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
결국 시아와 민준은 내 신경을 건드린 죄로 저 멀리 탑 정글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레 ‘화내지않고열심히’씨와 함께 바텀 라인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세민씨라고요? 잘 부탁해요·”
“아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그···”
“노나메라고 불러주세요·”
“노나메? 혹시 그게 진짜 본명이었어요?”
“무슨 문제라도?”
“아니에요·”
나는 평소와 똑같은 아스테리아를 골랐다· 수정 패치를 받기 전까지는 당분간 이 챔피언만 쓸 생각이었다·
애초에 롤을 하는 것도 이번이 거의 마지막이라 봐야지·
세민의 픽 차례가 왔다·
방패를 든 거대한 전사가 나타난다·
“굳이 브라···움을? 설마 아까 일을 아직도···”
“아아아아니에요! 그래 룰루! 룰루가 낫겠죠?”
“룰루? 맨날 하던 람마스 해도 되는데·”
“아무리 그래도 서폿으로 하는건 민폐니까요· 그래도 기억해주시네요?”
“··· 갑시다·”
자유랭크의 라인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선 2렙을 찍었지만 상대가 몸을 미리부터 뒤로 쭉 빼서 레벨 우위를 살릴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우리도 반반 파밍 상대팀도 반반 파밍으로 전투 하나 없이 시간만 허송세월 보내게 될 미래가 뻔하게 그려졌다·
후반을 도모해도 나쁘지 않은 조합이니 벌써부터 힘을 들일 이유는 없겠지·
천상계들 사이에 끼어버린 세민도 너그러운 게임 환경에 한층 긴장이 풀려보였다·
“제가 노네임씨를 구해줬다는 말 그냥 장난으로 보냈던건 아니죠?”
다소 결의에 찬 말투로 세민이 물었다·
“왜 장난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짓궂게 되물어보니 세민도 별 할 말이 없는지 머리만 긁적였다·
그의 벙찐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봐봐요· 아스테리아는 분명 사기지만 한계가 명확한 챔피언이에요· 6렙이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맞고만 있어야 해요·”
상대 배인이 앞구르기로 나를 공격했다·
원래대로라면 룰루가 보호막을 내게 씌워주고 배인이 빠지는 사이 원딜과 함께 카이팅을 하는 구도가 정석이겠지만·
세민에게 그런 요구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여기서 서폿 없이 혼자 싸우려 들다가 체력에서 큰 손해를 보기보다는 나는 그냥 뺨 한 대를 맞아주는 것을 선택했다·
아스테리아의 여우 귀가 축 늘어진다· 많이 아팠건걸까· 무기력함을 느끼는 걸지도·
“남들이 다 하는 rs먹기도 힘들어요· 미포나 케틀이라면 눈치보지 않고 먹을 수 있겠지만 아스테리아는 매 순간마다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해요·”
상대 원딜의 공격을 받으며 병사를 해치울지 공격을 피하기 위해 병사를 포기할지·
“병사를 해치우는 척하며 상대와 맞공을 펼칠 수도 있고 상대 원딜의 스킬을 먼저 빼고 난 뒤 재진입 할 수도 있죠· 이런 식으로·”
나의 유년기는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었다·
한번의 실수는 곧 죽음으로 이어졌기에 사소한 사고라도 용납되지 않았다· 설령 그게 나의 잘못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더라도·
“6렙이 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알을 깨고 나온 새는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하지만 그 세상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수많은 천적들과 더불어 찌는 듯한 더위와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싸워야 한다·
날개는 있지만 날 수 없다·
그것이 6렙 아스테리아였고 그것이 나였다·
배인이 순간적으로 서포터와 멀어진 틈을 타 나는 곧바로 초신성을 사용했다·
하지만 아껴놓은 구르기와 점멸 스킬 덕분에 그녀는 운좋게 두방을 피해갈 수 있었고 결국 내 궁극기만 아깝게 소모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배인은 위기의식을 느낄까?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스테리아의 풀콤보를 맞고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확실을 얻고 다음 전투에서는 더욱 과감해지겠지·
지각적 오류는 선택적 지각을 심화시키고 기존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강화시킨다·
그동안 항상 포식자의 위치에 있던 자신이 다음번에는 잡아먹히리라는 사실을
사람이라면 인정을 하기 어려울테지·
“제가 들어가면 ‘커져라’ 걸어줘요·”
[아셀!]
원거리 병사를 q 스킬로 해치우며 빙의율 조건을 만족시킨다·
[사이!]
w 스킬로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e 스킬로 서포터의 지원을 차단한다·
[리바!]
비록 추가 대미지를 부여하는 표식 따위는 없었지만 나는 주저할 것 없이 곧바로 배인에게 쇄도했다·
[라 아스테리아 슈하타 파일럼]
[커져라!]
알맞은 궁극기 연계·
이미 수십판이나 경험한·
무지한 자들이 아스테리아 상대로 질 수밖에 없는 패턴이었다·
여기에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 않다·
배인의 궁극기는 은신 하지만 논타게팅 기술을 가진 아스테리아 앞에서는 무쓸모했고 서로 남아 있는 피는 반피였다·
상식적으로 서로에게 최선의 공격을 했을 때 아스테리아에게 훨씬 더 많은 딜 기대치가 부여된다·
하지만 과거의 오만함을 끝끝내 버리지 못한 뱀은
새끼인줄 알았던 독수리에게 잡아먹히는게 자연의 순리·
[더블 킬]
“하지만 아스테리아가 사기인 이유는 무엇보다 성장할 때까지 희생해주는 팀원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누구 덕분에 클 수 있었는지 당사자는 그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특히 캐사딘 케일 아스테리아를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말이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잘남 덕분이었는가?
