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7
쾅-!
물은 생명의 근원· 그러나 생기를 가장한 무자비한 폭력이 대지를 초토화시킨다·
한차례 마법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 크로니클 부학장은 대지로 내려와 육탄전을 펼쳤다·
수원(水源)의 마나를 두른 검과 메이스가 맞부딪치는 파상음이 울린다·
철쇄로 온몸을 치장한 나메가 진이 휘두른 검을 민첩한 동작으로 빗겨내며 역으로 허점을 파고 들어간다·
“노네임 내가 도와줄 건···!”
챙-
그러나 진도 뒤가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회심의 일격이 강철로 만든 회중시계에 번번이 막히며 다음 공격을 이어나간다·
크로니클의 검에는 푸른 검기가 실렸다· 푸른 마나는 맹렬한 사냥개가 되어 나메의 허리춤을 물어뜯기를 원했다·
나메가 재빨리 몸을 앞으로 굴렀다· 동시에 그녀는 철퇴머리를 당겼고 뒤따라오는 쇠사슬이 검을 휘감으며 진의 무기를 봉인했다·
“위에 광선도 조심-”
어느새 회중시계가 나메의 머리 위까지 당도했다·
질릴 대로 질려버린 초침 소리가 귀를 어지럽힌다·
시계의 충전음은 일직선의 모든 생명을 강탈하는 참격의 전조였다·
나메가 다시 크로니클에게 달려들자 그 또한 검을 사선으로 세우며 물러났다·
숲지기가 만들어내는 광선의 파훼술식은 그녀를 무방비하게 만들었다·
확실한 이지선다에 걸릴 때 그녀의 목숨을 확실히 앗아갈 계획이었다·
위잉-
예상대로 나메는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뒤에서 거슬리게 하는 회중시계를 망가뜨리기 위해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그녀의 복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크로니클은 다시 큰 보폭으로 나메에게 내달렸다·
“뒤에 뒤에를 봐!”
아델라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온다·
나메가 뒤늦게 철퇴를 휘둘러보지만 분명 대응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늦을 수밖에 없었다·
콰광-!
그러나 아델라가 주의를 주기도 전에 나메의 철퇴가 먼저 진의 머리에 적중했다·
나메가 회중시계를 망가뜨리려고 했던 것은 속임수·
그녀는 도리어 크로니클이 자신을 노리고 들어오리라는 예지에 가까운 예측을 통해 철퇴의 위치를 교란시키는 광학 마법진을 시전한 것이다·
“크윽···!”
마지막 체력이 모두 닳며 보스전의 끝을 고하나 싶었다·
-개쓸데없네 진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델라 저뇬 때문에 안 맞을 공격도 몇 번이나 대신 맞아줌
-아니 방해할 거면 대체 옆에 왜 있는 거야?
-수상할 정도로 마법을 잘 쓰는 스트리머
-진짜 교수님 아님? 이거 의심이 막 들거든요
-걍 순수 피지컬도 미쳤는데?
-ㄴ광선 피할 때 옆으로 덤블링해서 랜딩까지 캬 파쿠르 영화 보는 줄ㅋㅋㅋㅋㅋ
-ㄴ몬가몬가임···
-평타 그만 때리고 스킬을 쓰라고 스킬을!!!
-팩트) 사제는 1부가 끝날 때까지 공격스킬을 하나도 못 배운다
-아니 개똥캐를 왜 함 그럼?
