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2
‘라인리스 얼음협곡은 고요한 죽음의 땅이니 세상에서 잊혀지고 싶지 않거든 발을 들일 생각조차 하지 마시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
살인적인 추위로 마수들이 존재하지 않는 안전지대·
이곳에 흘러들어온 인간군상은 다양하다·
연쇄 살인범 내란범 자살 희망자 대부분 삶이 막장까지 치닫은 케이스이다·
해발고도 2400m 평균 기온 영하 60도·
구름이 손에 잡히는 까마득한 높은 절벽에서 앳된 소년의 기합소리가 울려퍼졌다·
“흐아압!”
쿠구궁-!
소년의 검무에 설산이 우레와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눈보라를 일으킨다·
눈의 파도는 구름을 삼키며 점차 크기를 불렸고 자태를 드러낸 산맥의 바위는 잘게잘게 부서져 눈사태와 함께 떠내려갔다·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끝나면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웃통을 벗고 있었다·
태양의 은총을 한 몸에 받은 소년이 힘을 갈무리하고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나름··· 잘··· 한 것 같은데···”
그러자 납치범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떨어졌다가 다시 기어 올라와·”
“네···”
“대답은 똑바로 해야지·”
“네! 지금 바로 떨어지겠습니다!”
소년이 눈물을 머금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절벽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낙하시간 18초 동안 소년은 복받치는 감정을 토해내며 눈물을 쏟아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거지 누나가 너무 예쁘길래 선뜻 식사를 내어줬을 때?
그녀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성 한 채를 사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액수라는 걸 알고도 망설였을 때?
일단 확실한 건 그녀가 마왕의 직계후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도망치기에 늦었다는 것이다·
불길한 황금빛 눈동자는 죽음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소년은 절벽에서 떨어지며 과거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했다·
* * *
쾌(快) 중(重) 강(强) 유(柔) 환(幻)·
패(覇) 변(變) 첨(尖) 탄(彈) 폭(爆) 와(渦) 흡(吸)·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의 상승과 하강(mythos)·
로고스(logos) 페이소스(pathos) 에토스(ethos)·
불(ignis) 물(aqua) 흙(terra) 공기(ventus)의 아르케(ἀρχή)·
이 외에도 77여가지의 근본적인 질료를 담은 동작을 에미카에게 보내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본인에게 맞는 잠재력을 찾는 것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일 뿐이다·
우리의 뇌와 오러하트는 불편을 감내해야 성장할 수 있다·
학습이 고통스러운 이유이고 노력이 쓰라린 이유이다·
[노나메: 지금 한강 건너는 중이야· 20분쯤 뒤에 도착할 것 같네·]
나는 택시에서 반짝거리는 강물의 경치를 감상하며 에미카에게 연락을 남겼다·
[에미카: (๑°ㅁ°๑)‼✧]
[에미카: (‘×д×’三꒪д꒪ ;)]
[에미카: ๐·°(৹˃̵﹏˂̵৹)°·๐]
항상 포커페이스인 녀석이 이모티콘은 꽤나 귀여운 걸 사용한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네·
폰은 이만 뒤집어두고 산뜻한 봄바람의 향취에 빠져 옛 생각에 잠겼다·
클라우스를 처음 가르쳤을 때가 생각난다·
누가 용사 아니랄까봐 그는 ‘봄’의 묘리를 기본으로 삼고 있었다·
봄의 미토스는 하강 후 상승 이별 후 재회가 핵심 키워드이다·
클라우스는 분명 재능은 충만한데 또 재능이 지지리도 없는 별종이었기에 그를 가르치면서 많이 답답함을 느꼈었다·
교육방식에 있어서 일말의 죄책감도 없던 건 아니다·
가엾고 불쌍하지·
하지만 그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아직까지도 떠올릴 수 없는 걸 보면···
역시 나는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노나메 연전연승·
최근들어 한국치고 괜찮은 날씨가 계속되어 텐션이 자연스레 높아졌다·
택시에서 내린 뒤 호텔 초인종을 눌러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나메짱 안녕! 오늘도 카츠하타 아가씨 보러 왔구나?”
때마침 장을 보고 돌아온 유파생들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카츠하타 양은 잘 있나요?”
