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6
[일단 6교시 수업 마치고 다시 와· 선생님도 종례 마치고 아이랑 같이 오세요·]
[네 정말 면목 없습니다···]
서유나는 보건실에서 쉬다가 알아서 조퇴하도록 조치가 취해졌다·
갑자기 내가 행정실로 불려간 이유는 다름아닌 무단 마법 사용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부지는 국가로부터 특별징수납세지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구역 내에 모든 마나 사용료를 아카데미의 명의로 납부하는 형식이었다·
이는 아카데미 특유의 부분적 치외법권이 반영된 조문이기도 했다·
물론 명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서 실제 납부도 아카데미의 몫이었다·
매번 실습 시간에 초등학생 보고 돈을 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특정 아카데미 재단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미리 가용예산을 편성하여 전기에 납부하고 미사용분을 연말에 환급받는 제도를 활용했는데 세피론 재단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내가 마법을 물 쓰듯이 남발해버렸을 때 뒷목을 잡는건 내가 아니라 재단 소속의 예산담당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예전에 4서클 마법을 딱 한번 써봤을 때 내가 가진 모든 예산을 동원해도 12만원이 모자라서 염치 불구하고 천교수에게 돈을 빌렸던 기억이 났다·
덕분에 나는 지금 빈털터리고·
“너 정말로 서유나한테 이상한 짓 안 한거지?”
넌 또 왜 이래·
윤시후가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쏘아봤다·
“그거 내가 복용하는 약이라니까? 걔가 멋대로 마신 건데·”
“그렇게 위험한 걸 아카데미에 들고 오면 안 되지!”
“자꾸 짜증나게 하지 마라 꼬맹아· 산 채로 묻어버릴라·”
몇 번을 설명해줘도 시후는 믿지를 않았다·
맘대로 생각하라지·
대망의 하교시간·
나를 기다리는 지혜와 서리를 아쉽게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포x몬 빵을 사주기로 했는데 지혜에게는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니야 괜찮아···! 오늘은 나메도 바쁠테니까·”
재키 선생님과 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가끔씩 영어로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지방 악센트가 강해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이 한국계 미국인 선생님으로부터 유일하게 해석할 수 있었던 건 해봤자 ‘오 마이 가쉬’ 정도였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는건가·
사실 아까 불려갔을 때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었다·
그래서 오늘 있던 사건의 진상조사 겸 무단 마법사용에 대한 추궁까지·
우리 둘이서 이겨내야 할 과업이었다·
재키 선생님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20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이는 젊은 여교사 재클린 캐롤· 사실 실제 나이도 그쯤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세피론 재단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있는 사람이라고 명성이 자자했다·
열일곱에 세피론 아카데미를 조기졸업하고 스무 살에 대학을 졸업하여 고향인 미국으로 넘어가 스물여섯에 교육학 박사학위를 딴 엘리트 중에 엘리트·
그녀는 작년에 처음 부임하여 4학년 C반을 맡았고 2년차에 곧바로 A반 담임으로 정식으로 임명될만큼 재단에서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평온한 한 해를 보낼 줄만 알았던 재클린은 개학 첫주간부터 담당하던 학생이 거하게 사고를 쳐 어떻게 이 난관을 해쳐나가야할지 머리가 아팠다·
“아카데미에서는 허가 없이 마법을 쓰면 안 된다는 거 선생님이 안 알려줬니?”
“첫날 알려주셨어요·”
“그런데 왜?”
“친구를 돕는 일이었잖아요·”
“그래그래· 이제 만날 실장님께도 그런 점을 이모션에 잘 어필해줬으면 좋겠어·”
“아까 그 주무관님 뵈러 가는 거 아니었나요?”
