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7
“눈 감아봐· 눈 밑에 반짝이 파츠 붙여줄게·”
“응·”
“노나메 너무 귀욥짜나! 이거 끝나고 만두머리도 만들어줄게·”
“마음대로 해·”
조명이 꺼진 아카데미 교실 창밖에서 화창한 봄날의 햇살이 들어온다·
유나가 의자 위에 올라가 내 머리를 묶어주는 동안 하루는 다이소에서 사온 하트모양 별모양 스티커들을 한땀한땀 붙여주었다·
“완성!”
친구들이 내 얼굴 앞에 손거울을 불쑥 내밀었다·
머리카락을 뭉쳐 만든 만두 두 개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조금 어색하긴 했어도 정성이 느껴졌다·
“고마워· 유나야 이리와 너도 선크림 발라줄게·”
“아아 귀찮은데· 알았어!”
“얘들아 체육대회 곧 시작한대! 빨리 나와!”
“금방 가요 쌤!”
어두운 복도를 빠져나와 중앙계단을 빠르게 내려왔다·
솜사탕같은 뭉게구름이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닌다·
드넓은 아카데미의 인조잔디 운동장이 학생들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3학년 A반 줄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자 그럼 세피론 아카데미 체육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함성 소리 큰 팀에게 50점 드리겠습니다 청팀 백팀 모두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아!”
목소리가 쉴 정도로 소리를 삐약삐약 질러대는 아이들·
작년에는 건강검진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던 5월의 체육대회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근데 우리가 청팀이야 백팀이야?”
“우리 반은 백팀이래·”
“노나메 수업시간에 집중했어야지!”
체육대회는 청팀 대 백팀으로 붙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학년 내에서 반대항전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주어진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면 됐었다·
“각 대회에 참여하는 급우들을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주세요· 오늘 체육대회의 주인공은 여러분들이라는 걸 명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구온유 교장의 근엄한 인사말까지 끝나고 우리는 그늘진 부스로 돌아갔다·
신발을 돗자리 옆에 대충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적당히 누울 곳을 찾아 헤맸다·
휴대용 선풍기를 가진 유나로 정했다·
“여기 누울래·”
“어서와! 바람 불어줘?”
“응 약하게·”
“작년에 나메도 꼭 와서 했어야 했는데··· 진짜진짜 재밌었다고·”
유나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을 했다·
“그니까! 나메만 있었어도 우리 반이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지혜는 어디서 뭐하고 있어?”
“지금 반에서 혼자 명상 중이래· 이따가 체술대련 나가야하잖아·”
“우와 역시 챔피언은 달라·”
체육대회의 특성상 잘하는 아이가 여러 종목에 참여할수록 유리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눈을 붙이며 쉬고 있는 이유도 오늘 일정이 고되기 때문이었다·
“나메는 뭐뭐 출전해?”
“야 되는대로 다 집어넣어놓고 정작 너희들이 모르고 있으면 어떡해·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건 체술 트램펄린 계주 이 3개야·”
“헉 진짜 많다· 거기에 반 전체가 하는 줄다리기 터널달리기까지 하면 5개네·”
“우리가 나메 안마해주자· 올해는 꼭 이겨야지!”
[3학년 체술대련 출전자 8명은 모두 좌측 모래장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잔디구장 전체에 안내방송이 울려퍼졌다·
체술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몸으로 행하는 모든 것·
일반적인 의미의 체술대련은 오러를 사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즐기라고 만든 체육대회에서 누구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다·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끼리의 체술대련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거나 원 밖으로 밀치면 이기는 거야· 옷을 잡아서 밀고 당기면 안 돼· 팔다리 목을 조르거나 꺾는 것도 모두 반칙패야· 경기시간은 2분· 모두 룰 숙지했지?”
“네!”
“그럼 1 2학년 대진부터 뽑을게요· 자 첫 경기는··· 박리아 대 황준우! 두 선수 모두 앞으로 나와주세요·”
선생의 지시에 따라 귀여운 아이들이 비장한 걸음걸이로 아장아장 들어온다·
심판이 참가자들의 몸 주위에 방벽을 둘러줄 동안 각반 담임들과 고학년 학생들이 열렬한 응원의 함성을 보냈다·
“나메야· 저기 1학년이 너보다 키가 더 큰 것 같아·”
지혜가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1학년 평균 키가 125라고 했었나· 확실히 나보다 10cm는 더 큰 것 같다·
“마지혜 너 그렇게 계속 업보 쌓았다간 나랑 16강부터 만날 줄 알아·”
“흐익 그건 싫어!”
