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8
저는 어머니를 닮아 머리가 좋은 편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어요·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죠·
[세피론 아카데미 합격 통보]
그런데 정말 합격을 해버린거예요·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초등학교 교과서들로 오빠들이 밤잠도 줄여가며 제게 가르쳐준 덕을 톡톡히 봤죠·
저도 한때는 생각했어요·
설마 나도 천재가 아닐까·
아카데미 수업은 힘들었지만 마법을 배울 때만큼은 재밌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마음은 첫 번째 중간고사에서 무참히 꺾여버렸어요·
[반석차: 7/20]
[전교석차: 32/80]
“우와 유나야 시험 잘 봤다! 반에서 7등이나 했네?”
“이게··· 잘 본거라고?”
아니야·
그럴 리 없어·
80명 중 32등·
저는 아카데미에서 그냥 흔한 범재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우리 반의 1등은 김한결이라는 친구였어요·
선생님 말은 잘 안 듣지만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는 인기 많은 아이였죠·
저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미웠어요·
처음에는 이 감정이 몰라 헤맸지만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어요·
“김한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시험을 잘 볼 수 있어?”
“나? 그냥 집에서 과외 한 거 말고는 없는데?”
질투 분노 그리고 증오·
내가 갖지 못 하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아이들이 너무나 미워져서···
입술을 꽉 깨물었어요·
“32등? 장학금이 몇 등까지라 했지?”
“20등···”
“그래··· 시험 치느라 수고했어 유나야·”
마루 오빠에게 성적표를 보여줬던 날 저는 하루 종일 엄마 품에서 울었어요·
다들 너무 미안해요·
제가 앞으로 더 잘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그 뒤로 저는 처음으로 12시까지 안 자고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쿨쿨 잠들 시간인 마루 오빠에게는 미안했지만 이게 제가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학교까지 매일 45분씩 걸어가는 것조차도 아까워서 시험기간에는 경비 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게실에 자리를 얻어서 몰래 잘 수 있었어요·
노을 오빠 말이 맞았어요·
독해지지 않으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모르는 것을 최대한 배우고 가끔은 그들의 과외 숙제를 대신해주기도 했어요·
성적이 낮은 친구들하고는 말도 섞지 않았어요·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러다가 사물함에 오랫동안 안 쓰는 것 같은 문제집이 보이면 훔쳐서 풀기도 하고 수행평가 때는 저만 점수가 잘 나오도록 눈에 띄는 역할만 맡았어요·
그래도 부족한게 시간이었지만요·
[반석차: 3/20]
[전교석차: 10/80]
‘해냈다···!’
중간고사와 합산 석차는 다행히도 20등·
이러면 반액 장학금이라도 탈 수 있었어요!
하지만 기말고사에서는 저난번처럼 제 성적을 물어봐주는 친구는 없었어요·
원래라면 둘씩 붙어서 앉아야 할 책상도 제 것만은 짝꿍과 조금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는걸요·
후회하지 않아요·
결국은 제 방법이 옳았고 저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친구들이 칭찬해주는건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엄마하고 마루오빠 노을오빠의 칭찬이면 충분해요·
그러니까 저는 누가 저를 욕해도 버텨낼 수 있을 거예요·
아마도·
* * *
“서유나 니 짝꿍좀 깨워줘·”
“···”
“서유나 내 말 안 들려? 10분 뒤에 시험 시작하는데 김한결좀 깨워달라니까?”
“싫어 내가 왜?”
“와아···”
자신이 선택해서 자는 건데 왜 제가 챙겨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하루는 다르게 생각하는지 제게 핀잔을 놓았습니다·
“너 이따가 시험 끝나고 잠깐 나랑 얘기좀 할래?”
“그래 뭐· 잠깐은 괜찮아·”
결국 김한결은 이하루에게 뒤통수를 한 대 맞으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비몽사몽하면 시험을 잘 못 볼텐데 말이죠·
오히려 저한테는 좋은 일인걸까요?
이번 2학기 중간고사는 진짜 자신이 있었습니다·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이하루와 김한결을 이길 절호의 기회였어요·
첫째날과 둘째날에 치러진 시험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으니까요·
일반과목인 ‘국어’ ‘수학’ ‘가을’부터 아카데미 과목인 ‘안전수칙’ ‘마법의 기록’까지·
마지막 남은 제일 중요한 ‘룬어의 기초’ 과목만 해내면 됩니다·
40분의 주어진 시간 동안 저는 30분만에 마지막 문제까지 다 풀 수 있었어요·
암기는 제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기도 하니까 아마 1학년 최초로 100점이라는 점수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 아직은 100점을 받은 아이가 없다고 했으니까요·
시험이 끝나고 학교 뒤편에서 이하루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몹시 심기불편해 보였습니다·
“서유나 너 반 애들한테 뭐라고 불리는지 알아?”
“아니 모르겠는데·”
“재왕이라고 불려· 재수없는 왕따라고·”
“··· 그래?”
예상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충격적인 별명이었습니다·
빨간머리앤도 아니고 대놓고 왕따라니···
“넌 이걸 듣고 아무 생각 안 들어?”
“···”
“그럼 왜 그렇게 불리게 됐는지는 생각해봤어?”
