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6
간이 연성진 작성기를 서예붓처럼 만들어 검은 마나를 충전했다·
아델라가 벽에 찰싹 붙어 기대어 있을 동안 마나 잉크로 그녀의 하얀 등 위에 촉매 환원탑 연성진을 그렸다·
도중에 붓을 흉추 7번 위치에서 잠깐 멈춰 세웠다·
“왜?”
“미안 다시 그릴게·”
아델라의 허리가 너무 얇아서 직교좌표계로 그릴 공간이 부족했다·
결국 한 번 지우고 원통좌표계로 재작성했다·
“이제 두 팔 벌리고·”
“아 겁나 부끄럽다 정말· 이것도 아픈 건 아니지?”
“얘가 속고만 살았나· 아무런 느낌도 안 나·”
오러하트 안에 오러를 가두어 극한까지 회전시킨다·
[연성: 탈마 촉매]
고유 오러의 반응성을 최대한 끌어올린 후 연성진에 불어넣었다·
황금빛 오러가 아델라의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검은 불순물을 모공 밖으로 밀어냈다·
중세 중국인들은 이를 ‘벌모세수’라고 불렀는데 거창한 명칭과 달리 탁기가 쌓여버린 육체를 정화하는 기능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탁기라는 개념도 엄밀하게 정의되지 않은 허상에 불과하니까·’
이 기체인지 액체인지 모를 마질의 정체는 레지듀·
검은색이라고 전부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지만 체내에 너무 과하게 쌓여있는 것도 문제라서 미리 제거하는 편이 나았다·
“인간들은 하루만 안 씻어도 이런 게 몸에서 나오는 거야? 그래서 언니가 매일 씻으라는 거였구나·”
“또 이상한 소리 할래? 고위서클 마법에서 발생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절차야· 따지고보면 넌 7서클 마법을 두 번이나 뒤집어 썼잖아·”
“아항·”
드라고니아 나셴티아가 세포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바꾸지는 않는다·
거시적으로는 완전시전이 되었을지언정 국소적으로 불완전시전이 되어 부산물로 레지듀를 남기는 것이다·
[시전: 삼매진화]
마립자를 태우는 불로 모공에 박힌 레지듀를 녹였다·
솨아아-
“흣 차가!”
샤워기의 수압을 높여 시원한 물줄기로 검은 땟국물을 깔끔하게 씻어냈다·
아델라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끝?”
“응· 목욕할 거면 더 하든지·”
“목욕? 오 그것도 좋은 꺄아악! 어푸푸···”
아델라의 얼굴에도 한차례 물을 뿌려주고 레버를 내렸다·
“수건은 서랍장에 있고 옷은 여기에 걸어둘게·”
“언니! 나메 언니!”
“왜?”
아델라가 미소를 씨익 짓더니 초록색 때밀이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같이 목욕할래? 내가 등 밀어줄게·”
“꿈 깨세요·”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에서 그녀의 얼굴에 한번 더 물벼락을 선사해주었다·
* * *
정말이지 피곤한 하루였다·
발전소에서 하룻밤을 새우지는 않았지만 바뀐 잠자리에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따뜻한 난방이 들어오는 방에서 푹신한 솜이불을 끌어안았다·
무거운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간다·
평화로운 어둠 속에서 깊은 잠에 취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갑자기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와 나의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위이이잉-!
“으므으음··· 뭐야·”
인상을 찌푸리고 희미하게 실눈을 떠서 소리의 근원을 확인해본다·
방 한 구석에서 아델라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렸다·
“언니 미안· 화장실에 드라이기가 없더라고·”
부스럭대는 소리에 아델라가 변명을 늘여뜨려놓았다·
“거실에 가지고 가서 말릴 수 있었잖아·”
내가 신경질적으로 중얼댔다·
“헉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지· 깨워서 정말 미안해!”
“그냥 여기서 말리고 빨리 끝내·”
“응응·”
그녀는 뽀송뽀송하게 머리를 다 말렸는지 다시 침실에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돌연 등 뒤에서 은은한 제비꽃 향이 훅 피어올랐다·
몸을 반 바퀴 돌려 그녀와 얼굴을 마주했다·
옅은 무드등의 불빛이 아델라의 초록색 눈동자를 반짝반짝 비추고 있었다·
“목욕은 잘하고 왔어?”
“응· 신기했어· 뜨거운 물에 오래 있으면 피부가 빨개지는 것도· 땀이 저절로 나는 것도· 모두 다·”
“잘했네·”
아델라의 표정이 나긋하게 풀어지더니 내 이불의 절반을 빼앗아버렸다·
“여기서 자려고?”
점점 몽롱해지는 의식에 간신히 물었다·
“다른 방에는 침대가 없던데·”
“소파 있잖아·”
“이불이 없어서 추워·”
“거실에도 난방 틀어·”
“그냥 같이 좀 자자 언니!”