-일반 난이도에서는 뒤에서 힐만 하면 동료들이 다 해줘서 보스전 날먹 씹가능임
-ㄴ그래서 나도 게임 처음 클리어하고 싶은 애들한테는 맨날 힐러 추천해 줌
부웅-
철퇴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머리를 분명 정통으로 맞았는데 진 크로니클 교수는 여전히 의식이 살아있었다·
“살다살다···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들에게···”
양팔이 한 다리가 두개골이 만신창이가 된 교수는 큭큭 실성을 토해낸다·
“끄흑 큭· 월계수만 있다면·”
바닥에 떨어진 단안경을 주울 기력도 없을 만큼 무방비해 보였다·
목숨을 끊을 거라면 지금이 기회였다·
“월계수· 월계수· 월계수· 월계수· 월계수· 월계수· 월계수· 월계수· 월계수· 월계수·”
나메는 쇠사슬을 풀고 법구를 날려 원거리에서 그의 등허리를 내리찍었다·
와그작- 척추가 부러지는 불쾌한 소리가 진동했다·
“월계수· 위그드라실? 그래 가련한 여인이여· 나는 어제 종말의 획린을 찍을 것이다· 하루의 환락은 육계절의 멸렬·”
입이 멈추지 않고 파편적 단어가 바람에 흩어져 사라진다·
그러자 그의 몸이 목각인형처럼 우뚝 일어선다·
“아델라·”
나지막이 그의 딸의 이름을 부른다·
“나의 사랑하는 아델라·”
“뭐- 뭐냣! 갑자기!”
그에게 속박되어 있던 월계수의 조각이 다시 두둥실 떠오른다·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
반딧불이는 슬금슬금 아델라의 주위를 감쌌다·
그녀가 손을 뻗어보지만 안타깝게도 잡히지 않았다·
“아델라 당장 도망쳐!”
“뭐엇?”
“늦었다· 위그드라실의 후손이여·”
혼탁했던 크로니클 교수의 눈이 생기를 되찾았다·
“어··· 어라? 내 몸이 왜 이러지?”
아델라가 휘청이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이었다·
“생명의 월계수·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야·”
-??????????
-2페이즈?
-뭔 소리야 아까 패턴이 3페이즈였는데?
-체력 분명 0인데 지금도?
플레이어들을 뒤통수치는 페이즈 개념은 이렇게 전투가 완전히 종료되고 나오지 않는다·
체력이 3분의 1이 깎일 때 내지는 절반이 깎일 때 일정한 분기마다 나오는 것이 정설·
그렇기에 지금 크로니클 교수의 행동은 의아한 부분이 많았다·
[빙결감옥]
나메를 중심으로 108개의 얼음기둥이 동심원상으로 솟아오른다·
“너 진 크로니클이 아니지?”
“연기가 어설펐나? 뭐 상관없겠지·”
빙벽에 갇힌 나메는 신경도 안 쓰고 엉덩방아를 찧은 아델라에게 그는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단다· 하지만 내가 깨어나려면 어쩔 수 없었어·”
“누··· 누구?”
“지금의 나는 그 무엇도 아니란다· 그래서 너의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 없겠구나·”
상냥하다· 그렇기에 더욱 이질적이다·
“난 너를 알아 아델라· 네 재능을 높이 사고 있어·”
아델라가 품에 숨긴 단검을 세게 쥐었다·
그러나 남성에게는 빈틈이 없었다· 어디를 휘둘러도 이 남성은 손쉽게 막아낼 거라고 본능이 경고했다·
그렇지만 아델라는 제 본능을 부정했다·
남성의 경동맥을 노린 재빠른 일격·
팅-
남성의 목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굳이 애써서 막아내지도 않는 이유였다·
힘의 차이가 명확했다·
“너의 노력 너의 용기 너의 의지 너의 인내 너의 끈기 그리고 너의 존재까지· 하지만 네 육신에 내린 저주 때문에 너는 꽃봉오리를 끝내 피우지 못하는구나·”
“무··· 무슨 소리야 대체···”
“네 아비는 어리석게도 네게 한 가지 저주를 내렸었지· 열아홉 번째 생일이 도래하는 해에 세상과 작별할 수 있도록· 여기 보아라· 네 심장에 저주의 낙인이 찍혀져 있지 않느냐?”
아델라가 제 가슴께를 흘긋 내려다본다·
전에는 없던 푸른 문양 하나가 돋아났다·
“이게 뭐 어때서!”
