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4
[다섯번째 라운드가 이렇게 끝납니다! 올리비아 킴의 마법같은 타격!]
[이야 쉽지 않은데요? 세피론 아카데미 올해도 8강의 벽은 높았습니다! 세종 미리내 아카데미의 다크호스 올리비아 킴 선수가 5라운드의 혈투 끝에 결국 세피론 아카데미를 완벽하게 침몰시켜버렸어요!]
[부산이 강세라고 하더니 오히려 세종에서 8강에 3명이나 진출시켰네요?]
[네 엄청난 이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불어 부산 아스펜에서 2명 그리고 강북 알테어 경기 로허트 인천 헤리티지에서 각각 1명씩 진출을 확정지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며 이어지는 대진 추첨도 많은 시청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이고· 구교장이 또 재단으로부터 한 소리 듣겠구만·”
소파에 등을 기댄 천교수가 참혹한 결과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무것도 못 해보고 졌네요· 이해할 만은 한 게 올리비아가 맷집으로 저렇게 버텨버리면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죠· 가용 가능한 전략의 가지수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의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나는 손가락에 꽂아놓은 꼬깔콘을 하나씩 먹으며 경기를 복기했다·
“김영우 저 사람 예선에서 상대 1라운드만에 꺾고 올라온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못 싸우는 건데?”
반면 이틀째 생리통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델라는 짜증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베개를 깔고 엎드려 있는게 정말 편해보인다·
“초반에 너무 다양한 전략을 써보려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돼버렸어· 마법 못 맞추니까 오러로 근데 오러로도 안 뚫리니까 마법으로· 그렇다고 체력전으로 간 것도 아니고·”
원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하지 않던가·
김영우 선배도 작년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알테어 상대로 1인분은 거뜬히 했던 실력자였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너무나도 냉정하여 조금의 실력차만 나더라도 박빙의 승부를 허용하지 않는다·
“뭐야 뚝심이 부족한 거였네·”
“사실 하나만 팠어도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 같아· 애초에 실력 차이가 좀 나서·”
느긋한 주말에 우리 가족 세 명은 티비 앞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전국체술대회 1차전을 관람했다·
“그럼 오늘은 16강만 하고 내일은 8강부터 결승까지 스트레이트로 다 치르는 거야?”
“응·”
“와 엄청 힘들어보이는데·”
“나 때는 16강부터 하루만에 다 끝냈단다· 예선만 따로 했었지·”
천교수가 과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냈다·
“우와 아버님도 옛날에 대회 출전하신 적 있으세요?”
“그럼· 생각해보면 요즘 애들은 참 싸우기 편해졌어· 휴식도 주어지지 반칙 종류도 많아졌지· 우리 땐 휴식 없이 30분 내내 싸웠거든·”
“결국 아빠도 4강에서 떨어지셨잖아요·”
“상대가 상대이잖니··· KO 안 당한 게 어디야·”
“인터넷에 뭐라고 치면 나와? 나도 볼래·”
한창 선수들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아델라 옆에 누워 풍화된 영상을 틀어주었다·
“와 2013년? 이때도 카메라가 있었어?”
약 40년 정도 된 유물에 아델라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뒤에서 천교수가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였지만 이를 눈치챌 아델라가 아니다·
함초롱이 단상 위로 올라오자 커다란 함성소리가 지직거리며 울려퍼졌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아는 장발의 모습이 아니라 일명 거지존이라 불리는 중단발을 하고 있었다·
퍼석퍼석한 머리 꾸밈없는 날것의 피부 온갖 외모 디버프를 다 받았는데도 귀여운 인상을 숨길 수 없었다·
“근데 아버님은 몇 분쯤에 나오시는데?”
“여기 반대편에 서 계시잖아·”
“응? 에에에엣?”
아델라가 황급히 몸을 틀어 천교수를 바라보았다·
내게서 폰을 뺏어가 두 얼굴을 대조해본다·
“세월이 참 야속하지?”
천교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과장 1도 안 보태고 정말 아이돌인 줄 알았어요! 와아 대박대박!”
“너도 외출할 때 선크림 꼭 바르렴· 자외선이 피부에 정말 치명적이더구나·”
경기 자체가 막 그리 흥미로운 편은 아니었다·
아델라는 하이라이트 부분만 빠르게 쓱쓱 넘겨보았다·
두 선수의 실력이 비슷하면 경기는 매우 박진감 넘치거나 매우 지루하거나 두가지로 갈린다· 이 경기는 명백히 후자였고·
“근데 이 사람이 그렇게 강한가? 이것만 봐선 잘 모르겠는데·”
아델라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천교수가 몸을 앞으로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 봬도 이 아가씨가 2회 3회 4회 우승자야· 전국체술대회가 문체부의 공식후원 경기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함초롱의 활약 덕분이었다니까?”