겨드랑이 사이로 아델라의 팔이 비집고 들어왔다·
내 몸이 그녀쪽으로 속절없이 끌려갔다·
“우왕 따뜻하당· 흠냐흠냐·”
지금 보니까 이 녀석은 별로 졸리지도 않은가보다·
“빨리 시차적응부터 해·”
“항상 완벽한 나메 언니라고 생각하지만 잔소리가 많은 게 탈이야· 오늘같이 기쁜 날에 잠이 어떻게 오냐구· 피곤하면 먼저 자도 돼· 이 아델라가 귀신들로부터 지켜줄 테니까·”
그녀는 말캉한 가슴을 내 머리쪽에 들이밀었다·
숨이 조금 막혀와서 답답하다·
아델라가 내뿜는 잔잔한 콧김이 시도때도 없이 내 뺨을 간지럽혀서 불편했다·
시끄럽고 자리도 좁고 몸도 무거웠지만
어째서인지 수면욕구가 솔솔 피어올랐다·
“잘 자 나메 언니·”
그 말에 내가 대답을 해주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 * *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침대 전체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주섬주섬 챙겨서 두 갈래로 단정히 묶었다·
알람소리도 못 듣고 세상 모르게 자버렸다·
아침은 고사하고 어느새 점심 때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코오오오·”
아델라는 들숨과 날숨을 내뱉으며 깊은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상의가 가슴 밑까지 올라가 배꼽이 훤히 보였다·
잠옷을 단정하게 내려주고 그녀의 어깨를 잡고 살살 흔들었다·
“벌써 오전 11시야· 일어나 아델라·”
“으으응···”
아무리 깨워도 아델라는 좀처럼 일어나지를 못했다·
침을 줄줄 흘리며 베개 시트 위로 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손등으로 침을 닦아준 뒤
‘으 드러·’
다시 내 손을 그녀의 뺨에 쓱쓱 문댔다·
계속 정신을 못 차리는 아델라의 상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벽에 기대어 놓았다·
털썩-
젖은 종이빨대처럼 맥없이 침대 위로 고꾸라진다·
“야 안 일어날래?”
더 이상 아델라는 가상현실처럼 몸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다소 엄하기는 해도 내가 확실하게 그녀의 생활습관을 정착시켜줘야만 했다·
눈을 억지로 벌려보기도 하고 뺨도 찰싹찰싹 때려본다·
그녀는 항복을 선언하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제 몇시에 잔 거야 대체·”
“새벽 다섯 시? 여섯 시? 억울한 게 내가 못 잔 건 언니 탓도 있다고·”
“왜?”
“자꾸 내 배에 다리 올리고 이불은 뻥뻥 걷어차버리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지를 않나· 코만 안 골지 진짜···”
“원래는 잠꼬대 잘 안 하는데 내가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그랬나봐·”
“끄으으윽! 피곤해 죽겠당! 다시 가상현실에서 살고 싶어지는 기분인 걸?”
“뭐라고?”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으엥?”
“지금 누구 몸 만들어주려고 몇 개월 동안 이딴 생고생을 했는데!”
길로틴 초크로 그녀의 목을 조르고 반대 손으로 그녀의 관자놀이를 세게 쥐어박았다·
“끄아아아악 장난장난! 당연히 장난으로 한 말이지···! 흐끄윽 언니 나 숨 숨 막혀!”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 하면 머리를 아작내버리는 수가 있어· 알겠어?”
“네 네흣!”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봄날의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정신을 일깨웠다·
‘천교수님은 서재에 계시나?’
똑똑-
아침인사를 드리기 위해 문을 살짝 비집고 들어가 얼굴을 내밀었다·
천교수는 이동식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으며 낮은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네른스트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잘 살펴보면 이온 드리프트 로가 발생하여 자가 확산되는 과정을 설명해주는데·”
그러다가 반뿔테 안경을 쓴 천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제서야 상황 파악을 완료했다·
‘아 대학원 원격수업 중이셨구나!’
천교수가 싱긋 미소를 지어주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문을 닫았다· 토요일에도 바쁘네 참·
점심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양치질은 중요하다·
세면대에서 아델라의 칫솔을 챙겨와 민트초코맛 치약을 짜서 올려주었다·
아직도 침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델라의 입에 칫솔을 쑤셔넣었다·
“으읍!”
“더 늦기 전에 양치질부터 하자·”
“보면 볼수록 언니는 참 부지런해· 그래도 이런 거 낭만이 있어서 좋다 헤헤·”
함께 세면대에 가서 거울 속에 비치는 우리들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확실히 아델라의 얼굴이 조금 어려진 것 같았다·
나이라는 개념이 ASI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보니 아카식 레코드로 만든 육체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받은 듯 싶었다·
‘신체나이는 그럼 대략 16살로 치면 되나·’
그래 아델라 수준에 19살이라니 말이 안 되지· 지금이 더 잘 어울린다·
“아르르르 퉤·”
나는 먼저 물로 보글보글 입을 헹구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델라 너 가슴도 조금 커진 것 같지 않아?”
