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5
233과 234번째 검격은 비교적 눈치채기 쉬운 실수에 속한다·
손잡이에 땀이 묻어서 미끄러진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에미카는 검날이 아니라 검면으로 휘둘렀다·
235번째 검격 이전에 그립을 바로잡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으니 논쟁의 여지도 없었다·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158번째 실수였다·
커뮤니티에서 한 민간군사기업 소속 마도사가 기고한 장문의 글을 토대로 나의 의견을 덧붙였다·
“이 분이 분석을 정말 잘하셨네요· 오러의 스위칭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고 다행히 이 여파가 바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후에 카츠하타에게 불리한 스탠스를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제가 이걸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드릴게요·”
오러가 과학이냐 비과학이냐 묻는다면 아무래도 비과학에 가깝다·
그 자체로 과학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이룬 과학만으로는 전부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론오러학에서는 오러를 과학적인 범주 내로 편입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가장 대표적으로 ‘가상 무게중심’ 이론이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러는 신체능력을 증폭시켜주는 효과가 있잖아요? 만약 제가 전력을 다하면 1초에 5미터를 오러까지 쓰면 1초에 10미터를 달릴 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오러의 무게중심은 저보다 15미터 앞서 있는 걸로 둘 수 있어요· 특이하게 단위가 속도로 나오지만 지금 여기선 그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까 넘어가고·”
인간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인간의 ‘능력’과 오러의 ‘무게중심’ 사이에 있다·
이론의 출발은 여기서 시작한다·
“그런데 무게중심을 무한정으로 떨어뜨려 놓을 수는 없어요· 이걸 ‘한계반경이 존재한다’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오러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선 이 무게중심을 한계반경이라는 직선 우리는 3차원 세상에 사니까 곡면 위에 놓아야만해요· 물론 계산의 영역이 아니에요·”
뇌파와 호르몬 오러하트와 마나회로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아주 간단한 도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나는 동영상을 재생하고 에미카가 서 있는 부분을 짚었다·
“지금 0·25배속으로 보는데도 검이 꽤나 빠르죠? 동작은 자체는 작아보이지만 위력은 상당한 상태예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카츠하타는 여기서 승부를 보려고 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세실리아가 3초 전에 캐스팅해두었던 ‘압축계수 조정’ ‘유압리프트’가 지면을 흔들어버리면서 검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어요· 여기서 모든 게 꼬여버린 거죠·”
-데상파이오도 대응을 겁나 잘했다 ㄷㄷ·
-역시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이 경기가 사실상 결승전이었음·
-뭔 2서클 캐스팅이 저리도 빠르냐ㅋㅋㅋㅋ
-분석 개재밌다ㅎㅎ
-카츠하타가 의지만 앞섰네·
“지금 카츠하타의 모든 의지 신경 집중이 온통 이 동작을 구현하는 행위에만 가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이론에 대입하면 무게중심이 몸에서 너무 멀어진 거라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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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렇게까지 대놓고 분석해버리면 약점 유출 아닌가요?
나는 고개를 힘차게 내저었다·
“이걸 다시 회수하는 과정이 환상적이었어요· 이제 다음 열 가지 동작을 보세요·”
에미카는 신체 각 부위에 쏠려있는 오러를 회수하기 위해 하나의 동작을 즉석에서 열가지 동작으로 쪼갰다·
무리한 움직임에 따른 반동을 작은 동작들로 세분화한다·
“몸의 회전이 강하면 검을 한바퀴 돌려 내리치고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면 진각을 밟아 사선베기를 하는 거 보이세요? 지금 자기 몸이 통제가 안 되는데 각 상황에 맞는 동작을 수행한 거라니까요?”
그녀는 오러의 폭주로 제어가 안 되는 몸을 마치 자신이 의도한 마냥 다스렸다·
반대편에 있던 세실리아는 연이어 쏟아지는 공격을 받아내기에 급급했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때때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자신도 모르게·
“어때요? 큐브를 푸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았나요? 카츠하타도 사람이니만큼 가끔씩 실수를 해요· 그런데 리커버리 능력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중대한 실수도 사소한 걸로 만들어버리죠· 이게 정말 무서운 점이고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그녀는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249번을 때려서가 아니라·”
그녀의 실수를 이용하려고 해도 웬만해서는 그 틈을 파고들 수 없을 것이다·
“아시겠어요?”
-캬 ㄷㄷㄷㄷㄷㄷㄷㄷ
-정신 나갈 것 같다ㅋㅋㅋㅋ
-결론: 카츠하타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와 미친 소름돋네·
-노나메 교수님의 에미카 예찬론!
