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2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 형법 제311조 모욕이 성립하려면 공연성과 특정성이 갖추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객체가 자연인 혹은 법인이어야 한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해외 일부에서는 ASI 자체에도 법인격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었다·
불명확한 책임소재를 방패삼아 ASI를 활용한 금융범죄 및 사기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한국 민법에서는 여전히 ASI를 사람의 재산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다·
그럼 다른 하나는 ‘자연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해야하는데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법률상의 자연인은 생물학적인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 숨을 쉬고 신진대사 활동을 하는 인간만이 자연인이라고 서술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아델라는 자연인에 부합하지 않았지만 브레인맵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다투어지는 쟁점이 될 수도 있었다·
“아델라는 여타 다른 ASI와는 다르게 생명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만약 그 여부가 브레인맵 설계도에서 신빙성 있게 입증될 수만 있다면 의식은 있으나 전신 마비로 인하여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감금 증후군’ 환자처럼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천교수가 자신의 폰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전했다·
“아빠가 원래 이렇게 법률 지식이 뛰어나셨어요?”
막힘없이 척척 나오는 정보들에 내가 감탄하여 물었다·
천교수는 고개를 내저으며 문자 내역을 보여주었다·
“내 동생·”
* * *
[노나메한테 고소당한 후기(인증O)]
(수사결과 통지서 – 피의자·불송치·jpg)
저번 달에 받은 불송치 받은 통지서임·
그래 내가 바로 그 소문만 무성했던 노네임의 화이트리스트 대상자였다!
다행히 고소인쪽에서 이의신청 안 해서 나는 그대로 빠져나올 수 있었음·
(압도적 감사짤)
진짜 지옥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더라;;
각설하고 갑자기 왜 이제 와서 글을 쓰게 됐냐면 아는 친구가 곧 구공판(정식재판) 끌려가서 걔 후기를 들려줌·
그 자식이 금수저라서 통매음 하나 때문에 대형로펌 변호사들까지 대동하고 갔음·
뭐 일반 통매음도 아니고 아청법에 아동학대까지 달려있으니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근데 고소인측 담당변호사가 좀 유명한 사람이라서 개쫄린다는 거임·
[소송대리인: 담당변호사 천정호]
발푸르기스 놈들 싹 다 감옥에 잡아넣은 천검사랑 이름이 같네?
듣기로는 그쪽 로펌 변호사님들도 동명이인이겠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역대 지검장: 제 93 대 지검장 천정호·jpg]
엌ㅋㅋㅋ 수고해라ㅋㅋㅋㅋㅋ
그래서 인생은 뭐다?
(나만 아니면 돼에에에에·gif)
[댓글]
-니는 노네임한테 뭐라고 했는데 고소당했음? 하마터면 인간말종 될 뻔했네·
└ 예전에 게임에 과몰입하는 거 게임중독자 같다고 욕설 섞어서 했음· 다행히 난 욕설 수위가 낮아서 세이프· 운이 좋았지·
-맞아 ㅅㅂ은 되는데 ㄱㅅㄲ라고 하면 잡혀가더라·
└ 오늘도 생활상식 얻어갑니다~
└ 그냥 악플을 달지 마!
-내 기억 상으로는 노나메 때문에 토사구팽 당한 거 아니었냐?
└ 근데 왜 노나메한테 붙은 거임ㅋㅋㅋㅋ
└ 호적상 나메 작은 아버지래·
└ 헉···!
-진짜 미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착한 빽 인정합니다·
검찰총장이라는 9카 강화에 실패한 천정호는 그대로 집안의 백수로 전락했다·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아들은 의대생이라 하루하루가 바쁘다·
결국 부부 둘이서만 한 집에서 사는 셈이었다·
대한민국의 남편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일주일 내내 하루 세끼 모두 밥을 축내고 있으면 얼마 안 가 아내의 살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불평불만을 하지는 않지만 곧이곧대로 말하지도 않는다·
“밖에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지 그래?”
