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6
질투의 침식은 주변인들의 동경과 질투를 서서히 증오심으로 개변시킨다·
따라서 황녀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인물은 처음부터 그녀를 해할 악심을 품고 있거나 자기애가 극도로 강한 나르시시스트거나 부모를 죽인 원수와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성욕에 잡아먹힌 괴물들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심과 불신은 나메에게 오래 전부터 하나의 생존본능으로 자리매김했다·
“나 말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어· 우리 둘이 아무도 모르는 무인도로 떠나자! 연락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그 누구도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을 거야!”
단 둘이 무인도로 떠나자는 메이드의 제안·
[▶그래 떠나자· / ▶나는 내 가문을 저버릴 수 없어·]
[▶나는 내 가문을 저버릴 수 없어· 너라도 떠나· 그 편이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길이야·]
나메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손을 단칼에 뿌리쳤다·
“나메는 내가 굳이 없어도 상관 없는 거구나··· 그래도 나는 널 포기할 수 없는 걸· 미안해 노나메···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헤헤·”
푸른 하늘이 노을빛으로 변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bgm이 깔렸다·
“이로써 마이 디어 메이드도 엔딩까지 온 것 같네요· 이 NPC는 얼마나 강력한지 한번 확인해볼까요?”
숨 쉬듯이 얀데레 루트만 착착 골라내는 노나메·
사랑을 모두 내어줄 것처럼 따스하게 굴다가 마지막에 히로인의 마음을 처참하게 꺾어버리는 선택지에 시청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순수악 노나메ㅋㅋㅋㅋㅋㅋㅋ
-미연시는 스피드런이 아니에요! 도장깨기는 더더욱 아니고요!
-이··· 이게 뭐노···!
-크아아아악 이건 미연시가 아니야!
└ 미소녀 연속격파 시뮬레이션이라서 맞는데요?
-배드엔딩을 클리어로 치면 안 되지!
└ 모솔입니다만· 문제라도?
-아 게임당 최종보스는 하나씩 있어야 한다고ㅋㅋㅋㅋ
└ 뇌가 전투에 절여진 아이ㅠㅠㅠ
흑화한 메이드가 맨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든다·
전체이용가 판이라 기존에 주인공의 심장을 찌르려던 쌍검이 ‘검열삭제’ 당했기 때문이다·
확정된 배드엔딩으로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는 미소녀 메이드·
붙잡혀도 끝이고 일정 수준의 대미지를 입어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벼랑 끝의 승부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가 관건이었다·
나메는 사이드스텝으로 벽에서 빠져나와 원투-바디-카프킥 콤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때려넣었다·
빠박-!
나메가 다시 백스텝으로 거리를 벌린다·
물결치는 금발머리가 주홍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방금 전까지 사랑을 속삭였던 이들이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
지능 낮은 NPC가 조금 주춤거리고 나메도 가드를 세워 틈새로 노려보았다·
-와 손 개빠르네ㅋㅋㅋㅋ 순식간에 4대 정타로 들어감ㅋㅋㅋ
-노네임 마망!
-정을 주지 않기 위한 대화 올스킵ㅋㅋㅋㅋㅋ
-여캐들 대사 더빙 기원했는데ㅠㅠㅠㅠㅠ
-미연시 20분 -> 전투 20분 -> 미연시 20분 무한 반복ㅋㅋㅋㅋ
└ 나메는 걍 전투센스가 미쳤어 ㅋㅋㅋ
-미연시에는 왜 ASI를 안 넣는 거냐? 반응 하나 없는 인형들이랑 연애하는 걸 대체 무슨 재미로 함?