“하하 네···”
“또 들어봐라· 이게 우리 때 얼마나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거냐면-”
천교수가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말문이 확 트일 때가 있었다·
아델라는 귀에 피가 나기 전에 다음 결승 영상으로 넘어갔다·
[(2013) 제4회 전국체술대회 고등부 결승: 함초롱 vs 구온유]
“어? 이분 언니 다니는 아카데미 교장쌤 아냐?”
“응·”
“오오 다 이렇게 인연이 있었던 거구나 신기하다· 이건 영상이 좀 짧아서 볼만 하겠네·”
30분짜리 준결승에 비하여 결승은 4분 30초가 전부였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의 밀도가 너무나도 달랐다·
이어지는 과격한 아니 잔인하기까지 한 공격들에 아델라가 숨을 참고 시청했다·
상대의 목을 조르는 건 기본이요 어깨가 탈골되어도 스스로 뼈를 우두둑 맞추어 경기를 속행한다·
두 여성의 소립자 방벽이 모두 깨졌음에도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
이질적인 오러가 격돌하고 핏줄기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로 얼룩진 주먹을 인정사정없이 휘두른다·
난전 끝에 구온유가 함초롱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넣는 걸로 경기가 끝나나 싶었지만
콰아아앙-!
함초롱이 다시 그녀의 머리를 맨땅에 처박아버림으로써 우승자의 위엄을 다시금 선보였다·
아델라가 배를 움켜잡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으··· 이 정도면 죽은 거 아니에요? 이마가 박살났겠는데?”
“당시에 우리가 조금 과격하게 싸우는 편이긴 했어·”
천교수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낭만이 있던 시절이네요· 그래도 살짝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잉?”
“나메야 방금 뭐라고 했니?”
아델라와 천교수가 얼탄 표정으로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싸우다가 누구 하나 죽거나 배때지가 뚫리거나 사지가 잘린 것도 아니잖아요· 이 정도 찰과상이면 그냥 병원에서 몇 달 푹 쉬면-”
“언니는 진짜 미쳤어!”
“나메야 잠깐 내 서재로 따라와보겠니?”
“아니 왜···”
천교수가 입술을 꽉 깨물고 정색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빨리 아버님한테 가서 정신교육 받고 와· 훠이훠이·”
아델라는 질렸다는 듯 손짓으로 나를 거실에서 떠나보냈다·
‘아 내 나이가 몇인데 잔소리를 들어야 하나···’
나는 터덜터덜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병원은 리스폰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등의 잔소리를 1시간 동안 듣고 나서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네가 UFC 시청하는 것도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구나·]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드라마를 시청하는 아델라가 괜히 얄미워보여 그녀의 엉덩이를 발로 꾹 밟았다·
“아악!”
“아델라 옷 갈아입어· 밖에 나가자·”
“밖에 어디? 뭐하러?”
“대련장· 오러 쓰는 법 알려줄 테니까 따라와·”
“오 진짜?”
오랜만에 아이들이 대련하는 모습을 보니까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얘라도 열심히 키워서 하루빨리 내 스파링 파트너로 만들어야지·
매일 밤 꾸준히 운동도 해서 나도 그녀도 이전보다 체력이 좋아졌을 것이다·
약간 구름이 낀 우중충한 날씨에 아델라와 똑같은 운동복 세트를 입고 밖에 나왔다·
“왜 나랑 똑같은 거 입냐?”
“난 집에 츄리닝 이것밖에 없거든? 그게 싫었으면 언니가 다르게 입었어야지·”
버스 정류장 하나 정도 거리의 개포동 시민종합대련장까지 걸어가서 미리 예약한 시설에 체크인을 했다·
알테어 아카데미에 있는 대련장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테니스장 하나 정도의 크기는 됐었다·
천장이 없어서 막 그리 좁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기다란 팔다리를 쭉쭉 펴며 스트레칭을 하는 아델라·
“어차피 오늘 격하게 움직일 일은 없을 거야· 일단 오러하트의 문부터 여는 게 급선무니까·”
오러하트라는 장기는 애당초 가상의 개념이다·
실제로는 오러하트다발이라는 모세혈관이 집중된 영역이 마나가 저절로 고이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해부학을 정립하기 전까지는 실제로 사람의 몸에 존재하는 장기처럼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물론 21세기 현재에 들어서도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오러란 무엇인가·”
“오러가 무엇인가요 나메 선생님!”
아델라가 번쩍 손을 들며 물었다·
“아무도 몰라·”
“엥? 리얼루?”