“당주님께서 내려주신 훈련 때문에 엄청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
“맞아맞아· 소화가 안 된다고 저녁도 굶고 그러더라니까·”
“저녁으로 삼겹살 사왔는데 오늘은 좀 먹었으면 좋겠네·”
“나메짱이 가서 안마라도 해줘· 아가씨가 사춘기라서 그런가 언니들 손은 이제 피해버린다구·”
“흑흑 에미카의 볼은 이제 만질 수 없어· 유이로 만족해야지·”
이 사람들은 수련의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어내는 것인지 쉴새없이 조잘거렸다·
나는 귀에서 피가 나려는 걸 견디고 에미카의 처소에 들어갔다·
그녀는 대형거울 앞에서 열심히 내가 숙제로 내준 동작들을 따라하고 있었다·
이렇게만 놓고보면 아이돌 춤을 따라하는 여중생 느낌이 얼핏 나는 것 같다·
“에미카·”
“아아 나메짱 왔구나? 지금 열심히 연습 중이었어·”
“아직 4시 되려면 10분 정도 남았으니까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
“다 끝날 때까지? 요즘 내가 수련이 너무 바빠가지고··· 제 시간 안에 못 끝낼 것 같은-”
“못 끝내기만 해봐·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미카가 유연한 몸을 허우적대며 열심히 몸을 놀렸다·
에어컨이 이렇게나 빵빵한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다·
‘아 저거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훈수를 두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아미타불을 외웠다·
99번째 동작·
에미카는 발레를 하는 것 마냥 공중에 폴짝 뛰어올라 두 다리를 앞뒤로 쭉 뻗었다·
실제 발레에도 비슷한 동작이 있다 그랑 주테(grand jeté)라고 한다지·
“흐아아악!”
에미카가 가랑이를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오오 100·”
“100점? 나이스다요 헤헤·”
“99 98 97···”
“아앗 뭐야 초 세는 거였어? 빨리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100번째 동작·
더블 에어트랙이라는 동작으로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아 두 손으로 착지하는 기술이다·
에미카가 죽은 눈으로 시범 영상을 관람했다·
“···”
“뭐해 안 하고?”
“하 할게!”
에미카가 매트 위에 두 손으로 물구나무를 섰다·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손을 번갈아가면서 땅을 짚어 몸을 돌리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기술이다·
“꾸에엑!”
하지만 반바퀴도 돌지 못하고 가슴부터 착지하는 모습에 나는 이마를 탁 쳤다·
“혹시 몸치인가? 그럼 좀 곤란한데·”
“나 몸치 아니거든! 이걸 한번만에 보고 따라하는 게 더 이상한 거야·”
에미카가 언성을 높이며 자기변호를 했다·
그러다가 제 풀에 지쳐 쓰러져 얼굴을 매트에 파묻었다·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인 걸 지도 모르겠다·
나는 엎드려있는 에미카 등 위에 올라타 그녀의 승모근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주었다·
“흐으으읍···!”
“에미카 언니 어제 잠 제대로 안 잤어? 아까부터 눈에 초점이 풀려있잖아·”
이 상태라면 수업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을 것이다·
졸리지 않게 만드는 혈 따위는 없지만 뭉친 근육이라도 풀어주려고 꾹꾹 등근육을 문질렀다·
“숙제가 너무 많아서 흐으응!”
“아씨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저절로 나오는 걸 어떡해···”
“알겠어 살살 해줄게· 그니까 안마 받으면서 들어·”
“이런 동작을 왜 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전투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 같아·”
“안 그래도 오늘 그걸 설명해주려고 했어· 미리 말해주면 결과값에 영향이 갈까봐 일부러 말을 아낀 거야· 그러니까 졸지 말고 잘 들어·”
“흐긍···!”
“그래도 대답은 똑바로 좀 해줄래?”
멀리서 홀로그램을 가져와 그녀가 앞서 찍은 동작들을 함께 시청했다·
“이건 일종의 오러적성 테스트야·”
“오러적성 테스트? 그건 다 사기 아니었어?”