└ 하지만 커뮤 스킬이 부족하면 ASI가 훨씬 더 부담스러운 걸···
└ 이 녀석들 ASI보다 사회성이 없는 wwww
무식하게 두 팔 벌려 달려오던 메이드가 자세를 낮추어 기회를 엿보았다·
플레이어를 빨리 탈락시켜야만 하는 전투 AI가 승률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나메가 앞손을 뻗는 순간 잽싸게 달려들어 무릎에 태클을 걸었다·
메이드의 넓은 치맛자락이 휘날린다·
“여기까지는 다 똑같네·”
작게 중얼거린 나메가 메이드의 태클을 한발로 견뎌내며 중심을 잡았다·
모든 회사가 비슷한 전투 알고리즘을 채용하는지 행동 패턴이 익숙했다·
일체의 고민도 없이 메이드의 얇은 다리를 붙잡고 등으로 바닥을 반바퀴 굴렀다·
반동으로 덩달아 이끌려오는 메이드를 되치기로 바닥에 내다꽂았다·
쿵-!
이윽고 허벅지와 어깨 관절을 붙잡힌 메이드는 나메에게 꼼짝없이 붙잡혀 손만 허우적댔다·
“잘 보세요· 이렇게 등이 보이게 반바퀴를 굴려서 다리를 양팔 사이에 끼우면· 짜잔· 보스턴 크랩 새우꺾기 서브미션이 나오죠?”
프로레슬링 기술에 메이드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정말 끊어지기 직전까지 휘었다·
[‘대학원생살려’님이 1000원 후원!]
-방장님 카메라 카메라! 메이드 팬티 보여요 지금!
빅토리안 스커트가 완전히 뒤집혀져 하얀색 가터벨트 속옷이 여과없이 방송에 송출됐다·
19금 씬을 제외하면 게임 상에서 절대로 볼 수 없었던 강철 치마의 안쪽이 공개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뭐냐 어케 보였어ㅋㅋㅋㅋㅋㅋ
-개발자님 여기 버그났어요!
-별 해괴한 짓을 하니까 이런 버그도 나네ㅋㅋㅋㅋ
-‘마이디어메이드’ 전체이용가 팬티 노출 논란
└ 이건 좀 많이 억울하겠네ㅋㅋㅋㅋ
-나도 가서 따라해본다· 얀데레 루트에서 라일리 서브미션으로 이기면 되는 거지?
└ 넌 성인이잖아 그냥 19금 버전을 사서 해ㅋㅋㅋㅋ
└ 꼴알못이네· 하면 안 되는 배덕감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 어지럽다 증말ㅋㅋㅋㅋㅋ
“앗!”
메이드의 두 다리를 풀어주자마자 고통 없이 벌떡 일어난다·
다행히 치마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방송 정지의 위기에 빠진 나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의도 아닌데··· 이 정도 수위는 괜찮겠죠? 설마 우리 방에 트위시 관리자가 상주하고 있을 리가·”
곁눈질로 채팅방을 흘끔 바라보니 이미 경찰들에게 포위된 모양이었다·
-(★twish_dooly): 헉 들켰다!
└ 경찰 떴다 돔황쳐!
-아니 관리자가 한 명도 아니고 몇 명이야 이게ㅋㅋㅋㅋㅋ
-너희들 제발 크리스마스에 야근 좀 하지 마ㅠㅠㅠㅠ 우리 좀 놀게 내버려둬!
-사실 경찰님도 즐기셨잖아요!
-(★twish_milkyway): 저흰 괜찮아요! 아마도?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나메 방 몰래 놀러와서 다같이 즐기고 있었네 관리자쉑들ㅋㅋㅋㅋ
경찰들이 시위대와 같이 어깨동무를 하는 평화로운 크리스마스 이브의 현장·
면책권을 얻은 나메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관리자들의 허락도 받았겠다·
선정성은 둘째치고 폭력성의 수위를 올려도 괜찮을 듯 싶었다·
메이드의 근육이 점점 부풀어오르더니 그녀는 어느새 키가 2m 가까이 되는 거인으로 변하였다·
“아 이건 좀 끔찍하네·”
나메가 혀를 끌끌 차며 탄식했다·
황금색 오러로 팔에는 강기까지 둘렀다·
“지금부터 심약자 노인 임산부 어린이 등은 시청에 주의를 바랍니다·”
쿠과과광-!
