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1
기후와 환경에 관계없이 전 세계에 초록 트리가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나고 사과모양의 전구들이 별을 대신하여 밤길을 밝히는 날·
크리스마스가 어느덧 이 주도 남지 않은 시기였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으면서 퇴색되고 한 해의 마무리를 짓는 기념일로써 받아들여지곤 했다·
[Only I♡N Seoul]
서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홀로그램 강국답게 높은 빌딩의 벽면에는 옥외광고가 상영되고 있었다·
빨간색 산타모자를 쓴 소녀가 선물박스 안에서 튀어나온다·
그녀가 마법진을 그리더니 선물박스에서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와 커다란 얼음성을 구축했다·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다시 뚜방뚜방 카메라 앞으로 걸어온 나메가 마이크를 쥐고 입을 열었다·
[모던 아울렛에서 크리스마스 특별 이벤트가 열린다고 하니까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QR코드로 확인해주세요· 아아 그럼 지금까지 리틀산타 노나메였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루했던 8차선 도로 퇴근길에 상큼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직장인들은 모두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헤매느라 바빴다·
그리고 발견한 나메의 산타복장·
최근들어 여러 광고에 자주 출몰하는 아이였다·
인간의 평균치를 아득히 넘는 지능으로 수학 난제를 풀어버리고 7년 윗선배를 대련으로 이겨버린 불가해의 존재·
실제 나이는 8살이 아니라느니 발푸르기스에게 뇌를 개조당한 슈퍼솔져라느니 이런저런 음모론도 심심치 않게 튀어나왔지만 진실은 알 길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대중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던 아이였기에 거리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매체에서 보이는 나메의 모습은 사뭇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저 아이가 원래 저렇게 예뻤었나?”
어린아이의 외모를 보고 ‘귀엽다’가 아니라 ‘예쁘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건 절대로 흔한 일이 아니다·
얼굴이 작고 눈이 큰 것도 맞지만 그보다 대중들의 눈길을 끄는 묘한 매력이 존재했다·
그리고 단순히 ‘느낌’에 그칠 요소는 여러 마케팅 관계자들의 세심한 손길을 거쳐 ‘매출’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다·
[이상윤·ENVY 제친 노나메 광고모델 브랜드평판 8위· 지금 대기업들은 나메바라기?]
* * *
나메가 한 달 만에 광고 10개를 찍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커뮤니티는 나메에 대한 이야기로 들썩였다·
[노나메 리미터 풀리니까 아주 그냥 미쳐 날뛰네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광고 받은 것도 삼성 나이키 모던 배스킨 기가스터디 초거대기업밖에 없음ㅋㅋㅋㅋ
광고를 10개 받았다는 사실보다 수백 개 중에서 골라갔다는 게 더 놀랍다·
[댓글]
-하나당 최소 1억이라는데·
└ 울프상 안 받은 이유가 있었네ㅋㅋ 아이스크림 한번 할짝이면 1억인데ㅋㅋㅋㅋ
└ 이거였누ㅋㅋㅋㅋ
-농나메 볼 깨물어주고 싶다 진짜 미치도록 귀여워ㅠㅠㅠㅠ
-배스킨은 걍 마케팅부터 잘못했음· 얘를 모델로만 쓸 게 아니라 노나메 에디션 아이스크림 하나 출시해서 팔았으면 전국 품절 예상했다·
└ 님 천재임?
└ 노나메는 무슨 맛일까···
└ 끼야아아아악!
[나메야 네가 이렇게까지 행복하길 바란 게···]
사실 맞아·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정부 대신에
기업들의 골수를 쪽쪽 빨아먹으면서 무럭무럭 성장하려무나·
[댓글]
-엔비는 광고 단가 10억이고 나메는 기껏해야 2억도 안 넘는다는데 대체 뭐가 넘은 거임?(진짜 모름)
└ ㅂㅅ아 엔비는 5인조잖아· 게다가 걔네들은 소속사한테 떼먹히지만 나메는 혼자 꿀꺽한다·
-아이돌 뮤비는 안 보지만 나메 나오는 광고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음ㅋㅋㅋ
-그래 돈은 이렇게 벌어야지ㅠㅠㅠ
[노나메 광고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hmmteresting]
1· 상대적 박탈감 별로 없음· 그나마 있는 것마저도 공익광고 출연료 기부로 완전히 무마시켜버림·
2· 애국 마케팅 가능· 스위스 이민 제안 거절했던 게 아마 제일 컸을 것 같음·
3· 아이돌처럼 이미지가 고착화된 게 아니라서 광고 스펙트럼이 넓음· 고급 이미지 대중성 모두 다 챙길 수 있음·
4· 그냥 ㅈㄴ 귀여움(제일 중요)· 잘 꾸미니까 웬만한 아역배우들은 명함도 못 내밀 듯·
(산타나메·jpg)
그저 GOD·
[댓글]
-불쌍한 애새끼 뭐가 좋다고 아이돌처럼 빨아대는지 몰랐는데 조금은 알 것 같네·
└ 쿨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에는 과거사가 너무 참혹해서 ㅎㅎ···
└ 하다못해 정신병자한테 잘못 걸려서 테러까지 당했잖아·
└ 인생이 너무 기구한데 비해 애가 밝으니까 더 좋아해주는 듯·
-머리만 좋으면 정말 한계가 없는 거냐? 배우 지망생인데 공익광고 보고 벽 느꼈다·
└ 그거 진짜 레전드였는데 하필 논란 때문에 묻혀서 아쉬움·
└ 논란거리 된 거 자체가 난 이해가 안 됨· 나메가 어련히 알아서 잘 골랐겠지·
-지상파 나온 거라곤 아카데미 대항전 하나밖에 없는데 광고 10개ㅋㅋㅋㅋ 전무후무하다 정말·
-이게 광고 원기옥?