그럴 리가 없겠지·
알을 품어주는 어미새가 없다면 알은 부화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온전한 세계를 구축해나갈 때까지 때로는 둥지가 때로는 바람막이가 되어준 이들 모두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천세민씨· 저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그 찰나의 순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나의 발악을 알아봐주어서·
“당신이 없었으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웠다· 진심으로·
* * *
[발푸르기스라고 아시나요?]
더블킬을 먹은 아스테리아는 챔피언이 이상해진다고 표현을 한다·
사거리가 길고 지속딜과 순간딜을 고루 갖추었으며 그 세기도 결코 약하지 않다·
원거리 딜러 주제에 이동기까지 있고 궁극기는 시전자에 따라 무자비한 대미지를 뿜어낸다·
[저는 엄마와 같이 캡슐에 갇혀있었어요· 영문도 모른 채 말이죠·]
“노네임 너 진짜 개잘하잖아?”
아스테리아가 탑 다이브를 성공시킨 참이었다·
표민준이 그녀의 킬 스코어를 보며 치켜세웠다·
(13/0/2)
혹자는 아스테리아가 겨우 13킬만 먹은 것을 가지고 무슨 유세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게임이 후반을 갔을 때를 상정한 것이었다·
천상계들 4명이 한 팀으로 이루어진 매치업은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 수준이 아닌 지구의 회전축이 뒤집히다 못해 남북극이 바뀌어 버릴 지경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들이 즐겜을 표방한다 해도 게임은 일방적이었고 플레이 타임은 아직도 1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적팀은 19분 내내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 단체가 한국에서 무얼 했는지 조사를 해보려고 해도 도통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어요·]
나메와 세민이 바텀에서 승전보를 울리자마자 아스테리아는 재앙의 신으로 현신했다·
이미 라인전에서 민준에게 두 차례의 솔킬을 따여 마음이 제대로 꺾여버린 상대 탑을 집요하게 공략하였다·
원딜 주제에 15분에 탑 다이브를 두차례나 성공시켰으며 요새 2개를 파괴시켰다·
[그럼 전 평생 모른 체하고 살아야 할까요?]
이윽고 아스테리아는 미드로 내려가 미드에서 수성하던 적팀 3명의 목숨을 무자비하게 앗아갔다·
“요새에서 죽는 것만큼 억울한게 있을까?”
적들이 잘못한 것이라고는 그저 미드 요새를 지키겠다는 일념뿐이었다며 시아가 중얼거린다·
“그럼 힘을 더 키웠어야지·”
나메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자신이 성장할동안 무엇을 했냐면서 일갈하기까지·
나메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네 밝아보여서·’
하지만 세민은 여전히 그녀가 라인전 때 했던 말들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7년전 한국에서도 몇 달간은 메인뉴스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들을 몰고 다녔던 테러단체의 이름이 여기서 나오다니·
‘그리고 그때 그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아마···’
[준호123: 야 게임 언제 끝나?]
준호로부터 온 메시지·
세민은 그제서야 자신이 친구와 함께 PC방에 왔다는 점을 떠올렸다·
[화내지않고열심히: 곧 끝남·]
[화내지않고열심히: 좀만 기다려줘·]
[준호123: 채팅칠 때 점 좀 그만 찍어라 강박증임?]
‘점 찍는게 어때서?’
세민이 텍스트를 막 보내려는 참이었다·
“서렌 나오기 전에 너만큼은 죽이고 간다!”
라인전을 상대하던 배인이 유체화 스펠까지 두르면서 적진에 혼자 남겨진 세민을 맹렬하게 추격했다·
이미 배인으로서는 게임 내내 룰루의 웃음소리로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친 상황이었다·
작은 요정의 모가지라도 따지 않으면 오늘 밤은 편하게 못 잘 것이 분명했다·
세민이 서둘러 도망쳐보지만 이미 이속의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졌고 배인의 은화살 한발 한발이 몸을 꿰뚫었다·
최후의 선고가 그의 심장에 때려 박히기 직전
번쩍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체력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점멸 – 힐]
“게임 할 때는 한눈 파는 거 아니에요·”
아스테리아가 4분짜리 회복과 5분짜리의 쿨타임을 가진 점멸 스펠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룰루를 극적으로 살려낸다·
세민은 아무리 자신이 실버의 티어라지만 그 스펠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다·
“서포터한테 풀스펠은 너무 아깝지 않아요?”
“그냥 서포터가 아닌걸요·”
아스테리아는 요정을 일으켜 세워주며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제 은인이시잖아요·”
“아···”
“이제 게임을 끝내러 가보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초창기부터 쭉 봐주신 독자님께서 또 30코인을 후원해주셨습니다!!
1부가 완결날 때까지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카데미 편을 쓸 수 있어서 정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앞으로는 1부처럼 ‘피폐’ 양념을 섞기보다는 ‘일상/힐링’ 양념이 더 많이 첨가될 것이니 고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외전은 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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