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
“준비 다 끝냈니?”
“네 교수님· 그런데 그 사진기는···?”
“하하 이거 말이냐? 우리 나메가 정식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날인데 아무래도 기념해야할 것 같아서 말이지!”
“어차피 입학식은 1학년들이 주인공인데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메가 가장 멋진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으면 하는구나· 자 저기 정문 옆에 서보겠니?”
“네에·”
사진을 찍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애초에 누가 나를 기록한다는 행위를 별로 싫어하는 면도 있었고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그다지 큰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모르는 사람과 만나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었다·
태생적으로 이 몸은 외향적인 기질을 타고난 건지 사람과 만나면 피곤했던 기억밖에 없었음에도 혼자 남겨져있다고 생각하면 외로움의 감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성격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었다·
3월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여러명의 여학생들이 머리 위로 떨어진 벚꽃잎을 떼어내며 꺄르르 웃어대고 남학생 무리들도 오늘만큼은 아름다운 광경에 흠뻑 빠져 있었다·
“누가 꽃인지 모르겠구나· 자 보겠니?”
“요즘 그런 멘트하시면 누가 나이들어 보인다 할거예요·”
천교수가 내게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냥 단정한 차림의 교복을 입은 나와 세피론 아카데미의 정문 그리고 벚꽃나무· 별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냥 사진이니까·
하지만 천교수는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누르면서 정말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잠시 동안은 어울려 주도록 할까·’
무엇보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벚꽃향이 싫지도 않고·
나는 개인적으로 세피론 아카데미의 편입 합격 소식은 정말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교수는 그 소식을 듣고도 딱히 놀란 기색이 없었지만 나는 적어도 과반수의 입학 사정관들이 나에게 비호의적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올해 세피론 아카데미의 편입생은 나 한명으로 굳이 한명을 위해 공지사항을 만드는 것은 불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천교수가 직접 교무행정실에 전화를 받아 입학 전 필요한 사항들을 받아적었다·
교복을 맞추러 가고 가방도 새로 장만했다·
운동화를 신으면 너무 없어보인다고 교수가 하도 애걸복걸 하길래 결국 평범한 검은 구두를 신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2주간 방송을 했냐 물어본다면 안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 롤과는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애초에 내가 롤에서 무언가의 목표나 동기부여를 얻지도 못했을뿐더러 이미 7년 동안이나 지긋지긋하게 해왔기에 조금 거리를 두고 싶은 심정이 없지 않았다·
게임을 안 하면 자연스레 잡담 방송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나는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어려움 내지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채팅창은 신경쓰지 않은 채로 여러 얘기를 풀어내는 식이었다·
주로 마법진에 관한 내용들이었지·
보통은 로라에게 가르쳐주고픈 내용들을 미리 방송에서 꺼내보며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이 보통 이해가 막히는지 실험해보고자 하였다·
대부분의 과정에서 갈고리가 쏟아져나왔지만 뭐 이해를 한 시청자들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
로라는 마법에 굉장히 흥미가 많았다·
다만 지식이 너무 부족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지 감이 안 와 난감했던 적은 있었다·
그래도 하나둘씩 이야기처럼 풀어내는 마법에 관하여는 그녀는 발군의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월오아를 플레이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법에 대해 알려주려 했지만 아직 기초적인 사칙연산과 룬어들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기에 계획은 나중으로 미루어두었다·
그렇게 바쁜 2주일을 보내니 어느새 3월 6일 개학식이 눈 앞까지 당도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정말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지만 나이 지긋한 교장의 연설사를 듣고 있자니 현실감이 팍 들었다·
‘내가 이런 아기들과 같이 지내야 한다고?’
나는 강당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 어렸다·
생각보다도 너무 어렸다·
원래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초등학생 때는 중고등학생들이 정말 성숙해보였지만 중학생으로 고등학생으로 올라갈수록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은 전부 아기 같아 보이는···
전생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카이젠 제국의 아카데미 평균 입학연령이 만18세 내외인 면도 있었고 내가 그 전에 죽었을 때도 20대 초반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심리적인 저항감이 적었던 것이지·
하지만 막상 일고여덟 살의 아기들을 마주하니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들을 올려다보아야 하기까지 했으니!
“안녕! 너도 신입생이야?”
“아니 난 2학년인데·”
“2학년이라고?”
가끔은 이런 해프닝도 일어나겠지···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최근 키가 110cm를 넘겨서 내심 뿌듯해했는데 발육 빠른 아기들은 벌써 120을 넘어 이제는 130cm 이상을 넘보고 있었다·
3학년인가? 설마 2학년?
옛날엔 나도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를 안 들어봤는데 억울한 마음씨가 절로 생긴다·
오히려 사회를 간과하고 있던 건 나일지도 모르겠다·
워낙에 캡슐을 통해서 만든 인간관계가 많다 보니 다들 어른으로 취급하는 것에 내심 익숙해져 있었다·
현실은 이런 코흘리개한테도 무시받는데 말이야·
“신입생 여러분 거듭 본교 배정을 축하합니다· 세피론 아카데미는 여러분의 모든 학교생활을 정성과 사랑으로 도와줄 것입니다·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것으로 개회 인사말을 마치고자 합니다·”
신입생들은 이제 진짜로 부모 곁을 떠나 저마다의 반으로 가는 시간이었다· 잠깐의 이별이었지만 그중에는 정말로 울음을 터뜨리려는 아이도 있었다·
재학생들의 부모는 굳이 입학식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기에 대부분의 아카데미 학생들은 자신의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기 바빴다·
“나메야 집 잘 찾아올 수 있지?”