[나메한테 선물 보내주고 싶은데 평소에 취미가 뭘까?]
평소 나메 이미지 생각하면 자수 뜨개질 클래식 음악 감상 꽃꽂이 티타임 좋아할 것 같은데!
[댓글]
-헉··· 님 테러리스트로 신고함·
└ (작성자): 안전배송으로 보낼 거야!
-요즘 초등학생들은 뭘 좋아하냐?
└ 아이돌 포카 모으기 로블록스 슬라임 가지고 놀기 틱톡 챌린지 스키비디 토일렛 영상 시청하기·
└ 와··· 나메라면 절대 안 할 것 같은 것만 싹 다 모아뒀네ㅋㅋㅋㅋㅋ
└ 잼잘알·
-아니 귀족이냐고ㅋㅋㅋㅋㅋ
-놀랍게도 나메는 클래식 음악 감상이 진짜 취미이다·
└ ㄷㄷ?
-광고에서 진짜 애가 우아하게 나옴· 나만 그렇게 생각함?
└ 우아하다라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약간 백조같은 느낌으로다가·
└ ㅇㅇ 조금 킹받는 백조같음·
마케터들이 어떤 이미지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람이라도 인상이 확확 달라질 수 있다·
나메가 우아하면서도 은근히 친근한 인상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
수많은 PD와 작가 미용사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들이 동원되어 나메가 귀엽고 순진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힘썼다·
광고 모음집을 엮어 만든 ‘나메의 입덕 모먼트’ 브이튜브 영상이 널리 퍼지면서 대기업 임원들은 즐거운 월요일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기대를 철저히 배반하기라도 한 듯 나메는 가히 충격적인 장소에서 목격되었다·
[실시간 베스트]
[ㄷㄷㄷ 뭐냐? 지금 내 옆에 노나메 앉아 있음··· 이거 실화임?][279]
(노나메 실물·jpg)
대한민국 유일신이랑 영접해서 같이 사진 찍었다·
내 얼굴은 모자이크 했음· 얼굴크기 차이 나도 잘 아니까 굳이 언급 X·
지금 내 옆자리에 노나메랑 나메 아버님 앉아 계심·
사진 찍고 손 벌벌 떨면서 호다닥 글 쓰고 있음·
엌ㅋ 지금 나메가 커뮤니티에 올리는 거냐면서 물었음ㅋㅋㅋ 이럼 허락 받은 거겠지···?
여기가 어디냐면 이런 곳임·
(UFC SEOUL 서울올림픽체조경기장·jpg)
* * *
“정말 진귀한 장면인데요! 지금 양측 선수들이 입장하기도 전에 스타디움 관객석 쪽에서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나메님! 혹시 저 기억하세요? 저희 그때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봤잖아요!”
스타디움 내에 마이크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지금 싸인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댄다·
지미집 카메라가 내쪽을 비추길래 그쪽을 보고 입모양으로 ‘김재성 캐스터님이요’라고 작게 말했다·
어차피 내 말이 거기까지 들리지는 않을 테니까·
“들으셨어요? 기억하네요! 와 제가 그 때 옷장에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말이죠!”
“아니 아무것도 안 들렸던 것 같은데요?”
“노나메님이 입모양으로 ‘김재성 캐스터님 잘생겼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나중에 집 가서 돌려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아하하 네에 꼭 고소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해설들과 캐스터들의 티키타카도 듣는 게 묘미였는데 들을 여유도 없다·
지금으로서는 내 손이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나메야! 아빠 따라서 UFC 보러 온 거야?”
“제가 먼저 가자고 졸랐어요·”
“와 진짜? 너 이런 거 좋아했구나! 싸인 고마워!”
“나메야 여기도 여기도!”