아까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속도로 두 여인이 일점에서 격돌했다·
강한 충격파에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세차게 흔들린다·
파바박-!
깊숙이 파고든 자리에서 메이드의 주먹이 사정없이 나메를 두들긴다·
거센 풍압에도 나메는 눈 하나 깜박이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야수같은 동체시력으로 메이드의 움직임을 끝까지 쫓아 기어이 빈틈을 찾아냈다·
“흡!”
들숨과 함께 뻗어지는 주먹·
콰과과광-!
거구의 메이드가 뒤로 날아가며 벽에 처박힌다·
나메가 다시 뒷발을 굴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동작·
메이드의 어깨 위에 올라타 다리로 목을 세게 조인다·
동시에 오러의 실을 앵커체인의 구조로 엮고 끝에는 닻을 만들어 천장에 깊게 뿌리박았다·
반대쪽 체인은 다시 메이드의 몸에 칭칭 감는다·
교수형에 처해지듯 2미터 거구의 메이드가 서서히 바닥에서 몸이 떨어졌다·
나메가 악을 쓰고 체인을 당겨서 NPC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시켰다·
인간이라면 길어도 수 분 이내에 목뼈와 가슴뼈가 으스러지고 목숨이 끊어질 터·
하지만 메이드 라일리의 몸이 0과 1로 변하여 끝끝내 증발하였다·
[system: NPC ‘라일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Uncaught TypeError: Cannot read property ‘Reyley’ of null·)
암전되는 시야·
단 둘이 무인도로 떠나자는 메이드의 제안이 다시금 두둥실 떠오른다·
[▶그래 떠나자· / ▶나는 내 가문을 저버릴 수 없어·]
“···”
[▶그래 떠나자· 나는 라일리의 영원한 주인이니까·]
나메의 손이 잠시 멈칫하더니 왼쪽으로 쏠렸다·
어느새 귀여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라일리가 눈물을 훔치며 주인공과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
트루엔딩도 배드엔딩도 아닌 노말엔딩·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마이 디어 메이드’에서 나메가 거둔 결과였다·
[Ending 7*%@8: 영!#아원&!담?>히과?함#@이&께브?@야]
* * *
“후아 재밌었다! 다음 달에 스네즈나야 지역 개방이라니! 크리스마스 이벤트 때 다이아나 많이 모아놔야징!”
늦은 새벽 아델라는 당당하게 꼬리를 씰룩이며 프라이빗 룸으로 돌아왔다·
여성 스트리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송을 안 하면 문제가 된다고?
버튜버도 예외는 아니라고?
‘몸이 없는데 어쩔비스포크세탁기!’
도리어 역발상으로 방송을 안 해도 자신에겐 문제가 안 생긴다는 걸 깨달아버린 아델라는 카리리 사장의 애원을 끝끝내 무시했다·
겐신 크리스마스 전야제는 그야말로 완벽한 축제였다·
중국의 거대한 자본을 맛본 아사네코 아델라·
그녀는 인벤토리 창에서 피규어와 족자봉을 비롯한 경품을 차례차례 꺼내며 짐정리를 시작했다·
“으잉···? 이게 왜 여기 나와있지?”
침대 밑에 숨겨놓았던 미연시 확장팩이 바닥에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진엔딩만 먼저 빠르게 본 뒤 나중에 시간이 날 때 틈틈이 나머지 엔딩을 해금하려고 남겨둔 것이다·
“아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딱 오늘 하루만 밤 새야겠다· 딱 하루 정도야 뭐!”
잠옷차림으로 갈아입은 아델라는 침대에 누워 홀로그램을 작동시켰다·
“2D로 하는 게 또 낭만이 있걸랑·”
밖에서 열심히 뛰어놀고 온지라 게임을 하면서까지 움직이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고양이의 천국(전체이용가) – Team Kuroneko]
[90% / 100%]
“엥 이거 청불인데 왜 버전이 바뀌었지·”
설정창에 들어가 다시 원하는 버전으로 바꾼다·
[고양이의 천국(청소년이용불가) – Team Kuroneko]
[100% / 100%]
[Error!]