지혜는 재작년 체육대회에서 무려 3학년을 꺾어버리고 우승을 차지하는 엄청난 이변을 만들어냈다·
나로서는 빨리 한번 붙어보고 싶긴 하지만 지혜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메는 자연재해야·”
“뭘 그렇게까지·”
씨름인지 레슬링인지 유도인지 모를 경기가 한창 진행되었다·
일곱 살 아이들이 미숙한 오러를 제어하며 어떻게든 2학년 선배들을 밀쳐내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이 나이대에 1년의 경험은 무척이나 큰 차이이다·
그렇게 재능있는 아이들은 처음으로 선배들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겪어보고 울먹거리며 경기장 밖으로 퇴장했다·
“아이구 올해는 1학년이 전멸해버렸어· 자 그럼 빠르게 16강 첫 경기 대진부터 뽑을게요 첫 타자는 어디보자· 따라란 따라란 쿵짝짝 쿵짝짝·”
심판 선생님은 원기둥 통에서 얇은 나무막대를 하나 꺼내보였다·
“노나메네?”
순간 주위가 크게 웅성거렸다·
나는 떨떠름하게 소매를 걷어올리고 맨발로 모래장 위에 올라갔다·
그 와중에 참가자들은 다들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자기만 안 걸리기를 두 손으로 싹싹 빌고 있었다·
‘내가 무슨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냐·’
“나메랑 맞붙게 될 상대는 2학년 C반 김예지!”
“와아아아아아!”
“흐앙 왜 하필 난데!”
희비가 엇갈리는 찰나 소녀 하나가 제물로 간택되어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노나메 선배님· 같이 맞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김예지는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수줍게 인사했다·
선배라는 말도 다 들어보고 감회가 새로웠다·
2학년이면 아직 체술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아이들일 것이다·
그래도 작년에 아카데미 대항전은 관람했을 터·
그녀도 내 활약을 익히 목격해서인지 몸을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긴장하지 마· 봐주면서 할게·”
“거짓말···”
“응?”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싸우기 전부터 전의를 상실해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에게 따끔한 충고를 건넸다·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도전을 멈추면 그 순간 네 성장도 멈추는 거야·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 이렇게 썩히고 싶어?”
나보다 한 뼘은 큰 친구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말 한마디로 지금 사람을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먼 훗날 그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 말을 떠올리면 그걸로 족할 뿐이다·
“자 경기 시작!”
* * *
김예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나메는 아카데미 학생 모두에게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까마득한 6학년 대선배조차 그녀를 신처럼 우러러보는데 후배들은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나메가 출전했던 아카데미 대항전 경기는 브이튜브에서 15금 딱지가 붙어버렸을만큼 폭력적이었다·
여차하면 얼굴을 으깨버리고 몸을 짓뭉개버릴 수 있는 사람·
비록 몸집은 세 개의 학년을 통틀어 가장 작았지만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1분 동안 반격하지 않을 테니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봐· 네게 기회를 주는 거야·”
나메가 팔짱을 끼며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함정?’
어차피 함정이라 한들 그녀가 달려들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예지는 무릎을 구부리고 자세를 낮추어 거리를 좁혔다·
“하아앗!”
뒤에서부터 오러를 모아 손바닥 두 개를 비스듬이 겹쳐 나메의 복부를 향해 뻗었다·
‘제발!’
아직 순수한 2학년답게 초장부터 가문의 필살기를 사용하는 김예지·
넘어뜨리는 건 어차피 무리일 테니 링아웃이라도 노리려는 심보였다·
하지만 나메가 몸을 슬쩍 옆으로 비틀어 너무나도 쉽게 피해버린다·
“아아앗!”
하마터면 그녀가 아웃이 될 뻔했지만 나메가 그녀의 옷을 잡아주어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무게중심을 잃으면 안 되지· 게다가 오는 경로가 너무 뻔하잖아· 그게 통하려면 디딤발을 더 빠르게 내밀거나 상대랑 몸을 완전 가까이 붙여야 해·”
“죄송합니다!”
“다시 해봐·”
나메가 진짜 봐주겠다는 의도를 알아차린 김예지는 연이은 공격을 펼쳤다·
체격 차이를 이용해 어깨를 밀치려고 해도 옷깃조차 잡을 수 없다·
주먹을 마구 휘둘러보았지만 허공만 가를 뿐이다·
“이게 끝이야?”