아이들이 저를 피하고 있다는건 조금씩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이하루는 왜 저한테 전해주는 걸까요?
“넌 학기 초에 안 그랬잖아· 반 친구들한테 친절하고 아침 일찍 등교해서 우유급식도 매번 가져오고 애들 숙제도 대신해줬잖아· 요즘 왜 그러는거야?”
“친절하면 공부를 잘 해져?”
“뭐라고?”
“난 무조건 반 1등 아니 전교 1등까지 할 거야· 너랑 김한결이 맨날 쉬는 시간에 놀 동안 나는 공부해서 따라잡을 거야·”
“너 되게 웃긴다?”
“맘대로 생각해· 어차피 이번 시험이 끝나면 이제 너희들하고도 말 안 섞을 거니까·”
어차피 이하루가 하는 말도 진심으로 저를 위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여자 아이들의 중심에는 그녀가 있었으니까요·
결국 이하루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네가 그런다고 윤시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못 해·”
이하루가 악을 질렀습니다·
“윤시후가 누군데?”
“몰라? 전교 1등이잖아· 한번도 1등을 놓친적 없어·”
“내가 무조건 따라잡을거야·”
“아빠도 없는 왕따 주제에···”
저를 욕보이는건 상관 없었습니다·
모두 제가 잘못한 일이니 제가 참아야 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 아빠를 이리도 쉽게 업신여길 수 있는걸까요?
“죽을래?”
화가 났습니다·
노을오빠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들 저도 따라해봅니다·
“뭐? 맞는 말이잖아 거지자식아·”
비웃는 그녀의 얼굴을 한 대라도 때리지 않으면 평생 이 날을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체육대회 때 본 한 아이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온몸에 오러를 휘두르고 자신보다 두 뼘이나 큰 선배의 턱을 휘날렸습니다·
분명
마나회로를
이런 식으로·
무거웠던 머리가 한층 가벼워집니다·
여태껏 끙끙 앓고만 있었던 제가 우스웠습니다·
제가 계속 무시 받는 이유는 약해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도록 저는 이하루가 가장 아끼는 목걸이 부근에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꺄아아아아악!”
아이들은 정말 바보같습니다·
이 세상에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제가 아무리 집이 가난하고 과외 선생이 없어도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아카데미 고등부 선배들은 주말에도 공부를 12시간씩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등부에서는 아무도 그 정도의 노력을 쏟지 않습니다·
만약 저들이 12시간씩 공부했다면 저는 영영 따라잡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어릴 때 저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들의 위에 서 있을 겁니다·
[반석차: 1/20]
[전교석차: 2/80]
오빠들은 제 성적표를 보고 환호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병이 악화되는 엄마에게도 오늘은 기쁜 소식을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당당히 졸업해 대학에 가는 그 날까지 엄마가 버텨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제 성적표는 어딘가 찜찜했습니다·
2등이라는 석차·
1등의 존재·
이하루가 말한 ‘윤시후’가 이번에도 1등인걸까요?
아무래도 다음 주에 A반에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 * *
“반에 윤시후 있으면 불러줄래?”
“미안 친구랑 매점가야 해서! 가서 뭐 먹을래?”
이 친구도·
“저기 윤시후좀 불러줄 수 있어?”
“그냥 네가 직접 들어가서 부르지?”
저 친구도·
어느 하나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제가 왕따라서 그런 걸까요·
모르는 친구한테도 무시당하는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반에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꼰지르면 벌점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매 쉬는 시간마다 A반 앞에 찾아가 윤시후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습니다·
“네가 윤시후야?”
“응 그런데?”
확실히 낯이 익은 아이입니다·
아카데미에는 학생이 별로 없는 만큼 방학을 제외한 6달이라는 시간은 모두의 얼굴을 한번씩은 기억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키는 저보다 조금은 작았지만 단정하게 차려입은 잘 수선된 교복을 보아하니 그가 윤시후임이 분명했습니다·
“이번에 1등했지?”
“어? 어·”
“나랑 같이 ‘마법의 기록’ 시험 처음부터 다시 풀어보자·”
다른 성적은 분명 비슷했을겁니다·
제가 유일하게 낮게 나온 과목은 84점을 맞은 ‘마법의 기록’·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마법은 그냥 외우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이 차이가 컸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어도 막상 마법진을 그려보라고 하면 머리가 하얘지기 일쑤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전교 1등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지 알아야겠습니다·
“언제 할건데?”
“지금 당장은 안 돼?”
“지금 바로? 시험지 집에 놓고 왔는데·”
시후가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한시라도 아까운데·
“괜찮아· 문제는 다 외우고 있어· 너도 그렇지?”
제가 기억을 하면 윤시후도 똑같지 않을까 미루어 헤아렸더니
“··· 뭐 다 기억나긴 하지·”
제 추측이 역시나 맞았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cedia님 또 3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아기나메를 이뻐해주셔서 더없이 행복할 따름입니다! 후원금은 나메의 공갈젖꼭지를 사는데 쓰겠습니다 분명 좋아할 거예요··!!
여러모로 바쁘게 살다 보니 여러분께 2023년 새해 인사를 이제야 드리게 돼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검은 토끼의 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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