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0
내가 세피론 아카데미의 진학을 긍정적으로 고려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카데미 학생들은 교외에서도 마나세 감면 및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2서클 마법의 세액공제 특례에는 차상위계층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교직원 및 학생들도 포함되었다·
그동안 별거 아닌 마법을 써도 내 앞으로 만원 십만원씩 부과되는게 숨이 턱턱 막혔다·
우리 선조들이 물을 사먹는 시대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처럼 나도 마법을 쓸 때마다 돈을 내야한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먹을 때가 많았다·
이 기세라면 미래에는 마시는 공기도 돈 받고 팔아먹지 않을까?
포션값도 매번 치러주고 있는 천교수에게 마나세까지 대신 내달라는 건 너무 어린 애 같으니까 그에겐 비밀로 하고 언제나 내가 납부했었다·
물론 아직 값을 치르지 않은 12만원도 돈이 생기면 언젠간 갚을 예정이었다·
마법의 5단계 기록-주입-발동-저장-시전·
세금을 납부하는 구조는 ‘저장’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마법진이 발동하면 곧바로 국가 프로토콜에 의해 최인접 마력 발전소로 마법진에 주입된 마나의 위치와 위상정보가 전송된다·
정제된 마나를 보유한 발전소는 해당 위치에 동일한 양의 마나로 치환하여 대신 마법을 시전시켜주는 것·
이것이 현대의 마법 작동 시스템이었다·
나도 옛 방식처럼 마법을 시도해본 적이 있었지만 확실히 저장 단계 없이 마법을 발동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천교수가 가진 간이 연성진 작성기 같은 ‘완드’류나 특수한 마나집적회로를 개발하지 않는 한 마법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대충 계산해보니 6서클의 헬파이어 규격의 마법을 저장 단계 없이 강제시전하면 담뱃불 붙이기에는 적당한 화력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다고 6서클의 마법을 시전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진짜로 발동돼버리면 마나 탈진으로 몇 달은 요양해야하니까·
그래서 교내에 있을 때라도 내 마나중독의 치료법도 찾아볼 겸 여러 마법을 연구해볼 생각이었는데 김실장의 말대로라면 간이 마력 측정기라는 것이 마나의 파장을 실시간으로 관측한단다·
특히나 마음만 먹으면 마법의 시전자까지 정확히 밝혀낸다는 부분에서 당시에는 소름이 돋았다·
학생들에게 마법을 허락없이 사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구두로만 전달하고 별다른 제재가 없어서 참으로 허술한 체제라고 생각했는데 아카데미에서도 확실한 수단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는게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학생들 개개인의 자율성은 인정하지만 책임 또한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편의를 받은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뭐 애초에 유나를 위해서 쓴 마법이라서 돈을 내라고 해도 배 쨀 생각이었지만·
반면 나는 이전에 유나에게 사용한 2서클 마법인 ‘조직 재생’은 걸리지 않았던 점에 주목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 4서클의 ‘비가역 환원’은 얄짤없이 걸렸기에 아마도 특정한 검출 임계값이 있을 것으로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김 실장의 성격을 보아하니 절대 알고도 눈 감아줄 위인은 아니니까·
‘그냥 차라리 한두번 더 걸릴 각오로 실험을 해볼까?’
그러다가 나 하나 때문에 검출 조건을 완화해서 아예 몰래 마법을 못 쓸 수도 있기에 일단은 기각이었다·
“할 말이라도 있어?”
내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 터덜터덜 걷는 유나에게 물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게 의외였는지 화들짝 놀라했다·
한숨을 계속 푹푹 쉬어대는 게 어찌나 거슬리는지·
발걸음을 잠시 늦추고 그녀와 보폭을 맞추었다·
“이리 와·”
서유나라는 아이도 참으로 불쌍한 아이였다·
평소에는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는 고양이 같다가도 이렇게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면 사고 친 강아지의 모습과도 같다·
빨간머리만 보면 가증스러운 용사파티의 마법사 레밀리아 아세파이트가 떠올라 머리를 뜨겁게 달구었지만 불쾌한 감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너는 너는···”
유나의 말은 끝맺지 못하고 목구멍에 걸려 다시 들어갔다·
애써 태연한 척 해보지만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린다·
“집 가는 길이야?”
