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1
마나세는 왜 세금인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전기세 수도세는 사실 엄밀히 따지고 들면 재화를 소비한 대가이기 때문에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마나를 사용하는 대가로서 반대급부 없이 징수하는 마나세는 요금이 아니라 세금의 영역에 속한다·
마나세에 대한 역사는 트리위키 수십 페이지에 걸쳐서 서술될 정도로 길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본 의의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개인의 마나 사용을 국가가 엄중하게 관리 및 단속하고
마력세법 개정이라는 입법절차를 통해서만 세율을 인상·인하 할 수 있도록 주체를 제한하며
세금 체납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을 명시하기 위해서이다·
사회계약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마법의 독점사용을 견제하려는 국민들과 한 줌의 권력을 맛보고 싶어하는 관리인(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원가의 수백 퍼센트나 되는 금액을 징수하는 걸 요금이 아니라 세금이라고 우길 만큼 명분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마력발전의 날 기념식’에 나를 초청한 것도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 4월 6일·
대한민국이 자국의 기술력만으로 4세대 마력발전소를 짓는데 성공한 날·
공휴일도 아닌데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만은 기업인들에게는 꽤나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날이었다·
최근들어 안 사실인데 국가에서는 마나세를 성실히 납부한 개인 그리고 법인 약 500명에 대해 매년 표창을 수여해왔다·
[제 53회 국가 마력발전의 날 기념식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
‘딱 봐도 마나 가지고 허튼짓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행사인가보네·’
코엑스 행사에 대통령이 참여한다 유명 연예인들도 참석한다 등의 말만 했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행사였지만 아무래도 세제상의 혜택이 눈길이 갔다·
‘고액 납세의 탑’을 수상하면 법인은 5년 개인은 평생동안 일정 비율의 마나세를 감면해준다는 것이었다·
대신 단위가 괴랄하기 짝이 없는데 천억 원당 1%이다·
내 경우에 한해서는 2%의 감면에 해당된다·
그 외에도 세무조사 유예 철도 운임 할인 공영주차장 무료 이용 등의 자잘한 혜택이 주어졌다·
‘법인은 그렇다 쳐도··· 왜 이런 조항이 개인에게도 달려있는 거지?’
5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매우 드물었다·
더군다나 1년 안에 마나세로 천억원 이상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나조차도 페르소나 파이시를 상위시전을 위해 수백 개의 5서클 조각진들로 쪼개면서 골머리를 앓았으니·
우리나라 법 조문에 특이한 조항이 있을 때 대충 한 사람을 지목하면 얼추 들어맞는다·
보나마나 함초롱이겠지·
찾아보니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느긋하게 인터넷 서핑을 할 동안 차량은 어느새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나는 택시를 세워 코엑스 앞에서 내렸다·
검은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차례대로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만 너무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왔나·
가벼운 노란색 맨투맨에 레깅스 차림이라 여기저기서 시선이 따갑다·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을 챙기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다들 정부쪽 관계자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낯이 익길래 나는 폰을 켜서 초청장에 있는 얼굴을 대조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국세청장 김로학입니다· 제53회 마력발전의 날을 맞아 모범납세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 이 사람이다·
[앞으로 국민의 신뢰 속에서 변화하는 마나세 행정을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진심어린 조언을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런 우연이·
아니 국세청도 함께 주관하는 행사니까 어쩌면 이 만남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십니까 국세청장 김로학입니다· 신분증하고 초청장···”
쏟아지는 방문객 사이에서 기계적으로 환영인사를 하는 아저씨에게 초청장을 흔들거리며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저 같은 탈세자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처럼 불러주시니까 왔어요· 학생증도 괜찮으시죠?”
국세청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 마냥 아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짐짓 모른 채 하며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표이사치고 시사에 어두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연이은 구설수로 사퇴위기에 내몰려있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리거나 머리를 숙이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는 등 제각기의 방법으로 웃음을 참아냈다·
나보고 탈세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모범납세자라니 세상이 이렇게나 모순적이다·
“···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모범납세자 여러분의 발전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눼에·”
얼굴이 잔뜩 구겨진 국세청장은 서둘러 나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반응이 영 싱겁네· 끝까지 무시하겠다 이거지?
행사 시작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도 남았겠다·
자리에 찾아가지 않고 입구 근처에 서성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이거이거 요즘 셀럽 노나메님 아니셔? 이런 노친네들만 모여있는 장소에서 보니까 훨씬 반갑네· 올해 국세청 홍보대사로 뽑혔구나?”
“옴마야 진짜 안에 있었잖아? 나메 병아리룩 짱 귀여워요!”
“어른들도 못 해내는 걸 참··· 대단하긴 대단혀·”
한마디씩 던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먼지떨이 소녀도 오셨네!”
“네? 저요?”
“하하하! 우리 회사 블라인드에서 나메양 보고 그러더라고요· 먼지떨이로 국세청에 아주 그냥 불을 지폈다고!”
