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0
[주문]
[1·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1심 판결이 기각이 된 것도 아니고 각하 판결을 받았다·
기각은 시험을 정상적으로 응시하고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라면 각하는 신분증이나 필기구를 지참하지 않아서 시험장에서 내쫓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아델라는 대상 적격과 당사자 적격 모든 부분에서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판결을 내린 것이다·
2심이나 3심과 달리 1심은 AI판사가 판결문을 작성하고 소수의 판사들이 최종검토를 도맡는다·
“2심으로 올라오면 자기네들도 골치 아파지니까 계속 1심에서 보류시키는 것 같다·”
천정호 변호사가 미안하게 되었다며 나를 다독였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들은 언제나 큰 책임감이 따른다·
특히나 정치에 발을 담그려면 청문회에서 과거의 판결을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송은 다들 피하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안 좋은 소식을 아델라에게 전해주자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겨짚었다·
“응 뭐 괜찮아·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썼다고··· 난 이만 방송 준비하러 갈게·”
아델라가 가상현실에서 불편함을 호소한 뒤로 그녀를 관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평소와 무엇이 다를까·
일단 눈을 자주 깜빡이지 않는다·
정상인이라면 1분에 적어도 10회는 눈을 깜빡여야 한다·
내가 중간에 놓친 걸 수도 있지만 아델라의 눈 깜빡임 주기는 최대 1시간까지 연장된 적도 있었다·
호흡도 의식적으로 내뱉는 듯 심히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통상적으로 가상현실에 접속하면 재채기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아델라는 오히려 하루에 한번 꼴로 재채기를 한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전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불확실한 징조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계해야 할 사항이었다·
“흐으읏! 어렵네 어려워·”
조금이라도 키가 커졌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기지개를 쭉 켰다·
거실에서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천교수는 군산 마력발전소 준공식을 위해 일주일 동안 출장을 간 지라 집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따뜻한 기모 소재의 검은색 레깅스와 레이어드 셔츠를 차례대로 몸 위에 덧씌운다·
그리고 하얀 패딩점퍼를 챙기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오랜만에 산책을 나왔다·
‘요새 통 움직일 일이 없어서 몸이 점점 둔해지는 느낌이야·’
갈색 어그부츠로 하얀 눈밭을 뽀드득뽀드득 밟았다·
어린 아이들의 육체는 신기하다·
이렇게 평범하게 거닐다가도 두 발로 폴짝 뛰어 눈더미 위에 멋지게 착지하면 조건반사처럼 생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뭐하는 짓이람·’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태연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향한 곳은 구룡마을·
“로라야 가자·”
“힝 밖에 추운데···”
“언니가 따뜻하게 해줄게·”
“알겠어 금방 나갈게!”
나보다 한 살 어린 로라를 호출하고 함께 동네 뒷산을 올랐다·
털모자 위에 달린 하얀 공이 대롱대롱 움직인다·
꽤 쌀쌀한 겨울임에도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적지만은 않았다·
하긴 이 정도 높이면 등산도 아니고 산책이라고 치부할 사람들이겠지·
어린 소녀 두 명이서 손을 꼭 잡고 산을 오르는 게 마냥 신기해보였는지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말했다·
“아가들 둘이서 왔어? 부모님은 어쨌고?”
“둘이서 산책 왔어요·”
“어이구 그래? 땅이 얼어있으니까 올라갈 때 조심하구! 자 여기 초콜릿 하나 먹으련?”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장갑을 벗고 비닐봉지에 포장된 ABC초콜릿을 까서 로라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으음 맛이따!”
로라가 몸을 부르르 떨며 감탄했다·
그 와중에 콧물을 훌쩍이길래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닦아주었다·
“로라야 두 손 내밀어봐·”
“이렇게?”
[시전: 열전달 – 전도]
나는 오러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자체적으로 열을 발산할 수 있지만 로라는 그렇지 못하니까·
내 열의 일부를 그녀에게 나누어주었다·
“따뜻하지? 다시 갈까?”
“응!”
