뛰어 앞으로 움직였다·
“4서클 5서클· 여기까지는 중위서클· 자연이 인간의 상상력을 시험하는 구역이죠· 나무 하나로 집도 만들고 서랍도 만들고 만년필도 만들어버리는 그런 상상력을·”
“나도 알아· 그런건 아카데미에서 다 가르쳐주잖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소년을 위해 나메는 다시 외발로 6번칸을 향해 뛰었다·
“6서클 7서클 8서클· 여기서부터는 고위서클· 마법이 자연을 초월하고 때로는 파괴하기도 해요· 그 너머의 9서클과 10서클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자연법칙을 만들어낸다고 하고요·”
“그래서?”
“선배가 4서클 같은 3서클을 보여준다고 그랬죠?”
“응·”
“그럼 전 6서클 같은 5서클을 보여줄게요· 상상력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 * *
극은 절정으로 치닫았다·
내레이터는 맨발로 작두 위를 타는 심정으로 스토리의 개연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살을 붙이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흑··· 끄윽··· 로잘린··· 로잘린 네가 한 짓이지! 나의 줄리엣을 독살할 사람이 너밖에 더 있냐고!”
메소드 연기에 심취한 신연호는 줄리엣의 무덤 앞에서 로잘린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로미오는 줄리엣을 죽인 것이 로잘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몸을 차갑게 만들어 심장을 멈추는 마법은 로잘린만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스토리가 틀어졌다·
원래대로라면 로미오는 파리스 백작과의 결투에서 승리한 후 삶을 비관하여 독약을 마시고 자살해야했다·
조금 더 희망찬 버전에서는 로렌스 신부가 도착해서 사실 줄리엣은 살아있다고 그를 만류하는 것이었다·
원작에서도 대본에서도 그가 이 시점에서 로잘린을 만나는 경우는 없었다·
때마침 계단 아래에서 나메가 얼음 망토를 질질 끌고 올라왔다· 스태프들이 그녀를 긴급 투입한 모양이다·
내레이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로잘린은 로미오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줄리엣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로미오에게 다시 한번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죠· 줄리엣이 살아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로잘린은 덩달아 천하에 다시 없는 악녀가 되었다·
성우의 투철한 프로 정신으로 급조된 설정을 나메가 이어받았다·
“줄리엣은 이미 죽었어· 로미오 만약 내 나이가 문제가 된다면·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10년이고 20년이고 널 기다려줄 수 있어·”
섬뜩하면서도 로맨틱한 대사가 나메의 작은 입 사이로 흘러나온다·
‘오오’거리며 자그맣게 감탄사를 내놓는 관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이야기의 결말을 기다렸다·
[시전: 라온의 창 Ⅱ]
빛으로 이루어진 성창이 마법진에서 튀어나와 나메의 발밑에 콰직하고 박혔다·
비스듬하게 박힌 성창이 나메에게 단독 스포트라이트를 제공했다·
“그럼 보여줘 로잘린· 줄리엣을 죽이면서까지 네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그 잔혹한 진심을·”
오그라드는 대사를 내뱉은 신연호 때문에 나메의 팔에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도대체 이 인간은 연극에 얼마나 진심인거야···! 후우··· 프로 정신· 프로 정신·’
스스로를 세뇌한 나메는 눈을 딱 감고 다음 대사를 내뱉었다·
“그럼 이 자리에서 증명할게· 줄리엣과 나· 둘 중에 누가 더 아름다운 여인인지· 저기 계신 별님들이 알아봐주실 거야·”
나메가 관객들을 가리키며 선언했다·
그나마 떠들썩했던 분위기조차 사그라들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메는 기껏 열심히 모아놓은 붉은색 뿔을 해산시키고 새로운 마법을 준비했다·
[5서클 시전: 아카식 레코드]
[고유마도 – 마왕의 뿔]
그녀의 머리 위로 크기가 서로 다른 다섯 개의 마법진이 겹쳐졌다·
마법진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먼지들이 뼈대를 이루고 주변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투박한 뿔이 미처 다 자라기도 전에 나메가 한쪽 무릎을 꿇어 마력을 있는대로 끌어올렸다·
앵두같은 입술이 정말 바쁘게도 오므려졌다가 다시 펴진다·
수십개의 룬문자를 암송한 끝에 나온 마법·
[5서클 범시전: 글라키스 이마고(glácĭes imágo)]
속칭 얼음 환영·
나메는 손목에 마법진을 칭칭 두르더니 주먹을 꽉 쥐고 그대로 돌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터엉-!
마법의 시작은 맑은 종소리였다·
쩌저적-
주먹을 내리친 지점을 중심으로 바닥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장애물을 만나면 위로 투명한 막을 씌우고 장애물이 없으면 계속해서 쭉쭉 뻗어나갔다·
“대충 이쯤에 의자가 있었던가·”
그녀가 팔을 슬쩍 들어보이자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결정을 이뤘다·
성인 남성이 셋이 앉아도 너끈한 거대한 얼음 옥좌가 솟아오른 것이다·
나메는 그 위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마법진을 하늘 위로 날려보냈다·
수십개의 기둥이 일시에 솟아오르며 땅과 하늘을 이었다·
허공에 자리잡은 마법진은 곧 거대한 천장으로 변모하여 관객석까지 쭉쭉 확장하였다·
“할머니 저기 성이 머리 위에 떨어져···!”
“오메나 저게 뭐다냐?”
정순한 얼음은 곧 마음의 거울이다·
얼음 천장 혹은 얼음 거울 너머에 비친 것은 위에서 바라본 거대한 중세도시의 풍경이었다·
문명을 이룬 달이 당장 자신들의 머리 위로 추락하면 이런 기분일까·
사람들이 하나둘씩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마법의 현장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거꾸로 매달려있는 높은 시계탑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원형 광장의 아름다운 분수에서 뿜어져 나온 물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갔다·
도시를 관통하는 구불구불한 강줄기 거미줄처럼 구석구석 나 있는 복잡한 도로 외부를 경계짓는 높은 성벽도 웅장함에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중앙에 떡하니 자리잡은 드넓은 정원과 외롭고도 화려한 궁전까지·
무채색의 거울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품고 있었다·
한 소녀의 머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엿본 사람들이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런 엄청난 광경을 보여준 이상 관객들은 더 이상 극에 몰입할 여유도 없었다·
“노나메· 너 설마··· 이게 네 심상세계를 보여준 거야?”
신연호가 미간을 찡그리며 천장과 나메를 번갈아보았다·
심상세계는 ‘나’로부터 확장되는 개념이다·
‘나’와 상호작용하는 개체가 많을수록 담아야하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와··· 진짜 말도 안 된다·”
그리고 이건 하나의 세상을 모조리 머릿속에 구현해버린 소녀를 향한 예찬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마나인방 재밌게 잘 즐기고 계신가요!! 적어도 나메는 이 피버타임(공짜)을 재밌게 누리고 있는 것 같아서 제가 다 행복하네요!!
술냥이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저도 독자님이 계속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메를 볼 때마다 행복에너지를 충전하고 가세요!!
(대충 닥터스트레인지 도시환영짤)
그런데 마나를 있는대로 써버리면 다음 컨테스트는 어떡하죠··!! 오리역할도 남았는데 말이죠!!
마나인방의 새로운 표지는 10월 첫째주에 나올 예정입니다!! 나메와 아델라가 동시에 나올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릴게요!!
다음화 보기
![Arcane Sniper [Matan’s Shooter]](https://cpunovel.b-cdn.net/wp-content/uploads/2024/04/arcane-sniper.jpg "Arcane Sniper [Matan’s Shoo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