“어? 으응·”
“그럼 같이 가자·”
한동안 우리들은 아무 대화 없이 대로변을 걸었다·
내가 첫 생애에서 살던 때보다 미래라고 해서 특별하게 달라진 풍경은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나 지어졌을 법한 구식 아파트들도 드문드문 있었고 차들은 날아다니지 않고 여전히 굴러다닌다·
하지만 스크린 없이도 하늘에서 송출되는 옥외광고나 운전기사 없이 운영되는 대중교통을 볼 때면 역시 기술은 비대칭적으로 발전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오늘 늦어가지고 작은오빠가 걱정할 것 같아서 그냥 버스 타고 갈게· 포션값은 음··· 최대한 빨리 갚아볼게· 미안해·”
유나는 때마침 오는 버스를 확인하며 내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내가 옆에 계속 있는 게 아마 불편했던 모양이다·
여차하면 가는 길까지 배웅해주려고 그랬는데 당사자가 싫다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삐빅! 잔액이 부족합니다·]
[삐빅! 잔액이 부족합니다·]
“어라? 이럴 리가 없는데?”
유나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감돌았다·
그녀는 서둘러 가방을 열고 지갑을 꺼내 현금이 있는지 확인해본다·
하지만 쓸쓸한 500원짜리 동전 하나만이 버스 계단을 타고 통통 튀어 내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어차피 대중교통은 지폐나 동전을 안 받는데·
하는 수없이 나도 버스에 올라타 그녀에게 동전을 쥐여주었다·
“2명·”
[삐빅! 어린이입니다·(2)]
“가자·”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오늘 일로 하고 싶은 얘기도 있었는데 가는 길에 편하게 앉아서 대화나 하면 딱 좋았다·
“그걸 네가 왜 대신 내줘?”
“잔말 말고 타· 버스에 아무도 없네· 그냥 저기 맨 뒷자리에 앉자·”
우리가 값을 지불하자마자 버스 문이 닫히고 경적소리를 울리며 곧바로 출발했다·
버스기사가 인공지능으로 바뀌어도 급한 성미는 똑같았다·
계속 서 있는 것은 위험했으니 유나의 손을 이끌고 우리는 창가 뒷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여기서 집까지 얼마나 걸려?”
“20분 정도· 사실 버스 잘 안 타서 모르겠어·”
“그렇구나·”
“···”
유나네 집은 정거장에 내려서도 뒷골목으로 한참을 걸어가야한다고 했다·
겨우 버스비 1050원을 아끼려고 45분을 걸어다니는건가·
왕복이면 벌써 1시간 반이다·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야?”
유나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대뜸 질문했다·
“몇 번이나 고민해서 나온 첫마디가 겨우 그거야? 유나는 내가 싫어?”
“아니야! 그런 뜻으로 말한게!”
“그럼?”
“나랑 있으면 시간이 아깝잖아···”
“전혀·”
“나는 애들한테 인기도 없고 재미도 없고 또 나쁜 말만 해서 다들 싫어해·”
“안 싫어하는데? 난 유나가 좋아서 친해지고 싶어· 그럼 반대로 물어볼게· 넌 내가 좋아?”
“모 모르겠어·”
“대답해줄 때까지 계속 기다릴 거야·”
유나가 고개를 돌리려는 걸 제지하고 나와 눈을 맞추도록 했다·
부정적이고 솔직하지 못한 아이를 다루는 법은 쉽다·
자기 감정을 제대로 마주할 때까지 몰아붙이는 것이다·
사람의 뇌는 얼핏 보면 잘 짜인 논리회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잡한 스파게티 코드가 따로 없다·
자신이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내가 지금 왜 우울한지 또는 화나 있는지 설명할 수도 없고 심지어 그 원인이 하나로 콕 집어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우리의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안 그러면 클라우스나 실비아나 레밀리아처럼 커서 돌이킬 수 없는 성격 파탄자가 되어버리는 거지·
“나··· 있잖아· 아카데미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 맨날 늦게 자는데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가야하니까·
어제도 어제도 언덕 계단 내려가면서 미끄러졌는데 발목이 아파도 그냥 걸어갔어·
그런데 우리 반에는 아무도 나랑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아파도 아프다고 말해줄 친구가 없어·”
“발목을 삐었었구나· 저번 체육시간 때 피구하면서 절뚝거리던데 그것 때문이야?”
“응··· 그리고 처음에 나메 너 별로 안 좋아했어· 우리 반에 서리가 너 자랑했을 때도 네가 시후랑 친한 척 했던 것도 다 싫었어·”
“왜 싫었는데?”