“보아라 이렇게 하면 지금도 아프지 아니한가?”
남성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에 각인된 문양이 덩달아 공명하며 빛을 발했다·
“흐으윽···!”
“너는 그 누구보다 빛나는 존재다 아델라· 그러나 한낱 어리석은 미물 때문에 너는 차가운 돌바닥에서 밤을 지새고 딱딱한 빵에 침을 발라가며 씹어 삼키지· 네 아비를 원망해라· 원망해야 마땅한 것이다·”
“아파···”
“하지만 진 크로니클은 이미 죽었지· 네 손으로 죽이지 못해서 허무한가? 아니 복수는 본디 공허하고 허탈한 것이다· 다 끝났으니 인생에 후회는 정녕 없는가? 아니 너는 본디 탐욕스러운 여자다·”
“어쩌라고··· 그래서어···!”
“저 아이의 재능이 탐나지 않는가?”
남성이 나메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하마· 숲지기의 몸을 뺏어라·”
악마의 유혹이 속삭였다·
나메를 가둔 기둥이 뱀처럼 휘어진다·
네 개의 기둥이 입을 쫘악 벌려 그녀의 사지를 물었다·
나메가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음들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숲지기의 몸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
“네가 원하는 따뜻한 음식 따뜻한 집 그리고 아카데미 생활까지· 모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너는 처음부터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아르세리아에서 온 숲지기가 된다·
땟국물 묻은 꼬질꼬질한 몸이 아니라 신에게 선택받은 천상의 육체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위그드라실이 내린 육체는 그 자체로 축복이니·”
남성이 힘을 거두자 아려오는 가슴 통증이 사라진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나보고 그래서 뭘 하라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 네게도 나쁜 제안이 아닐 것이다·”
반딧불이가 아델라의 머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반짝거리는 월계수 화관의 생김새였다·
“우리의 새로운 신이 되어주거라·”
“신이라고···?”
“그래· 위그드라실은 거짓된 신· 우리들은 새로운 신이 필요하다·”
“난··· 그런 거 몰라·”
“아니· 귀족의 소매를 터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다· 가서 단검으로 숲지기의 심장을 찌르거라· 죽이는 것이 아니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그녀의 몸을 빌리는 것뿐이다·”
“난··· 나는··· 하으··· 흐으윽!”
반딧불이가 다시 빛을 냈다·
아델라가 괴로운 듯이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월계수 위그드라실 그리고 반딧불이의 정체에 대해 깨닫는다·
동시에 진 크로니클의 육체가 맥없이 땅바닥에 굴렀다·
약해진 육신과 정신을 틈타 이미 그녀도 ‘존재’의 일부로서 흡수되어 버린 것이었다·
“너희들은··· 악마였구나·”
아델라가 눈물을 흘린다·
가증스러운 손은 단검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게 본심이라는 걸까·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다리에 힘이 다시 들어온다·
[너는 축복받아 마땅한 존재일 지어니·]
아델라는 나메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갔다·
오늘따라 그녀가 든 무기가 유독 낯설었다·
원래 이렇게 날카로웠었나? 두려운 감정이 샘솟는다·
“미안해 숲지기·”
다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나 진짜 한심하지?”
나메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그냥··· 흐읍··· 그냥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일이 틀어졌는지 모르겠어·”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 세상에 필요한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
그녀는 이대로 죽으면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너무 두려워서 어느 누구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었다·
“들었어? 내가 어차피 죽는데··· 일 년도 안 돼서 말이야··· 이럴 거면 아버지는 날 왜 살려 둔 걸까? 차라리 태어났을 때 확 죽여버리지···!”