무슨 성냥팔이 소녀도 아니고···
그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제가 먼지라도 털어드릴까요?”
“응?”
나는 가방에서 완드를 꺼내 끝에 간단한 연성식을 작성했다·
[연성: 폴리프로필렌]
완드를 막대기 삼아 그 주위로 PP소재의 섬유가 빽빽하게 자라났다·
“실례지만 어디에서 오신 분이라고 하셨죠?”
“나? 난 미래조선해양에서 왔지·”
“거기 이번에 인도네시아에 군함 수출한다고 들었는데·”
“와 꼬마야 너 뉴스도 자주 챙겨보는구나? 맞아맞아·”
“사업하시는 거 모두 다 잘되라는 의미에서 제가 액운을 전부 털어드릴게요·”
간이로 제조한 먼지떨이로 대충 먼지가 쌓일 것 같은 곳들을 문질렀다·
“이야 이거 엄청난 선물을 받아버렸네···! 고맙다!”
“나메야 아니 노나메 어린이! 여기 이모도 한번만 해주면 안 돼? 이번에 꼭 수주받고 싶은 사업을 앞두고 있는데 나도 축복 받고 싶단 말이야···!”
“이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당연히 해드려야죠·”
“고마워! 아유 마음씨도 착해라·”
탈탈탈-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는데 이 CEO들은 과학을 믿는 것만큼이나 신앙이나 미신을 믿는다는 사실이었다·
숫자나 과학으로만 결과를 예측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고 다들 비슷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때때로 이 미신이라는 게 기업 구성원들의 도전정신과 추진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지· 무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나온 얘기인데 정말 흥미롭지 않니?”
우스갯소리로 지구 상에서 신앙심이 가장 깊은 사람이 교황이 아니라 NASA 직원이라는 소리도 했었다·
나는 인생 스승들의 다양한 가르침을 귀담아 들으며 그 대가로 심신의 안정을 제공해주었다·
살랑살랑-
처음에는 ‘저게 뭐냐’라며 눈살을 찌푸리던 할아버지들도 ‘아 그건 인정이지’라고 말하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접 찾아왔다·
나로 인해 입구가 소란스러워졌음에도 국세청장은 여전히 손님 응대에 바빴다·
입구가 전부 유리문이라 모를 수가 없었지만 알고도 애써 무시하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나와 눈이 마주친 건 덤이다·
‘이래도 정녕 사과를 안 한단 말이지·’
아무리 먼저 사과하면 질타받는 대한민국이라도 그렇지 쪽팔리지도 않나·
슬슬 팔이 저려온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눈치가 보일 때쯤이었다·
“하 늦었군 늦었어· 기자들 오기 전에 어서 서두르지·”
덩치 큰 보좌관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체격의 남성이 컨벤션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깊게 들어간 눈매는 쌍꺼풀로 인해 더욱 짙어보였고 두꺼운 눈썹과 오똑한 코가 사람의 인상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었다·
카리스마로만 따지면 할리우드 스타 혹은 대통령 혹은 저기 이탈리아 같은 데서 마피아 보스나 하고 있을 관상이었다·
“···?”
남성은 돌연 내 앞에 멈추어 섰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얼굴을 한참이나 들어야만 했다·
남성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허허··· 아이가 우리 국세청장님한테 쌓인 게 참 많았나 봅니다?”
헐레벌떡 뒤늦게 달려온 국세청장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대통령님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의 원수
행정부의 수장
국군통수권자
그는 현 대한민국의 26대 대통령 이조원이었다·
* * *
나메가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국세청 홍보대사로 위촉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국세청장도 세무조사를 없었던 일로 만들만큼 뻔뻔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녀가 맨 앞자리 즉 고액납세의 탑 수상 예정자라는 사실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나메는 대통령 표창장에 구체적인 납입 금액을 공개로 돌리는 것에 대하여 사전에 동의를 하였다·
[귀하는 납세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여 국가 재정에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진납세문화 정착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대통령 이조원· 축하드립니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속에서 대통령이 나메에게 표창장을 안겨주었다·
나메가 표창장과 고액납세 트로피를 손에 들었다·
[노나메 님은 2051년 4월 7일부터 2052년 4월 6일까지 총 이천백억칠천오백삼십구만오천사백구십삼(210075395493)원을 마나세로 납부하였으며 2천억 고액납세의 탑 수상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좌중이 한차례 크게 술렁이더니 뒤늦게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알빠노혹등고래님 2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맛있는 한편이 되셨기를··!!
익명의 후원자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멋있는 마법들을 좋아해주셔서 저 또한 너무 기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귀여운 나메 잔뜩 보여드릴게요!!
자고로 신앙을 잃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법이며··!!
의외로 생물학자 우주공학기술자들이 신을 잘 믿는다는 썰을 어디서 들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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