“우리 저기까지만 갔다가 내려가자·”
산이 높지는 않았지만 정상까지 오르지는 않았다·
혼자 올라갔다면 몰라도 지금은 로라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산 중턱에 있는 정자에 앉아 가방에 챙겨온 간식들을 꺼냈다·
로라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킬 동안 나도 모자를 벗고 땀을 닦았다·
비록 탁 트인 경치를 볼 수는 없었지만 나무 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려서 예뻤다·
“나는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 이유가 정상을 찍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어· 그것 말고는 산을 오를 이유가 없으니까·”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로라에게 털어놓듯 말해보았다·
어차피 마냥 진지하게 듣지는 않을 테니까·
“운동이나 다이어트 아니면 좋은 경치를 보기 위해서 그런 부수적인 이유들은 다 대체가 가능하기도 하고·”
그것은 등산을 하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목적은 산을 정복하고 다시 내려오는 것 그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상을 찍으면 성공 못 찍으면 실패 이런 식으로·
“그런데 로라랑 함께 가니까 그런 건 다 상관 없어지더라· 그냥 누군가와 함께하는 등산이 재밌네·”
“응? 또 하나 이유가 있지 않아?”
로라가 초코쿠키를 냠냠 먹으며 물었다·
“무슨 이유?”
“등산하고 내려와서 밥 먹으면 밥이 더 맛있어지잖아!”
어린이의 순수하고도 통찰력 있는 대답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네 말이 맞네· 그럼 오늘 점심은 뭐 먹고 싶어?”
“소머리국밥 사줘!”
“소머리국밥···? 너 먹을 줄 알아?”
그런 걸 애들이 좋아했었나?
나도 재작년에 국밥만 먹고 살았을만큼 싫어하는 메뉴는 아니었다·
그렇게 점심 메뉴가 정해졌다·
하산은 등산보다 빨랐다·
우리는 다람쥐처럼 빠르게 지나왔던 길과 다른 곳으로 내려왔다·
“흐아아악!”
중간에 길이 얼어 있어서 하마터면 로라가 등산로 옆으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다행히 내가 나뭇가지를 잡고 지탱해준 덕분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기어 올라왔다·
“발목 괜찮아? 안 삐었어?”
“응 괜찮아! 언니 근데 여기 사람 다니는 길 맞아? 여기 너무 험한 것 같은데·”
“이쪽이 더 빨라·”
“앗 나메 언니 옷 찢어졌어·”
“어디? 아 그러네···”
우리 둘다 옷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버렸다·
패딩이 어디 나뭇가지에 걸렸는지 사선으로 찢어져 털이 송송 빠져나왔다·
레깅스 엉덩이 부분도 눈바닥 위에 앉아서 축축했다·
“빨리 밥만 후딱 사 먹고 우리 집에 가서 씻자·”
“웅!”
나름 지름길로 갔는데 로라가 생각보다 느리게 내려와서 하산 시간이 드라마틱하게 단축되는 효과는 없었다·
우리는 입구에 있는 국밥집에 들러 소머리국밥 하나와 순대국밥 하나를 시켰다·
점심 시간대가 조금 지나버렸는지라 가게 안에는 한 테이블 빼고 공석이었다·
전기로 작동되는 온풍기 근처에 자리잡고 패딩을 의자 위에 걸쳐놓았다·
흙투성이가 된 로라의 얼굴을 닦아주기 위해 물티슈를 뜯었다·
“로라야 얼굴 이리 가까이 해봐·”
반대편에는 할아버지 세 명이서 한가하게 텔레비전을 시청 중이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만 12세 미만 미성년자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액을 보유한 ‘주식 부자’는 1000억원대의 주식을 가진 10대 남매로 조사됐습니다·]
“오메 무슨 어린이가 천억이여· 부자네 부자·”
“4살이 500억원? 부모 잘 만난 것도 다 복이지·”
“저거 다 필요 없다! 죽으면 어차피 다 놓고 갈 건데 뭐·”
할아버지들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상류층들의 생활에 대해 한마디씩 평을 던졌다·
그동안 식당 아주머니께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밥 두그릇을 가져다주었다·
“저희 군만두 시킨 적은 없는데요?”
“이모가 주는 서비스야· 맛있게 먹어 애들아!”
“네 감사합니다!”