그녀는 살면서 관심과 애정을 끊임없이 갈구했다·
그러기 위해 알페리온이 바쁠 때도 시시콜콜한 대화로 그를 방해했고 시시엘라가 가장 아끼는 옷을 훔쳐 입은 적도 있었다·
“알아 나도··· 내가 이렇게 살아도 세상은 날 가엽다고 여기지도 않겠지· 나는 쓸모 없으니까· 모두가 싫어하는 아델라니까·”
그래서 노네임이라는 숲지기가 더욱 부러웠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하고도 단번에 말을 섞을 친화력 신이 빚은 듯한 아리따운 육체 고갈되지 않는 마나와 끝이 없는 지식들까지·
그에 비해 아델라에게 남은 것이라곤 생을 마지못해 이어가는 끈기밖에 없었다·
“미안해··· 그러니까 왜 나 같은 사람한테 애써 잘 대해주려고 한 거야· 너도 내가 많이 못 미더웠잖아··· 흐읍··· 흑···”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델라의 눈물샘은 고장난 수도꼭지였다·
자신이 이러는 와중에도 숲지기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저런 냉철함을 만들었을까·
아델라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녀의 손이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보다도 더 벌벌 떨린다· 검수로서의 기본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다·
“나도 이렇게 약하게 태어나기 싫었어· 모두가 나만 우러러봤으면 좋겠어· 아냐 사실 다 필요없어· 그럼 난 대체 뭘 원했던 걸까···”
이미 수차례의 전투로 반쯤 파괴된 단검이었지만 잘린 단면으로도 미약한 생명의 목숨줄을 끊을 정도는 충분했다·
그녀의 울음기가 잦아들었다·
내면으로 결심을 끝마쳤다는 의미였다·
“응··· 조금은 알 것 같아· 난 친구가 필요했었구나·”
아카데미를 입학하려는 목적이 과연 아버지에게 온전히 인정받기 위함이었을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진 크로니클은 결코 그런 인물이 되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아델라는 깨달아버렸다·
그녀는 내심 부러웠던 것이다·
자신이 로브를 잔뜩 둘러메고 뒷골목에서 도둑질을 하고 있을 때 상인들을 핍박하는 무뢰배들을 혼내주는 아카데미 학생들이 마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해줘서 찬사를 받는 아카데미 학생들이 너무나도 부러워서···
저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함께 어울리고 싶었다·
평생 받아보지 못한 사람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다·
그녀가 살아온 나날들을 빙벽에 갇힌 숲지기에게 들려준다·
“나도 걔네들처럼 살고 싶었나 봐·”
그녀가 단검을 하늘 위로 치켜든다·
“그동안 고마웠어··· 진짜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내 한 가지 부탁만 들어주지 않을래?”
반딧불이의 기운이 모두 단검으로 모여들었다·
악마가 나메의 육체를 약탈할 준비를 모두 끝마친 것이다·
“날 영원히 잊지 말아줘··· 영원히··· 잊혀지는 건 너무 무서워··· 계속 떠올려줘 기억해줘 아델라라는 멋진 사람이 여기 있었다는 걸 가슴에 품고 살아줘··· 아 그리고 게슈탈트 아저씨한테도 안부도 전해주고· 헤헤··· 이러면 두 개네···”
아델라가 괜히 히죽 맑게 웃어 보이며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래도 들어줄 거지?”
나메를 향하던 검로가 별안간 틀어졌다·
숲지기의 심장을 꿰뚫을 날붙이의 끝이 도리어 제 심장을 향한다·
위기를 감지한 반딧불이가 검에서 빠져나오려는 것보다 아델라의 팔이 더 빨랐다·
이윽고 검붉은 피가 나메의 얼굴에 튀었다· 아델라가 피를 왈칵 쏟아냈다·
얼음이 녹는다·
나메가 뒤늦게 달려가 무너지는 아델라의 육신을 받들었다·
본체를 잃은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하늘로 올라가 사라진다·
붉은 새벽녘이 비치며 차가워진 대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여생을 불태워 가장 고귀한 죽음을 선택한 소녀의 몸은 미동도 없이 싸늘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 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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