재키 선생님은 내가 멈춰선 곳의 옆방을 두드렸다·
“기획조정실장님이셔·”
“보통은 이런 일이 생기면 학년부장 아니면 교감 선생님하고 만나던데·”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구나? 그래도 여긴 아카데미잖니 익숙해지렴·”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니 비서 한명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방의 구조는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면담실은 ㄱ자로 꺾인 구조에서 한번 더 문을 열고 들어가야했다·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재키 선생님은 나에게 한번 더 당부의 말을 하셨다·
“나메야·”
“네 선생님·”
“안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그저 익숙해지렴·”
무섭게 왜 그런담·
문은 비서 언니가 손수 열어 주었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김 실장님 2-A 캐롤 선생님 모셔왔습니다·”
“아 오셨구나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딱히 멀지는 않았어요·”
“커피라도 드릴까요? 차가 낫나? 여기 탁자에 감귤도 많으니까 얼마든지 먹어도 되고·”
“그냥 물 한잔만 주세요· 목이 타니까· 나메는 뭐 먹고 싶니?”
“저도 물이요·”
재키 선생님의 완곡한 거절에 김 실장(명패로 추측하건대 김용성이 그의 본명이었다)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양복은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인상을 풍기기에 충분했다·
재키 선생님도 많이 긴장하신건가·
물잔을 집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제가 오늘 두 분을 모신 이유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라면 무척 실망스럽겠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도 반가워요·”
“네 뭐·”
김 실장은 가방에 서류철을 꺼내 선생님에게 넘겨주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아카데미의 간이 마력 측정기에서 수집된 자료입니다· 맨 밑에 결괏값이 보이십니까? 24627kE·”
“네 잘 보이네요·”
“당연히 잘 보이셔야죠·”
선생님이 별안간 눈을 가볍게 감았다·
김실장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못해도 2천 달러라고 2천 달러! 무슨 짓을 벌였기에 이 따위로 마나를 많이 쓴 거야 당신! 미쳤어?!”
야단소리가 정말 우렁차기도 하네·
“24627? 4서클 마법이라도 썼나 보지? 어쭈 마력 그래프 보니까 봉우리가 2개네? 낙타야? 한번으로는 또 성이 안 찼어?”
“김 실장님·”
“학생도 아니고 선생이라는 자가 중급 마법을 막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 거야?!”
“김 실장님 그래도 학생 앞인데 조금 진정하시죠”
“후우··· 해명 잘 하셔야 할 겁니다 캐롤 선생님·”
“오늘 저희 반 학생이 한명 아팠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오후에 있던 일들을 나열하여 설명을 드렸다·
반 아이의 약을 잘못 먹어 발작 증세를 일으켰고 위급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마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점·
굉장히 심한 과장과 비약이 섞인 것 같았지만 재키 선생님은 뼈와 살을 붙여 상황의 위급함을 구현해냈다·
“그렇다고 4서클 마법을 사용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행정실에서 전달을 잘못 받으신 것 같은데 지금 무언가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나메야·”
선생님이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미리 합을 맞춰본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그녀가 의도하는 바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마법 제가 썼어요·”
“뭐라···?”
“20제곱센티미터의 3서클 국소마취마법과 4서클 비가역 환원마법이요·”
“사람 놀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자리에서 보여드릴까요?”
어차피 마나를 주입하지 않을 거라면 연성 매개체도 필요없었다·
반질반질한 책상 유리에 입김을 불어넣어 뿌옇게 만들었다·
마치 서리가 낀 창틀에 장난치는 아이처럼 그림을 그려나갔지만 그건 단순한 낙서 수준이 아니다·
“우아아···”
재키 선생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게 2천 달러 그러니까 400만원짜리 마법이라고?
아카데미에서 대신 내주겠다는데 이 정도 퍼포먼스쯤이야 몇 번이라도 더 해줄 수 있었다·
반면 김용성 실장께서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요즘 눈을 재수없게 뜨는 사람이 많은 걸까·
이러면 나도 방법이 있다·
“안 믿으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직접 이 자리에서 한번 더 시연해드리죠·”
유리가 연성진으로 쓰이기에 무리인 이유는 반사수식을 기록할 때 유리에 맺히는 상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시광선 범위 내에서 마법진을 그리기 때문에 빛이 유리처럼 매끄러운 표면에 닿아버리면 정반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마법진의 발동 순서가 꼬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난반사율이 센 석판을 이용하거나 간이 연성진 작성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큰 하자가 있다는 것이지 불가능의 영역에 들지는 않았다·
[4서클 역시전: 비가···]
내가 수식을 수정하고 마나까지 모두 주입시키자 김실장이 뒤늦게 눈치채고 내 손목을 잡았다·
“학생 이름이 뭐라고 했지?”
