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3
“8강에서의 카츠하타 양은 정말이지 판타스틱 했습니다! 그야말로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의 재림! 선배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언제나 설레발은 금물이지만 일본의 천하제패가 머지 않았다고 보아도 되겠지· 이 대마법시대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켜낸 게 최고로 자랑스러워·”
“제 동료들은 벌써 기사까지 만들어놨다고 합니다· 8강에서의 퍼포먼스만 유지된다면 우승은 쉽게 따 놓은 당상이라면서 말이죠·”
우리가 앉은 테이블 바로 뒤쪽에서 일본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기자로 추정되는 남성들은 최근에 치러진 카츠하타 에미카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소프트 파워다· 한국 놈들은 미국 따라 베껴보겠다고 아카데미니 뭐니 해서 지었는데 봐라 수십 년째 별다른 성과가 없잖니· 자국의 마공장들을 전부 몰아내버린 게 역사적인 실수라고 본다·”
“네 깊이 동감합니다·”
“카츠하타의 우승은 우리 일본의 문화적 승리이기에 더욱 값진 거야· 이런 점을 부각해서 한번 잘 써봐· 한국이랑 비교하는 것도 구도가 예쁠 것 같고·”
“어후 한국이었으면 저기서 못 살아남았을 겁니다· 앉아서 마법진만 주구장창 그리는 학생들이 카츠하타 양의 249연격을 무슨 수로 대처합니까·”
“하하하하 그것도 그렇지!”
아무리 둘 사이의 사적인 대화라고는 하지만 화나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기자들은 대련의 흐름을 제대로 볼 줄도 몰랐다·
세실리아의 고유마도를 보고 쓸데없는 마나낭비라고 평한 건 더욱 가관이다·
에미카가 이겨서 결과론적으로 자충수가 된 거지 마누비아 라플레시아 자체만 놓고 보면 매우 훌륭한 일격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그들의 언어로 말했다·
“일본사람들 마도대련 보는 눈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데 그동안 댓글로 별별 훈수를 두고 다닌 걸 생각하면 참나··· 아주 기가 막힌다니까요?”
그러자 달그락거리는 포크와 나이프 소리가 잦아들었다·
호텔 식당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떠들기 시작했지만 몇몇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저녁을 다 먹고 식당을 떠나려던 참에 아까 뒤에 앉았던 기자들이 찾아와 내게 명함을 건네주며 말을 걸었다·
“산케이 신문의 모리타 고이치 기자입니다· 이런 곳에서 노나메 양을 만나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 호텔에서 묵으시는 건가요?”
“일 없어요·”
“바쁘시면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카츠하타 에미카 양이 이번 국가교류전에서 우승하실 거라고 보시나요?”
동글뱅이 안경의 기자는 수첩과 펜을 꺼내 답변을 적을 준비를 하였다·
검은 볼펜에는 녹음기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언니 거기서 뭐해! 빨리 와!”
아델라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기자를 향해 말했다·
“우승은 카츠하타 에미카가 할 거라고 생각해요·”
“역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카츠하타 본인이 이긴 거지 일본이 이긴 건 아닙니다· 국가 전체를 한 사람에게 이입하지 않는 편이 당신들에게도 훨씬 좋을 거예요·”
“예?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내년에 개최되는 프랑스 국가교류전에서는 저를 상대해야 할 테니까요· 뭐 올해까지는 일본의 건승을 기원해드리겠습니다·”
“···”
“자 명함은 필요 없으니까 돌려드릴게요·”
* * *
에미카의 4강 경기는 호텔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관람하기로 했다·
아델라와 천교수가 티켓팅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카츠하타 유파에 연락하니 결승전은 꼭 자리를 마련해두겠다고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때랑 마법이 참 많이도 달라졌어·”
1인용 소파에 앉은 천교수는 캔맥주를 홀짝였다·
나도 한 모금만 주지·
“나메 언니 어딜 봐· 해설 마저 다 해야지·”
아델라가 내 양볼에 손바닥을 얹어 얼굴이 티비를 향하도록 강제로 돌렸다·
원래 나와 아델라는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
나는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아델라의 넓적다리 위에 누웠다·
“하아아암· 아까랑 똑같지 뭐· 결계를 만들어내면 에미카가 결계를 부수고 다시 이중결계를 만들고의 반복· 마나가 다 떨어지면 카츠하타의 승리 오러가 다 떨어지면 무스타파의 승리· 결계 깨지면 깨워줘·”
“결계마법은 솔직히 3서클도 아니고 2서클로 제한해야 하는 거 아님? 저게 야발 스포츠냐! 크아아아악!”
