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1
우리가 맡은 임무는 지부장이 앞서 말한 대로 아카데미 서쪽에 위치한 후문으로 가서 병사들의 시선을 최대한 많이 끄는 것이었다·
이제 그건 대외적으로 맡은 임무였을 뿐 보안의 유지를 위해 지부장과 다니엘은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각 조가 할 일들을 낱낱이 기술하였다·
지부장은 그렇다 쳐도 다니엘은 의외였다· 원래도 둘이 전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그리고 아델라의 방에서 지부장은 우리에게 아까 로비에서 말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작전을 알려주었다·
“아르세리아의 숲지기· 아까는 보는 눈이 많아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작전에서는 노네임 자네가 핵심이네· 자네가 참가하지 않았다면 이 작전은 애초에 거행하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아델라 너도 이번만큼은 집중해서 들어·”
이유를 묻자 지부장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비스’ 내에서도 스파이가 숨어있을 거라고·
하긴 제국의 황실친위대처럼 마나의 맹세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급조된 조직에는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부장도 어리석지는 않았다·
“15지구에서 제대로 믿을 만한 사람은 여기 다니엘과 알페리온 시시엘라 그리고 자네밖에 없어·”
“나는?”
“그래··· 너도 아델라·”
“흥이다· 베에-”
표면적으로는 알페리온과 시시엘라가 월계수를 탈취 다니엘과 합류하여 그에게 물건을 넘겨줄 예정이었지만 지부장은 여기서 한번 작전을 꼬았다·
“양동작전이 성공하면 노네임과 아델라는 즉시 아카데미 외곽을 돌아 북문에서 대기한다· 알페리온과 시시엘라는 거기서 노네임에게 월계수를 건네주고 똑같이 동문으로 빠져나오면 돼·”
정보를 빼낸 사람들은 알페리온 일행들을 잡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진짜 월계수는 가장 경비가 적은 북문에서 빼돌린다·
그들보다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갑자기 임무의 난이도가 배로 뛴 느낌이었다·
중간에 알페리온의 월계수가 가짜였다는 사실이 들통나기라도 한다면 즉시 우리쪽으로 추적이 붙을 터·
“뭐 쉽네! 기대해도 좋다고 게슈탈트!”
아델라가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부장님께 좀 더 예의를 갖춰서 말해라 아델라·”
다니엘의 호통에도 아델라는 흥분에 들떠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갸르릉 소리를 냈다·
“그쪽에서도 양동작전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그런 의심조차 뭉개버리려면 숲지기의 활약이 중요해·”
다니엘이 지도를 펼쳤다·
양동작전이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하도록 성도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려라· 다니엘의 주문이었다·
“렘넌트 아카데미는 수도 중앙에 하나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밖으로도 여러 개의 건물들이 있어· 남쪽에는 천문대가 동쪽에는 경비병주둔지가 서쪽에는 재료창고와 입학관리본부가 있지·”
이들은 모두 아카데미와의 긴밀한 연락망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월계수를 성공적으로 탈취했다고 하더라도 사방으로 포위되어 붙잡힐 염려가 있었다·
”그중에서 너희는 남쪽과 서쪽에 있는 3곳을 제대로 털어놔야 해·”
모든 병력이 남서쪽으로 몰리도록·
그때 알페리온과 시시엘라가 아카데미에 잠입하여 월계수를 가져오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도망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아카데미 측에서 양동작전임을 자각하면 다시 돌아와 커다란 산맥으로 막혀 있는 북문에서 그들과 합류해 월계수를 건네받고 산을 너머 성 외곽까지 도망치면 됐었다·
“대머리보고 무식하다니 큰일 날 소리를 할 뻔했네·”
“···”
그래 이 작전이라면 제대로 통한다· 이 정도라면 전생의 카이젠 중앙 아카데미도 깜빡 속을 정도·
게슈탈트 지부장은 지능과 모발을 맞바꾼 사람이었다·
* * *
“하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냥·”
아델라는 코에 이어서 이번엔 귀를 후비적거린다·
잠복 임무 때문에 그녀는 기지개도 마음대로 필 수 없었다·
첫 번째 타격 목표는 당연 천문대였다·
밤에는 가장 인원이 적은 장소이기도 했고 적당한 병력을 호출해내기 안성맞춤이었다·
작전에 열의를 보였던 아델라는 어디 가고 무료함에 하품을 토해내는 냥아치만 남아있다·
“너도 심심하지 않냥·”
“딱히·”
“과거 이야기 좀 해주라· 어디서 엘프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은데·”
“난 내 동족들을 잘 몰라·”
애초에 플레이어 신분이니까·
이 몸이 뭐 하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치사하기는·”
아델라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나 이내 무안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어비스에 들어오게 됐는지 아냥?”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높은 경지를 달성한 것도 아니었고 어비스에서는 맨날 무시당하는 신세·
그녀가 왜 게슈탈트 지부장이 믿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
“난 아카데미가 싫어· 아카데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증오할 정도로 싫어해·”
“좀 뜬금없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있지· 난 아카데미 입학시험의 마지막 탈락자였으니까·”
“입학시험?”
