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2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는 신칸센으로 약 3시간이 걸렸다·
여정 자체는 꽤 순조로웠다·
열차에 타기 전 역 근처의 라멘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3시간 동안 열차에서 내리 잠만 잤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아델라와 내가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짐을 정리하는 동안 어느새 유카타 차림으로 갈아입은 아델라가 나를 귀찮게 보챘다·
“짐은 나중에 정리하고 빨리 언니도 갈아입어·”
“어디서 났어? 산 거야?”
“아니 여기 옷장에· 한번 열어봐봐·”
내 신체 사이즈와 딱 들어맞는 유카타가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위화감이 드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보통 호텔에서 제공하는 옷 같은 건 전부 성인체형을 기준으로 제공되지 않나?
“내가 예약할 때 미리 다 말해놨지· 특별히 6살짜리 체형으로 준비해달라고· 키킥!”
“야! 아무리 작아도 그렇지 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6살이면 초등학교 입학도 안 한 나이이지 않은가·
“요즘 애들이 얼마나 큰데? 못 믿겠으면 한번 찾아보시든가요· 아무튼 여기 호텔 13층에 온천 대욕장이 있다니까 빨랑 갈아입고 가보자· 저녁 이후에는 사람이 많이 몰린다나봐·”
아델라가 내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티셔츠를 훌러덩 벗겨버렸다·
“잠깐만 아빠한테 말은 하고 가야-”
“에이 내가 오면서 미리 다 말해놨지· 이 호텔 예약한 것도 나인걸? 언니는 고민하지 말고 몸만 오면 돼· 와 딱 맞네! 짝짝짝 잘 어울린다!”
하도 급하게 끌고 나가서 중간에 허리띠가 풀어질뻔 했다·
유카타의 밑단이 정확히 내 발목에 걸쳤다·
바닥에 쓸리지도 종아리가 드러나지도 않는다·
여기서 나는 1차 충격을 받았다·
‘정말로 내 키가 이것밖에 안 된다고?’
나는 엘리베이터 구석에 기대 6살 평균 키를 검색했다·
‘116cm 지금 내 키와 도긴개긴이네···’
여기서 2차 충격을 받았다·
검색창을 위에서 흘겨본 아델라의 눈이 반달처럼 변했다·
“너-”
“히힛· 다른 사람 탄다 쉿! 앞에 봐 앞에·”
층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
다른 투숙객들도 우리처럼 유카타 차림으로 호텔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바로 앞에 있는 신혼부부는 팔다리가 정말 길쭉길쭉했다·
나도 전생에서는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를 못 들어봤는데 씁쓰름한 감정이 들었다·
온천에 들어가기 전 샤워장에 몸을 간단히 씻고 다시 유카타를 걸치고 나왔다·
지금 당장 욕장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는데 아까 보았던 사람들은 전부 식당에 가는 인원인 듯 보였다·
“저기 바위 노천탕쪽으로 갈까?”
아델라가 내 손목을 움켜잡고 잰걸음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에 발과 다리를 담갔다·
온천물에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성분들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정보성 팻말을 눈으로 대충 읽었다·
50년대에도 유사과학은 질긴 생을 이어나가고 있구나·
“캬 시원하다! 이 좋은 걸 혼자만 누리고 있었네· 언니 혼자 여행 다니니까 좋았어?”
아델라가 발로 참방참방 물장구를 치며 말했다·
“뭐래· 그냥 국가교류전 경기 몇 개 챙겨보고 가끔 대련도 좀 하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집에만 있었어·”
“어머나 진짜 광기가 여기 있었네· 모처럼 해외까지 나와서 한다는 게 고작 대련···?”
“재밌잖아· 전 세계에 재능있는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벤트인데·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지·”
“하핳 옛날은 무슨· 9살 꼬맹이 주제에·”
“응 너는 한 살·”
아델라가 유치하게 말한다고 해서 나까지 유치해지면 안 되는데·
정신을 다잡기 위해 내 뺨을 찰싹 때렸다·
“그동안 집에는 별일 없었지?”
“영상통화 매일 했잖아·”
“직접 들으면 뭐 다를 수도 있으니까·”
“별일이야 있겠어· 그냥 아버님이 언니 걱정 많이 했다는 거 정도?”
아델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마음먹고 한번 세게 질러봤어· 앞으로 더 바빠질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아빠를 대동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오오 사춘기이이·”
“아니거든?”
“근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즉흥적이지 않았어?”
“부정은 안 해· 그래도 시간이라는 게 의식하지 않으면 훅 지나가버리잖아· 기회가 왔을 때 놓치는 것도 싫고·”
약간은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평온한 일상에 매몰된 나머지 내가 지금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지·
당연한 소리지만 테러조직들의 시계는 내가 어리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 내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루빨리 고위마도사가 되어 클랜을 설립해야 한다· 클랜의 영향력을 키우려면 명성이 필요해· 단기간에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첫 1년의 이미지가 추후 성장의 속도를 판가름한다· 자금 부족해· 일단 인맥으로 때워· 한국고용시장은 재단과 클랜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 해외 인재들이 발을 걸치게 하는 구조가 가장 이상적이야· 국가교류전은 무조건 잡아야 하는 기회이다· 지원은? 정부사업입찰 기업5차산업과제· 클랜 핵심 과제는? 인간게놈분석 마왕의 뿔 구조도 설계 발전소 마력손실률 최소화·’
그러다가 만약 내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발푸르기스를 조우하게 된다면?