안내요원이 개입한 뒤로 더 이상 사람들이 몰려들지는 않았다·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겠네·
나 때문에 억지로 끌려나온 천교수는 흥미롭다는 듯이 스타디움 내부를 둘러보았다·
원래 혼자 오고 싶었지만 연령이 연령인지라 보호자는 필수였으니까·
“참 언제 또 티케팅을 해가지고· 그렇게 좋니?”
“많이 설레네요· 제가 대항전 나갔을 때보다 더 떨려요·”
“허허· 오러도 안 두르고 싸우는 게 뭐가 좋다고·”
천만의 말씀·
인간은 언제나 로망을 추구한다·
손을 쓰지 않고 공을 다루는 축구도 라켓으로만 공을 다루어야하는 테니스도 모두 인간의 주특기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에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대련은 기껏해야 정신을 조금 잃는 정도이지·
그보다는 코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피부가 찢어져 피가 튀기기도 하는 싸움이 훨씬 박진감 넘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동경한다고 했던가·
오러 없이도 폭발적인 운동수행능력과 동물같은 반사신경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대단할 따름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런 세상에서도 UFC가 엄청 흥행을 하는 거겠지· 원래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비장한 각오를 다진 양 선수들이 차례대로 입장하고 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옥타곤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이동하며 선수들의 이동경로를 보여주었다·
각 선수들이 상의를 벗어던지고 심판들이 얼굴에 꼼꼼이 바세린을 발라준다·
다음은 오러하트 검사이다·
옥타곤 입장 기준으로 체내에 남아있는 오러가 10kE 미만인지 확인하는 작업이고 어쩌면 도핑검사 이상으로 철저하게 다루어지는 절차였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각 선수들은 1층에 앉은 관객 중 하나를 지목해 상대 선수의 오러하트 검사 확인을 부탁한다·
이는 혹여나 심판진들까지 매수된 걸 방지하고자 만든 규칙이었다· 지금은 팬서비스 차원이 더욱 컸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뒤꿈치를 한계까지 들어올리고는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선수들의 실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어느쪽이 지목하든 상관없다·
“1-2 012·”
자카에프 선수는 정반대방향에 있던 외국인을 지목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경기인만큼 외국인이 뽑히는 게 당연하겠지·
서종찬 선수가 나를 뽑아줄 낮은 확률에 기대볼 수밖에·
“1-5 016·”
“어?”
주머니에서 티켓을 꺼내 확인했다·
1-5 016· 내 자리이다·
“오! 나메님 축하해요!”
“나메야 빨리 가보려무나·”
“네네!”
환호성을 한몸에 받고 사람들 사이를 잽싸게 빠져나오면서 서종찬 선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내가 여기 있던 걸 미리부터 눈치챈 모양이었다·
“가서 확실하게 감시하고 와줘요 꼬마아가씨·”
“네· 걱정 마세요·”
자카에프가 0·1KE 아니 0·01kE라도 초과하는 순간 이 자리에서 오러하트를 적출해내버릴 테니까·
러시아 출신 선수의 몸에 복잡한 전선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UFC에 어린 꼬마가 다 왔네? 머리 깨지는 소리 듣고 놀라지나 말라고 하하하!”
별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는 도발이다·
뚱뚱한 심판이 버튼을 누르자 오러하트 측정이 바로 재개되었다·
삑-!
[9·98kE]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쉬움을 표했다·
“안타깝네요· 차라리 규정이라도 위반했으면 여기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핳· 나도 참 서종찬과의 파이트가 기대되네· 나 응원해줄 거지?”
“설마요·”
“그럼 꺼져·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
“엄마 없어요·”
“···”
자카에프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복잡한 표정을 지어냈다·
참··· 요즘 UFC 선수들은 마음이 너무 심약한 게 문제다·
“에이 제가 그 정도 도발도 모를까봐요? 신경쓰지 말고 두 분 다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세요· 뭐 개인적으로 그쪽이 졌으면 좋겠지만요·”
서종찬 선수도 9·96kE로 통과·
나는 자리로 되돌아가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를 관람했다·
카메라가 자꾸만 내 쪽을 비추었던 게 기분 탓이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알빠노혹등고래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다른 팬아트를 못 보여드리는 게 너무 안타깝네요··!!
베른슈타인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마나인방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오니까 14화부터 311화까지 거의 300화동안 작중 시간이 1년도 안 지났더라고요!! 어린 나메를 오랫동안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8살 광고 모델의 은밀한 취미가 UFC 직관이라니 헉··!!
광고주들 뒷목 잡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나메는 언제나 정정당당한 대결을 좋아했습니다!! 물론 나메가 직접 옥타곤에 설 일은 없겠지만요··!!
노나메 아이스크림은 대체 무슨 맛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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