“생년월일이나 이름 가지고 적성 찾는 건 다 가짜고· 이런 게 진짜 오러적성 테스트라고 볼 수 있지· 물론 아무나 할 수는 없는데 기본적으로 에미카처럼 관절의 가동범위가 엄청 좋아야해·”
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요가나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핵심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낼 가능성이 있는 것· 그 동작과 밀접하게 연결된 묘리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만 있다면 외적발현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졸지 말고 똑바로 들어·”
“학!”
에미카의 양옆의 외복사근을 꾹 누르니 싱싱한 활어처럼 팔딱팔딱 튀어올랐다·
나는 그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소녀를 다시 진정시켰다·
그리고 지금 막 재생되는 8번 동작을 가리켰다·
한 손가락 팔굽혀펴기·
“이런 건 보통 ‘첨(尖)’의 묘리가 들어가 있어· 첨의 오러의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주 높은 확률로 이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거지·”
“아 약간 이해했어! MBTI에서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I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거랑 똑같은 거지?”
“러프하게는 그런 거야· 근데 이건 비교적으로 쉽게 했네·”
“응응· 우리 유파에서도 시키는 거니까·”
“그래서 이게 참 분별이 어려워· 후천적인 교육으로도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보니까 그런 걸 잘 감안해야 돼·”
“그럼 방법이 있는 거야?”
“계속 보는 거지· 100개의 변수를 가지고 100개의 확률미분방정식을 푸는 느낌이라고 보면 돼·”
아델라는 금성의 묘리로 외적발현을 개화했다·
그런 사람들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남들보다 물구나무를 잘 선다·
금성의 자전축만 타 행성과 비교해 180도 뒤집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관관계를 이쪽 세상의 사람들이 도통 알 리가 없었다·
마나가 극도로 풍부한 전생에서나 대중들의 민담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었으니·
에미카의 말랑말랑한 어깨를 풀어주며 찬찬히 동작을 눈에 담았다·
“나메야 그럼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
“응 뭔데?”
“너는 어떻게 다 잘할 수 있어? 분명 재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도교에서 안 가르쳐줬어? 만류귀종· 이건 동서양 어디서나 상식으로 통하는 건데·”
“아···! 모든 물줄기가 결국 바다에 가서 하나가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결국은 사계절이고 시간이고 생명의 순환이잖아· 하나의 고정된 시간은 다른 시간대에서 수없이 많은 환상을 만들어내기에 환(幻) 매년 똑같은 시기에 돌아와서 패(覇) 그럼에도 환경이 변화무쌍해서 변(變)· 이처럼 인간이 오러를 다루는 방식도 결국 말장난에 불과해·”
일단 외적발현을 다룰 줄만 안다면 다른 묘리와 연결짓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다만 귀찮고 익숙하지 않아서 다들 굳이 안 하는 것 뿐이다·
마지막 100번째 동작까지 모두 돌려보고 나는 눈을 감아 계산에 몰두했다·
이렇게 한눈에 안 들어오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100가지 중에서도 없으면 오늘은 완전 허탕친 건데·
사막에서 바늘을 못 찾았으니 이제는 남극까지 바늘을 찾아야 할 판이다·
하지만 유레카 신이 나를 도왔다·
내가 이걸 찾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뾰족할 첨···”
“첨? 역시 고이즈미 스승님의 말씀대로 난 찌르기에 재능이 있었나? 많이 들었던 말이라 딱히 놀랍지는 않은 것 같은데·”
“첨은 첨인데 뒤에 ‘단’자가 더 붙어·”
“응? 그 말은···”
첨단·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진단을 내렸다·
“에미카 넌 죽도보다 광선검이 더 어울려·”
당장 고이즈미 스승이나 카츠하타 당주가 들었으면 뒷목을 잡았을 내용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얀파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팬아트 너무 잘 봤어요!! 이불나메 김밥나메 너무 귀여워요ㅎㅎ!!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의 후원자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남은 돈으로 나메 사탕 하나 입에 물려줄게요!! 감사합니다!!
이제 카츠하타 유파도 최첨단을 달리는 것일까요!! 나메의 마개조는 과연 어디까지 갈 지··!!
나메 이불김밥 에디션도 팬아트 공지사항에 업데이트 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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