-대련을 이런 식으로 하다니·
-업계비밀 미쳤다·
-와··· 아니 이쪽 종사자 아니면 전혀 모르겠는데?
시청자들은 한동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채팅창이 급류처럼 쏟아져내린다·
나는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여운을 잠깐 즐기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안 보이는 데서 열심히 하면 아무도 안 알아주잖아요· 그래서 저라도 대신 생색을 내봤어요· 친구니까·”
-캬~
-대 황 나 메
-맞아 이런 거 일일이 다 알아주기 쉽지 않지·
-일본이 괜히 우승 설레발 치는 게 아니구나· 천외천이긴 하다·
-너무 재밌었어요 교수님!
-나메야 너도 내년엔 꼭 참가해보자ㅠㅠ 언니가 꼭 두 번 세 번 봐줄게···!
감회가 새롭다·
모니터 너머로 수만 명의 인원들이 내가 무얼 말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면 안 된다는데 그게 말이야 쉽지·
전생에서 그토록 피나는 노력을 했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현실은 비참할 뿐이었다·
자존감이 계속 깎여 내려가고 어두컴컴한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검을 더 빨리 휘두르고 마법을 더 다채롭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8강만 했는데 벌써 2시간··· 쩝 원래 계획했던 4강 리뷰는 못 하겠네요· 오늘 방송 재미는 있으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수학 강의 했을 때보단 1억배 재밌었음·
-하루에 한편씩 찍으면 안 되나요?
-총 63경기니까 앞으로 62번만 더···
-와 방송이 복사가 된다고!
-국가교류전 덕분에 이론오러학 이론을 알게 되네요·
-ㄹㅇ 오러가 학문이라고 떠드는 거 다 개소리인줄만 알았는데·
-22222
-근데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보면 내 머리도 함께 터질 것 같음ㅋㅋㅋㅋ
-별 의미 없음 사실·
-그냥 방장님은 귀여워서 뭘 하든 재밌어욤·
-안 돼···! 왜 벌써 끝인 것이야!!!
“이런 토론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시는 몇몇 분이 계신데··· 맞아요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죠· 그런데 우리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그냥 이렇게 인생에 의미도 부여해보고 이왕이면 이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게 삶의 재미이자 행복이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봐요·”
인간이 일벌이나 여왕벌처럼 따로 숙명이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나는 의자를 앞뒤로 흔들거리면서 잠깐 멍을 때렸다·
“퓨퓨퓨퓨·”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가 바람 빠지는 풍선 소리도 내보고 입술로 음파파파 거리기도 했다·
손가락을 뚜둑거려보기도 하고 약간 충혈된 눈을 비비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내일 결승전은 호텔에서 몇 시쯤 출발하지? 저녁을 일찍 먹고 갈까 아니면 다 보고 먹을까? 택시를 타고 갈까 버스를 타고 갈까·’
계획적인 사람들이 흔히 겪는 딜레마이다·
당일에 결정해도 무방한 것들을 하루 전부터 세세하게 짜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계획이란 계획에 매달리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MBTI 극P이신 아델라 소스케의 명언이 잠시 떠올랐지만 본성이 시키는 걸 어쩌겠나·
귀국할 비행기표도 지금부터 미리 찾아봐야겠다·
“어?”
알트 탭을 누르자 내 방송 채널이 다시 나타났다·
방송 속의 소녀는 내쪽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의자를 끌고 앞으로 당기자 소녀도 똑같이 내 행동을 따라했다·
마치 거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실을 깨닫는 건 한순간이었다·
“앗!”
부랴부랴 채팅창을 꺼내보니 온갖 웃음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또 우리야~ 방송 안 꺼져 있었어~
-와진짜진심장난아니게귀엽다이게평소의모습이라니역시나방송은빙산의일각이었어방장나코피터져서진심죽을것같아·
-주인장!!! 힘을 숨기고 있었구려!!!!!
-와캬퍄헉농ㅋㅋㅋ케게겍커흑헤으읍꾀꼬닥·
-“우리 나메도 사람이니만큼 가끔씩 실수를 해요·”
-방금 이거 못 보고 나간 2천명 오열할 듯ㅋㅋㅋㅋㅋ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방장 나 죽어!
-방송은 무조건 끝까지 시청하라는 나메님의 큰그림을 잘 알겠습니다···
-입술 팅글링 ASMR 실화냐? 진짜 노나메는 전설이다·
[‘랑규스틴’님이 10000원 후원!]
-거 본캐랑 갭차가 너무 큰 거 아니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잠깐 서버가 터졌어서 하마터면 정시연재를 못 할뻔 했네요··!!
실수에 따른 나메의 대응은 조금 느린 편인 것 같네요!! 아마도 잘 된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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