결국 등쌀에 떠밀린 천정호는 이참에 취미생활이라도 가져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전거 동호회에도 나가보고 안 하던 헬스까지도 끊었다·
이따금씩 천규진이 나메의 악플러들 명단을 보내주면 기꺼이 소송을 맡아주었지만 검찰청에서 한 업무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태생적인 워커홀릭의 기질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불러주는 로펌이 적은 것도 아니니 다시 변호사로서의 새 인생을 꾸릴 즈음이었다·
[천규진: 너 나랑 일 하나 같이하자·]
* * *
“거참 식겁했네· 난 또 형님이 보낸 줄 알았더니··· 어른한테 그런 장난하면 못 써·”
탄탄대로였던 천정호의 커리어를 망친 주범·
나메는 천규진의 핸드폰으로 아버지를 사칭하여 천정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적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 그림에 담기는 게 사뭇 어색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안 나오실 거잖아요· 검사님은 우리 아빠 무서워하니까·”
“아빠···?”
“아 맞다· 이제 검사 아니시죠·”
천정호의 이마에 핏대가 돋는다·
‘지금 누구 때문에 내가 이러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린 아이한테 진심으로 화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나메의 지분은 제로였을뿐더러 진짜 나쁜놈들은 지금 저 위에서 면벽수련하는 신선들이니까·
그의 눈이 다시 나메의 손에 들린 서류들로 향했다·
“제 악플러들을 1000명이나 고소하셨다면서요? 도움 주셔서 감사해요·”
촤르륵-
여전히 나메의 시선은 서류들에 가 있다·
천정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홀짝였다·
“네 아버지가 아주 딸바보가 다 됐다· 맨날 나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야·”
“어차피 한가하시잖아요· 이왕이면 조금만 더 시간 내주세요·”
“그래서 무슨 일로 날 불렀니?”
“당연히 법률 자문을 구하러 왔죠· 제 병세 봐달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걱정 마시고·”
당돌하게 나가는 나메 때문에 면전에 대고 훈계를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종군마도사인 아버지를 등에 업은 나메는 무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제가 웨어소프트로부터 받은 채팅 로그들인데· 한번 보시겠어요?”
나메가 서류를 넘겨주었다·
[나는 과거를 인지하지 못해· 다만 기억할 뿐이야·]
[난 여기까지야· 나를 만나고 싶으면 메피스토를 쓰러뜨려줘·]
“그래서? 메피스토는 또 뭐고·”
“메피스토펠레스는 월오아에 나오는 보스몹이에요· 그리고 이건 메피스토를 처치해서 얻은 정보고요·”
[메피스토펠레스의 추억 – 100% (Complete!)]
[4 35 38 20 14 63 63 13 35 31 5]
“그리고 이건 해석 결과·”
[35°38’20” N 139°35’31” E]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4초메(丁目) 23-19 세이죠 미츠케 하우스]
“세타가야구···”
천정호의 눈이 일순 가늘어졌다·
“제가 가장 먼저 제보했거든요·”
“노나메 네가?”
“그럼 이 암호는 아마도 구조신호··· 아니다 피해자분의 사망 시기를 고려하면 앞뒤가 맞지 않으니까 ASI가 되어버린 원본개체의 증언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진 천정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다른 누가 ASI의 입을 빌려 폭로했을 가능성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자가 내부고발을 위하여 ASI를 조작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천정호는 그 점에 관하여 묻고 있었다·
“일단 웨어소프트 측에는 없을 거예요·”
“왜지?”
“그랬으면 진작에 누가 폭로했겠죠· 지금 웨어소프트는 한창 자회사 IPO 준비 중이라 자기네 회사가 언급되는 것조차 꺼리는 상황이에요· 오죽했으면 제게 이렇게 채팅 로그까지 친절하게 보내줬겠어요? 만약 있다고 하면 오필리아인데···”
“거기도 가능성이 없구나·”
“네· 이미 직원들이 다 구치소에 잡혀들어간 마당에 실제로 코딩을 한 사람이 있었으면 그걸로 선처를 바랐을 테니까요·”
“그럼 정말로 ASI가 스스로 사고해서 이런 짓을 벌였다고? 믿기 힘든 일이야 참·”
“만약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로 만드는 게 우리의 목적이에요·”
“우리?”