인사성 밝은 로라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군만두를 앙 물었다·
“어이구 복스럽게도 잘 먹네!”
“예?”
“아녀아녀 우리 신경쓰지 말고 많이들 먹어! 동생이랑 둘이 왔어? 엄마 아빠는?”
신경 쓰지 말라면서 질문을 건네면 대답을 해야하는 건가?
내가 잠시 고민에 빠져있을 동안 로라가 선수를 채갔다·
“저는 엄마만 있고 언니는 아빠만 있어요!”
“야 오로라···!”
“잉? 맞잖아?”
“어어··· 그려?”
할아버지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한분은 눈시울까지 붉어지는 게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아 내가 급히 정정해주었다·
“저희 보육원에 사는 거 아니에요· 재혼가정 그런 것도 아니고요· 각자의 집에서 잘 살고 있어요·”
“아아 그래그래· 세상이 참 각박하고 많이 힘들지···? 여기서라도 잘 먹고 푹 쉬었다 가거라·”
“네에···”
난 모르겠다·
[다음 소식입니다· 존슨앤존슨이 다발성경화증 치료제를 개발한 국내 스타트업 ‘바이오아카식’을 한화 8700억원에 인수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1년 미만 스타트업 대상으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인데요 이로써 국내 벤처투자자들은 각각 수백억원대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와 8700억이면 얼마여?”
“국밥이 1억개구만·”
[한편 바이오아카식의 공동창업자 노나메 양은 40%의 지분으로 총 3480억원의 대규모 이익을 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만 8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최연소 부자 반열에 든 노나메 양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함께 보시죠·]
“저저 걔 아닌가? 그 천재소녀 있잖어·”
“맞네! 아따 가가 정말 천재가 맞는가보다·”
“우와 언니 텔레비전 나온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
로라가 동요를 흥얼거리며 티비에 나오는 내 증명사진을 가리켰다·
식당에는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트윈테일 머리를 양 손으로 잡아 입가를 가리고 눈치를 보았다·
“어어? 어어엉?”
할아버지 한 분이 아리송한 듯 고개를 까딱이더니 티비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얘야 너 맞나?”
“네?”
“참말이네! 이게 뭐여! 아주머니! 여기 좀 와서 보이소!”
“어허···! 부자가 이런데에 와서 국밥을 먹고 있어? 거 참···!”
할아버지들이 호들갑을 떨며 의자를 질질 끌고 다가왔다·
나 아직 국밥 절반도 못 먹었는데···
오로라를 원망스럽게 쏘아봤지만 그녀는 이쪽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가야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저승가면 다 쓸모 없다던 양반이 왜 이런담?”
“이제는 100세 시대 아니여! 저승 가려면 한참 멀었어!”
“귀인을 여기서 다 만나본다 야· 우리들 신경쓰지 말고 밥 어서 먹어! 옆에 조용히 있을랑께!”
“왜 이렇게 소란이에요! 아니···! 애들 밥 먹는데 왜 거기서 방해를 하고 그래요!”
“아주머니 요기 나메 싸인 받아야하지 않나? 우리나라 스타인데 스타!”
“나메? 에구머니나! 정말이네?”
챙그르르-
식당 아주머니가 쟁반을 떨어뜨렸다·
나는 조용히 로라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다 먹었으면 갈까?”
“아직!”
“그래···”
팬미팅을 한번 거쳐서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적나라한 관심은 아직까지는 부담스러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postering님 3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시험까지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열심히 노력하신만큼 그 이상의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메와 함께 열심히 기도를 드릴 테니 좋은 소식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최신화에서 꼭 만나요!!
알빠노혹등고래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나메는 귀여웠네요!!
오랜만에 출연한 오로라 친구!! 처음 나메가 놀이터에서 구해준 아이인데 기억하시나요? 나메보다 한 살 어린 활발한 친구랍니다!! 천교수님이 안 계시는 동안 열심히 집에서 놀아야겠죠!!
눈밭 위를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노나메··!! 나메는 원래부터 등산을 정말 좋아했답니다!!
마나인방 표지 타이포 바뀌신 걸 보셨나요? ‘화려한비밀’님께서 표지도 움짤로 만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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