나메는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모래사장에 콱 박힌 발이 저리도 얄미울 수가 없었다·
오기가 생긴 김예지는 눈물이 핑 돌고 코가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경지의 차이가 아득하다·
도대체 왜 자신의 공격이 닿지 못하는지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였다·
그녀는 두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애써 참았다·
“잘했어· 그 정도면 엄청 잘한 거야·”
“이씨 하나도 안 통하는데 뭐가 잘한 거예요!”
나메의 위로에 그녀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이 나이대 어린이들의 승부욕은 차원을 달리한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예지를 보고 나메가 잠깐 말을 잃었다·
그러고는 팔짱 낀 팔을 풀어 몸에 오러를 둘렀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몰라도 그거 아주 좋은 기술이야· 완벽하게만 쓸 줄 알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정말 누구에게나 통하지· 한번 볼래?”
나메가 오른손 위에 왼손을 살포시 얹었다·
예지가 썼던 기술과 똑같았다·
소녀에게 알려주듯 나메는 천천히 손을 옆구리에 두고 전신으로 오러를 이끌어냈다·
“···!”
그리고 이어지는 과정은 말로 담을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졌다·
왼발에 모래가 움푹 파이고
오른발에 주변의 모래가 위로 높게 솟구쳐 그늘을 형성한다·
단 두걸음·
예지가 눈을 잠깐 감았다 뜬 사이에 나메의 두 손이 어느새 그녀의 배꼽에 가 있었다·
둘 사이의 공기가 한계까지 압축되며 강한 척력을 발생시켰다·
파앙-!
소녀의 몸이 떠오르며 경기장 밖을 넘어 모래사장 끝까지 밀려났다·
“콜록콜록! 엣퉤··· 퉷·”
예지는 어안이 벙벙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입에 들어간 모래알을 뱉으며 방금 상황을 떠올렸다·
나메가 손을 내밀며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아프진 않지? 손은 안 닿았어·”
“어어··· 네· 엉덩이만 조금·”
“내가 조금 과장해서 보여주긴 했지만 모래 솟구치는 거 너도 봤지? 그 정도로 다리에 강하게 힘을 실어야 하는 거야· 팔을 쓰는 기술이라고 해서 다리가 안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아!”
깨달음을 얻은 듯한 예지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노나메 승리!”
저학년 체술대련 16강의 첫 번째 경기는 나메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나메가 브이자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와아아아! 노나메! 노나메!”
“우윳빛깔 노나메!”
“카피닌자 노나메!”
응원하러 나온 3학년 A반과 백팀 선후배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지혜야 결승에서 만나자· 더 빨리 만나면 좋고·”
“히이익!”
* * *
마지혜는 다섯 살부터 오러를 개화해 마형사로부터 호신술 교육을 받았다·
그 나이 때 체술을 배운 아이들이 백 명이라 치면 지금 지혜만큼 재능을 꽃피운 사람은 그녀 하나 뿐이었다·
1학년 때부터 체육대회 결승에서 3학년을 쓰러뜨리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혜는 쟁쟁한 A반 학생들을 제끼고 대표자격을 따내는 것도 모자라 알테어 아카데미까지 골로 보냈다·
체술의 천재 무결점의 전사 유일한 단점으로 소심한 성격을 꼽지만 그마저도 전투에 들어서면 모두 깔끔하게 없어진다·
그리고 마지혜에게 최후의 시련이 주어졌다·
“후우 노나메 난 준비됐어· 앞에 아이들 수준을 생각하면 큰 코 다칠 거야·”
“그런 패기 아주 좋아· 나도 전력으로 할게 지혜야·”
“아니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어떡해! 난 그냥-”
차마 변명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우웅-
나메가 황금색 오러를 몸 밖으로 내뿜었다·
팔에서 연장된 손아귀가 지혜의 몸을 번쩍 들어 허공에 높이 띄웠다·
“외적발현은 반칙이지! 이걸 나보고 어떻게 이기라고! 노나메에에에!”
“코끼리는 맨몸으로 인간을 이길 수 없어·”
“으아아악 반대 아니냐고오오!”
풀썩-
지혜의 몸뚱이가 푹신한 모래더미에 처박혔다·
체술대련의 결승전 치고는 허무한 결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8화 35화에도 언급된 체육대회 에피소드!! 작년엔 나메가 건강검진 가느라(160화) 참여를 못했지만 드디어 비대칭전력을 선보일 수 있겠네요!!
오늘 나메의 헤어스타일은 트윈테일+뿌까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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