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9
노네임의 한손검이 화염과 연기를 가르며 기사의 복부를 베어냈다·
제한된 시야에서 손 쓸 찰나도 없이 빠른 검격이었다·
배를 움켜잡고 뒤로 쓰러진 기사는 여인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큿 죽여라!”
그는 게임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아군들과의 리스폰 타이밍마저 꼬여 이후 오브젝트 싸움까지도 참여할 수 없었다·
여인의 무미건조한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역시 얘도 알고 있어· 지금 날 죽이면 손해라는 걸···!’
하물며 골드 랭크인 자신조차도 아는 사실을 챌린저 출신이라고 모르겠는가·
“안 올 거면 내가 간다!”
기사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여인의 울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혹시나 럭키펀치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기대감은 곧 허투루 돌아갔다·
애절한 발악에 노네임은 몸을 급하게 비틀었다·
캉-!
주먹뼈가 단단한 건틀릿과 맞닿아 경쾌한 파공음이 울렸다·
“가만히 있어·”
노네임은 기사의 손목을 낚아채 정강이를 차 무게중심을 무너뜨리고 팔꿈치를 등 뒤로 꺾어 제압했다·
눈 깜짝할 새에 기사는 여인 아래에 깔려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챙그랑-
여인은 두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3번째 무장을 꺼냈다·
“그냥 깔끔하게 죽이라고! 매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먼지떨이가 잃은 체력 비례 데미지인 게 신기하지 않아요?”
“난 그런 거 알고 싶지 않다고!”
월오아에 새로운 티배깅 무기가 등장했다·
노네임은 먼지떨이를 꺼내 기사의 뒷목을 살살 간지럽혔다·
“끄아아아아악!”
기사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먼지떨이 겁나 세네ㅋㅋㅋㅋㅋ
-33킬! 33킬 가나요?
-겜 끝내지 마! 더 죽여!
-잃은 체력 비례뎀 툴팁에서 안 적혀 있었는데 어케 찾았누ㅋㅋㅋㅋ
-티배깅 적극 장려템ㅋㅋㅋㅋ
-나메는 청소왕이야! 나메는 청소가 좋아!
[위그드라실이 파괴되었습니다·]
[승리]
찬란했던 무지개색 먼지떨이는 어느새 기사와 마법사와 사제들의 더러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양이교미가제일좋아’님이 3300000원 후원!]
-이 도적놈아!!!!!
나메는 답답했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입을 열었다·
“330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오늘 방송 한판쫑이었어?
-이건 아니지 나메야!
-나만의 작고 돈 없는 나메로 돌아와줘ㅠㅠㅠ
└ 나메는 지금도 작아
-나메는 2000억이야···
-300만원 내야 간신히 한 판 볼 수 있다니
나메가 섭섭함을 표출하는 시청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2천억은 무슨 수중에 빚밖에 없는데···’
브이튜브 업로드된 영상 댓글창에서도 부자 재벌 2000억 소녀라는 이야기밖에 떠들지 않으니 반응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없었다·
언젠가 한번은 제대로 된 해명이 필요했다·
[영상공유 – ‘아델라다1빙’님이 10000으로 공유해주셨습니다!]
“음?”
한 시청자가 아델라의 방송영상을 보여주었다·
‘딱 맞춰 끝냈네?’
사실 나메가 방송을 즉흥적으로 켠 이유도 아델라의 버튜버 방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화면 속의 아델라는 바닥에 풀썩 쓰러져 땅을 짚고 울부짖었다·
[말도 안 돼···]
-와 아델라 강등당했어?
-전적 새빨간거 봐ㅋㅋㅋㅋㅋㅋ
-햄버거 10단 패티 완성!
-얼마나 승리가 간절했으면 도적을 버리고 방패기사를 하냐ㅋㅋㅋㅋ
[제발 내게 돌려다오· 광야처럼 드넓었던 시야를 맹수처럼 빨랐던 반응속도를· 제발 내게 챌린저 휘장을 다시 돌려다오! 으아아아악! 하늘이여!!!!!]