“부끄럽게 하지 말고 어서 가세요·”
“하하· 그럼 좋은 친구 많이 사귀거라! 응원한다!”
안 그래도 2학년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듯싶었는데 기분 탓이 아니었다·
몇몇은 내 얼굴을 보고 속닥거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천교수를 어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이제 2학년 반배정 결과만을 기다렸다·
[여러분들의 학생증이 업데이트되어 있을 겁니다· 모두 반 배정을 확인하시고 헷갈리는 일 없이 각자 반으로 이동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모두 각자 주머니에서 지갑에서 가방에서 학생증을 꺼냈다·
작년과 더불어 올해도 같은 반이 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홀로 떨어진 듯 보이는 아이들은 침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반도 4개밖에 없는 것 같고 같은 학년끼리는 다 붙어있을 텐데도 아이들에게는 반배정 결과가 꽤나 중요한 것 같았다·
학생들은 하나 둘 강당을 떠나 교실이 있는 본관으로 떠났다·
하지만 모두가 가버린 와중에도 난 여전히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난 학생증이 없는데···?’
2051년의 행정처리는 여전히 미숙한 면이 많았다·
* * *
“A반이니?”
소년을 불러세우는 목소리·
아직까지 안 가고 있었나· 시후는 마지못해 뒤를 돌아보았다·
시후의 부모는 그가 나올 때까지 강당 앞에서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네·”
“당연히 그래야지· 앞으로는 지난 1년간 해왔던 노력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할거야· 다른 아이들이라고 언제까지나 놀고 있는게 아닐테니까·”
“네 알겠어요··· 어머니·”
“넌 나를 닮아 누구보다 똑똑한 아이야· 2학년에도 잘할 수 있지?”
“네··· 아버지·”
그 말을 끝으로 멀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시후는 여전히 부모님을 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저들의 말이 모두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임은 알았지만 여전히 씁쓸한 기분만은 떨쳐내기 힘들었다·
반 배정이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1학년과 달리 2학년부터는 지난 학년 중 성적우수자 10명과 최우수자 10명이 같은 A반이 되는 형식이었다·
물론 성적 최우수자인 시후가 A반에 들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겠지만 부모의 칭찬이 고픈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으니까·
시각은 9시 45분·
반에는 10시까지만 입실하면 되니까 10분 정도는 바람을 쐬면서 기분을 환기할 계획으로 강당 주위를 배회했다·
‘응 누구지?’
드물게도 머리카락을 허리를 넘어 무릎 길이까지 기른 아이가 계단에서 깡총깡총 내려왔다·
이제 막 강당에서 나오는 참이었던 것 같았다·
교복을 입지 않았다면 같은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가녀린 몸을 가진 소녀는 무언가 심각한 고민이 있어보였다·
“아직 반으로 안 들어갔어? 10시까지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물론 입학 첫날부터 감점을 주는 선생은 없겠지만은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에게 당부해주었다·
“난 세피론 아카데미 2학년 윤시후야·”
“아 그래· 난 노나메·”
생각해보니 1학년들은 반배정 공지하기도 전에 담당 선생님들이 미리 인솔해가지 않았었나?
어떻게 저 아이는 아직까지 강당에 남아있지?
“그럼 반을 찾아줄래?”
아 단순하게 길을 잃었던 거구나·
시후는 시간이 조금 촉박하기는 했지만 교실까지는 데려다줄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세피론 아카데미는 구조가 복잡해서 길을 잘 알아놔야해· 특히 저학년 교실은 처음에 찾기 정말 어려워·”
“여기는 대련장이야· 4학년부터는 여기서 수업도 한다는데 아직 우리는 체육대회 때밖에 안 써봤어·”
“매점은 총 세군데 있는데 1학년 때는 북쪽 건물을 이용하는게 제일 가까워·”
“식당은 아카데미 중앙 2층에 있어· 여기서 직진하면 바로 나와·”
“저쪽은 중등부 기숙사야· 초등학교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시험기간 때 시끄럽게 하면 혼날 수도 있어·”
가는 길이 심심할까봐 아카데미의 여러 가지 시설들을 소개해줬지만 소녀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시후는 괜히 무안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입학식 얘기로 주제를 바꾸어보았다·
“입학식은 어땠어? 교장 선생님이 많이 지루했지?”
중등부와 고등부에 비할 것은 아니었지만 초등부의 입학식도 나름대로 규모가 큰 행사였다·
나름 세피론 재단이 부른 유명 인사들도 참석하기도 했고·
비록 마지막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가장 고된 시간이긴 했지만·
“좋았어· 강해보이기도 하고·”
“응?”
뭐가 강해보인다는 거야?
시후는 소녀가 세피론 아카데미가 풍겨오는 느낌을 그런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겠지라고 어렴풋하게나마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교장선생님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종보스가 나왔을 때 호승심이 들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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