“하다보면 지루한 순간도 있을 수 있지· 축구도 한쪽이 작정하고 텐백전술 써버리면 재미없잖아· 걔네들은 그걸 90분 동안 하는데·”
“그건 두들겨 패는 맛이라도 있지···”
아델라가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해설들이 열심히 포장해주어도 무리였나보다·
“경기가 정적으로 흘러가서 그렇지 에미카는 저 결계를 빠져나오느라 죽을 맛일 걸?”
나는 눈을 감으면서도 설명을 계속했다·
베개로 삼은 아델라의 허벅지가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되어 잠이 솔솔 온다·
“쿠울···”
“흠 대련 생각보다 재미없을지도?”
“하아압·”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녀의 허벅지를 깨물어 응징했다·
“아아악! 아파아파아파! 놔 아니 놔주세요! 미쳤나봐 그렇다고 왜 깨무는데! 힝 여기 이빨 자국 엄청 크게 났어잉···!”
“베개가 말대꾸?”
경기내용은 딴전이 된 지 오래였다·
우리는 가끔 해설들이 크게 샤우팅을 지를 때만 힐끔힐끔 화면을 바라보았다·
최종승자는 에미카 곧이어 하이라이트 장면이 나왔다·
결국 에미카는 결계에서 빠져나왔고 무스타파는 범시전으로 경기장 전체에 마력거울을 설치했다·
광학환영으로 열심히 도망치면서 원거리 공격을 퍼부어보지만 에미카의 판단이 좋았다·
거울에 튕기는 마력광선을 역추적해 미로를 일직선으로 뚫고 가 무스타파의 완드를 박살냈다·
에미카의 항복승·
일본에선 10년만에 결승진출이 달린 경기라서 그럴까·
8강의 경기와 비교하면 확실한 졸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서는 환호의 박수와 휘파람 소리가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아델라의 심기는 영 불편해보였다·
“결계술사들 진짜 극혐이다· 쟤네들은 출전 금지 못 시키나? 자기 패 다 까발려지니까 비겁하게 항복하는 거 보소·”
“···?”
나는 그녀의 시야 아래에서 끔뻑끔뻑 두 눈을 깜빡였다·
“왜 그런 눈빛으로 봐?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고개를 뒤로 젖혀 천교수쪽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도 결계술사인데·”
“어이쿠 이거 내가 사과라도 해야하는 분위기인가? 샛별아 미안하다·”
“아니아니! 아니에요 아버님! 전 절대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결계가 문제가 아니라 결계를 저딴 식으로 쓰는 저 참가자를 욕한 거예요!”
“결계 암호화 수준이 꽤 높았죠? 운으로만 4강에 올라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음 많이 놀랐지· 마력 정반사는 최근 국방에도 자주 애용되는 기술인데 이집트의 교육 수준이 꽤 높아졌어·”
“죄송합니다아! 아무것도 모르고 지껄인 제 잘못이와요!”
“꺄르륵!”
아델라가 침대 위에서 개구리처럼 펄쩍 점프해 도게자를 했다·
식곤증이 해소된 지금으로서는 선명한 정신으로 에미카의 인터뷰를 청취했다·
[카츠하타 선수 승리 축하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친구들과 영상통화로 결승전 진출의 기쁨을 나누어보는 거 어때요?]
[여··· 영상통화 말씀이십니까?]
[혹시 마땅한 친구가 없으시다면-]
[그럴 리가요! 친구 있습니다!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조한 표정을 짓는 에미카·
“얼굴에 다 드러난다 친구야·”
에미카가 전부터 포커페이스를 고집하는 이유는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 방으로 돌아가볼게· 너무 늦게 자지는 말아라· 샛별이도 나메도 알겠지?”
“네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십쇼 아버님!”
천교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델라 나부터 씻어도 되지?”
“응· 난 내일 아침에 씻게· 근데 언니는 하루에 머리 두 번이나 말리는 거 귀찮지도 않아?”