당연히 말려야지·
400만원 한번 더 날리고 싶지 않으면·
* * *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걸출한 인재가 들어왔네요 참 허허!”
“그렇죠? 하하··· 하···”
김실장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겨우 초등생 2학년이 4서클 마법을 그것도 동상(同像)구현을 넘어선 이상(異像)구현이라니!
어떻게 이런 인재가 이제야 알려졌지?
하다못해 천재발굴단 같은 프로그램에 나왔을 법도 했다·
하기야 편입시험을 주관했던 황정훈 박사가 근거 없이 극찬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상상을 뛰어넘지 않는가?
‘단순한 학생 레벨 범주가 아니야·’
‘상’에 대한 이해도와 이를 구현해내는 공간 지각력 수십개의 수식을 암산해버리는 극도로 발달한 수리력과 막힘없이 룬어를 배치하는 기억력 관찰력까지·
사람 자체가 마법을 쓰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영재들은 어릴 적에만 반짝 빛을 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현대 마법의 최전선에서 발전을 도모하는 이들은 언제나 창의적인 대기만성형의 범재였지·
하지만 격을 넘은 천재는 다르지 않을까·
이대로 자라주기만 한다면 한국에서도 드디어 세계적인 레벨의 이론 마법학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학생 그런데 친구가 무슨 약을 먹었길래 마취 마법까지 썼나?”
“제 포션을 모르고 먹었어요·”
“포션···? 내가 생각하는 종군마도사들이 마시는 것이 맞니?”
“천교수님이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네 맞아요·”
“아···”
충격적인 소식에 김용성 실장은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캐롤 선생은 김 실장의 행동에 갸웃거렸다·
‘저 멍청한 것···! 담임씩이나 되는 주제에 포션을 마신다는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건가!’
신은 잔인하리만치 공평하다·
만인에게 사랑받는 국민가수 LK는 얼마전 뉴스에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고백했고
한국의 천년돌이라며 외모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체나도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여 자살했다·
이러한 케이스는 당장 주변에서도 흔했다·
김용성 자신이 평생을 시기했던 일명 엄친아이자 악우 천병호도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 것 같았지만 전쟁 끝에 약혼자를 잃어 폐인이 되지 않았는가·
모르핀 주사나 수두룩 꽂아대는 종군마도사들도 아니고 이 나잇대의 아이가 포션을 복용한다는 것은 한가지 의미밖에 더 되지 않았다·
불치병·
그리고 시한부·
착잡한 표정과 함께 김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클린 캐롤 선생님···? 오늘 일에 대해선 학생에게 별다른 납부책임을 묻지 않고 제 선에서 처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가볼테니까 정리 끝나시면 가셔도 됩니다·]
돈문제는 어른들의 사정이었으므로 굳이 학생 앞에서 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나메의 담임에게 귓속말로 학생에게 일절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노나메 학생도 그래···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재능과 꿈이 있지만 희망과 미래가 없는 삶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김실장은 찝찝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적어도 저 아이가 아카데미에 다니는 동안만이라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게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도리라 생각했다·
“시한부라니 참으로 안타까워·”
그는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리며 면담실을 빠져나왔다·
“시한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메와 저희들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루만 포션을 거르는 행위도 면역체계에 치명적으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매일 포션만 잘 복용한다면 건강한 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나메의 몸은 훨씬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 와중에도 나메는 어떻게 하면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몰래 쓸 수 있을지 고민 중이네요·
그리고 Acedia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후원금은 2학년 A반 응애 친구들에게 크레페를 사주는데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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