“하 넌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정상적인 루트에서 렘넌트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진행해 보았다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겠지만 나에겐 그 정보가 없었다·
아델라는 개의치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마지막 시험은 점수 엘리미네이션 방식이야· 제한시간까지 100등 안으로 유지하기만 하면 최종합격이니까·”
그리고 아델라는 2년 전 입학시험에서 간신히 100등에 들어가는데 성공했었다·
비록 그녀에게 하늘이 점지해준 재능 따위는 없었지만 시궁창에서 숱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았던 경험은 아델라가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는 데까지 인도해주었다·
“집도 돈도 부모도 없이 자라서 대륙 최고의 인재들만 다닌다는 아카데미에 합격했어· 그땐 빌어먹을 아버지한테 인정을 받을 줄 알았지·”
“아버지?”
“아카데미의 유명한 교수라나·”
아델라의 출신은 미천했다·
그녀는 하룻밤의 유흥으로 태어난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녀를 자식으로 인정할 리 만무했고 그녀는 창관의 어머니에게조차 매몰차게 버려졌다·
제국의 가장 어둡고 더러운 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 ‘아델라’처럼 가장 고귀하고 반짝이는 미래를 꿈꿨다·
살기 위해 행인들의 값나가는 재화들을 훔쳤다·
살기 위해 상인들의 반짝이는 보석들을 훔쳤다·
떳떳한 삶은 아니었지만 아카데미에 합격만 한다면 이전과 다른 생을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자식이 순위를 조작했어· 분명 날 합격시키고 싶지 않았을 거야·”
합격의 기쁨에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찰나에 입학식 전날 그녀에게 불합격 통보가 내려왔다·
‘용사후보의 특례 입학’
어디서 굴러 들어온 지 모르는 이에게 자리를 빼앗겼고 자연스럽게 100위였던 아델라는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퇴출당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에서 차가운 돌바닥에 나앉기까지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아델라는 이를 갈았다·
이미 2년 전의 오래 전 일이었지만 그녀는 당장 어제라도 일어난 일인 것처럼 분을 삭히지 못했다·
“한 자리 정도는 내줄 수 있었잖아···! 왜 줬다 빼앗는건데! 이런 게 어딨어!”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한 새는 다시는 날지 못한다·
“복수할 기회를 2년이나 기다려왔어· 다 죽여버릴 거야·”
아델라는 하늘을 날 수 없다면 다른 이들의 날개를 부러뜨리기로 결심했다·
핏발 서린 그녀의 눈은 도저히 봐도 정상인의 것이 아니었다·
작전시간이 도래했다·
때마침 짙은 구름이 밝은 보름달을 가려주어 시야가 적당히 어두워졌다·
“게슈탈트 아저씨한테 제대로 된 임무를 받아본 건 오늘이 처음이야· 은혜를 갚으려면 이번 임무에서만큼은 실망시켜드릴 수는 없어·”
“널 어비스에 받아준 게 지부장이야?”
“···”
저 멀리 황성 시계탑의 종소리가 울렸다·
무리들 중 아델라의 몸이 가장 먼저 튀어나갔다·
“따라오다가 죽지나 말라고! 안 기다려줄 테니까!”