그들과 더 빨리 마찰을 빚게 된다면?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끝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열여덟 살의 노나메 열일곱 살의 노나메 열여섯 열다섯··· 열하나 열·
내년 다음 달 다음 주 내일·
그리고 당장 오늘 이 순간·
그들의 전투 방식은 어떠할지 수는 어느 정도가 될지 지금 내 실력이라면 어느 선까지 대처할 수 있는지·
모든 순간에 내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겨우 안심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효과가 없으면 또 몰라·
수만 개의 전투를 끈질기게 상상하고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이를 체화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은 다르니까·
성인이 구구단을 하는 수준으로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하등 쓸모없는 강박일까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엄연히 흥미가 뒷받침된다·
현실에서 발푸르기스가 나타나는 건 정말 끔찍할 테고 상상도 하기 싫지만 그들과의 전투에서 이겼을 때에는 묘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상상 속에서 행했던 아이디어들을 실현시키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다·
“언젠간 모든 일이 끝나면 세계여행을 할 거야·”
“세계여행?”
“응·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들과 싸우러 다니는 거지· 대련이면 대련룰로 마법밴 룰 오러밴룰이든 상관않고· 팔씨름이나 닭싸움도 좋아· 아 내추럴은 빼고· 내추럴 파이팅은 이번 생에선 포기포기·”
그 말을 듣더니 아델라가 배꼽을 부여잡고 깔깔 웃었다·
그녀는 온천물에 팔을 넣어 휘젓더니 손에 묻은 물방울을 내 얼굴에 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는 월오아 아바타쪽이 본체가 맞다니까?”
“응 그래그래·”
“어 맞다구? 사실대로 불어라 닝겐···! 언니도 사실 ASI지!”
“아까 점심 걸렀더니 배고프다· 나도 너 라멘 먹을 때 같이 먹을 걸· 우리 저녁은 뭐 먹기로 했어? 호텔 뷔페? 아니면 나가서 사 먹어?”
“으야야야 말 돌리지 말고!”
첨벙첨벙-!
아델라가 온천물에 발길질을 하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날아들어왔다·
아까만 해도 텅 비었던 대욕장이 사람들로 붐볐다·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으냣!”
얼마 후 덩치 큰 시큐리티 가드 아줌마가 나타나 아델라의 목덜미를 잡고 밖으로 연행해갔다·
공공 에티켓을 준수하지 않은 대가이다·
‘쟤는 아직도 철이 안 들었다니까· 응···?’
까딱까딱-
입구에서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내는 보안요원·
나도 공범 취급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 * *
“왜 사고친 건 샛별인데 왜 제가 혼나야 되는 거죠?”
“언니가 말을 이상하게 해서 날 놀렸잖아! 따지고 보면 나메 언니 잘못이야·”
“하아 둘 다 알겠으니까 그냥 밥이나 조용히 먹자꾸나·”
천교수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늘었다·
나메 하나만으로도 키우기 벅찬 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졸지에 딸이 두 명이 되었다·
남들 눈에는 귀엽고 착한 아이들이지만 어째서인지 편두통이 재발할 것 같았다·
천교수의 한숨을 들은 나메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맛이 별로 없으세요?”
“아니다 아니야· 점심을 많이 먹은 것 같구나· 살짝 체한 느낌이-”
“아빠 그럼 이거 제가 먹어도 되죠? 가져갈게요·”
나메는 천교수의 바베큐폭립을 자신의 접시에 옮겨담았다·
그걸 본 아델라가 손을 내밀어보지만 나메의 손에 가로막혀 튕겨나갔다·
“아아! 나도 하나만·”
“네가 알아서 가져다 먹어·”
“완전 치사해· 인심이 그렇게 팍팍하니까 키가 안 크지!”
“그게 키랑 대체 뭔 상관인데?”
언성이 높아지는 두 소녀·
본래 자매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면 싸우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메의 정신연령이 보기보다 높고 아델라가 어른스러운 것도 아니니 서로 비슷한 수준이 되어버리는 결과가 나타났다·
‘친하니까 싸우는 거야 친하니까· 초롱이랑 온유도 그렇게 해서 친해졌으니까·’
친하지도 않았으면 말도 섞지 않는다·
오히려 나메의 곁에서 쉴새 없이 재잘거려줄 아이가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슬슬 선을 넘을 것 같다 싶으면 싸움을 중간에 뚝 멈춰버리니 천교수로서도 제지하기 곤란했다·
이럴 땐 주제를 돌리는 수밖에 없다·
“나메야 듣기로는 국가대표들이랑 겨뤘다고 하던데· 어땠니?”
“카츠하타나 데상파이오 말고는 다 고만고만 하던데요? 4강 진출자들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시합 때문에 겨뤄본 적이 없어서·”
한국어로 대화했기에 망정이지 일본에는 카츠하타만큼 추앙받는 다른 참가자들도 엄연히 존재했다·
아홉 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간 도리어 부모가 자녀교육을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그래도 카츠하타의 후계자는 우리 나메 마음에 쏙 드는가보네·”
“아니요? 아직 고칠 게 투성이던데요 뭐· 경기 보셨어요? 아직 안 보셨다고요? 한번 보세요· 기사에서 검제의 필살 249콤보라고 떠들어대는 게 어이가 없어서 참··· 249번을 때릴 동안 어린 애 하나 못 쓰러뜨렸다는 게 자랑이에요? 이야 일본사람들 마도대련 보는 눈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데 그동안 댓글로 별별 훈수를 두고 다닌 걸 생각하면 참나··· 아주 기가 막힌다니까요?”
“나메 언니·”
“나니(왜)?”
“나메 언니 방금 일본어로 말했어·”
“아 그랬어? 헙·”
나메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소월 언니네 부모님이랑은 일본어로 대화하는 게 편해서 그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츤데레 독자님의 사랑은 주시는대로 넙죽넙죽 받겠습니다!!
알빠노혹등고래님 2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가끔 사람이 흥분하면 다른 언어가 튀어나올 때가 있죠··!!
헉··!! 금쪽이 나메가 또 한 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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