“엉?”
“가슴 말이야· 전에는 이 정도 부피감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음해하지 마! 난 원래 이 정도였어!”
“쓰읍 이상하다 아닌데···”
양칫물까지 튀겨가며 아델라가 격렬하게 반박했다·
더 얘기하면 길어질 것 같으니 수건으로 입을 닦고 부엌으로 나왔다·
천교수도 타이밍 좋게 수업을 마치고 서재에서 나왔다·
“저희들 깨우시지 아침은 그럼 혼자 드셨어요?”
“아니다 나도 아침은 걸렀거든·”
“아무것도 안 드시고 세시간 동안 수업만 하셨어요? 빨리 점심 먹어요 그럼·”
점심 준비는 앞당겨졌다·
나는 내 키에 딱 맞는 앞치마를 두르고 의자를 주방식탁까지 끌고 왔다·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노른자를 휘저어주고 소금과 참기름을 알맞게 넣어주었다·
새끼손가락을 계란물에 푹 찍어 아델라에게 간을 확인시켰다·
“냠· 으믐으믐· 약간 싱거운데?”
“싱겁게 먹어·”
“이러려면 나한테 왜 부탁한 거임?”
“너는 저기 가서 설거지 하고· 아빠 계란찜 다 됐어요· 이따가 고기 구울 때쯤에 전자레인지에 넣을게요·”
“오냐· 도와주는 손이 4개나 있으니까 점심 준비가 빠르네·”
이게 도와주는 게 맞으려나?
사실상의 모든 요리는 천교수 혼자서 척척 만들어버렸다·
결국 더 이상 도와줄 게 없어진 우리들은 식탁에 앉아 아기새처럼 모이를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맛있게 먹으렴· 아델라 친구도·”
“잘 먹겠습니다·”
“네에! 와아아 저도 잘 먹겠습니다!”
매혹스러운 항정살과 오겹살의 향이 침샘을 마구 자극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공기밥 위에 고기 한 조각을 집어 가져왔다·
“여기 오징어 젓갈이랑 조기구이도 준비해봤단다· 마침 계란찜도 다 됐네·”
“고기 너무 잘 구웠네요· 바삭바삭하고 맛있다·”
입 안에서 육즙이 빵 터지면서 고소한 기름기가 한가득 퍼졌다·
바삭바삭한 껍데기와 부드러운 속살이 잘 어우러져 미소가 지어졌다·
갑자기 아델라가 입에 음식을 물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넘흐 맛있어요 진짜· 흐윽···”
“뭐야 울어?”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이랑 차원이 달라 차원이··· 몸 만들어줘서 너무 고마워 언니 흐아아앙! 아버님도 맛있는 음식 요리해줘서 너무 감사해요!”
눈물 젖은 쌈밥을 입에 억지로 욱여넣은 모습이 퍽 귀여웠다·
아델라의 열띤 반응에 천교수도 기분이 내심 좋아졌는지 그녀에게 다양한 반찬을 권유했다·
조기구이라면 몰라도 한국식 토종 반찬들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무생채랑 명이나물·”
“정말 느끼함을 확 잡아주네요!”
“상추랑 깻잎 위에 고기랑 버섯이랑 부추무침이랑 쌈장을 듬뿍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단다·”
“우와아압 대박대박! 쌈마카세 미쳤어요!”
“이거 우리 나메는 안 먹는 건데 혹시 김치랑 된장국도 한번 시도해보겠니?”
“후룹· 오오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언니는 이걸 왜 편식하는 거지?”
“허허 그러게나 말이다· 이건 묵은지라고 하는데 저온에서 오랫동안 숙성시킨 김치야· 고기랑 싸서 먹으면 맛이 아주 그냥 일품이지·”
“캬아아아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천교수는 한식에 한이 맺혔는지 먹성 좋은 아델라를 보고 신나 하셨다·
내가 그동안 너무 양식만 부탁했었나?
‘파스타 스테이크 뫼니에르 콩피 라자냐· 최근들어 좀 많이 먹긴 했네·’
“델라야 쌈장 말고도 멜젓에 찍어서 먹으면 맛있단다· 하나 내줄까?”
“어쩜 배리에이션도 이렇게나 많이! 네네네!”
아델라가 음식을 예찬하고 천교수가 좋아라 박수치는 동안 나는 조용히 항정살 위에 굵은 소금을 올려 입에 넣었다·
이렇게만 해서 먹어도 충분히 맛있는데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ymto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래 전부터 항상 나메와 함께해주셔서 너무 기쁩니다!! 앞으로도 자주 방문해주세요!!
나메는 편식쟁이야··· 나메는 김치를 안 먹어···
의외로 나메는 가리는 음식이 많답니다!! 아델라는 복스럽게 잘 먹네요!!
다음편은 새벽 중 랜덤한 시간대에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일찍 주무시고 내일 오전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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