나메가 손을 뻗어 서류를 한 페이지 넘겼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해본다· 잔잔한 눈이 새초롬하게 미소를 풍긴다·
“도와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냥 단순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인데· 이제껏 검사님이 맡으신 사건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아 검사 아니지 참·”
또 다시 상처를 후벼파는 나메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천정호가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나메를 바라보았다·
‘지금 얘는 이 소송의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니구나· 오히려 제대로 알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기자들에게 겨우 50만원의 벌금을 물게 시키는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무려 ‘천부인권’을 얻어내는 소송이었다·
더군다나 다투어야할 쟁점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피해자가 ASI 제작에 부당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 ASI의 자체적인 논리적 사고· 브레인맵 기능의 소명 및 인공뇌의 법철학적 관점 정립까지·’
이 무슨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란 말인가·
천정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건을 맡을 담당 판사는 아마 꽤나 골머리를 앓을 거다·
“힘든 여정이 될 거야·”
나메는 콧김을 흥 내뿜으며 시시하게 받아쳤다·
“흑인들도 1862년 노예해방선언부터 1965년 참정권을 얻을 때까지 자그마치 103년이 걸렸어요· 어렵다고 포기할 거면 시작하지도 않았죠·”
“말은 잘하는구나·”
“맡아주시게요?”
“그래· 하지만 판례는 언제나 시대상황의 변천과 사회일반의 인식 변화를 반영한단다· 나메 네 뜻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렴·”
“수틀리면 뭐··· 범죄라도 저지를 각오를 해야죠·”
“뭐?”
나메가 미소를 흘렸다·
“뭐 예를 들어··· 판사님 제가 한 게 아니에요 고양이가 그랬어요! 뭐하세요 천 변호사님? 이제 검사 아니니까 이 타이밍에 절 변호해줘야죠· 괜히 팀킬하지 말고·”
원래도 나메는 법 없이 살던 게 더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공자처럼 마음 가는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아서?
법을 어겨도 주위에서 그녀를 제지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야죠·”
* * *
천정호의 우려와는 달리 대중들의 시선은 호의적이었다·
[세계를 강타한 인공지능의 눈물· 사람인가 로봇인가?]
-저게 무슨 ASI 테스트냐ㅋㅋㅋㅋ 사이비 단체들 장난도 정도껏이어야지ㅋㅋ
-장담하는데 99% 인간들은 저런 거 못함·
-내가 살다살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우는 것도 다 보네·
-진짜 너무 예쁘다·
-아델라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복제인간임ㅇㅇ· 그냥 몸만 없을 뿐이지·
-그냥 기억을 잃은 사람 아님?
-아델라 울지마! 우리가 지켜줄게!
[오필리아 임원 일부 혐의 시인 웨어소프트 책임은 없나?]
-이 새끼들 진짜 사람 가져다가 NPC 만들었네 개소름이다;;
-외주를 맡겼으면 외주를 감독할 사람도 있어야지·
-그저 조립공장 ^^
-철면피 깔고 IPO 준비하는 거 봐라ㅋㅋㅋㅋ CEO는 입이 없냐?
-그러면 히토미나 픽시브에 올라온 아델라 야짤은 어떡함?
-?
-?
“캬아아아아악! 고소해! 당장 싹 다 고소해! 가만 안 둘 거야! 다른 건 몰라도 NTR은 선 넘었지!”
아델라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본인을 소재로 한 만화에서 아델라가 NTR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순애는 괜찮고?”
대뜸 나메가 물었다·
“그 정도는 봐줄만하지·”
“GL은?”
“그것까지도···”
“BL은?”
“난 여잔데?”
“어라? 여기선 분명 남자로···”
“아니 나메 언니 뭐하는 거야! 언니는 이런 거 볼 나이 아니야! 눈 감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3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별 다섯개 감사합니다!! 저보단 아델라나 나메가 더 맛있을 거예요!! 취향에 따라 즐겨 드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또 시작되는 아델라 피폐···
나메는 야한 거 볼 나이 아니에요!!
또한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해주셨는데 아델라의 브레인맵은 키가 파괴된 이상 비번을 잃어버린 비트코인처럼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즉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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