[고양이의 천국의 프로세스 시작 실패: “???? ?ᧄᦷ??ᧀ?·”(0x5)]
“아이씨··· 또 오류네· 호환성 문제 좀 해결해주지· 그래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두근두근 마법부(전체이용가) – Team Stolasa]
[100% / 100%]
[Error!]
“어? 설마···?”
[마이 디어 메이드(전체이용가) – Project Sola]
[100% / 100%]
[Error!]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내 계정이!”
[취준생 인어아가씨(전체이용가) – DragonTale]
[100% / 100%]
[Error!]
“꺄아아아아악!”
미소녀들과 얻어낸 해피엔딩이 세상을 구해낸 업적이 달콤쌉싸름한 추억이 전부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다·
악몽인가· 차라리 아델라는 이게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세이브파일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문득 아델라의 눈길이 나메가 있는 현실 세계의 침실로 향했다·
새벽 3시 아기처럼 새근새근 자고있는 노나메의 침실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집주인인 천규진 교수가 나메의 베개맡에 선물상자를 살포시 놓고 떠났다·
끼익-
다시 방문이 닫히고 불빛이 사라질 때였다·
“···!”
아델라의 고양이 동공이 커졌다·
스슷-
잠에서 깬 나메가 슬며시 선물을 이불 속으로 끌어온 것이다·
이윽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나메의 입가에는 한줄기 음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Commmunication Mode – ON]
“지금 나 보고 있지 아델라? 난 우리 아델라가 그런 마니악한 취향인 줄 전혀 몰랐네···”
“아앗 그럴 리가 없어! 설마 언니가? 아니지? 아닐 거야!”
부정·
“무슨 고양이귀 미소년 미소녀들에게 둘러싸인다던가···”
“대체 내 미연시 계정에 왜 들어간건데! 언니라도 용서할 수 없어!”
분노·
“메이드에게 민망할 정도로 짧은 테니스 치마를 입힌다든가···”
“제발 그만해! 이러다 나 쪽팔려 죽는다고!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남들한테만 비밀로 해줘!”
타협·
“쫄딱 젖은 인어에게 직접 속이 비치는 한복을 입혀준다든가··· 비밀로라니 이미 방송에서 다 까버렸는데?”
“사회적으로 죽었어··· 나는 죽었다고··· 이제 다시는 방송 같은 거 못해··· 나는 쓰레기야···”
우울·
“아무튼 메리 크리스마스 아델라· 선물 줄 게 있었는데 지금은 피곤해서 내일 전해줄게· 그럼 잘 자·”
“잠깐만 언니 멈춰! 지 할 말만 다 씨부리고 이렇게-”
“그래도 앞으로 야한 건 조금만 더 줄이자? 난 우리 아델라 믿어·”
[▶Communication Mode – OFF]
[▶Camera – OFF]
나메의 권한으로 덩달아 픽 꺼져버린 빔프로젝터·
아델라의 몸이 앞으로 찬찬히 쓰러졌다· 분홍빛 벽지가 날카로운 손톱 때문에 찢어진다·
그녀가 사회적 죽음을 수용했는지 아니면 다시 맨 처음 부정의 단계로 돌아갔는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까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알빠노혹등고래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언제나 기쁠 따름입니다!!
익명의 후원자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항상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의 나메도 많이 귀여워해주세요!!
[Kariri: 나메야! 허락없이 방송 짼 아델라 좀 단단히 혼내줘!]
네~ 나메가 참교육해드렸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방송을 안 하는 건 정말 큰 죄거든요··!!
2051년이 곧 끝나가네요··· 예전 한국식 나이로는 10살이 되어버리는 나메··· 하지만 만 나이가 보편화된 세계니깐 나메는 아직도 8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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