“응· 아직까지 오러는 그 자체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교육 체계가 통일되기 어려웠어·”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다·
“막말로 아즈텍 문명의 식인종이 사람 다섯을 먹으면 오러를 개화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능력을 개화할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건 좀···”
“그래도 정의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 마나파생확률중첩물질 제어가능인공호르몬 마력장변환뇌파수용체· 대충 들으면 모르겠지?”
벌써부터 눈에 초점이 나가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러면 곤란하다·
“그런 거 다 몰라도 다섯 살 아기들도 다룰 수 있는 게 오러야·”
혹자는 이를 재능이라고 부른다·
작년에 놀이터에서 서리와 지혜가 다리에 오러를 불어넣으며 빠르게 달릴 수 있었던 이유·
그녀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오러를 다루는 법을 깨우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재능이라기보다는 기질의 차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저 그 기질이 인간이 설정해놓은 규범 안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재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세계적인 농구선수가 10세기 고려시대에 태어났으면 힘 쓰는 재능 말고는 들어보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도 오러를 쓰기 위해서는 특정한 기질이 필요한 게 아니다·
“오러는 세계의 법칙을 자신의 의지만으로 관철할 수 있는 도구이자 대화 수단이야·”
“으음·”
“쉽게 설명해줄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강렬한 의지 따위는 필요없어· 지식 신체 테크닉이 전부지·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마나를 운용하기에 걸맞은 신체를 가지고 회로술식 위에서 마나를 조작하는 법을 익히면 그걸로 끝· 라이트 마법을 세게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해서는 마법에 영향을 주지 않아· 주입 단계에서 더욱 많은 마나를 불어넣어야 하지·”
“여기까지는 이해한 것 같아·”
“마법은 세계 밖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법칙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거라고 한다면 오러는 반대로 세계 내부에서 깜깜한 지역을 탐험을 하는 거지· 이걸 우리는 세계관 동양 문화권에서는 주로 심상세계라고 부르고·”
“아아악 잠시만 정신 나갈 것 같아!”
“이게 어려워?”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양반다리하고 앉아봐·”
그리고 나는 아델라의 뒤에 앉아 다리는 바깥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아델라의 배꼽 부근에 가져다대었다·
“흣!”
“왜?”
“갑자기 차가워서·”
“내 오러를 불어넣어줄 테니까 한번 어떤 방식으로 흐르는지 느껴봐· 눈을 감으면 더 좋고·”
“오· 느껴져· 약간 따뜻하고 반짝거리는 별빛이 퍼지고 있어·”
“어떻게 퍼지는데?”
“숨을 쉬면 모이고 내쉬면 흩어지는 것 같은데?”
“그런 게 바로 이미지야· 오러가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네가 몸을 떠올릴 때 주로 호흡의 이미지가 연상되어서 그래· 이제는 숨을 한번 참아볼래?”
“흡·”
앞뒤로 움직였던 배가 차분해진다·
“어때?”
“심장이 뛸 때마다 전신으로 퍼져· 몸을 주위를 엄청나게 빨리 돌아·”
“맞아 연상된 이미지에 따라 운용하는 방식도 달라지지· 손 잡아줄 테니까 눈 감은 상태로 그대로 일어나보고 숨은 이제 쉬어도 돼·”
“후하·”
세계는 인간에게 관대하다·
물리법칙이 딱딱 들어맞는 등호로 존재한다면 인간에게는 좌우에 부등호가 있는 범위로써 주어지는 느낌이다·
“다음에 연상할 건 트램펄린이야· 다리에 오러를 불어넣는 법이지· 지금 바닥에 트램펄린이 있다고 생각하고 한번 폴짝폴짝 뛰어볼래?”
“이렇게? 이렇게?”
아델라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동시에 그녀의 다리가 움직이는 주기에 맞추어 오러를 적당히 불어넣었다·
“다리에 별빛이 모이는데?”
“응· 내가 일부러 주기를 맞춰서 넣어주는 중이야· 조금 더 리듬감 있게 연상해봐·”
“오케이!”
점점 중력이 약해지듯 아델라의 몸이 가벼워졌다·
30cm 40cm 50cm·
서전트 점프 2미터 높이까지 아델라의 몸이 떠올랐을 때 내가 눈을 떠보라고 종용했다·
“와 이게 되네!”
일반인들이라면 벌써부터 겁을 먹을만한 높이였지만 아델라는 그래도 게임 속에서의 경험 덕분인지 신을 내는 분위기였다·
내가 오러를 거두자 그녀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알겠어? 이런 게 바로 오러를 다루는 느낌이야· 이제 너만의 방식으로 오러하트에서 오러를 꺼낼 줄 알아야 해·”
“어떻게?”