비좁은 오솔길로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진다·
어이가 없어 실소부터 나왔다·
누가 누굴 보고 조심하라는지·
나비탕이나 안 되면 다행이었다·
* * *
-용사후보라면 그 학생회장 말하는 거임?
-갑자기 ㅈㄴ 불쌍해지네
-우리 델냥이 많이 아껴욧!
-다시 보니 좀 예뻐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상처받은 고양이 마구 쓰다듬어주고 싶음
-이런 애를 왜 암델라라고 하냐 월아갤 애들은?
-이 정도면 세탁 충분하구만
나이트메어 난이도를 처음 겪어본 사람들은 말했다·
아델라 정도라면 사연 있는 히로인 정도로 쳐줘도 되지 않냐고·
일반 난이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나이트메어 고유 캐릭터·
외모도 훌륭하고 과거사도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이미 그들은 그녀의 뾰로통한 표정과 글썽거리는 고양이 눈 그리고 이따금씩 기분에 따라 바닥을 찰싹찰싹 내리치는 꼬리에 매료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의 내막을 전부 아는 ‘한국’ 클랜의 부마스터 ‘대살’ 대학원생살려는 경험자의 조소를 날렸다·
[‘대학원생살려’님이 1000원 후원!]
-암델라 혐오스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냐아아아아아아아아앗! 숲지기 살려줘!”
아델라가 입에 담지도 못할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오솔길을 되돌아온다·
그러자 나메에게 돌발 퀘스트창이 떠오른다·
[렘넌트 천문대 경비 (0/20)]
나이트메어의 난이도는 친절하지 않다·
산에서 도적을 만나면 영문도 모르고 개죽음을 당하는 것처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적의 정보도 적의 약점도·
다만 그들은 모두 플레이어를 죽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두컴컴한 오솔길·
불길한 까마귀 소리·
잘그락거리는 경번갑(鏡幡甲)의 마찰음이 울려퍼진다·
산을 내려오는 일정한 보폭소리가 다다랐을 때
그들은 일제히 무기를 꺼내들었다·
“침입자는 처단한다·”
-20명?????????
-뭐야 원래 2명 아니었음?
-ㄴㄴ 난 1명이었는데?
-눈빛 살벌한 거 보소 사람 한명 죽이겠네
-ㄴ죽이려고 왔잖아 씹ㅋㅋㅋㅋㅋㅋㅋ
-나이트메어에 악명 수치 최대라서 처음 전투부터 개고생ㅋㅋㅋㅋ
-20명이면 그래도 할 만하지 않나? 나중에는 대대 단위로도 나오는데
-쟤네들 몸집을 봐라
“노네임 제발···! 여기서 죽기 싫다고오옷!”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 아델라를 맨 앞의 병사가 발목을 잡아 그녀를 거꾸로 들어 올렸다·
짧은 치마가 스륵 내려가고 검은 가터벨트 속옷이 훤히 드러났다·
-와씨 키 줜나 크네
-전부 2m는 되겠는데?
-근육 우락부락한 거 봐 갑옷이 터지려고 하누
-나이트메어 악명10은 알파메일밖에 없는 세상이냐
-키 160 월붕이 오열 ㅠㅠㅠㅠㅠㅠ
-ㄹㅇ 어디 근위대장 할 인재들이 천문대 경비나 서고 있네
-오오?
-아아아 설마????
-이거지··!!!!
-와캬퍄헉농ㅋㅋㅋ
-쥐엔장··· 경비병 형님들 믿고 있었다구!!!
-코박죽 쌉가능ㅋㅋㅋㅋㅋㅋ
-검은색 야점··· 야점이요···
-다들 게임에 집중 안 하냐ㅋㅋㅋㅋㅋㅋ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델라라는 캐릭터도 정말 제가 오래 전부터 상상해왔던 인물이었습니다·
초기 컨셉은 만약 어느 주인공이 소설 또는 게임 속 엑스트라로 빙의해서 원래 아카데미에 입학했어야 할 인물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에서 탄생했습니다·
태그를 대충 정해보다면 #판타지 #로맨스 #라이트노벨 #피폐 #구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비록 내용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델라도 제가 정말 사랑하는 아이인만큼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프롤로그 ~ 2화 수정 완료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지사항을 통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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