“딱히·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잘 좀 씻고 다녀·”
“아니 나 매일 씻는데···! 억울해 죽겠다 증말·”
호텔에 깨끗하고 넓은 욕조가 있는 게 좋았다·
다만 오늘은 늦었으니까 목욕은 나중에 하고 간단히 머리만 씻기로 마음먹었다·
쏴아아아아-
쪄 죽는 한이 있어도 샤워를 할 때는 무조건 뜨거운 물을 튼다·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습기까지 머금으면서 점점 무거워졌다·
샴푸를 한번 두 번 그리고 마지막 펌핑은 살살해서 두 번 반·
두피부터 머리칼 끝까지 고루 발라주며 생활먼지들을 손수 제거했다·
클린 마법으로는 느낄 수 없는 기묘한 뿌듯함이 있다·
다 끝냈으면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샴푸 거품이 물에 다 씻겨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우당탕-!
똑똑-
“응?”
“나메야! 전화왔어 전화!”
“끊고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해줘·”
“이거 많이 중요한 전화인데·”
“하아 잠깐만· 폰 줘봐·”
“잠만 이거 영상통화라서 내가 가운 줄 테니까 이거 입고 해·”
“영상통화?”
나한테 영상통화를 걸 사람이 누가 있다고·
천교수는 아까 전에 헤어졌고·
구온유 교장도 당연히 아닐 테고·
서유나가 내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나?
마땅한 후보자가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델라가 건네준 가운을 대충 두르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머리카락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누구?”
“카츠하타 에미카씨·”
“아···! 다른 사람들 냅두고 왜 나한테 전화했대?”
“방금까지 가족이랑 유파 동기들이랑 전화했고 이제 언니 차례인가봐· 빨리 전화 받아봥·”
“근데 이거 받으면 지금 나 생중계 나가는 거 아니야?”
“헉 그러네? 어떡하지·”
[저기 여보세요···! 계시나요?]
책상 위에 엎어놓은 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 얼굴만 나오게 찍으면 괜찮겠지·”
샤워하다 중간에 나온 게 뭐 대수라고·
나는 폰을 들어 내 얼굴을 카메라에 비추었다·
* * *
에미카의 가족들과 같은 유파 선후배들은 그녀를 놀리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에미카짱이 10살 때 쓰던 방입니다· 얘가 한국 아이돌을 워낙 좋아했어가지고 벽에 온통 브로마이드가···’
‘카츠하타 양의 애교를 못 보셨다고요? 그렇다면 당신들은 인생 절반을 손해보셨습니다!’
친부모는 그녀가 과거에 쓰던 방을 예고도 없이 공개해버리지 않나 선후배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폭로해버리기도 했다·
영상통화가 너무 짧게 끝나버리자 기자들은 마지막으로 한번을 더 부탁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점잖은 친구 점잖은 친구 그렇게 해서 떠올린 게 결국 노나메였다·
실제로 에미카는 결승전까지 오는 데 있어서 나메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해보니 전혀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아 뭐야 영상통화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여성의 상반신·
흰색 크롭티 아래로 잘록한 허리와 앙증맞은 배꼽이 훤히 드러났다·
깜짝 놀란 여성은 서둘러 폰을 책상 위에 엎었다·
“노나메 양의 번호가 아닌가요?”
“아 맞는데 지금 불러올게요 잠시만요··· 나메야! 전화왔어! 전화!”
에미카는 스태프들이 준비한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나메가 받기만을 기다렸다·
‘저 여자는 누구지?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언니인가?’
마침내 검은 화면에 빛이 들어왔다·
“여보세요· 노나메입니다·”
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노나메의 것이 틀림없었다·
밝은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본 에미카의 낯빛은 점차 당황으로 번졌다·
“너 머리가··· 샤워 중이었어?”
“응 그런데 왜?”
“아니 샤워 중이었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아냐 난 괜찮아·”
그녀의 눈동자가 채팅창쪽으로 데구르르 돌아갔다·
‘내가 안 괜찮아···’
[Live Streaming]
[실시간 채팅]
-이 녀석 가족 지인 중에 정상이 없는wwwwwwww
-물에 빠진 초카와이 로리 등장!
-너무 귀여워요!
-카츠하타씨는 또 당황했습니다·
-우왘 노나메 뭐임ㅋㅋㅋㅋㅋ
-기습등장
-얘는 무슨 깜빡이도 안 키고 나오냨ㅋㅋㅋㅋ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델라가 들킬 뻔했네요··!! 조심 또 조심!!
나메의 평균 샤워 시간은 30분 정도 됩니다· 대신 머리는 마법으로 플렉스해서 말려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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