“요령껏 잘? 대련장은 내일까지 빌려놨으니까 마음 급하게 먹을 건 없어· 네 재능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니까·”
“아니아니 잠깐만 내일까지 빌려놨다고? 언니 오늘 여기서 밤 새려고 작정하고 온 거였어?”
“내가 왜 밤을 새? 나는 저녁 먹을 때 되면 집으로 갈 건데·”
원래 깨달음은 혼자 얻는 거다·
* * *
나메는 의리있게 3시간 정도 아델라와 함께 있어주었다·
하지만 저녁시간이 되자마자 쌩 가버리는 모습에 아델라는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 그깟 오러 해보지 뭐! 나만큼 의지가 뛰어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주먹을 꽉 쥐고 나메가 건네준 조언을 되새겼다·
[너의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라·]
나메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한다고 말했다·
‘도대체 그놈의 세계관이 뭐길래· 내가 아는 세계관은 영화나 드라마밖에 모른다고·’
두 시간 내내 가부좌를 틀며 호흡과 맥박에 집중해보아도 별 성과는 없었다·
혹시 몸을 혹사시키면 달라질까 싶어 대련장 내부를 100바퀴씩 뛰어도 보고 머리가 터지기 직전까지 물구나무를 서보기도 하였다·
“왜! 왜 안 되는 거야! 대체 왜!”
열이 제대로 뻗쳐서 잠도 오지 않았다·
만약 다음날 아침 나메가 왔는데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비웃는 낯짝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냥? 나메 언니 완전 무책임하지 않아?”
“맞아 어떻게 하나뿐인 동생을 버릴 수가 있어!”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라는 말에 아델라는 1인 2역도 해보며 새벽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제 풀에 지쳐 그녀는 대련장 한가운데에 대자로 뻗었다·
“차가운 바닥에서 자면 입 돌아갈 텐데··· 하 피곤해 죽겠다·”
나메의 오러는 따뜻한 별빛이 몸 구석구석을 맴도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서울은 별이 거의 안 보이네···’
아델라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어둑어둑한 밤은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눈을 살포시 감아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사실 제대로 된 과거랄 게 없는 아델라이다·
기억상실증으로 어렸을 때의 모든 기억을 잃은 사람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보다 아델라를 더욱 무섭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아델라였다면···’
아델라는 월오아에서 수없이 많이 존재했었다·
‘걔네들도 나처럼 한명도 빠짐없이 죽고 죽고 또 죽었겠지·’
그리고 나메와 만난 아델라만이 유일하게 대표로 발탁되어 개체 bfa41d67c7의 알고리즘을 계승받아 나메의 프라이빗 룸으로 구출되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아델라였어도 지금의 나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만약 나메가 세이브파일을 지우고 다른 아델라를 구출했다한들 지금의 그녀와 다른 점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만드는가·
아델라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무언가 실마리가 보일 것도 같았지만 끝끝내 그녀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아델라는 잠시 대련장에서 빠져나와 텅 빈 공원을 거닐었다·
하늘을 수놓았던 검은 베일은 서서히 푸른 빛을 되찾으며 활기를 되찾았다·
동쪽하늘에선 불그스름한 생명의 기운이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별들과 달리 여명의 하현달은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아델라의 눈에 들어온 건 그 옆에 반짝반짝 빛나는 샛별이었다·
샛별 또는 금성·
스스로 발광하지 않는 행성 주제에 다른 별들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다·
태양이 내뿜는 빛을 반사할 뿐인 존재·
하지만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저 샛별을 길동무처럼 삼았으리라·
문득 아델라는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설령 내가 가짜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녀가 봐왔던 새벽의 풍경들·
중간보스를 물리치고 영원한 루프에서 빠져나왔을 때 본 풍경을 아델라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18년의 기억이 전부 가짜라고 할지언정 앞으로 18년 동안 진짜 경험을 새롭게 쌓아가면 된다·
항상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나메 옆에서 마치 저 샛별처럼·
“여기서 뭐해? 벌써 오러 다룰 수 있게 됐어?”
익숙하고도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아델라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른 새벽부터 나메가 아델라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손에는 참치 샌드위치가 들려 있었다·
겨우 반나절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반가운 느낌이 먼저 들었다·
“뭐야 괜히 걱정했네·”
“어?”
“오러 말이야· 지금도 네 몸 안에서 잘 돌고 있잖아·”
나메가 아델라의 몸을 가리켰다·
몸 전체를 아우르는 따스한 기운에 아델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 나 앞으로 쓸 이름 정한 것 같아· 바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알빠노혹등고래님 3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성실한 출첵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댕스댕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초반부 나메는 너무 슬프죠··!! 이제 꼭 행복하기를!!
[Ep 339 – 천샛별]
6000자 해냈어요··!!
고1의 감성은 너무 유치하지도 너무 성숙하지도 않아서 참 예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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