“헉·”
나메가 헛숨을 들이켰다·
광인·
지금 아델라는 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송장처럼 새파랗게 질려 헛웃음을 토해냈다·
[너무 빠르게 떨어져버려서 지나왔던 풍경들이 기억도 나지 않아··· 나 너무 기운이 없어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
나메는 전적 사이트에 들어가 아델라의 기록을 확인했다·
-와 애잔하네
-지금 메타에 도적이 쓰레기인 건 맞지만 저 승률은 좀···
-무슨 점수가 작전주마냥 떨어지냐ㅋㅋㅋㅋㅋㅋㅋ
-멘탈 터질 만하다 ㅇㅈ
최근 전적 2승 26패·
그녀는 7연패 후 간신히 얻어낸 값진 2승에 다시 19연패를 박았다·
승률 7%로 챌린저에서 다이아까지 수직낙하한 모양·
수많은 시청자들의 조롱 속에서 아델라는 방송을 종료했다·
* * *
[1층입니다·]
해가 졌는데도 그렇게 막 쌀쌀하지는 않네·
늦은 밤 나와 아델라는 바람막이 후드집업을 걸치고 산책에 나왔다·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델라·
머리가 작아 앞챙이 얼굴의 절반을 뒤덮었다·
오늘따라 그녀의 표정이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만큼 어두워보였다·
일단은 가면서 얘기하자·
길이 잘 정돈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어느새 인적이 드문 산책로에 접어들었다·
울타리 사이에 난 자그마한 길로 들어가 돌계단을 몇 번 오르내린다·
그러다보면 버려진 건축자재가 있는 공터가 나오고 그 뒤로 무성한 갈대밭이 펼쳐진다·
드문드문 설치된 가로등이 봄바람에 휘날리는 갈대밭을 노랗게 비추었다·
우리들은 건강을 챙길 겸 매일 이 시간에 한두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는데 이쪽으로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았기에 자주 애용하는 길목이었다·
“방송은 할 만해?”
처음은 가볍게 물어보았다·
그러더니 아델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그럭저럭’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원래 인생을 살다보면 잘 풀릴 때도 안 풀릴 때도 있는 거지 뭐· 매번 잘 되기만 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 안 그래?”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역경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아무리 명망있는 대회에서 핵을 써서 우승한다 한들 성취감보다는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까·
“지는 것도 지는 거지만··· 멘탈이 남아나지를 않네· 자꾸 지니까 텐션도 떨어지고· 시청자들 채팅들도 왠지 모르게 다 긁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런 나한테 제일 화가 나고·”
만약 지금도 그녀에게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려 있었다면 분명 축 늘어져있으리라·
아델라는 내 위로로는 택도 없을 정도로 저기압 모드를 유지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어 엄지로 손등을 살살 문질러주었다·
“팀운이 별로 안 좋았던 거야?”
“그때 그 화염술사년을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하아 뭐 팀운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내 실력이 예전같지가 않아·”
“그래? 슬럼프?”
“응· 집중력도 딸리고 몸도 생각한 것만큼 잘 안 따라주고 무엇보다 반응속도가 떨어져버린 게 제일 치명적이야· 일대일에서 자꾸 지고 들어가니까···”
“그렇구나·”
새로운 몸에 적응하는데 어느정도 괴리감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했다·
애초에 리얼리스틱 수치가 0·9로 제한되어 있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육체가 완벽하게 동일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진짜 왜 이렇게 느린 거야 이 몸은! 저번에 반응속도 테스트 했는데 120ms 나온 거 있지?”
“넌 몸 자체가 가상현실에 있어가지고 그동안 딜레이 없이 잘 썼잖아·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 핵이다?”
“아니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원래 인간의 평균 반응속도가 0·2초야· 그 정도면 축복받은 재능이라고 생각해·”
내가 16세 때의 육체를 베이스로 삼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얼굴도 조금 어려지고 가슴도 전보다 커지지 않았는가·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은·
“그럼 지금까지 챌린저 사람들은 전부 일대일을 심리전으로 진행했던 거란 말이야? 뭐가 나올지 보지도 않고 상대가 쓸 기술을 미리 예측해서?”
“너도 다시 정상에 올라가고 싶으면 그 정도 능력은 갖추어야겠지·”
“하아··· 진짜 괴물들이었구나 이 사람들· 으으 다 필요없고 빨리 학교나 가고 싶다· 밤에만 활동하는 게 드라큘라도 아니고···”
아델라는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들을 뻥뻥 차면서 화를 풀었다·
“한번 달리고 올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신발끈을 정돈했다·
원래 생각이 복잡할 때는 몸을 움직여줘야 한다·
아델라도 싱긋 웃으며 발꿈치가 들릴 정도로 위로 활짝 기지개를 켰다·
“좋지· 언니도 자꾸 오러 좀 쓰지 마· 그러니까 자꾸 몸에 근육이 안 붙지·”
“네가 매번 날 안 기다려주는데 어떡해·”
“···”
“아델라? 야 같이 가!”
“메기 괴물이 쫓아온다! 돔황챠!”
메기?
지금 내 트윈테일을 보고 한 말인가?
일단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언제나 매를 먼저 버는 쪽은 아델라라는 점이다·
이러니까 내가 매번 내츄럴로 운동하는데 실패하는 거지·
* * *
“허억··· 헉···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으윽 또 쥐가!”