“그러니까··· 나도 친해지고 싶었나봐 걔네들이랑···
그런데 걔들은 나메를 좋아해· 왜냐하면 나메는 예쁘고 귀엽고 똑똑하고 어른스럽잖아· 당연한거야·
당연한데··· 흑··· 그게 너무 질투나서·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서 중요한 약인지도 모르고 뺏어 먹었어···
나메는 분명 나한테 화났을텐데··· 흑··· 흐읍·
근데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잖아·
네가 미운데··· 또 너무 좋아·”
유나는 후련한 듯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 얼마나 좋아·
그동안 계속 숨기니까 유나가 이렇게 울보라는 사실도 모를 뻔 했잖아·
그녀가 말을 다 끝맺을 수 있도록 중간중간 계속 흘러 내리는 눈물들을 엄지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는데 이제는 수도꼭지가 고장났는지 제어조차 안 됐다·
“포션 먹어버려서 흐읍··· 너무··· 미안해· 나 진짜 몰랐는데· 진짜 몰랐는데· 나 때문에 죽는 거 아니지? 응?”
“뭐가 그렇게 또 서러워? 죽는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일단 유나를 진정시키려고 내 품에 안아주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인데도 더 작은 내 체구에 품으려니 벅찬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덕분에 그녀가 맘 놓고 울어버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흐윽··· 나 아까 얘기하는 거 들었어· 시한부라는거· 곧 죽는다는 얘기 아니야?”
“누가 그런 얘기를 해?”
“학교 본관에서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 아니야 오해야· 나 안 죽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포션만 계속 마시면 나을거래·”
“그거··· 흐아아아앙 그럼 맨날 아프다는 소리잖아·”
포션에게 한번 세게 데인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 같은데 나는 차분하게 내 상태를 알려주었다·
“포션은 원래 그렇게 한번에 먹는 게 아니라 살짝 공기랑 섞어서 먹는 거야· 유나는 와사비 먹어본 적 있어?”
“응··· 1학년 때 급식으로 한번 나왔었어·”
“어땠어?”
“엄청 엄청 매웠지· 막 머리가 아팠어·”
“그런데 간장이랑 섞으면?”
“먹을만 했어·”
“그런 원리야· 알겠지?”
이보다 심한 마나 중독도 달고 살았었는데 부작용 없는 포션만 매일 마시는 처방은 귀여운 수준이다·
마법을 연구하다 보면 또 운좋게 치료법을 발견할 수도 있고·
유나가 걱정하는 바도 이해는 갔다·
“우리 엄마도 많이 아프셔가지고· 흑··· 나메도 시한부라고 해서 너무 무서웠어· 내가 또 잘못한 줄 알고··· 맨날 나 때문에 난 맨날 민폐만 끼치니까·”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신가봐· 병원에 계셔?”
“아니 집에· 내가 아카데미에 가 있을 동안에는 작은 오빠가 집에 들려서 돌봐주는데··· 잘 모르겠어·
집에 갔는데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있으면 어떡하지? 매일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너무 무서워·
엄마는 앞도 안 보이고 몸도 혼자 못 움직여·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우리 엄마가 아픈 거야· 난 진짜 나쁜 애야· 나쁜 애라고·”
자세한 사정까지는 더 캐물을 수 없었다·
끝없이 자책하는 유나보고 그만두라고 하면 뭐가 달라질까·
원래 책임질 수 없는 외부인은 말을 아껴야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 성격은 그걸 용납하지 못했다·
“유나야· 어머니께 네 친구들을 소개시켜준 적 있어?”
“그건 왜···? 한번도 없어· 우리 집에는 아무도 안 오고 싶어하니까·”
“너희 집에 놀러가도 될까? 오늘 일은 이걸로 퉁칠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른짤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재밌게 봐주시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나메와 유나와 같이 큰 절 한번 올리겠습니다! 앗 왼손을 위로 둬야 할 지 오른손을 위로 둬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네요! 너희들은 오른손을 위로 두면 돼!!
나메를 찾는 독자님들이 생각보다 많이 계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나메는 겉으로는 안 그래 보여도 주목받는 걸 정말 좋아한답니다· 항상 저희 주인공을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유나 파트의 피폐농도가 너무 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앞으로 되도록이면 이 수준 이상으로는 안 넘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약피폐 태그도 없으니 자제하는게 맞겠죠? 최근에 핵불닭볶음면 수준의 피폐물을 하도 많이 봐서 제 혀가 이상해졌나봐요··!!
그나저나 급식으로 스시가 나오는 아카데미라니··· 저도 꼭 한번 다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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