“아직도 오러를 잘 못 쓰겠어? 이렇게 이렇게·”
“아니 그니까 이렇게가 뭔지 설명을 해줘야 알아들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이렇게·”
“아오! 이 쥐방울만한 게 진짜!”
“배운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처음엔 안 되는 게 당연한 거야·”
아델라는 오러를 다루는 데 꽤나 애를 먹고 있었다·
전생 육체의 능력을 일부 물려받아 재능은 충분하고도 남을 거다·
다만 요령이 조금 없을 뿐·
그리고 내가 원래 말로만 하는 교육에는 그리 소질이 없다·
그보다는 스파르타 교육 혹은 새끼를 둥지에서 떨어뜨리는 독수리식 교육을 지향하는 편이지·
“흐음 비가 오려나· 기온은 낮은데 습해서 땀이 안 마른당·”
“너 먼저 들어가서 샤워해· 난 이따가 할게·”
“에이 언니 물도 아낄 겸 나랑 같이 하면 안 돼? 응?”
“제발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고·”
아델라와 쓸데없는 것으로 투닥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이었다·
“난 언제나 진지하게 하는··· 응?”
[사랑 없이는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갈지자로 휘청이며 걸어오는 사람이 흥겨운 콧노래와 함께 반대쪽 길목에서 걸어왔다·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걸어갈 만큼 넓은 길 아니었기에 아델라와 나는 왼쪽으로 딱 붙어서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우리와 같은 쪽으로 움직였다·
오른쪽으로 가니 다시 똑같이 오른쪽으로 움직여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언니 저 아저씨 취했나봐· 조용히 지나가자·”
“응·”
독한 술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뭬야· 이 늦은 시간에 아가씨들이 겁도 없이 돌아다니네?”
허름한 차림을 한 남성이 비어버린 소주병을 홀짝이며 풀린 눈으로 말했다·
“집까지 데려다줄까? 어디 살아? 응? 아저씨가 친절하게 에스코트 해줄게요·”
남성이 아델라의 손을 잡으려하자 그녀가 기겁하여 뒤로 내뺐다·
“됐어요 저희 여기 근처 사니까 가볼게요·”
“아니 이 년 봐라?”
“언니 위험하니까 빨리 가자·”
“내 말이 우스워어어!”
쨍그랑-!
소주병이 벽에 부딪혀 가로로 갈라졌다·
“어엉? 뭐야 깨져버렸네? 하하 실수실수· 우쭈쭈 많이 놀랐어요 꼬마 아가씨? 아저씨 막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딸꾹!”
이제보니 얼굴이 완전 새빨갛다·
아예 우리를 보내주지 않기로 작정한 듯 두 팔을 쭉 뻗어 길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제발 좀 지나갑시다? 예?”
아델라가 앞장서서 그의 팔을 치우는 순간 남성이 고함을 내지르더니 소주병을 마구 휘둘렀다·
“꺄아악! 미쳤나봐 이 새끼!”
“이 새끼? 야아아! 너 죽고 싶냐! 죽고 싶냐고 묻잖아아악!”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남성은 날카로운 소주병을 아델라의 머리에 제대로 내리칠 작정이었다·
아델라의 손목을 잡아당겨 내 뒤로 넘어뜨리고 오른팔 전체에 오러를 휘감았다·
“넌 또 뭐야!”
“일단은 사람이야·”
“뭣···!”
쨍그랑-!
소주병이 내 팔에 막혀 산산조각이 났다·
좁은 길에서 할 수 있는 동작은 제한된다·
그러니 양다리를 앞뒤로 나란히 놓고 무게중심을 단번에 뒤에서 앞으로 움직인다·
거기에 반탄력까지 심어서 남성의 복부에 주먹을 정통으로 꽂았다·
“아아아아악!”
퍼어어엉-!
남성의 몸이 반으로 접혀 가로등 불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으로 멀찌감치 날아가버렸다·
털썩-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고요가 찾아왔다·
엉덩이를 쓱쓱 털고 일어난 아델라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언니 위험하다고·”
“뭐?”
“아 아무것도 아니야! 지름길이 아니라 그냥 돌아서 갈 걸 그랬네 헤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알빠노혹등고래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한달의 출석 수고하셨습니다!!
MoonJM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나메와 아델라가 함께하는 일상은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다이나믹 할 것 같아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소네일론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나메한테 대들면 모두 비슷한 최후를 맞이할 거래요!! 자나깨나 나메조심!!
인적없는 골목에서 나메를 봤다면 그 즉시 자리를 떠나시길 바랍니다··!! 노나메 병장은 위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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